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ysium-10-Eden or Dead
글쓴이 글쓰는 k학생
덜컹덜컹
내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마음을 못 정하고 갈팡질팡하는 인간처럼 흔들리고 있다.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다. 나는 눈을 떴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탓에 나는 빛을 피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내 목구멍에 밀려오는 갈증을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을 뿐이다.
나는 물을 찾기 위해 눈을 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부러 꺼내 놓은 듯, 내 바로 앞에 놓여 있는 한 생수병이 눈에 들어왔다. 레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 듯, 생수가 놓인 자리의 구김은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나는 누워있는 자세 그대로 손만 뻗어서 생수병을 잡았다. 그리고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누워 있는 탓에 마시기가 불편하긴 했지만 뭐 어떠랴. 몸은 뻣뻣해서 움직이기 힘들고 무엇보다 귀찮은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렇게 귀찮은 걸 싫어하는 내가 어떻게 낙원을 만들고 친구 녀석들을 추적하고 하는지 신기하다. 후…아마 괴로워서? 그래, 낙원으로 가지 않으면 이 먼지덩이 세상에서 너무 괴로워서 그런 것일 거다. 숨 막혀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그리고 또…나의 약속…그분과 나, 대크리스챤 님, 그리고 친구 녀석들과 한 혈맹.
나는 물이 다 빠져 버린 생수병을 집어 던졌다. 일부러 넣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것만, 정확히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생수 한 병을 모두 마시니 몸이 좀 개운해 진 느낌이다. 기지개를 한 번 크게 하고는 다시 멍하니 자리에 앉았다.
멍하니 명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마땅히 할 일이 없다…지루하다…라고 느낄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쯤, 마차가 멈췄다. 땅을 울리는 말들의 발굽소리도 멈췄다. 동시에 마차의 작은 문이 열리며 레비의 얼굴만 쑥 들어왔다.
“밥 먹을 때가 됐네. 자네 점심도 안 먹었을 테니 빨리 와서 저녁 먹게. 베이컨이야.”
하…뭐? 벌써 저녁? 당황스럽군.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마차에 있었다는 말인가? 내가 뭐하느라고 그렇게 많이 잤다는 말이야? 정신적 피로? 웃기고 있네. 아니면 악마가 나에게 준, 아니 내 자신이 나에게 준 고통의 유예가 길었다는 건가?
꼬르륵
제길…지금 이딴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 배 거죽이 등에 달라붙을 정도인데…
나는 마차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성큼성큼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레비를 따라갔다. 레비가 간 곳은 일행의 중간 정도 되는 지점이었다. 인원이 인원인지라, 우리가 그곳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우하하하!”
“그래, 뭐 힘들긴 하지만 가서 때 돈 벌 거 아냐?”
“그래, 레비씨가 누구야? 최고의 상인 아니냐!”
그곳에 도착하자 레비를 칭찬하는 소리가 마구 들려왔다. 나는 이 사람이 생긴 거랑 정말 다르게 논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그를 따라갔다. ‘안녕하세요 레비 씨’등, 여러 사람이 레비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나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 만나고 또 금방 헤어질 일행인지라 당연한 일이겠지만 서글픈 기분은 어찌 할 수가 없다.
레비는 요리조리 사람들 틈을 지나다녀서 짧은 갈색 단발에 갸름한 계란형의 얼굴을 한 여자와 후드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파악되지 않는 사람이 앉아있는 곳으로 향했다. 레비가 그 두 사람과 같은 보자기에 앉자, 은색 머리가 거의 허리깨까지 내려오는 여성이 반가운 듯 얼굴에 미소를 걸고 말했다.
“레비, 빨리 먹어요.”
레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흔들면서 왼 손을 내 쪽으로 향하면서 말했다.
“그 전에 이 친구부터 소개하지.”
은색 생머리 여자의 얼굴이 나에게 돌려졌고 동시에 레비에게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후드의 남자의 후드가 돌려졌다. 그 덕에 나는 후드에 가려진 그의 얼굴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코는 오똑하고 여자와 마찬가지로 계란형의 얼굴을 한 남자였다.
레비는 나를 향해 있는 왼 손을 내리지 않은 채 말했다.
“이 친구는 이번 여행길에 만난 친구야. 길을 잃었다고 하 길래 같이 왔지.”
어쩐지 시끄러울 것 같은 은색 생머리의 여자가 내게 약간 오버한 몸짓으로 손을 흔들며 활짝 웃어 보였다. 20대 중반…나이는 그 정도로 추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입을 열어서 자기소개를 했다.
“아아, 그렇군요! 미남이네. 나는 줄리아라고 해요. 평민이니 성은 없고…나이는 스물다섯. 그쪽은?”
나는 무뚝뚝하게…아니 평상시와 똑같이 대답했다.
“데스퍼. 스물셋.”
줄리아가 입을 열려고 했다. 아마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누나라고 부르라고 할 요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개는커녕 말도 하지 않을 것 같던 후드의 남자가 후드까지 뒤로 벗어 재껴졌다. 얼굴은 예상대로 멀끔했다. 머리색은 줄리아와 똑같은 색. 눈의 색깔은 머리칼과 똑같은 색이었다. 꺼려지는 것이 있다면…그의 눈이 안대 같은 것으로 가려져 있다는 것 정도.
내가 그의 얼굴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사이에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스니키. 줄리아 누나와는 형제이고 나이는 너와 동갑이다.”
