바다 2
정지용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 떼같이
재재발랐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콥에 찢긴
산호(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로 몰아다 붙이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씻었다.
이 애쓴 해도(海圖)에
손을 씻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회동그라니 받쳐 들었다!
지구(地球)는 연(蓮)잎인 양 오므라들고......펴고......
(『시원』 5호, 1935. 12)
[어휘풀이]
-재재발랐다 : 재바르다. 어지간히 빠르다
-변죽 : 그릇이나 과녁의 가장자리 부분
-회동그라니 : 회동그라지다. 갑자기 휘둘리어 넘어져 구르다.
[작품해설]
『바다』 연작시 10여 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정지용의 초기 시 특징의 하나인 선명한 이미지 제시를 잘 보여 준다. 정지용은 여러 감각적 이미지 중 시각적 이미지를 가장 많이 사용했으며, 또한 그 이미지를 직조해 내기 위해 직유법을 즐겼다. 그리고 직유에 사용된 보조관념은 동물계의 자연물이 많이 등장한다. 이렇게 그가 직유를 즐기고 동물계 보조관념을 많이 사용한 까닭은 움직이는 상태, 즉 동적 세계를 형상화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파도가 밀려오은 푸른 바다의 모습을 놀랄만큼 신선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는 이 시는, 1~4연의 전반부에서는 바다의 역동적 모습을, 5~8연의 후반부에서는 해안선까지 확대된 시인의 시선을 통해 바다를 총체적으로 관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1연에서는 끊임없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의 모습을 ‘뿔뿔이 / 달아나려고’로 2연에서는 파도가 물에 부딪쳐 흩어지는 모습을 ‘푸른 도마뱀 떼같이 / 재재발랐다’로 표현한다. 계속하여 3연에서는 이처럼 빠른 파도의 움직임을 ‘꼬리가 이루 / 잡히지 않’는다고 하고, 4연에서는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泡沫)을 ‘흰 발톱’으로, 파도에 부딪치는 돌과 모래를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로 표현한다. 이처럼 이 시에서 바다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인식된다.
후반부에서도 바다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그려진다. 바다는 ‘가까스로 몰아 부치고 /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씻’고 ‘애쓴 해도에 / 손을 씻고’ 뗀다. 여기에서 시인은 바닷물이 밀려왔다가 모래위에 자취만을 남기고 되돌아가는 것을 바다가 ‘해도’를 그리는 것으로 인식한다. 7연의 ‘찰찰 넘치도록 / 돌돌 구르도록’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렇게 파도가 끊임없이 모래사장에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보여 준다.
이렇게 바다가 주체가 되어 ‘해도’를 그리는 것을 보고 있던 시적 화자는 시선을 먼 수평선 끝으로 연장시킨다. 그 때 화자의 눈앞에는 바다에 둘러싸인 커다란 지구의 모습이 떠오르고, 그것을 지구가 바다를 회동그라니 받쳐 든 것으로 인식한다. 이제 바다는 지구 위에서 움직이는 한 작은 존재에 불과해진다. 그것을 시인은 지구를 커다란 연잎으로, 바다는 그 위에 움직이는 커다란 물방울로 표현한다. 지구 위에서 움직이는 바다의 끝없는 운동은 곧 지구가 오므라들었다가 펴지는 것과도 같다. 그것을 시인은 마지막 행에서 지구가 ‘연잎인야 오므라들고......펴고......’로 형상화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전환이야말로 정지용이 즐겨 사용하는 발상의 전환이자 고유의 시적 기교라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소개]
정지용(鄭芝溶)
1903년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8년 휘문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 발간
1929년 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33년 『카톨릭청년』 편집 고문, 문학 친목 단체 ‘구인회’ 결성
1939년 『문장』지 추천 위원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추천
1945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1950년 납북,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