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영혼과 육체에 무서운 독이 된다.
죄는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막2:1-12)
육신(flesh)은 우리의 생명을 죄의 세력 밑으로 끌어들이는 경향이다. 타락된 인간 본성이다. 모든 고통의 원인이다.
영과 성령을 대적한다.(죄를 범함으로, 선을 행함으로)
육신은 율법을 따라서 살려고 한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생명과 가치이다. 육신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노력한다.
악은 영이 추구하는 방향이 문제이지, 본성 자체의 구조의 문제는 아니다.
죄는 무엇이든지 믿음에 의하지 않은 것이다. 믿음으로 좇아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롬14:23)이 죄다.
죄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는 인격(마귀, 저주받을 원수)이다. 사단의 뜻이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린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게 만든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상태(Separation from God) : 하나님과의 단절, 영적 죽음, 영혼의 파멸, 비참
죄는 언제나 혼란과 불화와 불행과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한다.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다. 자신을 높이는 것, 자고하는 것이다. 지적인 교만
교만은 자신의 지위, 권세, 부귀, 명예, 건강, 행복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교만은 모든 죄의 근본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만든다. 패망의 선봉(잠16:18)이다.
교만은 자신의 염려를 홀로 해결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영적인 교만은 자기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영적 상태가 남보다 많이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해답이 있다고 주장한다. 성결의 교만
재물은 구원을 가로막는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죄는 돈을 사랑하는 것, 돈을 신뢰하는 것이다.
부를 추구하는 것은 죄다. 부를 향한 끊임없고 쉼 없는 추구는 하나님께 입은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돈이 악한 것이 아니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악한 것이다.
물질에 집착하는 것, 돈을 섬기는 우상숭배, 배금주의, 물질주의, 물질에 대한 탐욕, 부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 돈에 대한 예속, 돈을 벌기 위해 노동하는 것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성공한 것이다 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마6:19-24, 말3:10, 창28:22, 히7:4, 왕상 18:21, 출 32:1-4,28)
죄는 즐길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재미가 있다.
세상의 즐거움, 향락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쾌락주의(Hedonism)는 자기 기뻐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며 더 깊은 허무에 빠지게 한다.
허무주의(Nihilism)는 진리에 대한 모든 객관적 근거를 부정한다. 신은 죽었고 인간도 죽었고 의미도 죽었다고 말한다.
의심은 하나님보다 마귀를 믿는 행위이다.
배교(배도)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붙드는 것이다.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에서 돌아서는 것이다. 영적 간음(음행)이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방황하는 것,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반역, 거역하는 것,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이다.
염려, 근심, 걱정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다. 불신앙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를 믿는 것(벧전5:7)이다.
불안은 죄악된 삶의 주요한 특징(사57:20)이다.(공포)
자기 중심주의 : 자기 추구, 자기 실현
두려움은 마귀의 역사이다. 모든 실패와 모든 불행의 궁극적이고 실제적인 원인이다.
조소, 비웃음, 조롱에 대한 두려움, 사람에 대한 두려움, 세상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고난, 고통, 핍박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결과에 대한 두려움, 변화, 도전에 대한 두려움, 원망, 불평은 자기 연민이다.
자기연민과 자기 중심성은 성령님을 슬프시게 한다. 자기 연민의 치료법은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불평하며 감사하지 않는 것이 죄다. 감사의 결핍은 성령의 일을 소멸시킨다.
죄는 스스로가 판단의 기준이요 판단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이기주의(이기심)는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신을 유익만을 추구한다.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
지나친 개인주의, 가족 이기주의, 자기애는 자기를 사랑하는 모든 형태의 생각, 말, 행동이다.
자기 주장은 나 자신을 길을 고집하는 것(독선, 오만, 거만)이다.
자기 기만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다. 알면서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다. 입술로만 신앙을 고백한다.
부패는 상호 돕는 작용을 멈추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의 결핍은 무관심, 냉담함, 부주의, 상대방의 불행에 대해 은근히 만족하는 정신 자세이다.
명예에 대한 탐욕은 권력, 명성을 쫓는 것이다.
게으름은 모든 부패와 무능력의 원천(안일, 편안, 나태, 안락)이다.
자기 신뢰(자기 의존)는 육신을 신뢰하는 것이다. 자기부정이 없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자기 노력(자기 공로)으로 자기 의를 추구한다. 율법주의, 공로 의식
외식, 가식, 위선, 허영은 가장된 거룩함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거짓 겸손이다.
편안하고 배부르게 되자 종교화되고 형식화되었다.
형식주의(Formalism)는 간절함이 없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다. 냉랭하고 생명력이 없다.
