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rdan_lebanon님과 KevinJohnson님의 글에 참여하는 대신 가만히 읽고 있었습니다. 두쪽 다 상당히 공감되는 의견을 개진하시며 두 쪽 의견에 모두 끌리는 저를 발견하고는, 제 자신이 줏대가 없구나 하는 쓴웃음까지 자아내게 하셨는데요.
저로서는 던컨, 오닐, 코비 중 한 명을 꼽으라면 간발의 차이로 던컨의 손을 들어주겠습니다.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이 간단한 이유를 고려해봄에도 그 차이가 '간발' 로 느껴지니, 오닐과 코비의 위대함이란 제가 따로 피력해야 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1. 던컨이 팀을 오닐, 코비가 함께 이끄는 레이커스보다 10년동안 플레이오프에 더 많이 진출시켰습니다. 결정적으로 오닐, 코비는 그 둘의 불화때문에 레이커스를 분열시켰으니, 이 또한 던컨과 오닐, 코비의 능력 차이입니다.
2. 던컨이 팀을 오닐, 코비가 따로 분가한 팀들보다 후 5년동안 플레이오프에서 더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던컨은 05 우승, 06 서부 세미파이널 7차전 패배, 07 우승, 08 서부 파이널 5차전 패배, 09 1라운드 탈락이었네요.
코비는 자립하여 05 플레이옾 진출 실패, 06년과 07년 1라운드 탈락, 08 파이널 패배, 09 우승이었네요.
오닐은 05 동부파이널 6차전 패배, 06년 우승, 07년 1라운드 탈락, 08년 1라운드 탈락, 09년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였네요. 게다가 던컨, 코비와 달리 1인자가 아니라 웨이드에 이은 2옵션이었습니다. 오닐 스스로가 인터뷰에서 "나는 2옵션이다" 라고 인정을 했으니 얘기 끝났습니다.
던컨은 오닐이나 코비처럼 득점왕 타이틀도 없는데 왜 최고의 선수냐? 매직 존슨이 어시스트가 통산 1위 포인트가드라서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라 불리진 않습니다. 어시스트 분야에서 압도적인 역대 1위는 매직 존슨이 아니라 존 스탁턴입니다. 최고의 선수는 팀을 승리로 이끄는 선수여야만 합니다. 이 점에서 매직이 스탁턴을 크게 앞섭니다. 그렇기에 던컨도 2000년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던컨이 2000년대 최고의 선수라고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에서부터가 딴지인데, 제가 던컨이 최고라는 의견을 접하면서 그 주장하는 내용에 이의가 없음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근거가, '던컨은 혼자만의 존재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라는 류의 의견입니다.
카페의 몇몇 던컨 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온통 앞뒤가 안맞는 구석이 느껴질 때가 꽤 자주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면,
1. 던컨의 기량이 오닐이나 코비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선수끼리의 기량은 같았으나 스퍼스 팀원들의 실력이 오닐, 코비의 레이커스에 뒤떨어졌기에 오닐이 던컨 대신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스퍼스 팀원보다 '훨씬 더' 기량이 떨어지던 05, 06, 07 코비의 레이커스나 오닐의 히트대신 스퍼스가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던컨이 있었기 때문' 이랍니다.
2. 토니 파커가 리그 최고의 top5 포인트가드에 들지 못한다고 하면 불같이 성을 내며 어찌 파커가 top5에도 못 드냐고 역정을 냅니다. 또한 리그 최고의 슈팅가드 자리에 코비, 웨이드 다음으로 지노빌리 이름이 안 보이면 어찌 써드팀 선정자이자 우승 경험이 세 번이나 되는 클러치 해결사 마누가 없냐며 화를 냅니다. 그런데 던컨이 최고냐 여부의 이야기가 나오면, '던컨은 홀로의 힘으로도 팀을 우승시킬 수 있기 때문' 이랍니다. 던컨과 세 번의 우승을 함께한 리그 top5 포가라던 파커와 top3 슈가라던 마누는 갑자기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습니다.
