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2 – 7. 7 용인포은아트갤러리(T.031-896-6003, 010-4745-2884)
데포르마시옹-표현주의, 그 시각과 색채
박정우 展
글 : 박정우 작가노트
태고부터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그리거나 만들거나 하면서 생존해 왔다. 고대유적의 석상이나 동굴벽화는 오늘날 보기에도 아름답고 훌륭한 조형물임에 틀림없다. 서양 조형예술의 역사는 BC. 7천 년 전부터 지금의 현시대까지 장구한 세월을 거쳐 연연히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이토록 긴 세월의 역사도 그 양식의 차이점으로 나누어 본다면, 물론 사가에 따라 구분기준이 다를 수는 있겠으나, 결국 두 세 개의 큰 분기점으로 구분해 볼 수 있겠다.
그 첫 번째 분기점이란 바로 19c 중엽의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출현이다. 즉, 인상파출현 그 이전이냐 그 이후이냐의 분기점인 것이다. 인상파출현 이전의 조형예술이란 서양철학의 용어를 빌린다면 곧 미메시스(Mimesis)적인 것이다. B.C. 25,000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발견이래부터 19c 인상파 출현이전까지, 그 기간 예술가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적인 흐름이 있음을 인지 할 수 있다. 그것은 미메시스, 즉 실제의 사물을 모방하거나, 아니면 더 아름답게 또는 장중하게 그려내고 빚어내는 동일성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조토로부터, 미켈란젤로, 벨라스케스, 밀레와 쿠르베에 이르기까지, 이들 훌륭한 거장들도 사실상 이런 흐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의식할 수 있다. 예컨대 앵그르나 쿠르베의 누드작품도 그 선대의 작품에서, 또 조소의 귀재 로댕의 불세출 작품들 속에서도 B.C 100년의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에서 볼 수 있는 솜씨와 숨결이 함께 흐르고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런 가운데 19c 인상주의출현은 그동안의 미술사를 크게 가로지르는 첫 번째 분기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더 이상 사물의 재현에 매달리지 않았고, 대신 빛과 느낌, 인상에 따라 대상과 자연을 대하고 묘사해 내었다. 재현과 정형-소위 말하는 동일성의 신화를 거부하고 주류의 미학개념과도 결별하며 조형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또한 인상주의는 반세기도 채 안 되어 연이어 등장하게 될 또 하나의 획기적 분기점의 태동을 암시하고 유도해 주고 있었다.
그 두 번째 분기점이란 다름 아닌 데포르마시옹D'eformation-표현주의의 등장이다. 원래 표현주의라는 붙임은 독일의 E. 루드비히 키르히너(다리파)로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태고의 원시미술과 이집트 미술도 사실 훌륭한 데포르마시옹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들의 것은 고의로 의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구별될 수 있고, 따라서 여기서의 데포르마시옹이란 근현대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함을 의미한다. 20c 초, 그들은 작가 자신의 주관적, 또는 감성적이고 직관적인해석을 통해 대상의 변형, 심지어 왜곡까지 하면서 정형과 재현으로 부터의 탈주를 시작했다. 이것은 바로 서양미술사에 또 하나의 공시적 가로지르기로서, 새로운 이정표이자 획기적인 역사의 문을 열었다는 의미이기도하다. 이후 인류의 조형예술의 흐름은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하여 하루가 지나면 또 하나의 새로운 미술사조가 생겨날 정도로 그 흐름은 변화무쌍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시각/영상예술까지 한데 아울러, 수많은 예술사조와 양식들을 데포르마시옹이라는 공통된 개념으로 바라본다면, 결국 그들 모두를 탈 정형, 탈 재현의 큰 속(屬) - 바로 표현주의라는 두 번째 분기점 안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시각에도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수많은 미술양식과 무소속의 예술 사조들도 사실상 데포르마시옹을 전위에 놓고 그들만의 예술세계를 위해 달리고 있는 무한대의 대 탈주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굳이 