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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학저널 번역 원문보기 글쓴이: 운영자
Goodrich, J. K. (2013). Sold under Sin: Echoes of Exile in Romans 7.14-25. New Testament Studies, 59(04), 476-495.
죄 아래 팔린: 롬7.14-25에서의 추방의 반복사용
Abstract
최근 성경의 암시들을 알기 위해서 로마서가 아주 많이 연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롬7.15-25에 대한 사49-50의 영향은 대체로 주목 받지 못했다. ‘죄 아래 팔린’(롬7:14)의 구절에서 사50.1의 암시에 대한 Philonenko의 연구에 기초하여, 본 연구는 롬7:15-25에서 70인역의 사49.24-50.2의 추가적인 반복사용을 규정하고, 이사야의 원래의 배경과 화자의 역경에 대한 바울의 그림에서의 바울의 이사야의 전략적인 사용 모두에 의해서 나타나는 죄-추방-회복 패러다임의 조명에서 바울의 담화를 해석하기를 시도한다. 본 연구는, 이 반복사용에 대한 규명이 롬7.7-13에서 이스라엘의 초기의 역사에 대한 암시들을 7.14-25에서 나라의 이후의 역사의 이미지와 연결시킴으로써, 화자의 이야기를 해석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더 구체적으로 이것은 죄 아래에서의 화자의 역경이 이스라엘의 기만, 죽음, 추방의 경험과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1. Introduction
롬7:7-25에서 화자의 정체성과 스토리라인은 현대 학문의 수많은 논쟁의 중심에 있다. 이전 세기에 로마서 7장에 대한 많은 해석적인 연구들을 발생시키면서, 이 논지들은 수많은 연구들의 주요한 초점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수많은 다른 연구들에서는 보조적인 중요성만을 가졌다. 확실히 몇 이슈들은 논쟁에 기여하는데, 특히 그 중에서는 7-13절에 나타나는 바울의 특정한 성경의 역사적인 암시들의 사용이다. 그러나 14-25절에 대한 영향에 대해서는 너무 적은 주의만이 기울어졌다.
이 빈틈을 채우기를 시도하면서, 본 연구는 롬7:14-25에서의 바울의 성경적 암시들을 조사한다. 바울의 암시들은 화자의 정체성과 스토리라인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수단이다. 더 정확하게는, 이 에세이에서 우리는 롬7:14-25의 바울의 다양한 용어들과 이미지들의 사용에 대한 주요한 영향들 중의 하나는 사49-50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먼저, 거의 주목 받지는 못하였지만 바울의 담화에 대한 이사야의 영향에 대한 우리의 주장이 신약성경 학문에서 선례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죄 아래 팔린’ 구절의 상호텍스트성 해석적 역사를 간략하게 조사한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를 롬7.15에 제한하기보다는, 사실 롬7.14-25에 대한 이사야의 영향이 이전까지 증명된 것보다 더 설득력 있고 더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본 연구는 롬7.15-25이 70인역의 사49.24-50.2로부터의 몇 가지 용어들과 논지들을 반복사용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것들을 함께 고려하였을 때, 이러한 이사야의 반복사용들은 죄-추방-회복 패러다임을 포함하여 바빌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의 개념들을 떠올려 주며, 롬7.7-13에서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에 대한 암시들과 7.14-25에서 후기 역사의 이미지들을 연결시킴으로써 화자가 이야기를 말하는 것을 돕는다.
2. The Intertextual Interpretive History of Romans 7.14
롬7.14의 ‘죄 아래 팔린’ 구절의 수사학적 그리고 신학적 중요성을 과장하는 것은 어렵다. 이미 비난투인 σάρκινος(cf. 고전3.1)에 기초하여, 이 구절은 화자의 역경이 내부적일뿐만 아니라 위치적임을 보여줌으로써, 화자의 절망을 강화하는 것을 돕는다. 여기에서 죄는 권능으로서 화자를 무력하게 만들고 반면 화자는 죄의 지배 아래 놓이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서, 뒤이은 γάρ는 이 구절을 직접적으로 15-20절에 묘사된 갈등과 연결시킨다. 이 절은 죄에 사로잡인 상태로부터 반드시 발생하는 윤리적 실패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죄 아래 팔린’의 서술은 롬7의 논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구체적으로 이 구절은 14-25절의 화자의 정체성과 스토리라인에 대한 논쟁에 많은 기여를 한다. 사실, 어떤 학자들은 이 절이 이 구절에 대한 그들의 해석에 있어 결정적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Peter Stuhlmacher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례에 대한 사도의 깊은 이해는 7:14의 기독교인을 여전히 “죄 아래 팔린” 것으로 묘사하는 것을 못하게 한다. 그리고 Douglas Moo에 따르면, 이 서술은 ‘여기에서 비기독교인에 대한 설명이라는 주장을 관철시킨다’.
