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니엘서에서 배운점
요절:다니엘서 1장 21절“다니엘은 고레스 원년까지 있으니라”
먼저 서론으로 본론에 들어가기전에 다니엘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열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심판으로 흘러가는 죄의 강물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이미 100년 이상, 다시 말하면 선지자 이사야 이상에서부터 심판으로 흘러가는 죄의 강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레미야선지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의 애통의 열매를 볼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서 25장 1절에서 14절까지 예레미야가 느브갓네살왕의 예루살렘 첫번 째 정복시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때에 다니엘과 그 세 친구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말한 내용을 보면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멸망의 원인은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요 또 하나는 70년 후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망시킨 후 그들로 다시 이스라엘에 돌아오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기원전 626년부터 선지자 활동을 하여 585년까지 약 41년간 선지자 활동을 했는데 626년부터 21년이 지난 605년에 첫번째 바벨론 유수가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3친구들이 모두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나면서부터 바벨론 유수까지 예레미야 선지자의 삶과 외침과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보며 자라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붙잡혀 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메시지가 그들의 심령에 꽉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다니엘과 세 친구 그리고 더 나아가서 에스겔 선지자까지 예레미야 선지자의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레미야의 눈물의 열매는 참으로 큽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첫째 장으로 다니엘은 딱 한가지 사명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레미야의 말씀이 심령에 밖힌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분명 나라를 멸망케한 우상 숭배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어도 우상숭배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단단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후 우상숭배에 제사들인 음식을 먹는 문제가 시험으로 닥아 온 것입니다. 어쨌든 우상에 관한 일이라면 그들은 조금이라도 타협할 수 없었습니다. 이 결단으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결단을 얼마나 사랑하고 또 이로 인해 얼마나 그들을 축복해 주시는 가를 체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작게 보이는 우상숭배를 하나님이 얼마나 크게 보시고 우상에게 타협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는 길임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3장과 6장에서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내걸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았고 풀무불과 사자의 굴 속에 던지는 위험을 받는 것도 불사하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만 충성했습니다.
다니엘서 저자는 다니엘입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고레스 왕 원년까지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가 무슨 사명으로 일생을 살았는가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바벨론 유수때에 피가 끓는 젊은이로서 그의 마음에 나라의 멸망과 수치를 보며 애통하며 슬퍼했을 것입니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605년으로부터 70년 후 즉 535년에 있을 이스라엘 나라 회복이었습니다. 그 해가 바로 바사왕 고레스 원년입니다. 다니엘서를 가만히 살펴보면 다니엘이 바로 이스라엘 회복을 위해 살았다는 여러가지 단서들이 나옵니다. 먼저 8장에서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바사왕국의 수도인 수산성으로 옮겨 비젼을 보여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바사왕국으로 바벨론왕국을 멸망시키겠다는 사실로 그를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이 때가 벨사살왕 3년이었습니다. 그는 짐승과 같이 잔인하고 비천한 자였습니다. 똥개는 짖어도 경부선은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는 이 더러운왕 밑에서 참으로 일하기가 싫었을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다니엘은 그 당시 국무총리 직을 잃었습니다. 그가 국무총리 직을 지냈다면 바벨론은 멸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짐승 같은 자 밑에서 동물과 같이 살아가는 인생들을 보며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이스라엘을 회복해서 거룩하고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것이 그의 간절한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서 9장 2절에서 다니엘은 예레미아 선지자가 예언한 70년 후의 회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바벨론이 멸망하고 이제 바사국이 다스리던 첫해로 539 또는 538년으로 이제 약 3,4년을 남겨 두고 있을 때입니다. 이처럼 바벨론이 멸망하고 자기민족을 구원할 바사 나라를 보는 바로 그때 그는 백성들과 자기 죄를 하나님께 들고 나가 회개 하며 모든 하나님의 심판과 훈련이 다 옳다고 하며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즉 그는 예루살렘 회복을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70년 후인 535년에 이루시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 해에 이렇게 기도했습니까? 그는 이미 8장에서 바사왕국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회복을 알고 있었고 바로 이제 3,4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이사야서를 공부했었고 또 고레스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바로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킨 장군이요 왕 다리오의 사위요 군대 장관으로 있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다시말하면 그는 이 상황을 보며 이미 몸이 달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체치 마시옵소서 라는 뜻은 70년 약속을 꼭 지체하지 마시고 이루시라는 간구 입니다.
