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책소개>
생을 다한 동물들에게 소풍 같은 한때,
죽은 동물들에게 빛과 생명을 불어넣은 찬란하고도 슬픈 빛과 색
보랏빛 물소가 다가와요.
이어 사슴도 호랑이도 치타도 기린도 성큼 걸어 나와요.
박물관은 어느 순간 풀밭으로 변하고 동물들은 마음껏 뛰어놀아요.
죽은 동물들에게 빛과 생명을 불어넣은 찬란하고도 슬픈 빛과 색
자연사박물관 동물들과 한바탕 뛰어노는 아이
그림책 《박물관에서》는 글 없는 그림책이다. 여자아이가 수많은 동물들이 박제되어 있는 자연사박물관에 들어갔다가 판타지 속 동물들을 만나 한바탕 신나게 노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글 없는 그림책이다 보니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더더욱 귀와 눈을 크게 열고 보게 된다. 글을 모르는 아기부터 할머니까지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자연사박물관이라는 공간을 빌려 죽은 동물을 살려내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따뜻한 보라색과 주홍색에 담겨 있다.
요즘은 특수한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동물 박제를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동물을 사냥하고 박제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자연사박물관은 그러한 동물 박제를 종합적으로 한데 모아 놓은 곳이다. 큰 도시마다 자연사박물관 하나쯤 있다. 살아 있는 동물들을 구경하는 곳이 동물원이라면 멸종된 동물이나 죽은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은 자연사박물관이다. 죽어 있는 동물들이다. 동물들이 죽음 그 뒤에 과연 편안한 안식을 취하고 있을지 의심스러울 만큼 꼿꼿하고 딱딱하게 서 있는 곳, 이곳에서 여자아이는 어떤 것을 보았을까?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한달음에 달리듯 보는
앞표지에서 보라색 줄무늬 점퍼 수트를 입은 여자아이가 사람들 무리 속에서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다른 사람들은 흑백에 가까운 톤인데 유독 여자아이만 컬러를 가지고 있다. 박물관 건물과 주위 풍경도 어두운 톤이다. 그래서 더욱 여자아이가 도드라져 보인다. 박물관 안은 어떤 풍경일까? 여자아이 앞에 어떤 모습이 펼쳐질까? 궁금증을 안고 표지를 넘기면 보라색 벽이 보인다. 벽에는 작은 액자가 몇 개 있다. 동물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 액자이다. 동물들도 흑백에 가까운 색감이다.
박물관 안에 들어선 여자아이 앞에는 좁은 유리 장 안에 든 큰 동물들이 서 있다. 여자아이는 겁이 났을까? 손을 입에 갖다 대고 있다. 위층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한다. 한때 땅을 울리며 들판을 누볐을 물소와 사슴, 양 들의 머리가 여기저기 걸려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동물들의 머리 박제는 훨씬 무시무시해 보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주홍빛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문을 발견한다. 아이는 조심스레 다가가 문을 열어본다. 보랏빛 거대한 물소가 눈앞에 나타난다. 흑백 톤이 아닌 보라색 물소이다. 물소가 아이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이는 겁이 나 뒤로 물러나다 넘어진다. 들어갔던 문으로 다시 나오게 되었는데 벽에 걸려 있던 액자의 그림이 바뀌어 있다. 들어가기 전에는 동물들의 액자였는데 나올 때 보니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액자 속에 담겨 있다. 물소 뒤로는 기린, 호랑이, 표범, 다람쥐 등 보라색, 주홍색, 빨간색을 한 동물들이 걸어 나온다. 마치 박물관에 있던 박제된 동물들이 생명을 얻어 움직이는 것 같다. 박제가 있던 유리 장은 텅텅 비고 다양한 컬러의 동물들이 박물관을 활보한다.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서 편안하게 앉은 동물들은 모두 아이를 주목하고 있다. 아이는 물소와 꽤나 친해졌는지 물소를 토닥이고 있다.
그때 저 멀리에서 또 다른 보랏빛 물결이 쏟아져 나온다. 물결을 타고 나온 존재는 고래, 거북이 물고기 등 바다에서 사는 동물들이다. 좀 전에 동물들이 나왔던 그 문에서 다시 쏟아져 나온 물속 동물들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마치 바닷속을 유영하듯이. 덩달아 아이도 고래 곁에서 하늘을 난다. 바닥에 있던 표범이나 말들도 고래를 따라 뛰었다. 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어느새 들판 같은 공간으로 이동한다. 힘차게 달리는 말들을 따라가는데 바닥에 풀들이 보인다. 풀밭에 작은 꽃들도 솟아난다. 여기선 싸우는 동물이 없다. 치타가 악어 입을 점프해서 지나가도 다들 즐거워한다. 악어는 재미있어하는 눈빛이다. 여자아이는 꽃목걸이를 만들어 동물들에게 하나씩 걸어준다. 목에 걸고 귀에 건 동물들 주위로 다시 박물관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난다. 기둥도 보이고 유리 장도 보인다. 풀밭으로 소풍을 갔다가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아이와 물소는 밝은 표정으로 작별 인사를 나눈다. 다른 동물들도 하나둘 떠날 준비를 한다. 마지막으로 물소 꼬리에 매달린 원숭이가 손을 흔든다. 처음 나왔던 그 문으로 다들 돌아들 간다. 그렇게 문이 닫히자 액자 속 그림은 원래대로 돌아온다. 사람들이 아닌 동물들로. 여자아이는 그리 무겁지 않은 발걸음으로 박물관을 나오려 한다. 미처 색이 바뀌지 않은 근엄한 표정의 치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 뒤표지가 보인다. 아이가 박물관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앞표지에서 박물관에 들어갈 때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주위가 훨씬 컬러풀해졌다. 아이의 표정도 밝다.
생을 다한 동물들에게 환한 색과 빛을 선물하고픈
박물관을 들어서기 전에는 하늘빛도 건물 색도 우중충하다. 작가는 자연사박물관이 이미 생을 마감한 동물들의 무덤 같은 곳이라는 데 감정이입을 한 듯하다. 무덤 같은 곳이니 회색빛 톤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이가 박물관에 들어가서 만나는 동물들 역시 어두운색을 띠고 있다. 아이가 신비한 빛이 나오는 문을 열자 보라와 주황색을 가진 동물들이 그 문을 열어줄 누군가를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나온다. 죽음 이후 땅에 묻혀 무로 돌아가지 못한 이 동물들은 그동안 가죽과 몸이 굳은 박제의 형태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영원한 안식을 취하지 못한 동물들이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를 만나 잊고 있던 혼이 되살아난 것이다. 아이 덕분에 마음껏 뛰고 달리고 날고 유영을 한다. 아이는 동물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래서 꽃목걸이를 만들어 마음을 전하려 한다.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해 용서를 비는 마음일 것이다.
‘죽은 동물원’이라 할 수 있는 자연사박물관을 가보고 나서 작가는 우중충한 색깔의 동물들에게 환하고 밝은색을 선사하고 생명의 빛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한다. 연구의 목적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의 욕심에 의해 잡고 죽이고 박제한 동물들의 무덤이자 납골당 같은 자연사박물관에서 잠시나마 동물들의 혼을 달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아름다운 진혼곡처럼 그려져 있다. 그렇다고 마냥 어둡고 무겁지는 않다. 아이와 동물들의 소풍 같은 한때는 찬란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글자 없는 그림책이라 보면서 독자의 상상을 집어넣을 수 있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언어가 달라도 쉽게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글자 없는 그림책은 특히 말 못 하는 동물들의 영혼을 달래는 이야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첫댓글 생을 다한 동물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