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자료[1674]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 시 25수
한강 정구 선생
1. 夙夜齋。望倻山。
(숙야재(夙夜齋)에서 가야산(伽倻山)을 바라보며)
전신의 참모습을 아니 내놓고 / 未出全身面
기묘한 한 꼭대기 살짝 드러내 / 微呈一角奇
조물주 숨은 뜻을 알겠고말고 / 方知造化意
인간 행여 천기를 보게 할 수야 / 不欲露天機
2. 曉起偶吟 (새벽에 일어나 우연히 읊다)
솔숲 사이 집에서 잠자리 들고 / 夜宿松間屋
물가의 누각에서 새벽잠 깨니 / 晨興水上軒
앞뒤에서 우렁차다 맑은 물소리 / 濤聲前後壯
이따금 고요 속에 귀를 기울여 / 時向靜中聞
3. 次李玉山韻 (이옥산(李玉山)의 운자를 따라 짓다)
이내 허리 굽힌 게 부끄럽거니 / 媿此長腰折
몇 말의 녹봉 때문 그게 아닌가 / 寧非爲斗粟
먼지 티끌 두 눈 가려 흐릿한 나날 / 塵埃眯兩目
어느 제나 관복 벗고 고향에 갈꼬 / 何日反初服
4. 別金東岡,朴大菴。
(김동강(金東岡), 박대암(朴大菴)과 작별하며)
산속에선 흰구름 구경을 하고 / 山中雲共賞
매화 아래 술잔 함께 기울였건만 / 梅下酒同傾
어인 일로 기쁨이 아니 족하여 / 如何歡未洽
이별의 정 이다지도 안타까울까 / 還惜別離情
5. 自省 (자신을 반성하며)
대장부 그 마음과 하는 일이란 / 大丈夫心事
밝은 해 푸른 하늘 다름없어라 / 白日與靑天
말끔하고 툭 트여 누구나 보니 / 磊落人皆見
번쩍이는 빛이여 위엄 넘친다 / 光芒正凜然
6. 春帖 (춘첩)春帖)
할아비는 고이 앉아 날을 보내고 / 翁惟靜坐終日
아이 또한 글 읽으며 몸을 닦노라 / 兒亦讀書自修
거친 밥 나물국도 즐겁고말고 / 蔬食菜羹亦樂
이 밖에 하많은 일 구할 게 뭐냐 / 萬般此外何求
7. 始卜海亭。示同來諸君子。
(해정(海亭)을 지을 자리를 정하고서 함께 따라온
여러 군자에게 지어 보이다)
나는야 바닷가에 정자 하나 지으련다 / 我欲爲亭近海灣
이 좌중에 그 누가 채서산이 되려는가 / 坐中誰作蔡西山
치자 유자 매화 대 일찌감치 심어두고 / 梔橘梅筠須早植
여섯 해를 비바람에 시달리지 않게 하소 / 莫敎風雨六年間
8. 戊午七月十二日。酒席次門下諸生韻。
(무오년 7월 12일 술자리에서 문하생들의 운자에 맞추어 짓다)
비통 끝의 회포가 이내 가슴 저미는데 / 悲痛餘懷脈脈長
그대들은 어이하여 술자리를 마련했나 / 諸賢何用又開觴
위로하기 위해서지 즐겁도록 함이겠나 / 只緣致慰非爲樂
집안 가득 맑은 얘기 고마울 뿐이로세 / 多謝淸談也滿堂
9. 題晴暉堂 (청휘당(晴暉堂)에 쓰다)
근사한 집 유숙하니 의기 절로 넘치는데 / 一宿華堂意欲驕
시원할사 아침나절 단비 또 만났다오 / 更逢佳雨便崇朝
어느새 해 나오고 먹구름이 걷히니 / 須臾日出雲收盡
푸른 나무 맑은 햇살 다리 위에 어우러져 / 綠樹晴暉映小橋
10. 昌山衙閣偶吟 기일(창산(昌山) 관아에서 우연히 읊다)
실책으로 창산 부임 일마다 잘못되니 / 失計昌山事事非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감만 못하여라 / 思之百爾不如歸
꿈속 넋은 헛이름에 몸 매인 줄 모르고 / 夢魂不省虛名縛
지난날의 낚시터를 까닭 없이 맴돈다오 / 夜夜無端遶故磯
11. 昌山衙閣偶吟 기이 (창산(昌山) 관아에서 우연히 읊다)
관아와 산림에서 하는 일 같을쏘냐 / 官府山林事豈同
장부며 문서 속에 끊임없이 시달리네 / 勞勞役役簿書中
백성 고통 그대론데 신병만 더해가니 / 民病未醫身病急
아서라 돌아가서 북창 아래 누워볼까 / 何如歸臥北窓風
*역역(役役)이 다른 대본에는 종일(終日)로 되어 있다.