6장에서, 다니엘은 많은 시기심으로 사자굴에 던져질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10절에서 늘 그랬드시 예루살렘을 향해 하루에 세번씩 기도하되 특별히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왜 예루살렘을 향했을 까요? 또 무슨 감사기도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바벨론이 멸망하고 이스라엘 회복과 성전건축을 위해 바사국 세상으로 만드신 것에 대해 감사를 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미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살만큼 살았습니다. 또 이미 수많은 일들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7,8, 9장을 체험을 했습니다. 다니엘은 이땅의 일이 하늘의 뜻 즉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을 계시로 알았습니다. 특히 9장에서는 천사장 가브리엘도 만났습니다. 또 그에게는 죽음보다 더 중요한 이스라엘 회복이라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이루는 일을 이제 눈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그날, 고레스 원년이 왔습니다. 에스라서 1장 2-4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사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 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고레스 탄생과정을 보면 그 역시 모세나 예수님과 같이 상당히 생명이 위험한 가운데 태어나 하나님의 기적적인 보호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생명에 어떤 신의 섭리가 있는 것을 늘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그가 여러가지 위험가운데 왜 승승장구하는지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바사왕국의 왕이되었을 때 자기 인생에 두신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옆에 다니엘이 있었고 다니엘은 이사야서 44:28-45:13절까지를 읽어 주고 그 설명을 했을 것이고 또 관련해서 예레미야 선지자서의 70년 후 해방 예언에 관한 모든 것이 어떻게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설명했을 것입니다. 기록된 이사야서 44장28절부터 45장4 절까지와y 13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라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부은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성호를 주었노라.
내가 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나의 사로잡힌 자들을 값이나 갚음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이말씀은 벌써 200년 이상 전에 이사야가 고레스 이름까지 지명하여 고레스에 대한 예언을 하신 것입니니다. 고레스는 이 말씀과 예레미야서 말씀을 바로 다니엘로부터 들은 것입니다.
이제 모든 사명이 끝났습니다. 다니엘의 나이가 거의 90이 가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 한 사람을 오랬동안 기도의 종으로 쓰셨습니다. 바로 이 사명을 위해 온갖 정치적 음모가 난무한 세상에서 그를 지키시고 사자입에서도 구원하시며 그날까지 총리 최고의 자리를 고수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끝났으니 그가 더 이상 그 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나이를 핑계하며 쉬기를 구하였을 것입니다. 해서 1:21말씀대로 고레스 원년까지 총리직을 맡은 것입니다. 그런데 10장부터 마지막 12장까지는 고레스 3년에 이루어 진 사건입니다. 이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성전 건축에 많은 방해가 있다는 좋지못한 소식을 듣고 3주동안 거의 금식을 하며 기도할 때 이루어진 사건 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70년간 쓰임 받은 것이 아니라 사명이후에도 사명을 감당을 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레스 왕을 찾아 가지 않았습니다. 그가 기도로 하나님께 구합니다. 그때에 그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오직 한가지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때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한가지 사명을 붙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 모든 조건을 주셨습니다. 그에게 건강한 삶과 모든 위험으로부터의 보호와 총리직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참 중요한 시대적 사명이 있습니다. 한 국가의 지성인 복음역사를 섬기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사명을 위해 2가지를 했습니다. 성경공부와 하나님의 뜻과 때를 맞추어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도 기도와 말씀으로 이 시대를 섬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는 한 사람의 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과 기도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예를 들면 가장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은 모세 부모의 기도와 믿음을 받으시고 출애굽을 준비했습니다. 그리스도와 요한을 보내기 위해 하나님은 단지 사가랴 내외, 마리아, 시므온 안나만을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한 사람의 역사입니다. 역사를 위해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면 우리는 적어도 세상을 탓하고 남을 탓할 수 없습니다. 모든 시대적인 문제가 바로 나 한 사람의 책임입니다. 나의 죄와 불신, 이기심과 무책임이 이 시대의 문제인 것입니다.
둘째로 다니엘은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쓰임 받았습니다.