이 구절이 롬7의 해석에 대한 논쟁에 미치는 영향이 위와 같은 상황에서, 이 구절의 기원에 대해서 적은 관심이 기울여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정확한 구절은 70인역의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반면, 바울이 롬7.14-25의 몇 개의 다른 용어들과 함께 π1πραμένος ὑπὸ τὴν ἁμαρτίαν를 사용한 것이 유대인 성경을 반복사용한 것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확실히, 학자들은 이 구절의 기원으로 몇 가지 성경의 내용들을 제안하였다. 예를 들어, Adolf Schlatter, James Dunn, Gary Shogren, Colin Kruse는 이 구절이 70인역의 몇 경우들에서 사용된 ‘sold to do evil’ 표현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Otto Michel은 바울이 앞서 언급한 관용구와 πιπράσκω의 추가적인 성경적인 사용들에 의존하였고, 이것이 몇 70인역 텍스트들의 융합을 통해서 이 구절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더 주제적인 수준에서, Christian Grappe는 이 구절이 아담을 떠올려 주는 것으로 추측하였고, 반면 N. T. Wright는 출애굽 이전의 이스라엘의 노예상태에 대한 암시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구절의 가능한 성경적 자료들을 규명하는 이러한 적은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관련 주장들에 대한 증거는 매우 미약하다.
그러나 빈번하게 간과되는 논문에서, Marc Philonenko는 바울의 표현 ‘죄 아래 팔린’은 사50.1에 대한 ‘복잡한 암시’라고 훌륭하게 주장한다. 이 주장은 롬7.14와 같이 70인역의 사50.1이 비유를 사용하고 πιπράσκω의 수동태와 함께 ἁμαρτία의 연어를 사용한다는 관찰로부터 즉각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것에 더하여서, Philonenko는 Rocjard Hays가 반복사용의 역사적 타당성이라고 언급한 것을 확립하기를 시도함으로써, 그의 주장을 완전히 구축하였다. 반복사용의 역사적 타당성이란, 이사야 텍스트에 대한 바울의 수정이 ‘바울의 시대의 다른 유대인들이 이사야를 어떻게 읽었는가’의 조명 아래서 가능한 것이라는 것이다.
Philonenko는 주로 사50.1을 반복사용한 두 개의 쿰란의 유사구들에 초점을 맞춘다. 첫째는 Words of the Luminaries 4Q504 2.15이다: ‘보아라, 우리의 부당함 때문에 우리는 팔렸다, 그러나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우리를 불렀다’. Philonenko에 따르면, מכר(팔다)에 도입된 주어의 변화는(MT에서의 두 번째 사람으로부터, 여기에서의 첫 번째 사람으로), 바울이 롬7:14에서 비슷한 수정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완전히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증명한다. Philonenko가 분석한 두 번째 텍스트는 11QPs 19.9-11이다: ‘나는 나의 죄 eOans에 거의 죽을 뻔하였다, 그리고 나의 부당함이 나를 스올에게 팔았다 그러나 야훼는 나를 구원하였다. 당신의 동정심의 충만함과 당신의 옳은 행동의 충만함에 따라’. 여기서 Philonenko는 롬7.14와 병행하는 몇 개의 사50.1에 대한 수정을 언급한다. 여기에는 구입의 죄 많은 대상으로 스스로 규정하는 첫째-사람-단수형 저자와, 구입을 만드는 간접적인 대상의 추가가 포함된다. 