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莫我知也夫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라고 하시니,
○ 夫子自歎 以發子貢之問也 공부자께서 스스로 탄식함으로써 자공의 질문을 유발하신 것이다. 子貢曰 何爲其莫知子也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其天乎 자공이 말하기를, “어째서 선생님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까?”라고 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들을 탓하고 않으며, 아래로 인간의 일을 배워 위로 천리(天理)를 통달하였으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늘일 것이다.”라고 하셨다.
不得於天而不怨天 不合於人而不尤人 但知下學而自然上達 此但自言其反己自修 循序漸進耳 無以甚異於人 而致其知也 然深味其語意 則見其中自有人不及知而天獨知之之妙 하늘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였으나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과 투합되지 못하였어도 남을 탓하지 않았다. 다만 밑에서 배워 자연스럽게 위까지 통달할 줄만 알았다. 이것은 단지 그 자신을 돌이켜 스스로 닦고 순서에 따라 점차 나아갔을 뿐, 남과 매우 다른 것으로써 그 지혜에 이른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을 깊이 음미해보면, 그 안에는 사람은 이르러 알지 못하고 오직 하늘만이 아는 묘미가 스스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朱子曰 不怨不尤 則不責之人而責之己 下學人事 則不求之遠而求之近 此固無與於人而不駭於俗矣 人亦何自而知之也耶 及其上達而與天爲一焉 則又有非人之所及者 此所以人莫之知而天獨知之也 주자가 말하길,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면, 남에게 그것을 나무라지 않고 나에게 그것을 나무라는 것이다. 사람의 일을 아래서부터 배운다면 멀리에서 구하지 않고 가까이에서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본래 남에게 관여하는 것이 없고 풍속을 놀라게 하지 않는 것이니, 사람들도 역시 무엇을 말미암아 그 사람을 알아 주리요? 위로 통달하여 하늘과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른다면, 또한 사람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닌 것이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 중에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오직 하늘만이 홀로 그를 알아주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窮通榮辱 天也 用舍予奪 人也 常人之情 置事於淺近 索理於渺茫 足以惑人之耳目 而以爲能 此所以人知之也 聖人渾然天理 窮通榮辱用舍予奪 皆理之所不能無者 順而受之 又何怨尤之有 人事之中 便是天理 又何必捨人事而求之於渺茫哉 如是則泊然 若不見其所長者 然天理流行 而聖人與之無間如此 所以人不知而天知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벼슬에 못 나가고 나가며 영광스럽고 욕됨은 하늘의 이치이고, 기용되고 버려지며 주고 빼앗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보통 사람의 정으로는, 얕고 가까운 것에 일을 버려두고, 멀고 아득한 것에서 이치를 탐색하는데, 사람의 이목을 미혹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면서 또한 잘하는 것으로 여기니,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그를 알아주는 까닭이다. 성인께서는 순수한 天理이시고, 窮通榮辱과 用舍予奪은 모두 이치 중에 없을 수 없는 것으로서, 순순히 받아들이니, 또 무슨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함이 있겠는가? 사람의 일 가운데는 곧 하늘의 이치이니, 또한 어찌 반드시 사람의 일을 버려두고서 묘망한 곳에서 그것을 구해야 한단 말인가? 이와 같이 하면 담백하고 평범하여 마치 그가 잘하는 바가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러나 天理가 유행함에 성인께서는 그것과 더불어 틈이 없음이 이와 같으니, 이 때문에 사람들이 알지 못하지만 하늘은 아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已與天人只是一理 在己者旣盡 則天人無有不應者 聖人與理爲一 自然無所怨尤 경원보씨가 말하길, “하늘과 사람은 그저 하나의 이치라는 것을 이미 인정하고서,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이미 다하였다면, 하늘과 사람이 호응하지 아니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성인께서는 이치와 더불어 하나가 되셨으니, 자연히 원망하고 탓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蓋在孔門 惟子貢之智幾足以及此 故特語以發之 惜乎其猶有所未達也 아마도 공자의 문하에서 오직 자공의 지혜만이 이런 경지에 거의 미칠 수 있었을 것이기에, 이런 까닭으로 특별히 말함으로써 자공을 유발했던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직 깨닫지 못한 바가 있었다.