결론을 짓자면, 나는 위에 기술한 서양미술의 두 분기점을 높은 새의 눈으로 조감해 보며, 그 속에서 오늘의 작가 - 나 자신의 예술의 정체성과 진정성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찾아보고자 하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1997년 나는 미술공부를 하고자 무작정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그곳 'Art Student League of New York' 이라는 미술 학교에서 본격적인 미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이 학교는 내 인생을 바꾸어 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훌륭한 미술 학교였다. 일찍이 마크 로스코나 잭슨 폴록 등 수많은 근현대 미국의 거장들이 바로 이 학교에서 그림공부를 했듯이... 나 역시 2000년도 초까지 약 4년에 걸쳐 이 학교에서 인체해부학드로잉, 유화/수채화를 비롯하여 판화와 조소까지, 본격적인 그림공부를 하게 되었다. 애초부터 굵은 획과 강한 색채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자연히 사물의 재현과는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선대의 거장들이 보여준 완벽한 데포르마시옹이나 온전한 정신세계로의 몰입, 또는 사회적 앙가주망을 보여주는 그런 수준은 물론 아니다. 그곳까지에는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고, 자신의 고뇌와 내공이 저만치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 하지만 섬뜩섬뜩 스치는 표현주의 -그들의 시각과 색채는 나의 눈과 뇌파를 흔든다. 그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의 찰나이기도 하지만, 한편 계속되는 몽환이기도하다. 때로 눈앞의 자연과 사물은 그 형태가 일그러지며 왜곡되어 다가옴을 느낀다.
-작품 ‘피안(彼岸)’ 속에서의 하늘과 물은 갑자기 새가 되고 물고기가 되어 그렇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의 시선은 저 멀리 수평선너머의 피안의 세계로 사라진다.
-작품 ‘고성(古城)’은 번개 맞은 고목에서 수 천 년의 영혼들이 폭발하듯 화염이 되어 밤하늘로 날아다닌다. 그들은 살아있는 나 자신이 되고 나는 바로 그들이 된다.
-작품 ‘새벽 II, 파수꾼’에서, 새벽하늘은 보라와 녹색의 구름을 타고 지극히 몽환적으로 흐르고 있다. 외로운 독수리 한마리가 가로등위에 앉아 여명의 도시를 지키고 있다.
-때로는 음악과 자연의 소리도 온몸의 전율을 일으키며 전혀 새로워진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 눈에 보이지 않은 상상의 자연과 색채로 지각되어 나타나곤 한다.
-작품 ‘정화된 밤’은 독일 표현주의 화가이자 작곡가인 아놀드 쇤베르크의 현악 6중주, ‘정화된 밤’의 표제를 그대로 사용했다. 날카로운 현의 소리는 푸른 달빛이 되고 현란한 음의 절정은 무지개색의 산야가 되어 걷고 있는 두 사람을 에워싼다.
-작품 ‘이카루스의 추락’은 그리스 신화로서 많은 거장들이 같은 주제를 그려왔고, 지난 세기 앙리 마티스와 피카소도 같은 모티브를 패러디하곤 하였다. 나 역시 인간의 추락은 마찬가지지만, 신화 속 이카루스처럼 인간의 자만이나 실수로 인한 추락이 아니라 도시의 빌딩숲에 쌓인 고독한 현대인의 추락을 의미하며, 결국 그들의 종착역이 되는, 어쩌면 그래서 더 빨리 도착하고 싶은 바람일 수도 있다는 은유를 두었다. 애초에 황금 날개는 없었으며 그 날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공중에서 높이 날고 있는, 영혼을 거두는 새만이 갖고 있다.
그림을 시작한지 어언 20년, 그동안 모아놓은 작품들의 먼지를 털어내고 전시회를 갖게 되었다. 자신의 작품을 볼 때마다 항상 부족함을 느끼곤 하지만 이제 과감히 지인을 비롯한 세인들에게 나의작품을 선보이려고 한다. 막상 문을 열고 보니, 좀 더 열심히 할 것을, 좀 더 일찍이 죽자 사자고 덤볐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뒷덜미를 잡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마음을 먹으며 가까스로 위안해 본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나의 작품을 보아주며, 나에게 황금빛 날개는 고사하고 거푸 깃털이라도 하나 달아주어 이카루스처럼 추락하지 않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미술철학사’의 저자이신 이광래 교수님께 존경심과, 한국미술연구소 선임연구원 이민수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