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의 위대한 승리가 세상을 바꿨다!
1984년 최초의 직장 내 성폭력 승소 사건
이혼 후 고향인 미네소타 북부로 돌아온 조시 에임스(샤를리즈 테론)는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 거리를 찾던 중,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직업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바로 광산에서의 일. 광산은 보수적인 이 마을에서 남자들의 일로 인식되고 있는 직업이지만 조시의 옛 친구이자, 몇 안 되는 여자 광부 중 한 명인 글로리(프랜시스 멕도먼드)의 격려에 힘입어 광산에 취직한다.
편견에 맞선 외롭고 긴 싸움
일은 예상했던 대로 고되고 위험했지만 그녀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여자들에 대한 남자동료들의 은밀한 학대와 차별대우였다. 안 그래도 경기가 나빠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진 판에 일거리를 뺏는 여자들이 그들에겐 달가울 리 없었다. 여자들을 밀어 내기 위해 남자들은 조시를 비롯한 여자들에게 무리한 작업량을 할당한다. 조시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항의하지만 남자들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 관계가 좋지 못했던 그녀의 부모까지 그녀를 책망한다. 여자 동료들마저도 조시가 사태를 악화시킨다며 외면하고 조시의 사생활까지도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며 심판대에 올려진다.
한 여성의 위대한 승리가 세상을 바꿨다!
그것이 인생을 건 싸움이 될 줄은 그녀 자신도 상상 못하고 있었다. 자신과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조시의 몸부림은 결국 그녀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 결과가 된다. 친구 글로리와의 우정마저 시험대에 오르고, 오랫동안 불화 관계였던 아버지와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갑자기 드러난 엄마의 과거 사생활에 충격을 받은 아들은 엄마를 멀리하며 거세게 반항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에 일과 사생활, 모든 면에서 실패를 맛보고 고향으로 돌아온 변호사 빌 화이트(우디 해럴슨)가 그녀의 동조자로 나서게 된다. 조시 혼자서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빌은 최초로 성차별에 관한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로 마음 먹는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또한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조시는 혼자만의 외로운 투쟁을 결심하는 데….
제작 노트
미네소타 광산촌의 겨울
사상 유례 없는 한파 속의 로케 촬영
<노스 컨츄리>의 촬영은 겨울에 춥기로 유명한 미네소타 북부 광산촌에서 시작됐다. 촬영 팀이 도착하기 전, 광산촌은 사상 유례없는 기록적인 한파를 기록했다. 특히나 외지에서 온 촬영 팀에겐 더욱 혹독한 추위였다. 촬영 장비가 얼 정도로 추운 날씨여서 특수 히터를 켜고 촬영을 해야 했을 정도였다.
카로 감독은 마을을 극중 하나의 캐릭터처럼 생각했을 만큼 로케 촬영을 중요하게 여겼다. 뉴질랜드 출신인 카로 감독은 이미 <웨일 라이더> 촬영 당시, 마오리 족의 일상 생활과 문화를 철저히 몸으로 체험했듯, 이번 촬영 때도 미네소타 주민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실제 인물들의 삶과 실제 장소의 풍광을 접할 때 무한한 창작 욕구를 느낀다'는 게 감독의 말. 미네소타 외에도 펠프스-닷지 사의 광산촌이 있는 뉴멕시코의 실버 시티의 몇 곳을 로케장소로 활용 했는데, 촬영 팀은 주요 촬영이 시작되기 전 광산의 갱도에 직접 들어가보기도 하고 중장비들을 살펴보며 광산의 삶을 몸소 체험하기도 했다.
2천 여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아이스하키 경기 장면
실제 마을 주민들이 대거 참여해 보여 준 사실적인 연기
영화 속에는 실제 미네소타 주민들이 엑스트라로 대거 등장한다.