이에 더해서, Philopnenko는 주님의 구제의 선언으로 이끄는 저자의 죄에 대한 고백이 롬7.24-25에서의 화자의 절망적인 울부짖음과 예상되는 구조와 닮았다고 주장한다. 쿰란 텍스트들에 대한 사50.1의 영향에 대해 확신하는 것은 어려운 반면, 이사야에 대한 쿰란 공동체의 높은 존경과 함께 עון(죄) and מכר(팔다)의 공유된 사용은, 이 반복사용들이 정확하게 규정되었고, 그러므로 Philonenko의 주장을 지지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몇 해석자들은 바울의 구절을 이사야나 또는 다른 성경에 명확하게 연결시키려는 시도에 대해 의혹을 갖는다. 예를 들어, Ernst Kasemann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4c절의 비유적인 표현을 1 Kgs 21:25 또는 다른 구약성경 구절들에서 기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더 의심스럽다’. 이에 더해서, Robert Jewett는 사50.1에서 ‘죄 그 자체가 노예소유자라고 나타내는 것이 없다’고 항의하며, John Byron은, 이사야에서 어떻게 ‘파는 자는 하나님인데, 반면 로마서는 판매자를 규정하지 않는지’를 주시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해석자들은 일반적으로 롬7.23에서 π1πραμένος를 분사들과 함께 그룹화한 뒤에, 전쟁과 노예에 대한 모든 포괄적인 암시들을 기꺼이 고려하고자 한다. 이 이미지들은 모두 로마 교회에 너무나도 친숙하다.
그러나 이 용어들이 군사적인 함축들을 가지고 있고, 고려되는 텍스트들 사이의 중요한 구문론적 차이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인 반면, 롬7.14의 ‘죄 아래 팔린’이 사50.1의 반복사용이라는 시각을 지지하는 중대한 지금까지 무시된 증거들이 남아 있다. 우리가 볼 것처럼, π1πραμένος ὑπὸ τὴν ἁμαρτίαν는 롬7.14-25에 대한 70인역 사49.24-50.2의 몇 가지 반복사용들 중 단지 하나이다.
3. Establishing the Echo: Isaiah 49.24-50.2 in Romans 7.14-25
신약성경에서 성경적 반복사용들을 감지하는데 사용되는 방법론들은 Philonenko의 독창적인 제안 이후로 상당히 발전해왔다. 어떤 단일한 접근도 성경학자들의 만장일치의 승인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바울과 같은 저자의 사고의 패턴을 재확립하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Richard Hays에 의해서 발전된 기준을 선호한다. 이것들의 한계가 없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적에 있어 Hay의 기준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그가 반복, 양, 논지의 일관성, 역사적 타당성이라 부르는 것들이다. 이 장에서, 우리는 이 네 가지 기준을 순서대로 사용하여, 사49.24-50.2와 롬7 사이의 상호텍스트적 관계를 확립하기를 시도한다.
3.1. Recurrence
Hays에 따르면, 반복은 한 저자에 의한 어느 곳에서든지 같은 구절의 사용을 고려한다. 특히, 조사하는 문헌에서. 그러나 근시안적이 될 수 있는 충동에 저항해야만 한다; Hays에 따라, 우리는 ‘제차 분명하게 인용된 특정한 절만이 아니라, 바울이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성경의 큰 더 큰 단위들’에 관심이 있다. 여기서의 가정은, 만약 바울이 다른 곳에서 자료 텍스트를 인용 또는 암시한다는 것이 확립될 수 있다면, 같은 텍스트가 우리의 목표 구절에서 떠올려 진다면 이것은 타당성을 증가시킨다.
