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물봉에 다녀왔습니다. 김미정, 안계향, 임수정 이렇게 셋이서 호젓한 겨울 산길을 느릿느릿 걸어다녔습니다. 본래 계획으로는 매곡동 낙지등에서 산불초소까지 올랐다가 국립박물관 정원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그 계획을 바꿔서 일곡동으로 하산했습니다. 아름답고 호젓한 길을 발견했거든요. 내려와서 봤더니 일동 중학교 앞으로 떨어지더군요. 숲이 무성할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길. 일곡동 주민들은 한세봉이 더 가깝기 때문에 잘 이용하지 않는 길. 그래서 그 숲길은 푹신하게 느껴질 정도로 낙엽이 쌓여있었고, 겨울 숲의 고요하고 쓸쓸한 정취를 담뿍 담고 있었습니다.
사방오리 나무, 리기다소나무, 정금나무가 개옷나무, 때죽나무 등이 각자의 영역에서 새움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아직은 황량한 겨울 숲은 텃새들의 놀이터.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덩굴 숲에는 오목눈이 떼가 잡을 테면 잡아보라는 듯 꼭 한발자국 씩 달아나면서 우릴 유혹하더군요. 소리며 몸짓이 얼마나 수선스러운지, 섬초롱은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며 투덜거렸답니다.
까치의 유연하고 활기찬 모습은 얼마나 시원하던지. 리기다소나무 가지에서 포르륵 날아다니는 놈은 박새가 분명한데, 그냥 박새인지 진박새인지 쇠박새인지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엉겅퀴가 말하길 Y자 모양이 배를 가로지르는 놈이 박새, 나비넥타이를 맨 것 같은 형상을 한 놈이 진박새라고 설명하면서 방금 경계를 하던 놈은 진박새라고 일러줍니다. 도감을 확인해봤더니 대충, 맞습니다.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이렇게라도 자꾸 보다보면 눈에 익겠거니 생각해봅니다.
정금나무 열매의 특징을 이야기하면서 소롯한 숲길을 계속 내려오는데, 사방오리나무 숲 속에 파랑새(색깔이 연두색이었음)처럼 멋진 새가 쏙,쏙, 혹은 콕, 콕, 하는 소리를 내면서 날아갑니다. 도감에는 <히요, 히요. 혹은 삐요오, 삐요오 하고 운다고 나와있는데, 제 귀에는 쏙,쏙, 하는 것 같더군요.>
섬초롱의 관찰을 그대로 옮기자면, 부리는 딱따구리처럼 뾰족하며 길고, 꽁지깃은 짧으며 연노랑색 깃털은 날개를 펴고 날 때는 연두색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고 합니다. 엉겅퀴가 오영상씨에게 전화를 합니다. 오영상씨 왈, 청딱따구리랍니다. 도감으로 확인을 해보니 수컷 청딱따구리는 머리꼭대기가 붉은색입니다. 우리가 본 것은 머리꼭대기가 잿빛이고 검은색 얼룩무늬가 있는 암컷이었습니다. 비상하는 청딱따구리의 자태가 얼마나 멋있던지, 숲길에 주저앉아 기다렸습니다. 그 멋진 자태를 다시 한 번 보려구요. 섬초롱이 끓여온 유자차를 마시면서, 숲 속에서 들려오는 갖가지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는 청설모를 바라보면서. 하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것을 알았는지, 청딱따구리는 다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무정한 청딱따구리.
일곡동이 내려다보이는 길가로 내려오다 소나무 숲에서 청딱따구리를 다시 만났습니다. 쭉쭉 뻗은 소나무 우듬지에 날개를 접고 앉아 명상에 잠겨있는 녀석을 오랫동안 주시했습니다. 멋지게 비상하기를 기다렸지만, 끝내 움직이지 않더군요. 셋이 돌아가면서 망원경으로 살피면서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 주문을 외웠지만 역시나, 무정하게도 날 기색은 보이지 않더군요. 주문이 너무 낡았나 봐요. 좀 더 새롭고 신선한 주문을 욀걸 그랬나싶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최선이었는걸요.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점심때도 되었고. 동네가 가까워지자 맛있는 밥이 그리워 오만한 청딱따구리의 비상을 더 기다리기 싫었습니다. 전문가 되기는 그렀다는 탄식을 속으로 삼키며 밥집으로 향했습니다.
그 밖에도 어치, 딱새, 이름을 알 수 없어서 너무나 답답했던, 아름다운 새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새를 보려면 겨울숲엘 가야겠구나 싶더군요. 며칠 굶은 사람들처럼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나서 다음 번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음에는 일동중학교 앞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입춘이 지났고, 이제 곧 우수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물이 오르겠지만, 그래도 오늘 만났던 녀석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첫댓글 바오밥, 낙지등에 낙지 없습니다. 하지만 멋드러진 새들은 참 많습니다. 다음에는 함께 하시지요.
넹 ^^
저번 주말에 처형댁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운암산에 올랐답니다. 너무 오랫만에 올라서인지 조금은 힘이 들었지만, 좋은 겨울 경치 많이 구경 했읍니다. 공부는 하나도 못했지만...기회 되면 다음 번개 때에는 저도 함께 할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