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시인
세례 요한이 지시한 대로 제자들은 예수께 나아가 묻는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 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까?”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이 마태복음 11장 1~6절에 나온다.
그들이 떠난 후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7~9절에 나온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게 아니면,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 즉, 화려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냐. 그런 사람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도 아니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도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예수께서 무리에 하신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 아마, 세례 요한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연약한 사람이 아니며, 광야에서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외친 참된 증인이란 뜻이며, 더욱이 그는 단순한 예언자를 넘어 메시아의 길을 직접 예비하고 예언을 성취하는 특별한 사명을 받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하였을 것이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전율을 느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첫 번째 저서인 《강 위에서 보낸 철학과 사색의 시간, 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에 나오는 시를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 시의 화자가 행한 논리구조가 예수께서 무리에게 물은 물음 구조와 흡사했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갈대,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 선지자를 보러 광야에 나갔느냐는 물음으로 시작하여, 세례 요한에서 ‘그보다 나은 자’인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마태복음은 영적 도약을 보여준다. 소로의 시 역시 인간의 인식이 별, 세계, 우주의 ‘외적 세계’에서, 진리, 사랑의 ‘내면의 진리’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신으로 수렴하는 완벽한 점증(漸增) 단계의 논리구조를 구사하였다.
“그는 별 하나를 찾으러 떠났다가
하나의 세계를 발견했고
하나의 세계를 찾으러 떠났다가
온 우주를 발견했다네
그는 진리를 찾으러 떠났다가
사랑을 발견했고
사랑을 찾으러 떠났다가
자신의 신(神)을 발견했네”
혹 소로가 마태복음을 읽고 영감을 얻어 이런 시 작성법을 구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먼저 이 경이로운 시의 논리구조를 단계별로 확장해 분석해 보면, 1단계는 ‘공간의 점증(외적 세계의 확장)’으로 별-세계-우주의 구조를 가진다. 처음에는 밤하늘의 작은 점인 ‘별’을 찾아 나섰지만, 눈앞에 하나의 ‘세계’가 열린다, 그 경이로움에 눈을 떠 다음에는 ‘세계’를 찾아 나섰더니, 이번에는 시공간을 초월한 거대한 ‘우주’를 마주하게 된다, 이는 인간이 외부 세계를 탐구하면서 겪는 인식의 물리적 확장이다. 인간의 좁은 시야(별)가 거대한 존재의 크기(우주)로 점차 커가는 단계이다.
2단계는 ‘가치의 점증’ 논리구조이다. 즉 외적 우주-내적 진리-사랑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우주를 본 인간은 이제 눈에 보이는 물질을 넘어 차가운 이성으로 ‘진리’를 구한다. 하지만 그 끝에서 발견한 것은 딱딱한 지식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감싸안은 따뜻한 ‘사랑’이었다. 이는 곧 인간의 탐구가 ‘머리(이성, 진리)’에서 ‘가슴(영혼, 사랑)’으로 깊어지는 정신적 점증이다. 철학이 인간의 가장 핵심 가치인 ‘사랑’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3단계는 ‘신앙의 점증(최종적 수렴과 완성)’ 논리구조이다. 즉 사랑에서 나의 하나님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그 ‘사랑‘의 실체를 찾아 헤맨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의 근원이자 모든 존재의 시작과 끝인, ’자신의 신(God)’을 만나며 탐구의 여정을 끝마친다. 이는 점증 구조의 클라이맥스다. 앞서 마주했던 우주, 진리, 사랑이 알고 보니 모두 ‘신’이라는 하나의 존재 안에 담겨 있었음을 깨닫는 영적 대각성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마태복음(11장 7~9)과 소로의 시가 통하는 결정적 ‘신비함’의 구조를 나란히 비교해 보면 두 텍스트가 가진 논리가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점증단계 마태복음 11장(인식의 확장) 소로의 시(존재의 여정)
1단계(자연/물리) 갈대(광야의 흔한 자연물) 별과 우주(외적 세계의 탐구)
2단계(인간/이성)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 진리와 사랑
(인간 세상의 기준) (인간 정신과 가치의 탐구)
3단계(영성/신성)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 그의 하나님(his God)
(신성을 담은 존재) (모든 존재의 근원)
마태복음에서 무리는 겨우 ‘흔들리는 갈대’나 ‘화려한 사람’을 기대하고 광야에 갔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지자’를 보여주셨다.
소로의 시 속 화자 역시 겨우 ‘별 하나’, ‘진리 한 조각’을 찾아 길을 떠났지만, 끝내 ‘우주’와 ‘사랑’, 그리고 ‘하나님’을 선물로 받게 된다.
결국 두 텍스트가 공유하는 점증 구조의 신비함은, “인간이 무언가 본질적인 것을 신실하게 구하고 찾아 나설 때, 신(진리)은 인간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완벽한 알맹이로 응답하신다”라는 위대한 종교적, 철학적 진리를 시각적, 논리적 아름다움을 증명해 내는 데 있다.
더욱이 감사한 일은, 우리가 품은 아주 작은 선한 마음과 호기심이 알고 보니 거대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그분의 초대장’이었다는 사실이다. 겨우 반짝이는 별 하나인 줄 알고 다가갔는데 온 우주를 주시고, 그저 흔들리는 갈대인 줄 알고 찾아갔는데 시대를 깨우는 선지자를 만나게 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은 하나님의 섬세한 섭리이자 은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