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서 저 하늘 또 다른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곰곰이 생각하면 마치 인생을 살아가는 순례자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낯선 땅을 밟는 여행객들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대개 호기심의 발로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심 - 혹은 자기 울타리일상을 떠나 또 다른 미지의 세상으로 가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행길은 그저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론 타고 가던 버스가 고장이 나서 길가에 버려진 듯 자기 몸을 태우고 갈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할때도 있다.
기대보다 편안하고 분위기 좋은 멋진 곳에서 잠자리를 제공 받을 때도 있고 그와 반대로 바퀴벌레 나오는 원치 않는 곳에서도
지내야 할 때도 있다.
호텔에서 럭셔리한 식사를 먹을 수도 있고 길가 가게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다.
때로는 모든 것을 잊고 자기 몸을 망중한 속으로 몰입 할 때도 있지만 여행지에서 열병을 앓으면서 초조하게 밤을 지새우며 내일을
기다려야 할 순간도 있다.
여행길에서 정말 인연 같은 귀한 만남이 있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정말 만나지 않아야 할 불청객을 만날 수도 있다.
이러하듯이 우리 인생이 그렇다. 좋은 모습으로 살아갈 때도 있지만, 부유한 때도 있지만, 눈물 젖은 빵을 먹을 때도 있다.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들이 충족할 때도 있지만 자신의 바람과 전혀 기대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갈 때도 있다.
이 인생의 원리를 알면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 만족함도 부족함도 모두 껴안고 원만하게 살아갈 지혜를 배우는 현장이 바로 여행지
이다. 여행길에서는 부딪히는 여러 가지 상황들은 모두가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 삶이 부대낄 때, 비틀거릴 때, 도저히 살아갈 의미를 못 찾을 때마저도 우리는 여행길에서 그냥 주저앉을 수
없듯이 다시 집으로 돌아올 궁리를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살아 나갈 길과 헤어 날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여행은 반드시 아름다운 곳과 편안함만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즐거운 마음만 날리며 자기 혼자만 즐기는 것도 아니다. 여행은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현재를 체득하고 돌아와야 한다.
우주 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기근과 아픔과 상처에도 관심을 가지며 그들의 눈물도 닦아줄 수 있는 아량 있는 성숙한 인간미를
가져야 한다.
지금은 바야흐로 21세기 우주공동체 시대, 글로벌 시대를 살아간다. 폭넓은 세계의 현장이 열리는 곳이 여행지의 길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편협한 사고의 눈높이가 여행을 통해 열려지고 모난 성격도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고 이해함으로써 둥근 달처럼 원만해질 수 있다.
여행을 하면서도 참으로 살고 싶었던 나라도 있었고 마냥 아름다운 자연에 흠뻑 젖어 지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필리핀은 살면 살수록, 알면 알수록, 깊으면 깊을수록 답답하고 못나 보이는 나라이지만 그래도 그들과 어울려 함께
지내는 것은 여행을 통해 터득한 삶의 지혜에서 빗어지는 넉넉함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