05년 우승 이후부터 스퍼스는 리그 최강의 팀이었고, 질 것 같지가 않은 느낌마저 자아냈습니다. 역대 최고의 파워포워드 던컨, 리그 top5 포인트가드 파커와 리그 top3 슈팅가드 마누의 Big3는 매경기 언터쳐블이었고, 스몰포워드에는 2000년대 최고의 퍼러미터 디펜더이자 킬러 코너삼점슈터 브루스 보웬이 있었으며, 벤치에는 그 유명한 우승청부업자 로버트 오리, 강심장이자 패싱웍에도 빼어난 브랜트 배리, 오픈 삼점이라면 백발백중인 마이클 핀리가 있어 센터 포지션을 빼면 빈틈이 없었습니다. 팀원 모든 선수가 즉석에서 캐치앤 슛이 가능했고 모두가 경험도 많아 큰 경기에도 능했습니다. 마치 90년대 최강팀이자 역대 최강팀 중 하나로 불리는 시카고 불스와 같이 철저하게 분업이 이루어진 팀웍이 잡힌 팀이었으며, 불스에서는 클러치 상황에 달랑 조던 하나에 어쩌다 unlikely hero 스티브 커 정도만이 있었지만, 스퍼스는 던컨, 마누, 오리, 배리, 핀리, 파커가 모두 무시무시한 클러치 슈터였습니다.
이런 희대의 강팀은 당연히 성과도 좋을 수밖에 없는겁니다. '던컨이 있었기에'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팀이 '우승팀' 으로 변모했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니 두 말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던컨의 자력이었다 부르기에는 말도 안 되게 팀 자체가 강합니다. 이 팀에 던컨 대신 샤킬 오닐을 넣으면 던컨만큼의 활약을 못 할 것이며, 던컨만큼의 성과를 못 낼까요? 아시다시피 오닐의 레이커스 시절 플레이오프 활약은 던컨보다 확연한 우위이며, 파이널 퍼포먼스로는 압도적인 우위입니다.
조던도, 오닐도 그랬듯이, 던컨도 팀원들이 받쳐주지 않으면 맥없이 쓰러지는 선수에 불과합니다.
마누가 부상으로 전력에 도움이 되지 못했던 08년 서부 파이널에서는 던컨은 가솔을 떡 주무르듯 파괴하며 있는 힘을 다해 대항했으나, 스퍼스는 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에게 완벽한 난도질을 당하며 4대 1로 완패당하고 나가 떨어집니다. 마누 하나 뺐더니, 오닐+코비의 레이커스와도 04년 박빙의 승부를 벌였던 스퍼스가 오닐 없는 레이커스에게 원펀치에 K.O당하는 팀이 된 것입니다. 던컨이 아무리 열심히 뛰었어도요. 제 아무리 던컨이라도 가솔을 막으면서 보웬 대신 코비까지 막아줄 수는 없습니다.
09년 스퍼스는 1라운드에서 매버릭스에게 완패당하고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는데, 이 때도 던컨은 남은 여력을 모두 짜내어 풀전력으로 맞섰습니다. 하지만 마누가 이번에는 전력에서 완전 이탈해버리자 스퍼스는 한물 간 매버릭스에도 쉽게 잡히는 약체로 변해버렸습니다. 팀이 일방적으로 당하니 던컨도 맥빠져 4득점밖에 못 올리고 일찌감치 벤치로 들어간 3차전은 유명하죠?
스퍼스 빅3 중 한 명만 빠져도 던컨은 팀을 우승은 커녕 파이널로도, 아니 나이가 들어 기량이 다소 떨어진 최근에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로도 이끌지 못합니다. 역대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마이클 조던도 혼자의 힘으로 우승은 커녕 시즌 승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98년 부상으로 피펜 하나 빼버리니까 그 없는 35경기에서 불스는 평범한 동부 플레이오프 진출팀 수준의 팀이었다는 거 기억하시는 분? 조던도 혼자서는 힘을 못 쓰고 고배를 족족 들이켰습니다. 하물며 던컨이?
