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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 살려줘... 살려줘 ....!! 니가... 니가 이럴순 없는거야!! 살려줘!!... "
.......................................당신이 그녀에게 그랬듯이, 그녀도 당신에게.
저에게 이야기 해주실래요?...
당신이 말하는 암흑 같은
그 때의 이야기를...
............................. ...................................
내가 예닐곱 정도 였을때로 기억해요.
당시 부모님의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무럭 무럭 커 자라야 할 나이였던 나에게 그런 모습들은 동화에서나 들을 수 있는 그야말로 잡을수 없는 무지개처럼 멀게만 느껴질 정도로 집안 사정은 열악했죠... 아버지의 잦은 사업 실패, 눈 깜작 할 사이에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가는 카드 빛,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십번씩도 오가는 사채업자들의 전화. 내 스스로가 먼저 인식하기도 전에 집안은 이미 뭉개져 있을 대로 뭉개져 있었고 집안에 행복함이나 웃음이라는 듣기만 해도 새삼스러운 단어들은 이미 메말려 버렸다고 해도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 었어요. 뒤 돌아보면 바로 어제 같은, 엄마와 아빠는 물론 나까지 우리 가족들 모두는 거의 송장이다시피 살고 있었던 그때의 어느날.....우리 가족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그나마 살고 있었던 13평 주공 아파트에서 햇빛 마저 출입이 제대로 되지 않는 반지하 방으로 거처를 옮겼었는데 그 방을 나가면 바로 보이는 골목을 쭉 지나다 보면 하수구 처럼 보이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이 한 개 있었어요. 나는 유치원을 갔다 오면서 항상 지나치는 그 곳을 볼때마다 거기 안에는 뭐가 있을까 하고 매번 조심스런 의문을 품어 보았지만 그것을 아는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아빠가 잔뜩 술에 취해 돌아오던 바로 그 날 새벽, 아빠는 갑자기 반쯤 미친 사람처럼 문을 열은 엄마를 보자 마자 연신 주먹으로 내리쳤어요. 아빠의 갑작스런 폭행에 엄마는 비명은 물론이요 신음도 못 하고 맞을 때 마다 '컥' '으억' 이라는 소리만 연신 내뱉었어요. 그렇게 몇분이 지났을까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던 나는 이불속에서 슬그머니 내밀은 눈을 반쯤 뜬 상태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울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뚜렷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빠가 난데 없이 엄마의 머리 위에 무차별하게 내리 꽂은 그 물건을 분명 삽이라고 유치원에선가 배운 기억이 난 것 같았어요. 그렇게 커다란 삽에 정신 없이 머리를 강타 당하던 엄마는 금새 의식을 잃었고 나는 당시 어려서 죽음이란 단어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는지 그냥 엄마가 피곤해서 주무신 것이라고 생각하며 긴 안도의 한숨을 쉬었었죠. 엄마는 얼마나 피곤했었는지 자면서 맥박도 뛰지 않았어요.... 곧 엄마의 피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아빠는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가쁜 숨소리로 호흡 하면서 누워있는 엄마의 주검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울부짖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한참 동안 울다가 또 다시 눈빛이 반쯤 실성 한듯 획 변하더니 '이미 돌이킬수 없어...'라는 알수 없는 말을 여러번 중얼거리다가 나를 힐끗 돌아보았어요. 나는 아빠의 칼처럼 예리하고 매서운 눈빛이 무서워 나도 모르게 이불을 뒤집어 썼었어요. 만약 그때 이불을 뒤집어 쓰지 않고 그대로... 그대로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면 아마 아빠는 나까지 죽였을지도 모르죠.... 나는 터진 수도관처럼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으 면서 마음속으로 유치원에서 가르쳐준 노래를 2절까지 부르다가 다시 이불을 조심스럽게 걷어 보았어요. 