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태' 실종된 4대강 1호 공원, 부산 화명생태공원
외래종, 잔디에 사람만을 위한 시설만 들어서
개방 1년에 아직도 '공사중'…홍수 때마다 유지 보수 불가피
명절이라 고향집에 내려 왔습니다. 제 고향은 다름아닌 부산의 낙동강변 옆 덕천동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하구둑으로 막히고 제방이 콘크리트로 덮이기 전까지는 강변에서 놀기도 했었죠.
오랫만에 내려온 고향이지만 제버릇 남 못준다고 가까운 4대강 현장을 찾았습니다.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고, 정부에서 1호 생태공원이라 부르는 '화명생태공원'에 간 것입니다.
재작년에 공사가 막 시작될 때도 갔고, 작년 공사가 마무리 된 시점에도 갔는데요. 그 때는 차를 타고 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갔습니다만, 이번에는 걸어서 갔습니다. 생태공원이라면 마땅히 걸어서도 갈 수 있어야 하니까요.
이제 개방한 지 1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라 어떻게 되어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돌아보며 생각난 것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생태공원이 아닌 5가지 이유입니다.
■ 걸어서 접근하기 힘든 곳, 생태공원 아니다
화명생태공원은 덕천동 바로 옆 화명동에 있습니다. 걸어가기에 멀지 않죠. 어느 방향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집에서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곳까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화명생태공원의 허리를 찌르는 곳이죠.
지난번 자전거로 갔을 때 화명동 깊숙한 곳의 입구로는 갔었는데 이쪽으로는 처음이었습니다. 당연히 이쪽에도 있을 거라 생각했죠. 주택가를 이리저리 돌아보아도 철길의 높은 담벼락만 이어질 뿐 입구는 없었습니다.
근처 큰길의 자전거 가게 아저씨께 길을 물었습니다. 강변 자전거 도로가 있을 테니 그 분은 접근로를 알 것 같았으니까요. 그 근처의 입구를 알려주길 기대했으나 '1㎞ 정도 올라가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덕천천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입구로 그곳에서 걸어 20분 가량 걸리는 지역입니다. 저도 그 입구는 알고 있었으나 돌아가야 하는 곳이라 피했던 것인데.
입구로 가는 길 언덕에서 강변공원이 내려다 보였습니다. 공원과 이 길 사이에는 경부선 철로, 강변 고속화 도로, 일반 도로가 뒤엉켜 확실히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그 지역 일대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덕천교차로를 찍고 공원방향으로 갔습니다. 혹시나 안내표지판이 있을까 싶어서요. 한참을 걷는 동안에 그 어디에도 안내표지판은 없었습니다.
구포역에 거의 가까워진 지점에서 차량들을 위한 이정표가 나왔습니다. 결코 걷는 사람들을 위한 표시는 아니었죠. 그 길을 따라 공원으로 향하는 것도 굉장히 위험했습니다.
인도는 없고 차량들이 빠르게 오갔습니다. 자전거 도로가 강변 쪽으로 있지만 아무런 안내가 없어 접근할 수 없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걸어서 접근하기란 쉽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생태' 공원이라면 생태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절실할 텐데 말입니다.
▲화명생태공원은 마을로부터 도로, 철도 등으로 단절되어 있다.
▲도보 이용자를 위한 이정표는 하나 없고, 자동차를 위한 이정표만 있다. 사진 오른쪽 중앙 갈색 표지판이 화명생태공원 이정표다.
▲진입로에 인도는 없다.
▲빠르게 달리는 차량들 옆으로 지나 공원입구로 들어가게 된다.
■ 우범화가 일어나는 곳, 생태공원 아니다
어렵게 도착한 공원 곳곳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었습니다. 지난 여름에 떠내려왔을 법한 쓰레기는 물론이고 불 피우며 술을 마신 흔적까지 있었습니다. 농민들을 쫓아내고 수백억의 예산을 들여 만든 공원치고는 아니다 싶었습니다.
게다가 이곳은 정식 개방한 지 벌써 1년이나 된 공원입니다. 이곳이 가장 후미진 곳이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이 길이 구포 방면에서 도보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고려하면 쉽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지만 입구 일대의 이런 노상 술자리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줍니다. 혹여나 들어오다 술에 취한 사람들과 시비가 붙을 수도 있고, 여성의 경우 추근덕 거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그런 사람들 곁을 지나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보아 관리가 잘 이루어 지지 않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흔히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이런 지역은 청소년들의 탈선장소가 되기 쉽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가장 큰 생태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공원이 결코 우범지역이 아니라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생동물들이 비행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죠.
▲강변에는 언제 떠밀려 온 것인지도 모를 쓰레기가 널려 있다.
▲주변 농경지는 이미 1년도 전에 없어졌는데도 비료포대가 나뒹굴고 있다. 이 일대에 비료를 쓰고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불을 피운 자리가 있고, 그 아래에는 술병들이 널려 있었다.
▲커다란 쓰레기 봉투가 버려져 있었다. 그 주변에는 술병을 비롯한 쓰레기들이 너저분했다.
▲화명동 쪽 입구에는 하수구가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녹조가 낀 것은 물론 악취가 진동했다.
■ 원래의 지형을 바꾸는 곳, 생태공원 아니다
개방한 지 1년여가 지났기 때문에 공사가 끝난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원에는 아직도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커다란 돌들을 바닥에 깔고 있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요.
약한 강변의 땅을 돌로 메꾸어 탄탄하게 만드는 공사였습니다. 원래는 비만 오면 질퍽거리는 것을 바꾸는 것으로 이는 굉장히 반 생태적인 것입니다.