농구라는 스포츠는 혼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 수 없습니다. 축구보다, 야구보다야 개인 능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부분이 크다 할지라도, 혼자서 다섯 포지션을 모두 수비하지 못하고, 다섯 포지션을 상대로 모두 득점을 할 수 없는 한은 '홀로의 힘으로 우승을 쟁취했다' 라는 주장은 어딜 보아도 overstatement입니다.
이쯤 되면 어김없이 나오는 이야기가, 2000년대 스퍼스 중 제일 약했던 03년의 우승 이야기입니다. 던컨의 원맨 퍼포먼스가 독야청청 빛났으니, 던컨은 홀로의 힘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선수라는 주장이 성립되지 않느냐는 주장이죠.
03년 라인업을 볼까요? 아직은 어리고 경험 없었던 토니 파커와 마누 지노빌리, 은퇴 직전인 데이빗 로빈슨이 있었고 리그 최고의 디펜더로 명성을 날리던 브루스 보웬이 있었습니다. 벤치에는 샤크도 1대 1로 막던 말릭 로즈가 있었고, 프리스타일 농구를 하되 한번 불붙으면 대단한 스티븐 잭슨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 유명한 킬러 클러치 슈터 스티브 커가 궁병대장을 맡고 있었죠.
선수 개개인의 실력으로 평가하면 별 것 없으나, 한 데 모아 분업을 시키면 상당한 전력을 발휘했던 팀이 03 샌안토니오 스퍼스입니다. 던컨이 포스트에서 공을 잡아 휘젓고 나머지가 빠르게 움직이며 오픈샷을 노리거나 던컨에게 마무리시키던 전술로, 개인 기량 자체가 현격하게 좋아진 05, 06 스퍼스보다 약할지언정 팀 전력으로는 결코 약한 팀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서부 파이널에서 댈러스 매버릭스를 상대로 노비, 내쉬, 핀리가 미친듯이 득점을 했음에도 별탈없이 매버릭스를 잡았던 팀 또한 03 스퍼스입니다. 그 시리즈 전적이 기억이 나시는 분이나 스탯을 보신 분이라면, 던컨 이외에도 롤플레이어들도 꾸준히 여기저기에서 득점을 해주고 허슬을 해준 것이 기억나실 것이며, 토니 파커와 스티븐 잭슨은 거의 매경기 16-20득점을 올려주었다는 사실 또한 아실 것입니다. 게다가 감독은 선수들의 강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강점에 딱 알맞는 역할"만을" 맡기는데 도사로 소문난 그렉 포포비치였죠. 전 그 시리즈 전경기를 소장중이지만, 서부 최고의 강호였던 매버릭스를 상대하는 03 스퍼스의 경기력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결코 약체가 아니에요. 모두가 영민하고 부지런하며 은근히 매섭습니다. 클러치 상황에서는 돌아가며 한방씩 뻥뻥 터뜨리는 시원시원한 구석도 있었구요. 게다가 03년 토니 파커는 이미 그릇이 컸던 선수로, 레이커스와의 6차전에서 닥돌 신공으로 27득점을 올리며 해설자들로 하여금 '누가 제발 저놈좀 막아줘요!' 라고 외치게끔 하는 활약을 했습니다. 파이널에서 리그 최고의 포인트가드였던 제이슨 키드와 일대일 승부에서도 그다지 밀리지 않았구요. 이미 스퍼스 제2의 스타플레이어의 탄생이었던 것입니다. 이듬해에 파커가 레이커스 상대로 보여준 활약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이런 팀은 '던컨 중심 팀' 이라고 불릴지언정 '원맨팀' 이라 불릴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원맨팀이란, 개인 기량들도 모두 형편없고, 팀 전술도 주먹구구식이라 맞춤식 전법이 하나도 없이 모두가 분리된 부속품처럼 따로 놀고, 에이스만이 궁여지책으로 혼자 개인플레이를 하며 먹여살리려 힘쓰는 팀입니다. 근자의 기준으로 보면 제일 가까운 팀이 05 레이커스나 07년 셀틱스인데, 이마저도 제가 생각하는 궁극의 원맨팀까지는 아닙니다.