처음부터 반말이 쓰는 것이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이것은 바꿔서 생각하면 나에게도 반말을 자신에게 반말을 허용한다는 말이 되므로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물론 반말로.
“데스퍼다.”
스니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후드를 둘러썼다. 자신의 얼굴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그에게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며 줄리아를 바라봤다. 그녀와 나와 우연찮게 눈이 마주치자, 나는 그저 가식적으로 살짝 엷은 미소를 얼굴에 겹씨우는 것으로 그쳤지만 줄리아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데스퍼, 내가 나이 더 많으니까 누나해도 되지?”
“좋을 대로.”
본심은 아니건만 계속해서 말이 퉁명스럽게 나왔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어릴 적 그 때처럼 ‘응, 알았어.’라고 부드럽게 얘기하는 것 이었다. 하지만…튀어 나온 것은 얼음실린 차가운 가시 뿐. 부드러운 솜사탕 같은 맨트는 없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차, 담배 다 피웠지. 내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오른 듯 하다. 물론 표정은 바뀌지 않았지만 안면 근육이 움찔거렸고, 눈썹이 조금 꿈틀거렸을 따름이다.
“담배 필요 한 건가?”
레비였다. 아까 내가 돗대를 피우고 담배를 던진 것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레비가 주머니에서 시가 하나를 꺼내서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성냥까지 붙여 주었다.
생각해 보니 시가를 참 오랜만에 물어 본다. 시가…담배와 확연히 다르지만 확연하게 같은 그것. 이런 걸로 마음 속 토론을 요구하는 내가 한심하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그저 시가의 연기를 빨아들여 몸을 릴랙스 시켰다. 연기가 내 몸을 지배했고 니코틴이 나를 타고 들어왔다. 타르는 폐를 흘러서 나의 폐와 심장을, 모든 것을 검게 만들었다. 어둠의 존재…음의 존재인 나는 더 이상 어두워 질 데도 없었건만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고통스러운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연기는 하늘을 향해 올라가다 말고 흩어졌다. 하늘로, 창공으로의 바램을 접으며 흩어졌다.
나는 시가를 옆으로 내려 두며 베이컨을 하나 씹었다. 맛이 일품이었다. 웬만한 음식점에서 만든 것보다 양념이 잘 되어 있고 구워진 정도도 적당했다. 그래도 꽤 미식가라고 자부하는 이 내가 이정도 평가를 내릴 정도면 상당한 음식 솜씨를 가졌다는 말인데…
“어때? 맛있지?”
베이컨의 맛과 시가의 맛, 이 두개의 이색적인 맛에 취해있던 내게 줄리아의 높은 소프라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눈에 빛을 비치며 칭찬을 바라는 듯 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듯, 저런 얼굴에 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욕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오히려 칭찬을 해야 할 요리 실력이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음, 그래.”
또! 짧고 이 무뚝뚝한 맨트. 하지만 줄리아는 어지간히도 기뻐 보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나는 베이컨 하나를 더 집어 먹었다. 그렇게 한 개 두 개 더 먹은 것이 상당히 많이 들어갔는지 장에 부담이 될 정도다.
나는 약간 얼굴을 찡그리면서 레비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가와 성냥이 내 손에 들어왔다. 흠, 역시 상인이기에 눈치 하나는 척하면 척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을 찾았다. 아, 저기가 좋겠군.
내가 정한 곳은 앉을 만한 바위가 있고 선선한 바람이 잘 불도록 아무 방패막도 없는 자리였다. 덥기는 매한 마찬가지지만 조금이라도 더 시원한 것이 좋지 않겠는가.
나는 바위 위에 앉아서 성냥에 불을 붙였다. 바위가 태양에 데워진 탓인지 뜨뜻했다. 나는 성냥을 시가에 붙였다. 시가가 살짝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피어올랐다.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일까? 아마 나 자신에 대한 회의일 것이다. 괴로웠다. 내가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나는 그것을 부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부정할 수도 없고 비판할 수도 없는 종교적 절재진리와 같아서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따르기로. 변한다면 변하는 그대로 따르기로. 내 이성 가는대로 따라가자고. 나의 인도자인 그를 따라가자고.
하지만 나의 이성은 날이 갈수록 본능과 일치화를 시도했다. 그것은 내가 이성을 가는대로 내버려 둔 데에 대한 대가였다. 우리 안의 야수를 풀어 놓은 격과 마찬가지 인 것이다. 조절 할 수 없는 차가운 이성…그리고 녹이 슨 칼을 들고 외로이 그 야수와 싸우는 나의 한 가닥 원심.
애초부터 싸움이 되지 않는 것 이었다. 언제 야수의 발톱에 찢겨 이성을 잃어버릴지 모른다. 이성이 언제 도망갈지 모른다. 언제 본능만이 지배하는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또 변하겠지. 변하고 변해서 결국 최종 목적지는…내가 마지막에 디딜 곳은…낙원, 아니면…
“죽음.”
공부하자공부하자공부하자공부하자공부하자공부하자[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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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왜 담배야?;[긁적]
데스퍼, 알고 보니 귀여워♡ 푸헹헹, 원래 공부라는 게 뭐'-)/
베이컨 맛있을까.:)
네라이젤....그냥 담배는...뭐....내가 끊었으니 소설에서라도 피게 해 주려고..[픽]
크흥 -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