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 중심부에 있는 프닉스 언덕. 기원전 507년 이래 이곳에서 아테네의 민회가 열렸다. 시민 수천 명이 참여하는 민회는 직접 민주정의 최고 결정기구였다. 긴 바위벽 중간 부분이 연단이다. 조대호 교수 제공
《민주정의 가치에 대한 논쟁의 역사는 민주정의 역사보다 더 길다. 기원전 521년, 페르시아의 수사에서 귀족 대표자 회의가 열렸다. 반란을 제압한 뒤 미래의 정체(政體)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오타네스는 군주제를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정체라고 비판하면서, 다수의 민중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정치에 참여하는 체제를 옹호했다. 그러자 메가비조스가 맞섰다. “쓸모없는 무리보다 더 어리석고 오만한 것은 없소.” 내란과 민주정의 혼란을 겪은 그리스인들에게 민주정의 운영은 더 절박한 현실적 문제였다.》
민주정에 미래가 있을까? 이 물음을 놓고 스승과 제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도 갈라졌다. 플라톤은 그리스의 메가비조스였다. 그는 자유와 평등의 이름으로 만연한 무질서와 불공정에 현기증을 느낀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구원의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어리석은 다수가 아니라 지혜로운 한 사람이 지배하는 정체, 즉 철인 왕의 통치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20년 동안 플라톤 문하에 머문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보다 스승의 고뇌를 잘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승의 정치적 대안에 동의하지 않았다. 현실의 민주정이 나쁘다는 이유로 모든 형태의 민주정을 거부해야 할까? 더 현실적인 대안은 없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정 옹호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기원전 322년·오른쪽)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알렉산드로스가 제국을 건설하는 것을 보았지만 도시국가 체제를 옹호했다. 사진은 프랑스 조각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샤를 라플란트의 1866년 판화 삽화. 사진 출처 뉴욕공립도서관 디지털 갤러리
제자가 스승의 이상(理想)에 의문을 품은 것은 민주정의 병폐에 둔감해서가 아니다. 수많은 도시국가의 정체들을 수집해 비교하고 분석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정체의 장단점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폴리스 158개의 사례들을 분석한 뒤 저술한 ‘정치학’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스승의 생각과 달랐다. ‘나쁜 민주정은 나쁜 정체들 가운데 가장 덜 타락한 정체이고, 좋은 민주정은 대다수 국가를 위해 가능한 최선의 정체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좋은 민주정을 일컬어 ‘폴리테이아’라고 불렀다. 연구자들은 여러 정체의 장점을 혼합한 정체라는 뜻에서 폴리테이아를 보통 ‘혼합정체’라고 번역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정체를 간단히 ‘민주공화정’이라고 불러도 좋다. 폴리테이아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다수의 지배 체제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의 혼란을 목격하고서도 다수의 지배를 옹호하려고 했을까? 그에게는 집단지성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다수의 지혜를 불신한 탓에 한 사람이나 소수의 현자에게 국가 운영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도 수학문제 풀이와 같다면, 이런 처방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트로트 오디션은 다르다. 나훈아의 결정이 청중 100명의 결정보다 더 나을 수 없지 않은가. 아무리 뛰어난 한 사람의 눈과 귀도 백 사람의 눈과 귀를 능가할 수 없다. ‘정치학’이 다수의 정치를 옹호한 이유도 같다. “다수는 비록 그중 한 명 한 명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함께 모이면 개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전체로서 가장 훌륭한 소수보다 더 나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사람의 기부로 성사된 잔치”보다 “여럿이 함께 마련한 잔치”를 좋은 정치의 본보기로 여겼다.
물론 반론이 가능하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집단지성보다 집단적 광기와 횡포의 사례가 더 눈에 띄기 때문이다. 21세기의 민주국가에서도 다를 게 없다. 불과 몇 달 전 우리는 현대 민주정을 대표하는 국가에서 대통령이 집단의 광기를 부추기고 광분한 무리가 의회를 점거하는 사건을 목격했다. 백 개의 눈을 가진 관찰자가 그런 것을 몰랐을 리 없다. “몇몇 대중은 사실상 들짐승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라는 질문이 그의 우려를 드러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달리 민주정치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집단의 광기를 내세워 민주정을 부정하려는 사람에게 그는 이렇게 되물었을 것이다. 집단적 광기가 민주정에 국한된 현상인가? 한 국가 안에서 민주정치가 집단적 횡포의 온상이 되었다면, 그것은 민주정 때문인가 민주정의 타락 때문인가?
민주정에 대한 ‘정치학’의 관찰과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 논의는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어떻게’ 폴리테이아를 실현할 수 있을까? 각 나라가 처한 상황이 다르니 하나의 정답은 없다. 하지만 좋은 민주정의 조건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거듭 강조하는 것이 하나 있다. 튼튼한 중간계급의 존재가 그것이다. “국가는 가능한 한 동등하고 동질적인 사람들로 구성되는 것이 좋은데, 이 조건은 주로 그 구성원이 중간계급일 때 충족된다. 따라서 우리가 ‘국가의 자연스러운 성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국가가 필연적으로 가장 훌륭한 정체를 갖는다.” 기원전 5∼4세기 상황에서는 중무장할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중간계급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진단은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 분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현대 정치학자들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중간계급의 역할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의 사회심리학적 관찰이다. 그는 이성적 의사소통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간계급을 좋은 민주정의 보루로 여기기 때문이다. 무슨 뜻일까?
힘의 논리 아닌 이성의 논리
우리 모두가 인정하듯이, 민주정은 시민들의 정치이고, 그런 만큼 민주정의 성패는 시민적 역량, 특히 숙고와 판단의 역량에 달려 있다. 시민들은 다양한 결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서 문제 해결에 필요한 대안들을 상상하고 그것들의 타당성을 검토하며 가장 좋은 대안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감정과 의견을 나누는 공감과 공상(共想)의 역량이다. 적대감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의견의 제시도, 의견의 교환도 불가능하다. 그런 환경에서는 누구도 타인을 설득할 수 없고, 누구도 타인에게 설득당하려 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맥락에서 중간계급을 두고, 이들이 “이성에 가장 쉽게 설득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지나치게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도, 지나치게 무력하거나 가난한 사람들도 좋은 민주정에 적합하지 않다. 두 집단 모두 이성의 논리가 아니라 힘의 논리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한쪽은 오만함 때문에, 다른 쪽은 비굴함 때문에 설득하려고도, 설득당하려고도 하지 않고 힘을 행사하거나 그 힘에 순응 혹은 반항할 뿐이다. 이런 지배와 피지배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 동등한 관계에 있는 중간계급만이 이성의 논리에 순응하면서 좋은 민주정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확신이었다.
우리도 “여럿이 함께 마련한 잔치” 같은 정치를 원하지 않나? 2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본은 바뀌지 않았다. 감정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잔치를 벌인다. 부와 권력을 향한 질주와 무한경쟁의 사회는 싸움판을 키운다. 조대호 교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