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情)
나오미 시하브 나이
세상을 잃은 뒤에야
묽은 고깃국에 소금 녹듯
미래가 한순간 녹아버리는 것을 느껴본 뒤에야
정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손에 쥐고 있는 것,
소중히 여기고 조심조심 지켜온 것,
이 모든 걸 잃은 뒤에야
정이 보이지 않는 풍경이 얼마나 황량한지 알 수 있다.
달리고 또 달리는 버스 안 승객들이
옥수수와 치킨이나 뜯으며
영원히 창밖만 내다보고 있다면,
너는 얼마나 오래 버스를 타고 갈 수 있겠니.
하얀 판초를 입은 인디언이 죽은 채로 길가에 누워 있다.
그곳으로 여행을 다녀 온 뒤에야
정의 포근한 중력을 알 수 있다.
그 모습이 너의 것일 수도 있다는 걸,
그 사람 역시 무수한 계획을 꿈꾸며
어두운 밤을 여행했고, 살아 있을 땐
평범한 숨을 쉬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슬픔이 마음 중에서 가장 안쪽의 것임을 알고 난 뒤에야
정 또한 가장 안쪽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슬픔 속에서 깨어나 봐야 한다.
네 목소리에 지극한 슬픔의 실타래가 느껴질 때까지
슬픔으로 짠 천의 크기가 보일 때까지
슬픔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이제 정만이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신발 끈을 묶고 밖에 나가게 하고,
편지를 부치고 빵을 사게 하는 것도 정뿐이며,
세상의 군중 사이에서 고개 들어
그대가 찾던 것이 바로 나라고
말하는 것도 정뿐이며,
그림자처럼 친구처럼
네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는 것도 정뿐이다.
- Naomi Shihap Nye, Words under the Word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