따분하다. 성령의 능력과 생명과 자유의 가장 큰 적이다. 형식적인 기도, 형식적인 예배, 형식적인 봉사
세속주의(Secularism)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다. 세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고가 세상의 지성과 견해에 지배당하는 상태이다. 항상 이익(돈)에 관심이 있다.(딤전 9:7-9, 6:10-12)
세속화된 사고방식에서는 신적인 개입이 불가능하다. 경험적인 방법과 이성적인 사고에 의해 진리에 도달하려고 한다.
이단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가 보다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고난, 희생 그 자체에 구원적이고 속죄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이단의 정신은 진리에 무엇인가를 더하는 것이고, 배교는 진리에서 무엇을 감하는 것이다.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과시한다.
육신이 지배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의 자의식은 증가된다. 자의식이 일어나면 영은 지배권을 상실한다.
자기 충족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욕구이다.
불순종은 사망과 파멸로 이끈다.
불의, 부정, 더러운 말, 불순한 생각
술취함(알코올 중독)은 불경건, 방종, 방탕이다.
살인, 증오, 미워하는 것, 용서하지 않는 것(마6:14-15), 분노, 혈기
용서하지 않는 정신에 악령이 역사한다.(복수심)
자살은 사단의 역사이다. 자기 파괴적인 도피이다.
간음, 음란, 호색, 색욕, 포르노, 부도덕한 행위, 도덕적 부패
기도하지 않는 것(삼상12:23)이 죄다. 기도 없이 설교하는 것, 기도를 쉬는 것이 죄다.
실망, 낙심, 절망, 자포자기
무기력(lethargy) : 혼수 상태, 활발치 못함
탐식, 폭식하는 것은 죄다.
탐심은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이다. 악의 근원이다.
자만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낙심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다.
미신의 기초는 두려움, 기복이다. 미신, 점, 부적, 주문, 기복주의(샤머니즘)
지체, 연기는 즉각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우상 숭배하면 모든 생활에 죄와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된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대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치를 대신하는 것이다. 나와 하나님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다.(직업, 가족, 책, 친구, 여가시간, 휴가 기간, TV프로그램, 스포
츠, 야망, 부, 재물, 성공, 지위, 명성, 인기, 권력, 일, 취미, 음악, 영화, 인터넷, 운동, 남편, 아내, 자녀)
두 마음을 품는 것은 부분적인 헌신, 얄팍한 헌신, 나뉘어진 마음이다.
강퍅함은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의 굳어짐(완악함, 패역함)이다. 냉랭하고 사랑이 없는 상태이다. 무감각
어두움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이다. 곤고함, 고통
죄의식(죄책감)은 우리를 억압하고, 우울하게 하고,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자기 비하, 열등감, 침체
후회는 세상적인 근심이다.
자만심은 자아가 우주의 중심, 우월감
권태, 허무, 공허, 무의미
남을 판단하는 것(경쟁, 비교)은 죄다. 비판, 정죄, 비난 마7:1-2, 눅6:37, 롬2:1
다툼, 불화, 분열, 분쟁, 분리, 당 짓는 것
참소는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다.
폭력(잔인함)은 본질적으로 파괴적이다.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죄다.
죄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짓밟는 것이다. 손해를 입힘으로 괴로움을 끼치는 일이다.
책임 회피(무책임)는 변명하는 것이다.
명목상의 신앙(거짓 믿음)은 회개도 순종도 없다.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한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것은 죄다.
그리스도의 피를 밟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성령 훼방죄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행동이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엡4:30), 성령을 거스리는 것(행7:51), 성령을 소멸시키는 것(살전5:19)
하나님의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
수동적인 태도는 성령을 소멸하고 저항하는 것이다.
수동적, 피동적, 소극적, 부정적, 비관적, 염세적, 냉소적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은 성과 속을 분리한다. 하나님의 일과 내 일을 구분한다. 교회생활과 실제생활을 분리한다.
평신도와 성직자라는 개념은 로마 카톨릭 전통이 만들어 낸 것이다.
모든 비성경적인 철학과 종교는 근본적으로 이원론적이다.
주지주의, 지식주의, 객관주의, 신앙주의, 지성주의 : 머리로만 믿는 믿음, 열기 없는 빛, 행동이 결여, 감정이 없는 진리, 생기없는 전통
마귀는 지적으로만 진리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주정주의, 광신주의, 열정주의, 감정주의 : 열광적인 이단, 빛 없는 열기, 육신적인 흥분, 지나친 열광, 나르시시즘(자기 도취), 혼란, 혼돈, 무질서, 직접적으로 감정을 자극하려는 시도들, 진리가 없는 감정, 열광만을 자극
죄는 교활하게 감정에만 역사하여 이지와 생각을 약화시킨다.
