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리뷰]
무너진 학교현장서 감정노동자 교사의 스트레스 사망,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다
2014.08.13 권동희 | labortoday
권동희
공인노무사
(노동법률원·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13구합62206 유족보상금 부지급결정 처분취소
1. 문제의 소재
이번 사안은 고등학교 교사의 뇌출혈 사망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 즉 △교사들은 어떤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것인가 △교사들의 과로사에 대해 공무원연금공단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제대로 판단하는 것인가 △감정노동자로서 한국 교사의 현실은 어떠하며, 정신적 스트레스의 주된 원인은 무엇인가 △정신적 스트레스만으로 교사의 과로사가 인정될 수 있는가 △과로사 판단 기준에 있어서 ‘상당인과관계’의 법리적 판단과 심리구조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망 및 쟁송의 경위
고인 ○○○은 국어 교사로서 충청남도교육청 ○○고등학교 2학년 부장 및 2학년 1반 담임으로 근무하던 가운데 무단이탈 학생 문제로 학부모와 1시간여 동안 전화 통화를 한 후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 퇴근 후 자신의 차량을 운전해 병원으로 가던 중 배수로에 추락한 후 다음날에 발견돼 119구급차량으로 천안의료원으로 이송됐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사인은 ‘뇌동맥류의 파열에 의한 뇌지주막하출혈’로 추정 진단됐다. 고인의 유족은 공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고인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2010년 건강검진표에서 ‘비만관리·혈압관리·이상지질’로 확인된 점, ‘뇌동맥류의 파열에 의한 뇌지주막하출혈’인 점 등으로 비춰 볼 때 공무 또는 공무상 과로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부지급 결정 처분을 했다. 이에 대해 심사청구를 했으나 공무원연금급여재심위원회에서도 기각결정을 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3. 법원 판시의 요지
서울행정법원(제6행정부)은 “이 사건 학교의 인문계 학생들은 총 93명 정도였는데 그중 22명이 자퇴를 하고, 2학년 1반 학생들은 총 780회 벌점을 부여받고 총 43회 징계를 당하는 등 학습의욕이 부족한 학생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고인은 교장·교감 등의 설득으로 어쩔 수 없이 2학년 1반 담임을 맡게 된 점, 2학년 1반 학생 일부는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고인의 지도에 따르지 않았으며, 심지어 고인에게 폭언을 하기도 했던 점, 고인이 학생들의 문제에 대해 학부모에게 연락을 취하면 도리어 불만을 표시하는 학부모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서 고인은 교사로서 자존감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됐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동료교사에게 그만둬야겠다고 말하기도 한 점, 고인은 무단이탈한 학생들 문제로 학부모와 통화한 이후 두통이 심해져 병원으로 이동하던 중 사망한 점, 2010년도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130/70㎜Hg로 측정돼 고혈압이 어느 정도 관리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감안하면, 고인은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 질병이나 기존 지병이 공무상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속하게 악화돼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결했다.
4. 판결의 의의
가. 스트레스 사실만으로 교사의 과로사가 인정된 거의 유일한 케이스
이번 소송에서 규정시간 외 근로했던 연장근무를 주장·제시했으나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인이 받았던 스트레스에 대해 법원은 학생·교사의 증언·진술, 학교의 사실회신을 통해 거의 인정했다. 즉 육체적 과로 요인이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만으로 교사의 뇌출혈을 과로사로 인정한 것이다. 최근 5년 동안 법원의 교사에 대한 과로사 쟁송사건에서 승소사건이 거의 없었던 점과 정신적 스트레스만으로 과로사 인정은 더욱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의 가치는 상당하다.
이번 법원의 판결은 공단 및 재심위의 실무적 기준이 틀렸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현재 일반 근로자와는 달리 공무원의 과로성 재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세부 기준이 부재한 상태다. 즉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제11조 ‘공무상질병’은 제1항 제11호에서 ‘공무수행 중 업무량 증가·초과근무 등으로 육체적·정신적 과로가 유발돼 발생하거나 현저하게 악화된 질병’이라고 한다. 또한 제2항에서 ‘공무상 질병은 공무수행과 그 질병의 발생·악화 사유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규칙에 형식적인 규정 이외 안전행정부 또는 공단의 세부적인 인정기준이나 판단지침은 제시돼 있지 않다. 이로 인해 당사자로서는 과로성 재해의 판단 기준을 전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예상하기도 힘들다.
