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동계 아시안 게임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0m 경기에서 이승훈 선수가 정강이 부상에도 불구하고 투혼을 발휘하여 6년 만의 아시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혹시 2010년 뱅쿠버 동계 올림픽 10000m 경기 결과를 기억하시는지요? 당시 無名이었던 이승훈 선수가 세계 최강 스벤 크라머 선수를 극적으로 제치고 금메달을 손에 거머쥐는 순간의 짜릿함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워낙 우리나라가 스피드 스케이팅의 불모지여서 그랬던지 저는 당시 세계 빙상계를 주름잡고 있는 선수들이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레인 착오로 실격된 무적 스벤 크라머 선수의 성난 모습을 카메라가 계속 비추면서 비로소 그의 오렌지색 유니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모든 레이스에서 오렌지색 유니폼이 도처에서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두 네덜란드 선수들이었습니다.
뱅쿠버 대회에서 모두 9개의 메달을 가져간 네덜란드는 4년 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는 무려 23개의 메달을 싹쓸이해갔습니다. 이는 스피드 스케이팅에 배당된 28개의 메달 중 82%에 해당하는 숫자였습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1편 : 네덜란드” 에서 보았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네덜란드가 스피드 스케이팅의 강국인 이유 말입니다. 그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1985년 1월에 열린 전국 순례 스케이트 대회, 이것은 세계에서 오직 네덜란드에서만 열 수 있는 것으로 보통 때에는 뱃길로 이용하던 운하가 몇 십 년에 한 번씩 강추위로 꽁꽁 얼어붙으면 네덜란드 전국에 수천 km 씩이나 뚫려 있는 이 운하들은 아주 매끄럽고 훌륭한 얼음 길로 변하고, 전국이 평평하고 낮은 지대인 만큼 스케이트만 있으면 전국 어디고 얼음 길로 달려갈 수 있어서 매년 겨울 추위만 오면 온 네덜란드 국민들은 큰 관심을 갖게 되지.
비교적 따뜻한 해양성 기후인 네덜란드는 아무리 추워도 운하의 일부만 얼어붙어 이 대회를 열수가 없지. 1985년 전 유럽에 강추위가 몰아치자 온 네덜란드 국민의 관심은 한 곳에 쏠리고 그 해에 대회를 열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자 네덜란드에는 흥분의 뜨거운 바람이 휘몰아쳤어. 월드컵 정도는 저리 가라 할 만큼. 전국 순례 스케이트 대회에는 몇 천 만원이라는 엄청난 상금도 걸려 있지만, 이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에게는 우리가 상상도 못할 대단한 영광과 선물이 쌓이지.
왜냐하면 이 대회는 매년 열리는 것이 아니라 몇 십 년 만에 한 번씩 열리고 (보통 30~40년) 다음 대회가 언제 열릴지 모르므로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사실 상 평생 한 번뿐인 가슴 설레는 일. 이 대회 우승자는 우선 큰 상금과 우승컵이 주어지고 그의 동상이 세워지며 그의 스케이트는 국립 박물관에 영구 보존되고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기는가 하면 그가 쓴 모자는, 모자 박물관, 옷은 옷 박물관 등 모든 것이 박물관에 보존되며, 그이 발자국 손바닥 자국도 박물관에 보존되고 각계 각층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상금과 선물은 자신은 물론 손자까지 평생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먹고 살 만큼 엄청나대
(1997년 1월 4일에 다음 대회가 열렸습니다. ^^)
대회가 열리는 날 전국에서 특별 열차, 버스 자가용 등으로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수 만 명의 참가자가 몰려들었지. 이 대회는 자격의 제한 없이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 참가하는 온 국민의 대회로 출발지를 떠나 약 250km의 거리를 꽁꽁 얼어붙은 운하 위로 스케이트를 달리는 대회였어.
네덜란드 전국의 주요 도시를 골고루 운하로 거쳐가데 되어있는데 어떻게 해서든 가장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는 사람이 우승하게 되어있는 이를 테면 스케이트 마라톤이지. 도중에 쉬건 말건 마음대로지만 남보다 먼저 도착하려면 1초라도 아껴야 하니까 식사도 달리면서, 물도 달리면서 마셔야 하고 10~12시간 이나 계속 달려야 하는 강행군이었어.
오전 7시 출발신호가 떨어지자 수 만 명의 스케이트를 탄 군중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가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었지. 이 대회의 우승자는 하루 아침에 돈방석 위에 앉을뿐더러 그 어느 연예인도 따를 수 없는 大 스타가 되어 국민의 우상이 되는 거야. 1985년도 우승자는 어느 이름없는 농부였는데 이 사람은 순식간에 여왕보다 더 유명해져 버렸어.