활동주의, 행동주의 :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계속 의뢰하는 데서 나오지 아니하는 활동, 자신감이 넘쳐서 바쁘게 설치는 것, 분주함, 열정 없음, 지식이 없는 열심(롬10:2), 생각이 없이 하는 행동
정숙주의, 정적주의: 조용한 수동주의, 미지근함, 성령의 강권함이 없이는 영적인 어느 것도 시도해서는 안 된다.(모라비아 교도)
열정이 없는 고요함은 영적 무감각(Apathy), 무책임, 무관심에 이르게 한다.
경건주의는 기독교를 매우 편협한 영적 생활 영역으로 폐쇄해 버린다. 결국 교만과 율법주의에 이르게 한다.
합리주의는 하나님의 계시를 부인한다. 초자연적인 것을 반대한다. 이성이 진리의 원천이다.
신비주의는 느낌이나 직관 또는 다른 내적인 감각들을 통해 진리를 추구한다. 성경 이외의 계시를 추구한다. 성령의 역사를 지성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반지성주의, 주관주의, 감정주의, 체험주의
영지주의는 자신을 열어 직접적인 직관적 계시를 받으라고 주장한다. 육신적 성향(flesh)을 육체(body)와 동일시한다.
불교는 육신적 성향을 정체성과 동일시한다.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고통이 발생한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욕주의는 귀신의 가르침이다. 혼인과 식물을 금한다. 성과 음식을 버리려고 하는 시도이다.
혼합주의는 서로 다른 종교와 철학들로부터 모든 사상들을 따다 한데 섞는 것(통합주의)이다. 세상과 타협, 거짓 영의 승리, 하나님도 섬기며 우상도 섬기는 것
인본주의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부인한다. 성화 과정에서의 성령사역을 경시한다.
실용주의는 초점이 하나님의 영광(하나님 중심)에서부터 인간의 유익(인간 중심)으로 옮겨진 것이다. 의미나 가치가 실용적인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실존주의는 주관적(마음이 진리의 원천)이다. 반지성적(이성을 거부), 비합리적(체험을 중시)
신정통주의는 실존주의적 기독교이다. 진리의 객관성을 부인한다.(의미가 중요) 성경 이상의 계시를 추구한다.
극단적 칼빈주의는 숙명론적인 신앙이다.
사회주의는 불공정한 사회구조와 부의 잘못된 분배가 이 세상의 악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해결은 사회구조의 변혁이다.
결정론에서는 인간의 의지 행위가 무엇인가의 원인에 의하여 규정되고 제한되고 만다.
이신론은 기적이나 계시를 부정하는 계몽주의 시대의 신관이다.
계몽주의는 모든 초자연적 종교에 반대한다. 인간 이성의 완전한 충족성을 강조한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신앙을 와해시켰다.
상대주의는 절대적 진리는 없고 모든 진리는 각 상황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를 부인한다. 인간의 의지를 강조한다.
카톨릭에서는 믿음 위에 선행까지 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선행이 칭의의 근거)
반율법주의는 선행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나 율법은 필요없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율법 아래도 있지 않다고 말한다.(방종)
율법주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무엇인가 일을 해야 한다는 묶임(속박)이다. 도덕과 율법의 준수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구원을 얻을 방편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행위를 통해서 구원에 이르려고 한다. 사람이 만든 규칙이나 종교의식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여 어떤 이를 정죄하는 것이다. 은혜와 진리를 알지 못한다. 도덕주의, 행위 구원론(이슬람교, 유대교, 유교)
자유주의는 기존의 종교적, 사회적 권위를 일체 거부하고 이성과 문화가 인간을 진보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성경의 권위와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한다.
생활 가운데 죄에 대한 애통이 없다면 그의 신앙고백은 거짓이다.
심리학, 최면술, 심리 요법들
성공 복음 : 성공 지향적 철학, 세상적인 야망
자아 존중의 복음 : 자아 성취, 자기 실현,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것
자아를 중심으로 하는 복음은 인간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개인적인 성취를 추구하며,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는 것을 강조한다. 십자가가 없다.
실용주의적 복음주의는 자기개발 프로그램, 건강, 부, 행복, 성공, 능력, 즐기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을 강조한다.
원한, 악독, 쓴뿌리는 원수를 맺는 것(히12:15)이다. 원한을 품는 것은 영과 혼과 몸을 파괴시킨다.
