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동(九城洞)
정지용
골짝에는 흔히
유성(流星)이 묻힌다.
황혼(黃昏)에
누리가 소란히 쌓이기도 하고
꽃도
귀양 사는 곳
절터ㅅ드랬는데
바람도 모이지 않고
산 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청색지』 2호, 1938. 8)
[어휘풀이]
-누리 : 큰 빗방울이 공중에서 갑자기 찬 공기를 만나 얼어서 떨어지는 것. 우박
-설핏하면 : 설핏하다. 해가 져서 밝은 빛이 약하다.
[작품해설]
이 시는 시인의 금강산 기행 체험을 바탕으로된 창작 작품으로 감각적인 직관에서 신앙심의 발현으로 옮긴 지용의 시 세계가 마침내 고고하고 관조적인 정신세계로 안착되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화자와 청자가 모두 배제된 사물시(事物詩)로 대립과 대칭으로 이루어진 전체 구조속에서 작품의 의미 체계를 파악할 수 있다.
먼저 대칭의 구조는 1연과 5연, 2연과 4연의 행태적 대칭과 1연과 5연의 등가적(等價的) 의미의 대칭으로 나눌 수 있다. 1·5연은 ‘묻힌다’와 ‘넘어간다’의 평서형 종결어미로, 2·4연은 ‘하고’와 ‘않고’의 대등적 연결 어미로 형태상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1·5연의 의미의 대칭은 ‘사라지는 유성’과 ‘넘어가는 사슴’을 통해 텅 빈 자연의 적막감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대칭적 구조와는 달리 2·4연은 의미상 대립을 이루고 있다. 즉 2연은 움직임돠 소란함, 4연은 고요함과 쓸쓸함으로 서로 상반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2연의 움직임과 소란함은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요함·쓸쓸함과 대비시켜 강조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1연에서 유성이 떨어지는 골짜기의 모습을, 2연에서 우박이 떨어지는 움직임과 소람함, 3연에서 호젓하게 피어있는 꽃을, 4연에서 바람도 불지 않는 고요함과 쓸쓸함을, 5연에서 산마루를 넘어가는 사슴의 순서로 전개되는 대립과 대칭의 전체 구조 가운데에 ‘귀양’사는 모습으로 외롭게 피어난 꽃이 제시된다.
이렇게 제시된 3연의 꽃을 중심으로 2·4행에 우박과 바람이, 1·5행에 우성과 사슴이 놓임으로써 ‘구성동’의 고요하거 적막함이 더욱 강조되어 나타난다. 이 고적감이 바로 산골짜기 폐사지(廢寺址)에 서 있는 화자의 정서이다. 이것은 자연은 언제나 같은 모습이더라도, 그 자연을 완성하는 인간의 정서에 따라 자연의모습이 변화될 수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작가소개]
정지용(鄭芝溶)
1903년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8년 휘문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 발간
1929년 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33년 『카톨릭청년』 편집 고문, 문학 친목 단체 ‘구인회’ 결성
1939년 『문장』지 추천 위원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추천
1945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1950년 납북,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