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화백(1918~1990)의 5주기에 맞춰 <장욱진전>이 1995년 4월 4일부터 5월 14일까지 호암갤러리에서 열렸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화백님의 작품을 전시회에 출품했기에 회고전을 관람하러 갔다. 우연히 화백님의 사모님과 큰따님을 만났다.
프랑스 여행 중 센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강 주변의 오래된 건물을 바라 보며 강 풍경을 즐기는 「파리의 센강」(1983, 종이에 수채, 22×14cm)과 불어로 밀레의 집이라고 쓰여 있는 집 두 채를 바라보는 모자를 쓴 화가 본인과 사모님이 서 있는 「밀레의 집」(1983, 종이에 수채, 22×14cm) 그림으로 말 문을 열었다. 이어서 동화 같은 화백님의 마음이 유화, 먹그림, 사인펜으로 나타났다.
장 화백님은 편찮으면 처제인 이운경 내과 원장님이 진료하는 한국 병원에 단골로 입원하셨는데 심심한 시간에는 주로 붓장난을 한다며 붓그림을 단숨에 그리셨다. 서양화 작업을 할 때는 한꺼번에 세 장의 캔버스를 죽 놓고 흰색이 싫어 캔버스에 먼저 칠을 한 후 다시 바탕색을 지으면서 떠오르는 것을 그리셨다. 정신이 맑을 때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주로 새벽에 그림을 그리므로 작업하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그림을 다 그리면 낮에는 심심하여 술을 마시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걸어 놓으면 자꾸 고치고 싶어서 두세 점 모이면 화랑에 연락해 가져가라고 했단다.
「공기놀이」(1938, 캔버스에 유채, 65x80cm, 호암미술관)는 조선일보에서 주최한 제2회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인 사장상을 받은 작품으로 당시에 거금인 상금 100원을 받았다. 부상으로 고모에게 비단 옷감을 선물하여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던 가족에게 허락을 받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1938년에 그린 이 그림은 화백님의 내수동 집에서 일하는 하녀들이 쉬는 시간에 공기놀이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얼굴 윤곽이 없는 그림이다. 박상옥(1915~1968) 화가에게 준 이 그림을 사후 그의 아들이 팔아 호암미 술관에 소장되었다. 6.25 전쟁 이전 장욱진의 작품은 많이 소실되어 몇 되지 않는 그림 중 하나이다. 학생 시절 그림을 한평생 볼 수 있다니 얼마나 감격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