강변의 습지지역은 수시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강물이 엄청난 흙과 모래를 나르기 때문이죠. 큰 비가 온 해에는 강물이 많은 흙을 가져와 땅이 넓어질 수도 있고, 또 강이 물만 많이 가지고 온 해에는 흙이 쓸려가며 땅이 작아질 수도 있습니다.
이곳이 농지였을 때조차도 그런 변화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미세한 점토질로 이루어져 있는 이 지역의 땅을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땅으로 바꾸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든 후에는 수시로 변하던 강변의 모습이 사람들이 원하는 모양대로 고정되게 됩니다. 자연적인 모습을 완전히 잃게 되는 것이죠. 결코 '생태'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공사가 이미 끝난 줄 알았지만, 포크레인이 열심히 작업하고 있었다.
▲4대강 공사를 하며 흔히 한 것처럼 이 일대도 사석으로 둔치보호공을 만들고 있었다. 다른 점은 바닥에도 깔고 있었다는 점이다.
■ 외래종, 잔디밭 키우는 이곳, 생태공원 아니다
관리가 잘 안되고, 공사중인 지역을 벗어나니 조금은 볼 만한 지역이 나왔습니다. 갈대숲 사이로 난 길이었는데요. 나름 흙길로 운치가 있었죠.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황당한 풍경을 만나게 됐습니다. 드넓은 잔디밭이 있었던 거죠.
잔디는 우리나라 일부 지역에 자생하긴 하지만 강변에 자생한다는 얘긴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이 지역 일대는 강 하구와 매우 가까운 지역으로 강변 습지가 특히 발달하는 곳입니다.
하구둑이 없었다면 조수간만의 차도 있었고 일부 지역은 갯벌도 드러났습니다. 그런 이곳에 잔디를 심는다는 것은 정말 황당한 일입니다.
여름철 물이 불어나게 되면 이 지역은 잠기게 됩니다. 즉 상류에서부터 강물과 함께 내려온 흙이 넓게 메꾸게 되는 것이죠. 이후에는 강변에서는 잔디보다 생명력이 강한 갈대가 그 위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연적인 변화를 막기 위해 쌓인 흙을 걷어내고 김매기를 하는 등 인위적인 개입이 필요하게 됩니다. 생태적인 모습이 아닌 것을 위해 예산을 많이 들여야 합니다.
더군다나 이 일대에는 외래종 창포 등을 많이 심어두었는데요. 이들은 관상용으로, 조경용으로는 적합할지 몰라도 '생태'가 붙은 공원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지역에 살던 식물들을 복원하는 형태여야 했습니다.
▲아주 넓은 지역에 걸쳐 잔디를 식재했다. 잔디는 생존력이 높고 답압에도 강하지만 이 강변 지역에 어울리는 종은 아니다. 단지 '보기 좋으라고' 심은 것 뿐이다.
▲한 지역이 아니라 두루두루 퍼져 있었다.
▲설명판에 '유럽이 원산'이라고 적혀 있는 노랑꽃 창포. '생태복원'을 할 때에는 그 지역의 식생을 심고 그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스스로도 외래식물종을 심으며 전혀 생태적인 고려는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
■ 오직 사람만을 위한 곳, 생태공원 아니다
차라리 서울처럼 '한강시민공원'이라고 했다면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태'라는 말을 걸고 '자연이니', '복원이니' 하는 수식어들로 꾸미는 것에 더 화가 납니다.
생태라는 말은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뜻으로 흔히 '자연'과 동의어로 사용합니다. '생태마을', '생태적인 삶' 같은 단어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부엉이의 생태'라고 말하면 숲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부엉이의 모습을 떠올리지 동물원 우리에 갇힌 부엉이의 모습을 떠올리진 않습니다. '강변생태'라고 하면 강변을 강변답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대나 버드나무를 비롯한 수많은 습지식물이 우거져 있어야 하고, 그 속에서 습지답게 수많은 곤충들이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들을 먹기 위해 새들이 몰리고, 그 새들을 먹기 위해 파충류나 포유류같은 동물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강변의 생태공원이라면 그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오직 사람만을 위한 시설만 존재합니다.
거대한 야구장, 몇 개의 축구장, 눈썰매장 겸용 수영장, 테니스장, 헬스장, 넓은 주차장 같은 시설들이 주로 있습니다. 강변과 맞닿은 일부지역에 습지를 조성해 놓았는데 이곳도 '생태복원'보다는 산책로를 위한 조경에 가깝습니다. 심지어 오리쉼터까지도 사람들의 관람을 위해서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름철엔 수영장, 겨울철엔 눈썰매장으로 이용되는 시설. 이날은 분명 개장일이고 지금은 방학임에도 굳게 문을 닫고 있었다. 운영은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일까?
▲공원에서 보이는 화명신도시 아파트들. 이 생태공원은 그저 시민공원일 뿐 전혀 생태적이지 않다.
▲연못 안에 있는 오리 쉼터. 이들을 만든 목적 역시 '관람용'이다.
돌아나오는 길도 씁쓸했습니다. 화명동 쪽 출구였는데 이곳 역시 이정표 하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혀 생태적으로 만들지도 못하고 게대가 시민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지도 못했습니다. 수백억을 투자해 만든 공원임에도 그 값어치는 형편없었습니다.
강의 대규모 준설 때문에 이런 지역의 자연스러운 유지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비만 오면 깊은 강 속으로 둔치의 흙들이 쓸려내려가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둔치를 강하게 다지고 시설들을 세울런지도.
정부에서 아무리 '생태'라는 단어로 포장해도 눈에 보이는 모습들은 '인공'밖에 없었습니다. 단단한 돌로, 콘크리트로 굳어진 공원들이 사람들의 가슴도 단단하게 만들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글·사진 김성만(채색)/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생태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