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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보현행원(부사모)
 
 
 
카페 게시글
부사모게시판법당 선 스승의 편지- 62. 어리석은 복은 삼생의 원수 答 湯丞相 進之
보문 추천 0 조회 59 26.04.14 21:26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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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4.14 21:36

    첫댓글 "주석 옮김
    이 편지의 줄거리는 서두르지 말고 공부에 뜻을 굳게 세우면 바깥 경계가 나를 흔들지 못하므로 따로 바깥 경계를 버릴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다. "

    삼생의 원수라는 문구가 와 닿습니다.

    "첫 번째 생에서는 어리석은 복만 지어 견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생에서는 어리석은 복만 받기에 부끄러움이 없어 좋은 일을 하지 않고 그저 업만 짓는 것입니다.
    세 번째 생에서는 어리석은 복만 다 받고 좋은 일을 하지 않았기에 이 몸을 떠날 때 쏜살같이 지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 26.04.15 04:39

    오늘도 구구절절 아주 소중한 가르침 들!

    빨리 효험을 보려고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극한 이치를 끝까지 아는 데에는 깨달음으로 법칙을 삼아야 합니다.


    꾀하는 마음으로 깨달음을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의도된 마음으로 깨달음을 기다리면 그 마음이 도를 보는 눈을 가립니다. 그러기에 서두르면 서둘수록 더 늦어지는 법입니다.

    - 늘 말씀 드리지요? 구하면 어두워진다고. 빨리 깨치려하면 못 깨칩니다

  • 26.04.15 04:41

    왜 삼생의 원수냐? 유위의 복에 취하여 무위의 복 즉 깨달음을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나열한 3가지 이유가 그것

  • 26.04.15 04:44

    부처님 가르침에서 “분별하는 마음을 끊어서 마음이 번뇌를 없애며, 마음의 티끌을 씻어서 마음의 집착을 푼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 서장 곳곳에 분별을 경계하는 구절들이 절비하지요?

    대혜의 간화선이 깨달음보다는 분별 소멸에 목적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왜냐? 분별을 그치면 바로 보거든요?
    화엄경도 똑같아요
    그래서 제가 서장의 경계가 화엄 경계라 하는 겁니다

  • 26.04.15 10:38

    부처님 가르침에서 “분별하는 마음을 끊어서 마음이 번뇌를 없애며, 마음의 티끌을 씻어서 마음의 집착을 푼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이 집착하는 곳에서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이 바뀔 때 또한 마음을 바꾸는 도리도 없다면, 자연스레 온갖 사물들이 밝게 드러납니다.

    날마다 주어진 인연 속에서 혹은 깨끗하거나 더럽기도 하고, 혹은 기쁘거나 화나기도 하며, 혹은 따라가거나 거스르기도 합니다. 마치 구슬이 쟁반 위에 구르듯 건드리지 않아도 저절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 그니까 일체의 분별을 떠나 오로지 일상에서 한결같이 원을 세우고 공경 찬탄을 해나가면 여기 서장의 구절처럼자연스레 밝아옵니다.

    "날마다 주어진 인연 속에서 혹은 깨끗하거나 더럽기도 하고, 혹은 기쁘거나 화나기도 하며, 혹은 따라가거나 거스르기도 합니다. 마치 구슬이 쟁반 위에 구르듯 건드리지 않아도 저절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대목이 바로 보현행원이요 보현 경계지요

    아마 보조지눌은 서장의. 이런 부분에서 통현장자의 신화엄론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큰 환희심을 느꼈을 듯.
    그리고 목우행을 생각하셨을듯

  • 26.04.15 04:48

    이 밖에도 공부할 곳 많으니 참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 26.04.15 18:56

    어리석은 우리들의 분별심을 경계하는 법문을 쉽게 설명해 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저는 서장을 공양 올리는 것 뿐인데 함께 공부할 수 있음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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