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모 주교의 명상 칼럼] 마음디자인 시리즈(5)
전체를 보는 마음의 눈
감정을 먼저 치료하는 것은 밥을 먹기 전 압력밥솥의 증기를 먼저 빼는 것과 같다. /셔터스톡
명상하는 사람은 전체를 보는 마음의 눈, 즉 지혜의 눈을 가져야 한다.
공간에 어떤 물체가 있는데, 위에서 빛을 비추니까 둥근 원 모양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렇다고 하여 공간에 있는 물체를 공 같은 둥근 물체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공간에 있는 물체를 옆에서 빛을 비추었더니 사각형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렇다면 공간에 있는 물체는 원통형의 물체일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렸더니 파산하는 소상공인들이 늘어났고, 대학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했더니 강사들이 대학에서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것도 의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눈이 부족한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는 봤는데 전체는 못 본 것이다. 전체를 보면서 좀 더 세심한 정책을 폈어야 했다.
일상생활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사물의 한 면만을 보고 그것을 진리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
코끼리의 다리를 만져보고 코끼리는 통나무 같다고 한다든지, 코끼리의 몸통을 만져보고 코끼리는 벽과 같다고 한다든지, 코끼리의 코를 만져보고 코끼리는 뱀같이 생긴 동물이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
심리치료사들도 상담에서 가끔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심리적인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이성적인 대처 방법만을 강조하다가 치료에 효과가 없으면, 이성이 빈약한 사람이어서 그렇다고 단정지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사람에게는 이성과 감정이 있다. 그런데 감정이 상해 있는 경우에는 감정의 치료가 먼저이고, 이성적인 대처방안이 그 다음이다. 이 순서를 바꾸면 치유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압력밥솥과 같은 이치다. 압력밥솥의 밥을 먹으려면 먼저 압력밥솥의 증기를 빼야 압력밥솥의 뚜껑을 열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압력밥솥의 증기를 먼저 빼지 않고 솥뚜껑을 열면 밥이 사방으로 튀어 밥을 먹을 수 없다.
TV나 교실에서의 토론은 말할 것도 없고, 유명한 교수나 학자, 종교인, 정치인, 심지어는 명상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현상을 가끔 보곤 한다. 지식인과 명상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현상을 보는 것은 실망스런 일이다.
어떤 일이든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명상하는 사람은 어떤 일에서 긍정적인 면과 그 결과를 볼 수 있어야 하고, 부정적인 면과 그 결과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긍정적인 면에 감춰져 있는 부정적인 면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부정적인 면에 숨어 있는 긍정적인 면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보통 고통을 나쁜 것으로 보고 피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성장은 고통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고통은 우리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고통 속에 있는 긍정적인 면을 보면 우리는 성장하게 되고, 고통 속에 있는 부정적인 면만 보면 우리는 무너지고 망가지게 된다.
명상하는 사람은 전체를 보는 마음의 눈을 만들어야 한다. 생명을 볼 때 삶과 함께 죽음도 보아야 할 것이다. 물질세계뿐만 아니라 영적세계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을 잡았을 때 권력의 끝도 볼 수 있어야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에 관한 교훈적 이야기는 명상의 좋은 주제이다.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이 퍼레이드를 할 때 포로로 잡은 노예를 뒤에 따르게 하면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당신이 지금은 개선장군으로 영광을 누리지만 당신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지혜를 일깨우는 것이다.
깨달은 마음은 처음을 보면서 동시에 끝을 보고, 위를 보면서 아래를 보고, 안을 보면서 밖을 보고, 삶을 보면서 동시에 죽음을 보는 지혜의 마음이다.
명상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전체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 지혜의 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글 | 윤종모 주교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