朱子曰 聖門自顔曾以下 惟子貢儘曉得 聖人多是將這般話與他說 他若未曉 聖人豈肯說與 但他知得箇頭耳 惜乎 見夫子說 便自住了 如予欲無言 予一以貫之也 只如此住了 只是不曾有黙契省悟 觸動他那意思處 他若有所黙契 須發露出來 不但已也 如曾子聞一貫語 便曰唯 子貢便無這處 주자가 말하길, “성인의 문하에서 안자와 증자부터 그 이하는 오직 자공만이 조금 깨우쳐 터득하였기에, 성인께서는 대부분 이러한 말을 그와 더불어 말했던 것이다. 그가 만약 아직 깨우치지 못하였다면, 성인께서 어찌 그와 더불어 말하고자 하셨겠는가? 다만 그는 첫머리만 알 수 있었을 뿐이니, 애석하구나! 공자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서 곧바로 스스로 멈추어 버렸던 것이다. 예컨대, 공자님께서 나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거나 나는 一以貫之한다고 말씀하였으나, 그저 이와 같이 그만두고 말았던 것이다. 단지 일찍이 묵묵히 합치하여 살피고 깨달아서 그의 저러한 뜻이 있는 부분을 건드려 움직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만약 묵묵히 합치됨이 있었다면, 반드시 발로되어 나왔을 것이지, 단지 그만두고 말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컨대 증자는 一以貫之라는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예라고 말하였지만, 자공은 곧 이러한 부분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 程子曰 不怨天 不尤人 在理當如此 又曰 下學上達 意在言表 又曰 學者須守下學上達之語 乃學之要 蓋凡下學人事 便是上達天理 然習而不察 則亦不能以上達矣 정자왈,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는 것은, 이치상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 말하였다. “밑에서 배워서 위까지 통달한다는 것은 그 뜻이 말 바깥에 드러나 있다.” 또 말하였다.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아래서 배워 위까지 통달한다는 말을 지켜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배움의 요체다. 대개 무릇 아래서 사람의 일을 배우면, 곧 위로 천리를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익히기만 할 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곧 또한 위로 통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問下學而上達者 言始也下學 而卒之上達云爾 今程子以爲下學人事 便是上達天理 何耶 朱子曰 學者學夫人事 形而下者也 而其事之理 則固天之理也 形而上者也 學是事而通其理 卽夫形而下者 而得夫形而上者焉 非達天理而何哉 누군가 묻기를, “아래에서 배워서 위에까지 통달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아래에서 배우다가 마지막에는 위로 통달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정자는 아래에서 사람의 일을 배우면 곧 이것이 바로 위로 천리를 통달하는 것이라고 여겼으니,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배운다는 것은 저 사람의 일을 배우니 곧 형이하학적인 것이지만, 그 일의 이치는 곧 원래부터 하늘의 이치이니, 바로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이 일을 배워서 그 이치에 통달하면, 저 형이하학적인 것에 나아가서 저 형이상학적인 것을 터득하는 것이니, 天理를 통달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하였다.
問聖人恐不自下學中來 曰 不要高了 聖人高後 學者如何企及 說得聖人低 越有意思 聖人雖生知 亦未嘗不學 如十五志學 每事問 便是學也 누군가 묻기를, “성인께서는 아마도 아래에서 배우는 중으로부터 나오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성인을 높이 보아서는 안 된다. 성인을 높이 본 후라면, 배우는 자가 어떻게 그에 미치고자 기도하겠는가? 성인을 낮게 말하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성인께서는 비록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일지라도, 또한 일찍이 배우지 않으신 적이 없었다. 예컨대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거나 매사를 물었다는 것이, 곧바로 배움이다.”라고 하였다.
須是下學方能上達 然人亦有下學而不能上達者 只緣下學得不是當 若下學得是當 未有不能上達者 聖門下學而上達 至於窮神知化 亦不過德盛仁熟而自至耳 如釋氏理須頓悟 不假漸修之云 是只說上達 更不理會下學 然不理會下學 如何上達 반드시 아래에서 배워야만 바야흐로 위까지 통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 중에는 또한 下學을 했지만 上達할 수 없는 사람도 있으니, 오직 下學이 옳고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下學이 옳고 합당하다면, 그럼에도 上達할 수 없는 자는 아직 없었다. 聖門에서 下學하여 上達하고, 귀신을 궁구하고 조화를 아는 경지에 이르는 것도 역시 德이 성대하고 仁이 무르익어 저절로 이르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예컨대 석씨의 경우에, 이치는 반드시 갑자기 깨달해야 하고, 점진적 수양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으니, 이는 그저 上達만을 말하고, 더이상 下學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下學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어떻게 上達을 한단 말인가?