아이스하키 경기 장면에서는 무려 2000여명의 주민들이 엑스트라로 동원되어 열띤 응원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특히, 광산의 강단이나 법정 등 엑스트라가 특히 많이 동원된 장면에서 감독은 엑스트라로 동원된 300여명의 남성들에게 극의 상황을 설명하고, 주인공에게 거칠게 항의하는 말과 태도를 연기해줄 것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주민들도 촬영이 진행될수록 연기에 익숙해지면서 목소리와 행동이 과감해졌다.
사실 욕설과 비난을 퍼붓는 연기는 실제 배우들도 쉽지 않은 연기이지만 주민들은 감독의 요구대로 열심히 연기에 임해줬다. 덕분에 현장이 아니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너무나 사실적인 영상이 완성되었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화면
새하얀 눈과 검은 광산의 극적 대비
니키 카로 감독은 광산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되, 광산촌이라고 거칠고 투박하게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최대한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란 인공미가 아닌 멋진 풍광 속에 사람들의 진솔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자연적인 아름다움이었고, 이에 <미션><킬링 필드>로 아카데미를 수상하고 <마이클 콜린스>로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던 일급 촬영 감독 크리스 멩기스를 영입했다.
'그의 화면엔 부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솔직 담백함이 깃들어있다'고 카로 감독이 평하듯, 이번 영화에서도 그는 광활하게 펼쳐진 창공 아래로 그림처럼 솟아있는 눈 덮인 언덕의 풍광 등을 스크린에 멋지게 펼쳐냈다. 광산의 검은 색감과 흰 눈이 주는 명암의 극적 대비는 특히 눈 여겨 볼 부분.
또한 가능한 자연 광선을 최대한 활용하고, MIILION EYES LIGHTS(백만 개의 불빛)이란 이름의 수많은 전구가 달린 전광판 MEL을 이용해 광선과 자연광을 자연스럽게 혼합시켜 촬영에 이용했다. 광활한 자연을 담기 위해서 슈퍼 35 와이드스크린을 이용하고 핸드 헬드 기법으로 배우들의 호흡 하나까지 리얼하게 잡아내었다.
특히 영화는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데 이는 군중들의 자연스럽고 진솔한 모습을 담기 위해 주요 장면들을 일부러 배우들이 카메라를 의식 못할 때 찍었기 때문이다. 모든걸 가급적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세트 역시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의 건축물을 많이 활용했다.
씨네21 리뷰
우리는 때때로 빈곤함과 약함을 순박함과 선함과 동일시한다. 다시 말하면 비자발적으로 경제적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가 된 이들이 마치 원래부터 부나 명예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식으로 미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숨겨놓고 ‘친절한 시민’을 찾거나 교통법규를 엄수하는 선량한 준법자를 찾는 프로그램들은 종종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밑바탕에 깔아놓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에게 선량한 심성까지 강요하는 태도 뒤에는 그들을 체제에 순응하도록 훈육하고, 없는 자들의 빈곤을 그들이 가진 도덕성에 의한 선택으로 돌리고 ‘칭찬’함으로써 가진 자들의 피해의식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따라서 이런 태도는 순간의 감동을 선사하면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눈을 감도록 만든다.