7장 2,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저는 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영적 세계와 역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넷은 사방을 가르치는 것으로서 전체를 말합니다. 바람은 전쟁을 가르칩니다. 이 싸움의 결과로 바다에서 큰 짐승 넷이 나와 이 땅을 다스린다고 합니다. 여기서 바다는 죄의 바다가운데 죽어가는 인생들을 말합니다. 이처럼 성경에서는 바다를 죄 속에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방 땅을 말합니다. 즉 하늘의 영적 싸움으로 이 땅에서 모든 일들이 일어지는데 어찌되었든 사단이 이세상의 임금임으로 이 땅에서는 짐승 같은 왕들이 나와 지배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하늘은 사단이 거하는 공중 세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역사의 주관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단은 공중권세 잡은자요 또 이 세상의 임금입니다. 10장 20, 21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군과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 군이 이를 것이라.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적하는 자는 너희 군 미가엘 뿐이니라.” 바사국은 사실 하나님역사를 위해 귀하게 쓰임받은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바사군과 싸운다는 뜻은 사단이 근본적으로 바사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으로 바사를 지배하고 있는 사단군과의 영적인 싸움을 하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이세상의 임금이 있는데 세상역사를 주관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불가능 하게 보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세상역사를 주관하기 위해 세상의 임금 공중권세 잡은 자와 끊임 없이 싸움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사단과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싸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사단의 방해의 역사가 있다면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사를 미리 예언하시고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과 사단의 싸움은 꼭 눈뜬자와 장님과의 싸움과 비슷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유도 선수와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유도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유도는 상대방이 어느 쪽에 힘이 몰려있는 것을 알고 그 약점을 건드리고 또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해서 상대를 넘어뜨린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단의 힘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 십니다. 세상의 역사는 둘로 구분이 됩니다. 구약과 신약입니다. 구약은 그리스도를 보내고자하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하는 사단의 몸부림이고 신약은 예수님의 재림을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하고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 사단의 몸부림입니다.
하나님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단이 이게 왼 떡인가 하고 인간을 타락시키고 이세상의 임금이 되므로 영원한 하나님의 원수요 또 불의의 왕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상상하지 못한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오면 자기 머리가 박살 날 것을 안 그는 어찌든지 그리스도를 오지 못하게 안간힘을 다 쓴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영원한 나라를 세울 것을 알고 어찌든지 이스라엘을 타락시키고자 몸부림쳤습니다. 여로보암으로 우선 10지파를 갈라지고 하고 타락시켜 bc722년에 앗수르로 멸망시켰고, 또 586년에 완전히 바벨론으로 남유다를 멸망 시켰습니다. 이로서 다윗 족속에서 왕의 계승이 완전히 끊어 졌으므로 사단의 계획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준비시켜 백성들에게 회개의 마음을 주시고 또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을 예비하셨습니다. 또 1,2,3,4,5,6 장에서 하나님께서 오직 이스라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임을 온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이는 장차 복음전파를 위한 준비 작업을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바벨론 유수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온 세상에 흩어 졌고 각 곳에 회당을 지어 유대교를 온 세상에 알리셨고 어둡고 동물 같이 사는 이방인들에게 거룩한 하나님과 또 그리스도, 유대인의 왕이 올 것을 온 세계에 알리셨습니다. 이로인해 그리스도라는 헬라어 말이 온 세계에 알려 졌고 별을 보고 이방인들이 찿아 올 정도로 이방인들도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살게 했습니다. 이처럼 바벨론 유수는 사단이 그리스도를 못오게 하는 승리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하나님은 이를 역으로 쓰셔서 신약 때의 복음 전파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두 가지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회당에서의 전파와 또 그가 그리스도를 전할 때 이방인들이 전혀 생소하게 여기지 않고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바로 바벨론 유수로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에게 참 하나님을 알리시기 위해 바로 다니엘을 택하신 것입니다. 바벨론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 갔습니다. 그런데 70년 후에는 유대 땅으로 돌아가라 해도 1차로 유대인들이 돌아 간 숫자는 약 5만명 뿐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노예가 아니라 자유민으로 이방 땅에서 이미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요? 저는 역사를 조사해보지 않았지만 충분이 짐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바로 느브갓네살왕 옆에 다니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가 7년 동안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다시 온전한 사람이 되었을 때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깊이 깨닫고 겸손으로 거듭났으며 7년동안 모든 반란으로부터 보호한 것이 다니엘의 은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느브갓네살 왕 때 다니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유대인들이 노예에서 풀려나와 자유민이 되었고 율법으로 무장되고 훈련된 백성들이 게으르고 나태한 이방땅에서 경쟁하며 사는 것이 훨씬 쉬우므로 굳이 유대땅으로 돌아 가기 보다는 흩어져서 살지 않았는가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1장부터 6장까지 어떻게 하나님이 다니엘과 그 세 친구와 또 느브갓네살 왕을 쓰셔서 온 세상에 당신을 알리시는 가를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역사는 많은 사람보다 한 사람이 중요함을 보게 됩니다. 1장을 보면 느브갓네살 왕이 이스라엘 성전에서 온갖 금은 기구들을 가져다가 바벨론 신전에 둡니다. 이는 바벨론 신이 여호와 하나님을 이겼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어도 그들이 믿음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할 때 이처럼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참 하나님을 오해 하게 됩니다. 그러나 단 한사람 다니엘과 3친구의 진실된 믿음은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충분했습니다.