問下學只是切近處求否 曰 也不須揀 事到面前 便與理會 且如讀書 讀第一章 便與理會第一章 讀第二章亦然 今日撞著這事來 便與理會這事 明日撞著那事來 便與理會那事 萬事只一理 不是揀那大底要理會 其他却不管 누군가 묻기를, “下學은 그저 절실하고 가까운 부분부터 구하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하였다. 말하길, “또한 가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이 눈앞에 닥치면, 곧 그것과 더불어 이해하는 것이다. 또한 예컨대, 책을 읽을 적에 제1장을 읽으면 곧 제1장과 더불어 이해하고, 제2장을 읽으면서도 역시 그렇게 하는 것과 같다. 오늘 이 일이 닥쳐오면, 곧 이 일을 이해하고, 내일 저 일이 닥쳐오면, 곧 저 일을 이해하는 것이니, 만사가 그저 하나의 이치일 뿐이다. 저 큰 것을 가려서 이해하려 할 뿐, 그 나머지는 도리어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問有一節之上達 有全體之上達否 曰 不是全體 只是這一件理會得透 那一件又理會得透 積累多便會貫通 不是別有一箇大底上達 又不是下學中便有上達 須是下學方能上達 今之學者 於下學中 便要求玄妙 則不可 누군가 묻기를, “一節의 上達도 있고, 전체의 上達도 있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전체의 上達이 아니다. 그저 이 한 건을 투철하게 이해하고서, 다시 저 한 건을 투철하게 이해하여, 그 쌓임이 많아지면 곧 관통할 수 있는 것이지, 따로 하나의 큰 上達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下學 가운데에 곧 上達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下學을 해야만 비로소 능히 上達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배우는 자들이 下學을 하는 중에 곧바로 현묘한 것을 구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안 된다.”라고 하였다. 問下學上達意在言表 是如何 曰 如下學只是下學 如何便會上達 自是言語形容不得 下學上達 雖是兩件 理會得透 厮合只是一件 下學是事 上達是理 理在事中 事不在理外 一物之中 皆具一理 就那物中 見得箇理 便是上達 如大而化之之謂聖 聖而不可知之之謂神 然亦不離乎人倫日用之中 但恐人不能盡所謂學耳 果能學 安有不上達者 누군가 묻기를, “아래에서 배워 위까지 통달하니, 그 뜻은 言表에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下學 같은 경우는 그저 下學일 뿐이지만, 어떻게 해야 곧 上達할 수 있는지는 당연히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下學과 上達은 비록 두 건이지만 투철하게 이해하는 것은 서로 합치면 그저 한 건일 따름이다. 下學은 일이고 上達은 이치인데, 이치는 일 가운데에 있고, 일도 이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사물 안에는 모두 하나의 이치를 갖추고 있으니, 그 사물 가운데로 나아가면 그 이치를 알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上達이다. 예컨대 大而化之(위대하면서 조화시킴)를 일컬어 聖이라 말하고, 성스러우면서도 알지 못함를 일컬어 神이라 말하지만, 그러나 또한 인륜이나 일상생활과 떨어져 있지 않은 것과 같다. 다만 사람들이 이른바 배움이라는 것을 다하지 못할까 걱정스러울 뿐이다. 과연 능히 배울 수 있다면, 어찌 上達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方其學時 雖聖人亦須下學 如孔子問禮問官名 未識須問 問了也須記 及到達處 雖下愚也會達 便不愚了 바야흐로 배울 적에는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또한 반드시 下學을 해야 한다. 예컨대 공자께서도 예를 묻고 관명을 물었던 것과 같다. 알지 못하면 반드시 물어야 하고, 물었다면 또한 반드시 기억해서 통달한 곳에 미쳐야 한다. 비록 下愚者라도 역시 통달할 수 있으니, 그러면 곧 어리석지 않게 되는 것이다. 孔子當初嘆無有知我者 子貢因問何爲莫知子 夫子所答辭 只是解何爲莫知子一句 大凡不得乎天 則怨天 不得乎人 則尤人 我不得乎天 亦不怨天 不得乎人 亦不尤人 與世都不相干涉 方其下學人事之卑 衆人所共 又無奇特聳動人處 及其上達天理之妙 忽然上達去 人又捉摸不著 如何能知得我 知我者必竟只是天理與我黙契爾 以此見孔子渾是天理 공자께서 당초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탄식하였는데, 자공은 이로 인해 어째서 선생님을 알아주지 않는지를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신 말씀은 그저 ‘어째서 선생님을 알아주지 않느냐’는 한 구절을 이렇게 풀이하신 것이었다. ‘대개 보통은 하늘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사람을 탓하는데, 나는 하늘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어도 역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해도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세상과 더불어 항상 서로 간섭하지 않아서, 바야흐로 비천한 사람의 일을 아래에서 배우니, 이는 뭇사람이 함께 하는 바이면서 또한 특이하게 남을 놀라게 하는 부분도 없다. 천리의 오묘함을 上達함에 이르러서는, 홀연히 上達해 가버려서, 사람들이 또한 붙잡아 더듬을 수조차 없었으니, 어떻게 능히 나를 알 수 있겠는가? 