12. 次趙明府伯玉 瑗 韻 기일
(명부(明府) 조백옥(趙伯玉) 원(瑗) 의 운자를 따라 짓다)
매화나무 에워싼 집 물 감아 도는 마을 / 寒梅圍屋水圍村
솔 계수나무 그늘 속 사립문 닫아걸고 / 松桂陰中獨掩關
개인 날 처마 밑에 저 멀리 마주하네 / 茅簷霽日遙相對
한 조각 외론 구름 겹쌓인 산봉우리 / 一片孤雲數疊山
13. 次趙明府伯玉 瑗 韻 기이
(명부(明府) 조백옥(趙伯玉) 원(瑗) 의 운자를 따라 짓다)
뜻밖이라 우리 성주 외진 마을 오시다니 / 朱幡不意到窮村
오랫동안 닫힌 문 부랴부랴 열어젖혀 / 顚倒初開久閉關
헤어진 지 얼마런가 찾아주어 고마우이 / 契闊幸承明府問
집가에는 흐르는 물 물가에는 산뿐인데 / 屋邊流水水邊山
14. 題川谷書院誠正堂 (천곡서원(川谷書院) 성정당(誠正堂)에 쓰다)
갓 세운 성정당을 늘그막에 찾아드니 / 舊長來尋新院成
부끄럽네, 세속 먼지 이내 의관 찌들었다 / 却羞塵土滿衣纓
어느 제나 유감없이 관복을 내던지고 / 何年可遂投簪計
진종일 창가에서 옛 글을 뒤적일꼬 / 盡日晴窓閱古經
15. 武屹夜詠 (무흘정사(武屹精舍)에서 한밤에 읊조리다)
산봉우리 지는 달 시냇물에 어리는데 / 峯頭殘月點寒溪
나 홀로 앉았을 제 밤기운 싸늘하다 / 獨坐無人夜氣凄
여보게 벗님네들 찾아올 생각 마소 / 爲謝親朋休理屐
짙은 구름 쌓인 눈에 오솔길 묻혔거니 / 亂雲層雪逕全迷
16. 以承旨入直。次壁上同僚韻。
(승지로 입직(入直)하여 벽에 걸린 동료의 운자를 따라 짓다)
한평생 장한 뜻이 늙어도 아니 쇠해 / 壯志平生老未殘
갈고 닦은 소매 속 칼 빛이 싸늘하다 / 新磨袖裏劍光寒
텅 빈 집 깊은 밤에 행여 얼어죽지 마소 / 不須凍死虛堂夜
날 밝으면 온 천하 안온함을 함께 보리 / 白日同瞻萬國安
17. 甲申春帖 (갑신년 춘첩)
양기 돌아온 대지에 화한 기운 감도니 / 陽回地上天和發
이 세상 그 무엇이 이 봄 함께 아니 할꼬 / 何物人間不共春
병든 이 몸 다행히 바깥 세상 일 없이 / 猶幸病夫無外事
문 닫고 종일토록 마음이나 닦았으면 / 閉門終日養吾眞
18. 偶吟(우연히 읊다)
봄 산은 비단 같고 물빛은 쪽빛인데 / 春山如錦水如藍
두세 관동 어울려 바람 쏘이며 읊노라 / 風詠冠童共數三
그때 당시 공자님의 한탄하신 뜻을 알면 / 若會當時夫子歎
요순 시대 기상을 그대들도 느끼리 / 唐虞氣像許君參
19. 歎時(시대를 한탄하며)
삼백 명의 내관이요 삼천 명 외직 중에 / 內官三百外三千
나랏일에 마음 둔 이 몇몇이나 되느뇨 / 王事留心有幾人
우리 임금 밤낮으로 근심 걱정 깊은데 / 聖上憂勤勞夙夕
군신들 너나없이 술에 취해 즐기다니 / 群臣嬉戱醉昏晨
20. 閱昌山舊蹟偶吟 (창산(昌山)의 옛 자취를 돌아보며 읊다.)
백성 가난 못 구하고 백성 병 못 고치며 / 貧未相賙病未醫
선을 권장 못하고 악도 징계 못하면서 / 善難爲勸惡難治
부질없는 헛이름에 임금 치하 잘못 입어 / 虛名秖誤楓宸獎
오품이라 현감 벼슬 분수 넘게 취했구나 / 偸取當時五品資
21. 題檜淵草堂(회연초당(檜淵草堂)에 쓰다)
변변찮은 산 앞에 자그마한 초당이라 / 小小山前小小家
동산 가득 매화 국화 해마다 늘어난다 / 滿園梅菊逐年加
게다가 구름 냇물 그림같이 꾸며 주니 / 更敎雲水粧如畫
세상에서 내 생애 누구보다 호사로워 / 擧世生涯我最奢
22. 題社倉新構 (새로 지은 사창(社倉)에 쓰다)
변변찮은 생애에 아담한 보금자리 / 小小生涯小小家
앉을 자리 있으면 그걸로 만족이라 / 志存容膝更無加
초가 지붕 밑에서 반평생을 살아온 몸 / 半生已熟茅茨下
기와집 새집살이 호화롭기 그만일레 / 瓦覆新居便覺奢
23. 無題 (무제)
흐린 달밤 산골에 호랑이를 만났고 / 月沈空谷初逢虎
바람 거센 바다에 배 띄워 저어간다 / 風亂滄溟始泛槎
아서라 세상만사 평탄할 땐 말을 마소 / 萬事莫於平處說
인생살이 이러할 제 아슬아슬 살얼음판 / 人生到此竟如何
24. 檜淵偶吟 (회연(檜淵)에서 우연히 읊다)
가천 고을 나에게 깊은 인연 있거니 / 伽川於我有深緣
저 좋은 한강에다 회연까지 얻었노라 / 占得寒岡又檜淵
흰 돌이요 맑은 시내 종일토록 즐기나니 / 白石淸川終日翫
세간의 무슨 일이 이내 마음 스며들까 / 世間何事入丹田
25. 次金陜川 昌一 韻
(김 합천(金陜川) 창일(昌一) 의 운자를 따라 짓다)
다정하고 친근할사 우리 벗 만났거니 / 故人相見卽情親
지난날 복건 차림 등불 아래 여전하다 / 燈下依然舊幅巾
비바람 치는 저녁 오손도손 맑은 얘기 / 款款淸談風雨夕
가난하다 말 마소 소반 그득 봄나물 / 滿盤春菜未爲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