더욱 큰 문제는 정신적 스트레스 내역을 판단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단에 제출하는 사망경위조사서에는 성명·담당직무·재해경위·평소수행업무·과로근무내역·건강진단결과 통보서의 판정내용·시간별 행정 등을 기재하게 된다. “정신적 스트레스 내역이 첨부되고 기재될 공간”이 없다. 일선 학교에서도 이런 내역을 알지 못해 이를 거의 증명하고 있지 못하다.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은 모두 이런 서류와 내역을 통해 형식적으로 과로와 상병 간의 인과관계를 판단 받는다.
나. 감정노동자 교사의 현실 증명
이번 사건은 교사의 열악한 현실을 잘 보여 준다. 해당 학교는 특성화고등학교로의 전환과정에 있었으며, 비평준화 정책으로 인해 지역 인문계고등학교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지원하는 학교였다. 일반 인문계고등학교도 인문계슬럼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해당 사건은 학교 붕괴의 끝이 어디인가 보여 주고 있었다. 일반 도시의 고등학교의 경우, 자사고와 특목고로 학습능력이 높은 아이들이 집중화되고 서열화된 지 오래다. 이후 남은 아이들은 도시 내부의 인문계고등학교로 진학하고, 그 이후 도시 외곽의 고등학교로 지원하는 현실이다. 외곽의 인문계고등학교는 결손가정이나 부모의 양육환경이 별로 좋지 않는 가족이 많다. 이로 인해 교사가 학생지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에 따라 같은 인문계고등학교라고 하더라도 동일한 수준의 학생들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교사도 학교가 두려울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업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휴대폰에만 몰두하고 있고, 수업의 대부분은 잠으로 때우고, 교사에게 반말을 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일상화된 풍경이 되었다. 또한 교사들은 엄청난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미성숙한 아이들과 일부 불손한 학부모를 접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표출할 수 없으며, 끊임없이 내적으로 감정과 표현을 삭이는 구조에 처해 있다. 감정노동자로서 매일을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이러한 학교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로 인해 “고인은 교사로서 자존감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됐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판단했다.
다. 공무기인성의 법리적 판단에 충실한 판결
법원은 일반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와 마찬가지로 공무원(교사)의 공무상 재해도 동일한 판단구조를 취한다. 업무(공무)와 재해와 상당인과관계를 요한다고 해 상당인과관계설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한 인과관계의 정도, 입증책임, 입증 정도, 판단객체, 과실의 관계, 업무(공무)과중성 기준은 모두 동일하다. 이 사건 판결은 기존 과로사 판결과 달리 사건 심리에 있어 별다른 의학적 감정을 하지 않았다. 기존 과로사 판결은 뇌심혈질환이라고 하더라도 원고(입증하는 자)에게 의학적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을 요구했다. 이로 인해 과로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작업환경의학과, 뇌출혈과 기존질병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는 신경외과(신경과) 등에 대해 ‘진료기록감정촉탁’을 했다. 이에 반해 이 사건의 경우 비록 원고측 주장인 초과근무대장 이상의 과로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지만, 고인이 담임업무를 맡고 난 이후 과정과 이로 인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인정했다. 이 정신적 스트레스의 누적이 뇌동맥류 파열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주류 판결과 달리 의학적 감정촉탁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무상 재해 여부는 법리적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판단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라. 소결
며칠 전 교사의 명예퇴직 인원이 사상 최대의 숫자라는 보도가 나왔다. 무너진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은 명예퇴직으로 출구를 찾고 있다. 스승으로서 자긍심보다는 감정노동자로서 숨 막히는 현실을 생존해 나간다. 이번 판결은 무너진 교육현장이 어디서부터 단추를 다시 끼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작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