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공학자 장영실(蔣英實)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장영실을 주인공으로 한 KBS 사극은 시청률 14%를 넘어섰고, 과학자가 참여하는 토크쇼 형태의 TV프로그램 ‘궁금한 일요일 장영실쇼’도 인기를 얻고 있다. 장영실을 다룬 소설·뮤지컬·위인전기도 여러 편 나왔다. 천민 신분에서 상의원 별좌, 정4품 호군, 종3품 대호군까지 오른 드라마틱한 삶이 일반인의 관심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장영실의 삶과 업적이 재조명되면서 지자체들의 장영실 마케팅 열기도 덩달아 뜨겁다. 장영실의 본관이자 가묘가 있는 충남 아산시는 기념사업회와 함께 매년 10월26일을 ‘장영실의 날’로 정해 축제를 열면서 과학정신을 기리고 있다. 2011년에는 장영실 과학관을 개관했고 애니메이션도 제작했다. 동래현 관노였다는 기록에 근거해 부산시도 2009년 장영실 과학동산을 조성해 조선시대 과학기구를 전시하고 있다.
찬찬히 찾아보면 경북에서도 장영실의 흔적과 인연은 남아 있다. 장영실의 부친 장성휘 5형제가 태어난 곳이 바로 의성이다. 이들 형제는 모두 전서(典書) 벼슬을 지냈다. 전서는 고려후기와 조선 초기 정3품 장관직이다. 이들이 태어난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교동은 5전서의 마을로 불린다. 장성휘의 묘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른 네 형제의 묘는 의성·안동·의흥 등지에 남아 있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의 장영실 행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말년을 보낸 곳은 본관인 아산이 아니라 일가들이 모여 살던 의성일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이 많다. 실록에는 장영실이 경상도 ‘채감별감’으로 나가 영해·청송·의성 등 각 읍에서 생산된 철과 동을 바쳤다는 기록도 나온다.
장영실의 과학적 자질과 관련해 주목받는 당대 인물이 영주 출신 조선 최고의 천문학자 무송헌 김담(金淡·1416~64)이다. 김담은 장영실의 사촌 여동생과 결혼했다. 장영실의 사촌매제가 김담인 셈이다. 노비 출신인 장영실이 과학적인 식견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김담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김담은 태종 16년 영주의 삼판서 고택에서 태어나 47세에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이순지와 함께 당시 국립천문대에 해당하는 간의대에서 천체를 관측하고 칠정산(七政算) 내편과 칠정산 외편 등 수많은 천문·역서를 편찬했다. 칠정산은 중국의 베이징이 아닌 한양을 기준으로 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자주적 역법으로 그 의미가 크다.
올해는 조선을 대표하는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김담 선생이 태어난 지 600년이 되는 해다. 지난해 기념학술회의와 강연회에 이어 올해도 지난달 영주에서 발족한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념행사가 펼쳐진다. 10월에는 동양대에서 학술대회가 열리고, 김담이 교정 편찬한 천문역서 영인본 발간, 삼판서 고택 기념음악회도 추진하고 있다. 김담 선생을 과학기술 명예의 전당에 헌정하는 사업도 진행된다. 탄생 600주년을 맞아 그의 삶과 업적을 널리 알리고 기리는 일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지역의 숨겨진 역사적 인물을 발굴하고 문화콘텐츠로 활용하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담뿐만 아니라 경북에는 천문과학에 일가견을 가진 출중한 인물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고 천문관련 시설도 풍부하다. 국보 31호 첨성대, 영천 보현산 천문대, 예천 나일성천문관은 경북이 자랑할 만한 훌륭한 자산이다. 천문관측기구 ‘선기옥형’을 제작한 봉화 석평리 유록골 출신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1760~89) 등 천문·역학에 조예가 깊은 인물도 한둘이 아니다. 이들 보물을 꿰어 스토리를 만들고 천문과학 체험코스로 개발한다면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되고 지역민의 자긍심도 높이는 일석이조가 되지 않을까. 역사의 뒤안길에서 보물을 찾아내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몫이다.
배재석 논설위원
첫댓글 잘 봤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