나를 알아주는 것은 반드시 그저 天理일 뿐이니, 나와 더불어 묵묵히 부합될 따름이다.’ 이로써 공자께서는 순수하게 천리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問子貢不曾問 孔子告之 必有深意 曰 論語中 自有如此等處 如告子路知德者鮮 告曾子一以貫之 皆是一類 此是大節目 要當自得 這却是箇有思量底事 要在不思量處得 누군가 묻기를, “자공이 일찍이 묻지 않았음에도 공자께서 그에게 알려주신 것에는 반드시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논어 중에는 당연히 이와 같은 곳이 있다. 예컨대 자로에게 ‘덕을 아는 자가 드물다!’고 알려주거나, 증자에게 ‘一以貫之’한다고 알려주신 것이 모두 동일한 부류다. 이것들은 큰 節目으로서 마땅히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것이고, 이 장에서의 이것은 도리어 생각하고 헤아림이 있는 일이니, 생각하고 헤아리지 못한 곳에서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當時不惟門人知夫子 別人也知道是聖人 今夫子却恁地說 時是如何 如子貢之聰明 想見也大 故知聖人 但尙有知未盡處 故如此說 子貢曰 何爲其莫知子也 子貢也是說 他不爲不知夫子 所以怪而問之 夫子便說下面三句 便與葉公問孔子於子路處相似 皆是退後一步說 不怨天 是於天無所逆 不尤人 是於人無所忤 下學只恁地就平易去做 上達便是做後自理會得 只這平易 便是人不能及處 如發憤忘食 樂以忘憂 看著似乎只是恁地平說 但是人自不可及 人旣不能知 則只有天知者 是道理與天相契合也 당시에 단지 문인들이 공자님을 알아주셨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역시 공자님께서 성인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공자께서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예컨대 자공의 총명함이라면, 생각하건대, 큰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능히 성인을 알아보았지만, 다만 아직도 앎이 미진한 곳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했던 것이다. 자공은 ‘어째서 선생님을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까?’라고 말했는데, 자공이 이렇게 말한 것은 그가 공자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물었던 것이다. 공자께서 곧바로 아래 3구절을 말씀하셨으니, 곧 섭공이 공자에 대하여 자로에게 물었던 부분과 서로 비슷한데, 모두 뒤로 한걸음 물러나 말한 것이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 것은 바로 하늘에 대하여 거스르는 바가 없다는 것이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 것은 바로 사람에 대하여 거스르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下學은 그저 이렇게 평이한 곳에 나아가서 하는 것이고, 上達은 곧바로 下學한 후에 저절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저 이렇게 평이한 것이 바로 사람들이 능히 미칠 수 없는 부분이니, 예컨대 發憤忘食이나 樂以忘憂 같은 것도 보기에는 그저 이렇게 평이하게 말한 것 같지만, 다만 사람들이 스스로 미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기왕에 알지 못한다면, 오직 하늘이 알아주는 것 밖에는 없으니, 이것이 바로 공자님의 道理와 하늘이 서로 부합하는 것이다.
南軒張氏曰 下學人事而上達天理 天理初不外乎人事 知我其天所謂天者理而已 聖人純乎天理 故其自言如此 남헌장씨가 말하길, “아래에서 사람의 일을 배워서 위로 하늘의 이치에 통달한다고 하는데, 하늘의 이치는 처음부터 사람의 일을 벗어나지 않는다. 나를 알아주는 것은 아마도 하늘일 뿐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이른바 하늘이라는 것은 이치일 따름이다. 성인께서는 天理에 순수하였기 때문에, 그 스스로 말씀하신 것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何謂下學上達 潛室陳氏曰 下學人事 自然上達天理 若不下下學工夫 直欲上達 則如釋氏覺之之說 是也 吾儒有一分學問 則磨得一分障礙去 心裏便見得一分道理 有二分學問工夫 則磨得二分障礙去 心裏便見得二分道理 從此惺惺恁地 不令走作 則心裏統體光明査滓淨盡 便是上達境界 누군가 무엇을 下學과 上達이라 말하는지 물었다. 잠실진씨가 말하길, “아래에서 사람의 일을 배우면, 자연스럽게 위로 하늘의 이치를 통달하게 된다. 만약 下學의 공부를 하지 않고서 곧장 上達하고자 한다면, 석씨의 ‘문득 覺悟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 유생들은 10%의 학문이 있다면, 10%의 장애물을 갈아내어 제거할 수 있어서, 마음속으로 곧바로 10%의 道理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20%의 학문 공부가 있다면, 20%의 장애물을 갈아내어 제거할 수 있으니, 마음속으로 20%의 道理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영리하게 이렇게 해서 제멋대로 다른 데로 달아나지 않게 한다면, 마음속은 온전한 전체가 밝게 빛나고 査滓가 깨끗이 사라지니, 곧바로 이것이 上達의 경계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