그 중심에 팀 던컨이 있었기에 03년 스퍼스가 우승했던 것은 지나가는 누렁이도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던컨 혼자 원맨팀을 이끌며 홀몸의 힘으로 우승했다는 주장은 그 자체가 과장이라는 것이죠.
던컨은 스스로의 기량이 출중했고, 때문에 리더로서 우승에 제일 크게 '기여' 했습니다. 팀원들보다 훨씬 높은 "기여도"로, 그리고 그 기여도가 우승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그의 위대함을 측정해야지, '던컨은 코비, 오닐과 달리 팀을 더 많이 우승시킬 수 있다' 라는 주장은 알맹이가 다 빠져버린 두리뭉실한 주장이라는 것이지요. 전후사정을 모두 고려하고, 팀원들의 실력까지도 낱낱이 비교분석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나와야 하는 주장인데, 이 카페에서는 흔히 너무 가벼이 다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도 어찌되었던 2000년대 팀의 더많은 승리에 기여한 던컨이 지금은 근소하게 코비보다 선다고 생각합니다만 올시즌 레이커스가 우승한다면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000년대 최고의 선수는 단연 코비라고 생각합니다. 우승을 못한다 하더라도 일단 커리어는 던컨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 될거 같네요.
근데 2000년대의 기준으로 보면 코비가 우승을 해도 2010년이니 2000년대의 평가에는 영향을 못 미칠듯 하고 다만 선수의 역대 커리어를 평가하는 데는 변화가 있을 수 있겠죠...
99-00 시즌부터 이번 시즌 까지 10+시즌 동안 소속 팀 성적이
코비: 554승 294패(65.3%),
샥 : 532승 308패(63.3%),
던컨: 580승 254패(69.5) 입니다.
플레이오프 성적은
코비: 98승(우승 4회, 준우승 2회, 2라운드 1회, 1라운드 2회, PO 탈락 1회),
샥: 93승 (우승 4회, 준우승 1회, 3라운드 1회, 2라운드 1회, 1라운드 2회, PO 탈락 1회),
던컨: 83승 (우승 3회, 3라운드 2회, 2라운드 3회, 1라운드 2회)입니다.
업적만으로 볼 때 셋의 우열을 가리긴 힘들고 결국은 개인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어떤 점에 더 가산점을 주고 싶냐에 달려있죠.
전 개인적으로 던컨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던컨이 셋 중 최고의 팀메이트고
한 번도 팀 안밖에서나 다른 팀메이트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레이크스 팬이지만 동의합니다. 아무래도 코비에겐 샤크와의 불화와 04-05시즌의 플옵탈락, 07-08시즌의 준우승이 정말 아쉽겠습니다.
좋은 글입니다~
먼진 모르겠지만 던컨이 2000년대 최고의선수가 아니라는 건가..;;;;;
던컨이 최고의 선수가 아니라는게 아니라, 던컨과 코비를 동렬에 놓을수는 있지만 코비를 던컨보다 앞에 놓기는 힘들지 않겠느냐 라는 글이고 , 던컨이 최고라는 이유를 드는데에 있어 '던컨은 원맨팀이었다.' '던컨은 코비와 샼만큼 좋은 동료와 플레이하지 않았다' 라는 이유를 드는건 어불성설이다. 라는 논지의 글 같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짚어주셨네요
저랑 같이 던컨을 위로 두는 이유가 전 시즌 플옵진출을 가장 크게 생각하니니 기분이 좋네요 좋은 글이에요.. !!!
잘 읽었습니다.. 역시 좋은글에는 좋은리플이 따라가는 군요...^^
가장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