죄는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는 무감각한 상태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사망을 잉태한다.(롬6:23, 히9:27)
죄는 성령의 사역을 방해하고 부흥을 막는다.(시66:18)
죄는 우리를 영적으로 무감각하게 만든다.
죄는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자신의 재능과 경험을 의지하게 한다.
사람이 죄 가운데 살게 되면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이 없게 된다.
죄는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고 살아가는데 익숙해지게 만든다.
죄는 예배 자체를 하나의 일상적인 프로그램으로 여기며 사역하게 만든다.
죄는 법이며, 사람의 의지로 극복할 수 없다.
성령의 법이 죄의 법을 이기고 만다.(롬 8:2)
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전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피곤은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징조이다. 피로는 영적인 열정의 상실이다.
삶 속에서 고백하지 않은 죄와 마음속에 숨겨진 죄는 사탄의 드나드는 통로가 된다.
죄의 결과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의 기쁨을 상실된다.
죄는 하나님께 대한 거역과 불순종이다. 우리 속에서 냉담과 무관심을 일으킨다.
죄 아래 있다는 것은 율법 아래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죄를 이기는 방법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과 우리의 몸이 그의 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죄를 알게 되는 것은 은혜와 용서의 선포에서부터이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나 자신의 길을 고집하는 것이다.(사53:6)
생존 욕구는 자유와 기쁨을 약화시킨다.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을 방해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빼앗기게 된다.
죄는 자신의 삶을 제멋대로 하려는 것이다.
죄는 다른 사람의 삶을 지배하려드는 것이다.
죄는 인간의 나쁜 행동을 가리키는 도덕 용어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거부와 신인양 행세하는 것을 가리키는 영성 용어이다.
죄에 대해서 슬퍼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지나치게 슬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용서의 능력은 당신의 죄의 권세보다 크기 때문이다.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치 않고 그분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로부터 단절시켜 버린다. 그리고 우리의 영적인 민감성까지 둔화시킨다.
자신의 죄성을 철저하게 느낄 때 비로소 진정으로 겸손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를 중단할 수 있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8가지의 신앙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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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월을 아끼라
고속버스도 휴게소에서 쉰다. 날으는 비행기도 쉰다. 흐르는 물도 댐이 쉬도록 한다. 그러나 세월은 멈추지 아니한다. 세월은 아끼는 만큼 우리에게 보답을 해준다. 돈을 아끼지 아니하는 사람의 주머니가 비는 것처럼 세월을 아끼지 아니한 사람의 인생도 비게 된다.
2)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어떤 기계든지 제동장치가 중요하다. 제동장치에 문제가 생기면 대형사고가 일어난다. 인간이라는 기계에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재해는 육체의 정욕이라는 바이러스이다.
3) 드리기에 힘쓰라
드리는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드려서도 안되고 좋은 것이라도 성의 없이 드려서도 안된다. 드리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4) 바라보라
내일을 바라보고 살면 오늘을 참을 수가 있다. 군인이 제대 날을 기다림같이, 부모는 자식을 바라보며 힘든 일도 참는다. 진정으로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예수님이시다.
5) 맡겨 버려라
사람은 대체로 문제를 만나면 그 문제와 정면대결을 한다. 그러나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진다. 왜냐하면 문제는 언제나 나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나보다 약하다면 문제가 아니다. 시련을 만나면 시련과 싸우고 질병을 만나면 질병과 싸우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버려라
6) 마음에 품으라
닭이 계란을 품으면 병아리가 태어나고 옥토가 씨앗을 품으면 새싹이 돋는다. 구름이 비를 품고 있으면 비가 내리게 된다. 어떤 것이든 품고 있는 것들이 열매로 나타나게 된다. 욕심을 품으면 끌어 모으기만 바쁘다. 미움을 품으면 눈빛으로 나타나다가 입으로 나타나게 되고 끝내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사랑을 품으면 사랑이 나오고 관용을 품으면 이해와 용서가 나타난다.
7) 믿음의 자세를 바꾸라
환경을 바꾸려 말고 믿음의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물맷돌 다섯 개로 골리앗을 죽이겠다는 다윗처럼 말이다. 제일 빠르고 쉬운 인생길은 순종인데 반해 타협은 제일 먼길이다.
8) 붙들려 살아야 한다.
성령 충만함으로 살아야 무기력하지 않다. 환경, 토양이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만 하나님께 붙들리면 가정, 교회, 직장, 나라가 산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라. 삼갈의 막대기, 삼손의 나귀턱뼈, 예수의 제자들, 우리가 누구냐보다 누구에게 붙들려 사느냐가 더중요하다./자료ⓒ창골산 봉서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