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다!
참고로 하얼빈은 만주어로 '그물 말리는 곳'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원래는 한적한 어촌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 관련 자료들은 일본측이 기록한 문서에 많이 의존해 왔다. 이번 <하얼빈 리포트>는 최근 개방된 러시아 역사문서, 외부 유출이 금지되었던 해외자료들를 근거로 작성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안중근 의사는 지금의 국정원에 해당되는 고종 황제 직속 군사 첩보기관 '제국익문사' 비밀요원이었다!
고종 황제는 일본에 의해 국정 운영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 비밀리에 첩보기관을 운영한다. '총독 김두성' 이라는 이름으로 비밀 요원들을 국내외에 파견하여 정보를 수집한다. 일본에 의해 군대도 해산되었기에 대한독립을 위한 의군들을 모집하고 의군들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도 독일, 홍콩에 있는 영국 은행에 예치를 해 두었으나 강대국들의 횡포로 출금을 할 수 없었다. 당시 고종 황제가 예치해 두었던 황실 내탕금은 대한독립을 위해 모인 의군 1만명에게 최신식 총기를 구입해 줄 수 있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1902년 6월, 고종은 오랫동안 추진해온 황실 직속 군사 첩보기관 '제국익문사'를 출범시켰다. _140쪽
익문사는 오늘날의 국정원이나 미국의 CIA에 해당ㄷ하는 정보기관이다. _142쪽
익문사의 통신원은 실제로 모스 전신이라는 빠른 통신수단이 있어서 멀리 미국이나 연해주에서도 대한의군 총사령관과 명령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_144쪽
당시 고종황제의 비자금은 해외차관이나 특수상품의 판매대금으로 충당되어 왔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액수는 영국의 홍콩은행 상하이지점에 예치된 중국 내의 홍삼 판매대금이다._172쪽
조선통감부 친일매국노들은 예금주인 고종도 모르게 이토 통감의 지시로 황실의 내탕금 인출을 문서위조로 빼낸 것이다._220쪽
당시 독일은행의 조선 황실 비자금 부정인출사건은 그 후 1945년 한국이 해방된 후에 방문한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이승만 정부에게 독일 채권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본의 이토가 허위 인출서를 작성, 금융사기로 돈을 탈취해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_220쪽
하얼빈 거사는 일본 후쿠시마 파견된 한국계 출신 익문사 소속 요원 마사코가 수집한 극비 정보에서 시작되었다.
그녀가 수집한 극비정보는 즉각 샌프란시스코의 국민회 총장 정재관의 귀에 들어갔다. _247쪽
이토가 하얼빈에 온 이유에 대해서, 책에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만주를 분할통치하고 있던 러시아와 일본은 구미 강국들이 만주철도부설권의 입찰에 뛰어들자, 이토는 서구 세력들의 개입을 막기 위해 러일회담을 제안한 것이다._251쪽
안중근 의사가 우리 민족의 원흉으로 지목한 이토는 1890년대 초기부터 중국을 지배하겠다는 장기전략을 수립했고 그 중간단계로 대한제국을 침략한 것이다. 최초 일본군은 동학 농민군을 지원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조선 침략의 교두부를 확보하기 위한 비밀 전략이었다. 명성황후를 시해(여우사냥)하기 위해 모인 일본인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경력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일본 신문 '한성신보' 사장 아다치, 편집장 고바야카, 기자출신의 기구치, 주한 일본공사 서시관 스기무라, 하버드대 출신 중의원 작가 시바시로, 도쿄대 법학부 출신 호기쿠치. _103쪽
똑똑하다고 해서 모두 다 제대로 된 이성을 가졌다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일본 안에서 당대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한 나라의 국모를 처참하게 살해하는 일에 자진해서 가담했다니. 극우 성향을 지닌 일본 우익 세력들의 행동에 혀를 내두를수 밖에 없다.
한 때 일본의 세력들을 견제하고자 고종 황제는 러시아 공관에 임시로 옮겨가 있기도 하고 러시아 측에 비밀문서를 통해 군사적 협조 요청을 했었다. 그러나 러시아도 겉으로는 돕는 척을 했으나 내심으로는 일본의 견제를 막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을 뿐이다. 일례로 스탈린이 집권하고 수 많은 연해주 등지의 독립운동가들이 처참한 학살을 당하고 강제 이주를 당해야했다.
『하얼빈 리포트』의 시작은 노후의 빌렘 신부와 마샤 김이라는 익문사 비밀요원이 프랑스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빌렘 신부는 적극적으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해 주었던 인물이다. 안중근 의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버지 안태훈의 독립운동 행적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토의 저격 후 안중근 의사하면 하얼빈으로 통하지만 사실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한 부분들도 적극적으로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교육사업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던 노력들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의 가문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가문일정도로 대부분의 가족들이 독립운동에 전 생애를 바쳤다.
『하얼빈 리포트』를 통해 하얼빈의 안중근이 있기까지 수 많은 이들이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기록해 놓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종황제의 노력, 첩보기관 익문사의 존재, 러시아 사람으로 고종황제의 손발이 되어 주었던 손탁 등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안중근을 다룬 영화 <영웅>을 깊게 감상하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