스케이트로 전국을 순례한다는 생각.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은 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네덜란드처럼 평지로 된 다른 나라에서도 해내지 못했는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런 엉뚱하고 재미있는 생각을 해낸 거야. 이것은 바로 판에 박힌 생각으로는 될 수 없는 자유롭고 융통성 있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사고에서 비롯되지.
작은 국토에 세계 제일의 인구 밀도를 가진 만원 나라. 그러나 오랜 역사를 통해 얻은 경험과 요령에서 나온 자유로운 사고로 네덜란드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언제나 한 발 앞선 새로운 생각을 지켜 나갈거야 』
소치 올림픽이 끝나고 미국의 뉴스 매체인 쿼츠(quartz)는 네덜란드의 스피드 스케이팅 강세 이유를 조금 더 체계적으로 분석한 바 있습니다. 쿼츠는 네덜란드인 들의 신체적 강점, 역사적 전통, 스케이터 들의 사회적 위상 등이 그 원동력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우선 신체적 조건에서 강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인은 상대적으로 큰 키를 가지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남성의 평균키는 183cm에 육박하고 이는 스피드 스케이팅의 긴 주법에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다음 강점은 이 나라의 지리적 특성입니다. 수도인 암스테르담은 5개의 큰 운하가 있는데, 겨울철 얼어붙은 운하는 과거부터 암스테르담 주민들의 이동방법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눈이 많이 내리는 노르웨이가 스키에서 강점을 보이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운하가 얼어붙는 해에는 전국 11개 도시를 완주하는 엘프스테덴토흐트 (Elfstedentocht) 대회가 열립니다.
역사적 전통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13세기 초부터 겨울마다 스케이팅을 즐겼다고 합니다. 문헌에 따르면 1626년에 이미 스케이팅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스케이터들의 위상 또한 남다릅니다. 한국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이 비인기 종목인 반면, 네덜란드에선 브라질인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처럼 스피드 스케이팅은 국민 스포츠의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많은 스포츠 유망주들은 다른 스포츠 종목보다 스피드 스케이팅을 그들의 진로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유망주들은 어려서부터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네덜란드의 스피드 스케이팅에 대한 사회 저변도 남다릅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스피드 스케이팅 시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미국이 2개의 스피드 스케이팅 전용경기장을 가지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이미 17개의 경기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스케이터가 된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입니다. 네덜란드는 7개의 스피드 스케이팅 프로팀과 60여 명의 프로선수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양궁과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과 같이 네덜란드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발 전은 세계에서 가장 통과하기 어려운 선발 전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선발 전을 통과한 스케이터 들이 소치올림픽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내친 김에 네덜란드라는 나라를 전반적으로 한번 조명해 보았습니다.
풍차와 튤립의 나라, 육지가 바다보다 낮은 나라, 그래서 나라 이름이 Nederland인 나라. 토목에 능한 고대 로마 제국의 병사들에게서 댐 쌓는 법을 익혀서 바다보다 낮은 땅을 풍차를 이용하여 육지로 만들어 전 국토의 절반 가까이나 땅을 늘린 나라. 그럼에도 국토 면적이 우리나라의 절반도 안 되는 조그만 나라. 그 조그맣고 척박한 땅을 억척같이 다듬어 젖과 꿀이 흐르는 모범적인 낙농국가로 거듭난 나라.
유럽에서 일찌감치 해양왕국을 건설하고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았으며, 한 때는 자기 땅보다 10배 이상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기도 하고, 신,구교의 처절한 싸움을 접하자, 유럽에서 가장 먼저 종교 자유를 위한 투쟁이 벌어졌고, 가톨릭의 폐해를 피해 온 유럽의 신교도가 몰려가 둥지를 틀었던 나라.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유입된 다민족 국가로 형성되었고, 인구는 남한의 3분의 1인데 인구밀도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나라.
모든 나라에서 골치거리인 마약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합법화 하자, 오히려 마약 중독자의 비율이 현저히 낮아져 다른 유럽에서 연구 모델로 삼는 나라. 해양박물관, 고흐, 렘브란트에 못지 않게 동성애 허용과 섹스박물관도 유명한 나라.
개인에 대한 철저한 자유허용과 현실적인 이윤추구로 인하여 국가 경쟁력은 유럽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높고 또한 막강합니다. 갖가지 문제가 산적해있긴 하지만, 글로벌화의 영향으로 싫든 좋든 세계 각국은 이제 서로를 향해 열려있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이런 세계화를 가장 일찍, 가장 현명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한 국가가 바로 네덜란드입니다.
천혜의 자연을 바탕으로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는 유럽의 다른 여러 나라와는 달리 끊임없는 도전으로 인간이 자연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는 네덜란드라는 나라는, 좁은 땅 중 70%가 산지이고, 인구밀도도 아주 높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