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겨울은 길기만 했다.
교향악단 연주자를 꿈꾸었던 미래는 어둡기만 하고, 현실의 벽에 부딪쳐 떠나 보내야만 했던 사랑하는 연희는 주위를 맴돌며 아프게 했다.
트럼펫 연주자 현우에게 인생은 언제나 겨울일 것만 같다. 하지만, 나무는 고요히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우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강원도 도계 중학교 관악부 임시 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오래 전, 보았던 최민식 주연의 영화 ‘꽃 피는 봄이 오면’ 이 생각나는 날이다.
도계의 검은 색과 하얀 눈이 대조를 이루었던 영화였다.
실제로 도계중학교 관악부는 1989년 창설 되어 전국 대회를 휩쓸었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가 영화 속 곳곳에 흐르고 있었다.
최민식은 트럼벳을 실제로 배운 것 이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을 것 같다.
그 영화는 도계가 만들어 주었다. 철부지 관악부 아이들과 도계의 검은 색 석탄과 하얀 눈이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했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던 산업혁명이었다.
한국의 산업혁명은 강원도 도계를 비롯한 탄광촌에서 시작되었다.
비록 일본 놈들이 전쟁을 위해 석탄을 캐서 묵호항에서 실어 갔지만, 우리의 산업혁명은 아쉽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두고, 뉴라이트들은 일본이 한국 자본주의를 도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절대로 자본주의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일본놈들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진 산업화와 자본주의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것의 여운으로 625가 벌어지고 우리 민족은 지금도 큰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는 우리의 아픔을 표현한 것이다.
무너지는 탄광촌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도계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도계중학교 관악부 아이들 중에 한 명이 지금 묵호 지구대 경찰로 근무하고 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