다니엘은 딱 한가지 이스라엘 회복이라는 사명을 위해 살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명 외에 하나님의 이름을 온 세상에 나타내 복음전파 준비를 위해 귀하게 쓰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한가지 사명을 위해 진실되게 살 때 그뿐만 아니라 보너스로 사명 외에 더 큰 축복에 쓰임 받도록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보너스 축복은 한가지 뿐이 아닙니다. 또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래를 보여주시고 천사를 보여주시고 예수님까지 보여 주시며 그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 완성의 계획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셋째. 다니엘은 그리스도를 통해 복음의 완성을 보았습니다.
다니엘서의 반 또는 그 이상이 다니엘이 본 미래에 대한 이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계속 반복되는 비슷한 이상인 것 같습니다. 모두 5개의 이상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각 이상의 동기와 목적이 다릅니다.
첫번째는 2장에서 느브갓네살왕의 꿈을 맟추고 해석하는데 이는 이 세상 왕들의 영화가 얼마나 헛될뿐만아니라 마지막은 멸망으로 끝나고 오직 그리스도의 왕국만이 영원한가를 세상사람들에게 보여 줍니다. 이 이상은 다니엘 뿐만 아니라 느브갓네살 왕과 세상 정치지도자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둘째 비젼은 7장에서 나옵니다. 이는 벨사살 원년으로 562년 때에 있었던 일인데 그 전에 정치적인 음모로 많은 사람이 서로 죽이고 죽는 피의역사가 바벨론 왕국에 있었습니다. 특히 벨사살은 짐승 같은 더러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젼의 목적은 다니엘에게 세상의 임금은 사단이 지배하므로 이 더러운 짐승들이 지배하는데도 어떻게 하나님이 그 뜻을 이루는가를 보여 주는 비젼입니다.
이 비젼에서 둘째 왕국 즉 곰은 바사나라를 뜻하는데 이 왕국은 이스라엘 회복을 위해 쓰임 받는 데도 예수님은 10장 20절에서 바사군과 싸우신다고 하므로 바사나라를 근본적으로 다스리는 것은 사단임을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7장 2,3절은 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짐승 같은 왕들 밑에서 비참하게 사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이 비젼은 이스라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다니엘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다시말하면 참 소망은 이스라엘 회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의 완성에 있음을 보여주신 비젼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 비젼의 목적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해서 2년이 지난 벨사살 3년에 8장에서의 비젼을 보여 줍니다. 이때 하나님은 다니엘을 바사왕국의 수도 수산성으로 그를 옮깁니다. 그때 숫양과 숫염소 비젼을 보여 주십니다. 숫양은 바사국 이요 숫염소는 헬라입니다. 성경에선 양은 오른쪽, 염소는 왼쪽으로 하나님이 뜻에 순종하는자 거역하는 자로 구분합니다. 이처럼 바사국은 하나님의 뜻을 쫓아 이스라엘 회복을 위해 귀하게 쓰임받으나 사단이 알렉산더를 써서 어떻게 이스라엘의 순수 유대교의 믿음을 희석하게 하여 믿음에서 떠나게 하며 또 적그리스도의 상징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통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할 것인가를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어떻게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가 그러나 결국 그리스도가 적그리스도를 쳐부수고 그리스도 영원한 왕국을 이루는가 하는 비젼입니다. 이 비젼의 목적 역시 모든 인간의 소망이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8장 마지막절인 27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다니엘이 혼절하여 수일을 앓았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
다니엘은 이 비젼의 목적을 몰랐습니다. 단지 자기백성이 당할 고난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혼절했고 아팠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아직 민족주의자요 이 땅에서 자기민족의 회복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성경공부를 통해 참 소망이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믿고 이를 위해 살아 갑니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우리 삶에 있어서 이 땅에서의 안정이 첫 번째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8장 비젼은 참 크리스챤이 이 땅에서 살면서 적 그리스도에게 당하는 고난을 말하고 그리스도의 최후의 승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소망을 두면 혼절하고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와 그 재림의 승리만을 생각할 때 아프지 않고 승리의 인생을 살아 가게 됩니다.