이 용어들을 고려하였을 때, 로마서가 일반적으로서는 이사야에 의해서 특별히는 제2이사야에 의해서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깨달을 때, 롬7.14에서 사50.1의 사용에 대한 Philonenko의 경우는 상당히 믿을 만한 것처럼 보인다. 제2이사야가 수많은 바울서신들에 대한 중대한 영향을 가진다는 것은 널리 인정되었다. 이사야로부터의 15개의 직접적인 인용들에 더해서, 로마서는 예언서에 대한 12개 또는 더 많은 암시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바울은 인용하고 암시한 이사야의 구절들 중에서, 제2이사야보다 로마서에서 바울의 신학을 다루는 프로그램에 더 중심적인 것은 없다. J. Ross Wagner이 발견한 것처럼, ‘바울은 사51-55의 이야기를 로마서의 논지의 아래 놓여있는 특정한 신학적 이야기로 통합시켰다’. 바울의 이사야의 통합은, 믿지 않는 이스라엘이 명확하게 보이는 이 인용들에서 특히 명백하다. 이러한 경우들은, 바울이 국가의 현재의 반란과 국가의 미래의 회복 모두를 강조하기를 시도하면서, 이사야의 넓은 배경들이 외국의 압제 또는 추방의 형태로 하나님의 훈련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을, 우상을 숭배하고 신실하지 못한 것으로 그리는 이사야의 구절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래에서 논의할 것과 같이, 이것은 정확하게 바울이 롬7.14-25에서 사49-50의 반복사용을 통해서, ἐγώ(이스라엘을 나타내는)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바울이 그의 편지 다른 곳에서도 사49-50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은 또한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바울은 다른 곳에서 사49.1(고전15.10; 갈1.15), 사49.3,6(갈1.24), 사49.4(고전15.10; 고후6.1; 갈2.2; 4.11; 빌2.16), 사50.8(8.33-34)를 암시하는 반면, 사49.8(고후6.2)은 한번 인용한다. 전자는 이 장에서 우리의 초점을 가지는 것과 인접한 것으로 나타난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이사야와 제2이사야에 상당희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 믿지 않는 이스라엘이 나타나는 경우들과 다른 곳에서 사49-50에 대한 수많은 암시들이 있는 상황에서, 바울이 '죄 아래 팔린' 을 사50.1로부터 사용하였다는 것은 상당히 타당해 보인다.
3.2. Volume
양은 주로 내용과 타겟 텍스트 사이의 '단어들 또는 구문론적 패턴들의 구체적인 반복의 정도'와 관련되어 있다. 핵심 단어들의 사용을 넘어서, 이 기준은 또한 성경에서의 선도적인 텍스트의 '특수성, 중요성, 또는 대중적인 친숙성'과, 바울의 담화에서 반복사용이 받는 '수사학적 강조'와 관련되어 있다. 70인역의 사49.24-50.2의 많은 용어들과 논지들이 롬7.14-25에서 어떻게 반복사용되고 강조되는지를 깨달을 때, Philonenko의 제안은 다시 한번 상당한 지지를 받는다. 이사야의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49.24] 적군에게서 전리품을 빼앗을 수 있느냐?
폭군에게서 사로잡힌 포로를 빼내올 수 있느냐?
[49.25] 주님게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적군에게서 포로를 빼어 오겠으며,
폭군에게서 전리품도 빼앗아 오겠다.
나는 나와 맞서는 자들과 겨루고, 네 자녀들을 구원하겠다.
[49.26] 너를 억압하는 자들로 서로 쳐죽이게 하고,
새 포도주에 취하듯이, 저희들끼리 피를 나누어 마시고 취하게 하겠다.
그리고 나면, 모든 사람이
나 주가 네 구원자요, 네 속량자요, '야곱의 전능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50.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 어머니를 쫓아내기라고 하였느냐?
내가 너희 어머니에게 써 준 이혼증서가 어디에 있느냐?
내가 너희를 채권자에게 팔아 넘기기라도 하였느냐?
이것 보아라, 너희가 팔려 간 것은 너희의 죄 때문이다.
너희 어머니가 쫓겨난 것은 너희의 죄 때문이다.
[50.2] 내가 왔을 때에 왜 아무도 없었으며,
내가 불렀을 때에 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느냐?
내 손이 짧아서 너희를 속죄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힘이 없어서 너희를 구원하지 못하겠느냐?
내가 꾸짖어서 바다를 말리며, 강을 광야로 바꾼다..
그러면, 물고기들이 물이 없어서 죽을 것이며,
썩은 고기들이 악취를 낼 것이다."