니키 카로 감독의 <노스 컨츄리>는 그런 맹목에 대한 공격에서부터 시작한다. 법정에 앉은 조시 에임스(샤를리즈 테론)는 아버지가 다른 두명의 아이를 가진 싱글맘이라는 이유로 변호사로부터 인격적 모독을 당한다. 조시는 생활고를 겪어보지 못한 채 타인의 삶을 자의적으로 평가하려는 중산층의 도덕적 결벽증을 비난한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온 조시는 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해 고임금을 보장하는 광산 일을 시작했었다. 더이상 자신의 미모를 생계수단으로 삼아 남성의 경제적 능력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에게 광산은 노동의 강도는 높지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는 직장이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라고 생각되었던 광부 일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조시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여성 광부를 대하는 남성 동료들의 태도였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된 1980년대는 많은 광산이 문을 닫아 광부들의 대량실업 사태가 벌어지던 동시에 남녀 차별에 대한 금지 때문에 여성 노동자에 대한 할당제가 실시되고 있었다. 따라서 남성 광부들에게 여성 광부는 동료가 아니라 자신들의 일을 빼앗아가는 적으로 인식되었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한 그녀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정서적 학대를 시작한다. 과도한 작업량을 강요하거나 인신공격과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농담을 내뱉음으로써 여성 광부들이 스스로 광산이 남성의 영역임을 인정하고 떠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조시는 어린 시절의 실수와 실패한 결혼을 통해 가족에게 잃은 신뢰를 광부 일을 통해 회복하고자 했다. 그녀는 아들의 꿈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능력있는 엄마,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인정받는 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직장이자, 자신의 일터가 된 광산은 그녀에게 육체적인 피로함뿐 아니라 치명적인 정신적 상처를 주는 곳으로 돌변한다. 남성 동료들의 무시와 학대는 물론이고 그러한 부당한 대우에 적극적인 거부를 표시하는 그녀의 태도에 오히려 적대적인 여성 광부들의 냉대와 멸시는 그녀를 철저히 고립시킨다. 아이러니한 것은 남성 광부의 적극적인 성희롱과 여성 광부들의 수동적인 무관심의 원인이 공통적으로 자기 보호본능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 다 자신들의 생계수단을 지켜내기 위해서 한쪽은 무자비한 가해자의 길을, 다른 쪽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피해자의 길을 택한다.
조시는 작업반장과 노조에 끊임없이 항변하고 처우 개선을 바라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성 간이화장실을 뒤집거나, 작업장에서 성폭행으로 협박을 하거나 여성 로커룸에 분뇨로 낙서를 해놓는 등의 더 가혹한 복수일 뿐이었다. 복수가 가혹해질수록 여성 광부들의 조시에 대한 원망은 늘어가고 철저히 혼자가 된 그녀는 법적 대응을 준비한다. 조시는 그녀가 아는 유일한, 그러나 실패한 변호사인 빌 화이트(우디 해럴슨)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설득하고, 자신의 소송에 힘이 되어줄 동지들을 찾아 나선다. 체제를 바꾸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핍박을 당하게 마련이다. 이상한 것은 그러한 핍박은 언제나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득권 세력이 움켜쥐고 있는 커다란 파이는 보지도 못하고 파이의 부스러기로 연명하는 이들조차도 그 부스러기마저 빼앗기게 될까봐 폭력을 묵인하거나 심지어 동조하곤 한다. 그래서 법정에 서기 전까지 조시는 단 한명의 여성 동료도 자기 편으로 만들지 못한다.
니키 카로는 전작 <웨일 라이더>에서 남자 아이들에게만 주어졌던 지도자의 운명을 자신의 것을 만들기 위해 투쟁했던 파이키아라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현대사회에서 전통적인 성역할 구분에 따른 운명과 개인 의지 사이의 갈등은 시효가 지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1984년 미국에서의 최초의 직장 내 성폭력 승소 사건인 ‘젠슨 대 에벨레스 광산 사건’을 영화화한 <노스 컨츄리>에서도 동일한 문제의식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21세기인 현재 시점에서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적 폭력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성추행 문제는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권력과 성의 상관관계와 남녀간의 시각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여성과 남성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한 문제이며, 계층과 공간을 초월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우리는 때때로 과거의 불합리한 상태에 비해 현재는 얼마나 진보된 상태인가에 초점을 맞추며 중요한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고 자위하곤 한다. 하지만 <노스 컨츄리>는 그러한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 ‘조시’들의 희생적인 투쟁과 가족과 동료들의 지지와 지속적인 관심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의 대사처럼 “약자는 뭉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무너지는 수밖에 없다.” 글 김지미(영화평론가) 2006-04-25
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