그리고 21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마침내 벨사살왕이 어떻게 하나님을 모욕하다 죽는 꼴을 보고 또 하나님의 비젼대로 바사나라가 온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몸은 이스라엘 회복을 3,4년 앞에두고 심히 달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70년 약속을 하나님께서 지체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그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은 70년이 참 희망이 아니라 69주 후 복음의 완성과 교회시대후 1주의 환란과 결국 70주년후의 그리스도의 왕국이 참 희망이라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비젼에서 그는 천사장 가브리엘을 보는 영광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은 또 다시 참 희망은 예수님의 복음의 완성과 재림으로 그리스도왕국을 건설하는데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3, 4년이 지난 그 이후 하나님은 정확히 70년, 즉 535년에 고레스왕을 통해 이스라엘 회복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참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큰 감사가 넘쳤을 것입니다. 이제 모든 일이 다 끝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모든 일에서 쉬고 싶을 나이였습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후 예루사렘 성전 건축에 많은 방해가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거의 90이 가까운 나이에 3주간 거의 금식에 가까운 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라 고레스 왕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린 것입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10장부터 12장이 이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모습으로 오심으로 그는 거의 죽게 되어서 그를 회복하는 사건만 기록한 것이 10장이요 11장 12장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미래이야기입니다.
11장은 주로 적그리스도가 얼마나 성도들을 비참하게 죽이는가 하는 기록이요 12장은 충절을 지키다 순교당하는 자들과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받을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의 영광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비젼을 기록할 때 다니엘이 제일먼저 하고 싶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10장 1절 말씀입니다. “바사왕 고레스 3년에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으니라” 여기서 스페인어 성경을 보면 다니엘이 이해했고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일까요? 왜 이 말을 제일 먼저 꺼냈을 까요? 즉 왜 이 말을 제일 먼저 하고 싶었을 까요? 조금 전에 8장 마지막절에 그는 심히 아팠고 깨닫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 12장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참 복음을 이해 한 것입니다. 즉 그는 그리스도의 지상 천국을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그 말씀을 들으면서 사람의 진정한 소망이 하나님나라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깨달음과 동시에 그는 이 세상은 나그네 길이요 또 이세상은 하나의 시험의 길임을 이해 했습니다. 또 공평하지 못해 보이는 이세상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완전한 의를 이루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1:17은 이렇게 말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구약성경은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의를 기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말미 암아 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이 말씀을 받아 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의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직 12장에서와 같이 죽은 후의 심판과 구원만이 완전한 하나님의 의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다니엘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나라에서의 완전한 구원과 완전한 의를 깨달은 것입니다. 이 비젼에대한 확신 때문에 그는 그 일이 참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세상은 아무리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해도 인간들이 죄인인 이상 어짜피 저주 받은 세상입니다. 다니엘은 오직 영원한 하나님 나라만이 완전한 나라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절 12:13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즉 그의 죽음과 부활과 이 땅에서 수고한대로 부활 때의 영광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창세기 15장 15절을 기억하게 합니다.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자기가 책임지고 이루고자 마음을 쓰다보니 큰 민족을 이루어야 하는데 자식하나 없으니 절망이 심히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장래를 보여 주시면서 그냥 아브라함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잘 살다가 죽으면 그 이후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다니엘도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속역사의 지혜와 비밀을 배우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다니엘은 역사의 주관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계복음화의 역사에 대해 우리가 책임지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과 기쁨으로 잘 좇아가며 동역을 해가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감당할 사명에 대해 충성되고자 하며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일을 보고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동역하다 가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가 뿌려놓은 후배들과 함께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여기까지 우리는 다니엘서를 공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은 평신도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우주에서 하나님 만큼 오해를 받고 억울한 생명은 없습니다. 특히 불신자 이방인들은 정말 하나님에 대해 무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방인들과 접촉하는 평신도를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평신도는 참으로 어두운 땅에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