이사야의 특별한 구문론적 패턴들이 로마서에서는 상당히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롬7.14-25에서 70인역의 사49.24-50.2로부터의 언어의 반복의 양이 인상 깊다. 핵심적으로 반복되는 용어들은 πιπράσκω, αἰχμαλωτίζω, ῥύομαι, ἁμαρτία이다. 두 텍스트들은 모두 또한 초기에 발견된 πιπράσκω의 수동태와 ἁμαρτία의 연어(사50.1; 롬7.14)뿐만 아니라, 미래시제에서 ῥύομα(사49.25; 롬7.24), 과거시제에서 ῥύομαι(사49.25; 롬7.24), 완료시제에서 πιπράσκω의 사용을 공유한다. 이에 더해서,
...
5. Conclusion
이 에세이는 롬7.14-25에서의 사49-50의 반복사용들을 알리고, 바울이, 죄의 권능과 율법 아래에 머물러 있는 화자의 윤리적 무능을 설명하는 일관성 있고 지속적인 설명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7.7-13에서의 성경의 암시들과 함께 반복사용들을 사용하였는지를 설명하기를 시도하였다. 우리는 '죄 아래 팔린'(롬7.14) 구절의 성경적 유래에 대한 기존 시각들의 간략한 조사로 시작하였다. 몇 텍스트들이 바울이 사용한 구절들에 대한 가능성 있는 영향으로서 제기된 반면, 가장 타당한 주장은 π1πραμένος ὑπὸτὴν ἁμαρτίαν가 사50.1에 대한 '복함적인 암시'라고 주장한 Philonenko의 의견이라는 것을 보였다. 그렇기는 하지만, 70인역의 사49.24-50.2의 추가적인 반복사용들이 또한 롬7.14-25에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의 논지였다. 그러므로, 성경적 반복사용을 감지하는 Richard Hay의 기준들 중 몇 개를 이용하여, 우리는 다음을 보임으로써 이러한 반복사용들의 타당성을 증명하기를 시도하였다: (a) 바울은 로마서와 다른 곳에서 제2이사야를 빈번하게 인용하고 암시한다(반복); (b) 70인역의 사49.24-50.2으로부터의 수많은 핵심 용어들은 롬7.14-25를 bookend한다(양); (c) 사49.24-50.2의 몇 가지 주제들은 또한 바울의 담화에서 나타난다(주제의 일치성); (d) 바울이 사50.1의 사로잡힘의 이유로부터 롬7.14,23에서 사로잡는 자로까지 ἁμαρτία를 재구성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같은 해석이 또한 바울과 당대의 유대인들의 다른 곳에서도 명백하다(역사적 타당성).
그리고 우리는 이 반복사용들이 롬7의 정체성과 스토리라인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가지는 함의에 대해 조사하였다. 다른 가정들에 기초해서 ἐγώ이 믿지 않는 바울을 이스라엘을 대표자로 나타낸다고 데체로 가정하면서, 우리는 롬7.7-13에서 바울이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는 것을 암시함으로써 자신의 토라와의 처음의 만남을 어떻게 그리는지를 보였다. 비슷하게, 롬7.14-25에서, 바울은 죄의 권능 아래서 생존해 있는 자로서 율법을 지키기 위한 지속적인 투쟁을 그리기 위해, 70인역의 사49.24-50.2의 단어들과 논지들을 사용한다. 집합적으로 이 이사야의 반복사용은 이스라엘의 바빌론 유수를 떠오르게 하고, 그러므로 롬7.7-13에서 일반적으로 규정되는 역사적-성경적 암시들에 대한 서사학적인 지속성을 제공한다. 요약하면, 이스라엘의 초기(시내 산)와 후기(바빌론) 역사가 기만, 죽음, 추방에 의해서 특징지어지는 것과 곡 마착나지로, 율법 아래에서의 바울의 자신의 경험은 죄의 불능하게 하는 권능으로 인해서, 규탄에 이르는 매우 비슷한 재앙적인 결과를 생산한다(8.1).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서, 바울과 모든 신자를 죄와 죽음의 사로잡힘으로부터 구원하고, 그들을 율법의 요구로부터 해방시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들은 참으로 의의 노예인 반면(6.16-23), 그들은 성령을 통한 윤리적 변화를 추구함으로써, 바울의 기만, 죽음, 추방의 죄의 단계에 대한 걸음들을 따라가지 말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