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누리길 6코스(출판도시길) 안내.정보
경기도 평화누리길 6코스(출판도시길)이 3월 18일 진행이 된다. 평화누리길이 12코스이니 반환점에 들어서는 것이고 김포구간 3코스와 고양구간 2코스를 지나 파주구간 4코스에 접어드는 길 목인 것인다. 이번 6코스는 2월에 진행되었든 고양구간 2코스에서 느끼지 못했든 평화누리길을 파주구간 부터는 즐기면서 평화누리길을 마음속에 담아낼 수 있다. 구간이 올라갈수록 더 볼거리가 많고 트레킹 다운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본 코스는 동패지하차도 상부에 있는 심학산 둘레길을 지나 파주 출판단지로 접어들게 된다. 파주 헤이리 마을이나 프로방스를 갈려면 지나는 길이다. 심학산은 그 높이에 비하여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고 낙조 전망대도 있어 약간의 산행과 트레킹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구간이 6코스 평화누리길이다.
심학산을 지나면 파주 출판도시와 마주하게 되고 생태늪지 인공조성지를 지나 한강변 자유로를 따라 트레킹하면서 3월의 이른 새봄을 느끼면서 트레킹 할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파주 출판단지는 출판사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출판도시로 각 건물마다 특색이 있고 무엇보다도 출판도시를 빛나게 하는 것은 아름다운 카페들이 많다는 것이다. 각 건물들이 특색이 있고 아름다운 카페들이 많기에 출사하기에 좋은 곳이기도 하다. 거리적으로 16km이니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산길도 걷고 때로는 농로도 걷고 어떤 경우는 차도옆 인도를 걷기도 하니 복합적인 트레킹 길이 되는 것이다. 3월의 중순이니 한강을 타고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면서 새봄이 오는 산과 들녘으로 봄나들이 한다는 생각으로 그저 가볍게 걸어가면 되겠다. 5시간 정도 불어오는 봄의 향긋한 향기에 무거운 어깨의 짐들을 내려놓고 물길따라 길따라 걸어가는 본코스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 가는 것 보다 좀더 보고 좀더 즐기고 좀더 느끼면서 출판단지 지날때 평화누리길에서 추억의 사진들을 담아내면 좋겠고 너무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함께 동행하는 평화누리길 6코스가 되면 좋겠고 평화누리길이 참석하는 모두에게 진한 여운을 가지고 추억으로 남는 아름다운 평화누리길 6코스 출판도시 가는길이 되기를 바래본다. 평화누리길 6코스는 봄이 한참 온 새봄 3월 중순에 출발을 하니 가벼운 옷 차림에 살랑살알 봄바람 맞으면서 함께 아름다운 동행길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고맙습니다.
여행포인트)
이국적 정취가 느겨지고 출판도시(단지)를 통과해 인공습지를 지나면 곧바로 농촌마을로 이어지고, 문발리, 신촌리, 송촌리를 지나면서 좌축으로 탁트인 풍경의 한강하구와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패지하차도~성동사거리(16km, 약 5시간)
도움말) 파주 출판단지
파주 교하읍 문발리에 건설한 출판단지는 48만평의 대지에 국제 문화 정보를 교류하고 공연과 전시를 통해 일반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 관광지로 파주출판단지는 책과 관련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한곳에 모아 놓은 전문 공간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조성된 출판단지에는 300여 곳의 출판사가 입주하여 한국 출판의 메카로 부르고 있다. 출판사들이 캘러리와 북카페를 운영하고 보물섬과 이가고서저에서는 오래된 귀중한 책도 찾아낼 후 있다. 거리가 예술적 감각으로 꾸며져 외국의 어느 명소에 온 듯이 정감이 가는 곳이다. (길위에서 찾은 행복..김완묵 수필집에서)
도움말) 파주 검단사
파주 검단사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필승로 293-33 오두산(鰲頭山)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이다.
847년(신라 문성왕 9) 혜소(慧昭)가 창건하였다. 혜소는 얼굴색이 검어 흑두타(黑頭陀) 또는 검단(黔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찰 이름은 그의 별명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일설에는 사찰이 있는 오두산이 검은 편이라 검단사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인조와 인열왕후(仁烈王后)의 능인 장릉(長陵)의 원찰이었다. 처음에는 파주시 문산읍 운천리에 있었지만, 영조 때인 1731년 장릉을 탄현면 갈현리로 옮길 때, 이 사찰도 현재의 탄현면 성동리 오두산으로 옮겨왔다.
검단사는 장릉에 제향을 지낼 때 절에서 두부를 만들어 한때 두구사(豆拘寺)라고도 했다. 근대에 들어와 1906년 김정호(金正昊)가 절을 중수했고, 일제강점기 때는 전등사(傳燈寺)의 말사가 되었다. 1986년 천오(天悟)가 주지로 부임하여 법화전을 중건하였고, 2005년 해송(海松)이 절을 크게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법당인 법화전과 요사가 있고.유물로는
아미타불탱화와 신중탱화·검단선사영정 등이 전한다. 탱화는 19세기말에 제작된 것이고, 검단선사영정은 고려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원본을 토대로 조선 후기에 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당 내의 석불은 등신불(等身佛)로 천여 년간 버려져 있던 것을 일제때 인근 금산리 보현암에서 수습하여 보존해오던 것이다
검단사는 문헌이나 역사적인 기록이 없어 그 내력을 짐작할 수 없지만, 현재는 그 흔적이나 유구는 찾아 볼 수 없으며, 북한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의 염원을 기도하는 조그마한 암자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파주 검단사 목조관음보살좌상(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44호), 아미타불회도 (경기도 문화재 제295호) 검단조사진영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72호),
검단사를 창건한 혜소는 얼굴색이 검어 '검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사찰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혹은 사찰이 소재한 오두산이 검은 편이어서 검단사라고 했다고도 한다. 절의 유물로는 아미타불탱화, 신중탱화,검단선사 영정 등이 있다. 탱화는 19세기 말 작품이고, 검단선사 영정은 조선후기 때 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