그러자 내 앞에 누워 있던 이미 엄마의 주검은 온데 간데 없었고 단지 아빠는 묵직하고흥건하고 또 축축한 그 큰 무언가를 포데기에 쑤셔넣고 들쳐 메어 힘겹게 방을 나가고 있었죠........ 두려웠어요. 눈물이 날것만 같았었어요. 세상에서 한번도 실제로 악마를 본적은 없었지만 그런 아빠의 모습은 어떠한 부족함 없이 악마에 견줄만 했을 정도로 잔인했어요.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터질 듯 쿵쾅 거렸지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걸어 나가는 아빠의 뒤를 졸졸 쫓아 갔어요. 헉...헉...헉.... 듣기만 해도 숨이 가쁜 호흡을 여전히 반복 하던 아빠는 골목을 쭉 지나면 바로 보이는 지하실 앞에 서서 녹슬대로 녹슨 반쯤 열린 쇠 문을 발로 힘껏 열어 제꼈어요...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지하실이 열리는 순간이 었죠. 아빠의 다리 사이로 보이는 지하실은 난생 처음 맡아본 향기를 뿜어댔는데 그 냄새의 정도가 고약함을 넘어서 구역질이 나올정도로 역겨웠어요. 또 내가 모르는 어떤 무언가로 꽉곽 차있을줄 알았던 지하실 안에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아무것도 없이 공허하게 텅텅 비어있었죠. 하지만 내가 차마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아빠는 사정 없이 들쳐메고 있던 포데기를 어두컴컴 하여 끝이 보이질 않는 지하실 나락 밑으로...그 냄새나는 지옥 밑으로 엄마를 내리 꽂았어요... 아빠는 잠시 그 모습을 멍하게 지켜보더니 곧 털썩 하고 포데기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뒤로 그 모습을 천천히 돌았어요. 아빠는 여전히 반쯤 실성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 보았어요, 그리곤 잠시 흐느끼는 것처럼 입술을 꽉 깨물고 어깨를 들썩이더니 이윽고 아직 피가 채 닦이지도 않은, 그리고 무척 심하게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더니 아무말 없이 집으로 걸었죠. 나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엄마가 그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지하실에서 빨리 돌아오길 바랄 뿐이었어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때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 일이 있은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우리 집엔 새 엄마가 들어 왔죠. 새로 온 엄마는 나에게 처음에 잘해주는 듯 싶었어요. 항상 학교에 다녀온 나에게 맛있는 토스트와 우유를 주었고 내가 잠자리에 들기전엔 동화 책까지 읽어주었죠..... 즐거웠어요. 즐거웠죠...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즐거움은 나에게 오래 머물지 못 했어요. 나는 새엄마의 그 행동들이 아빠가 계실때만 그랬었다는 것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직감적으로 금방 알아챌수 있었어요.
나는 신데렐라의 나오는 계모가 실존한다면 그녀가 아니였을까 생각 했을정도로 새엄마의 구박은 날이 갈수록 심했졌어요. 내가 그녀를 엄마로 생각하지 않듯이 그녀도 나를 딸로 생각하지 않았죠. 아빠가 있을때 내 머릴 쓰다듬어 주던 손이 아빠가 없을땐 줄곧 내 뺨으로 사정 없이 향했어요... 그러고선 아빠가 올땐 다시 가식으로 물든 그 더러운 손이 나의 피투성이 얼굴에 연고를 발라 줄때마다 시나브로 그녀에 대한 두려움과 복종은 차차 분노와 증오로 변해갔고 나도 천진난만하던 초등학교 1학년 에서 어느세 중학생으로 성장했죠. 그러나 집안 환경이 전보다 더 열악해지고 아빠가 밖에서 일하는 시간이 전보다 훨씬 길어지자 그 개년은 나에게 전과는 비교할수 없는 더 잔혹한 짓을 해댔어요. 내 목에다가 강아지 마냥 줄을 메달고 집안 이리저리로 끌고 다니기도 하고 강제로 옷을 발가벗겨 방안에 몇시간동안 가둬 놓고 또 어쩔때는 밥을 개처럼 먹이기도 했어요. 이런 사실들을 눈물 펑펑 흘리며 아빠와 선생님들에게 말해봐도 그년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오히려 내가 쏜 화살들은 다시 내쪽으로 돌아오는 그야말로 긁어부스럼이었죠. 그건... 정말 그야말로 살아도 사는게 아니었어요. 그러나 그럴수록 내 마음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그년에 대한 증오감은 더욱 더 커져만 갔고 그년을 없앨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수 있을것만 같았었죠. 그러던 어느날...!... 여느때처럼 방에 감금되있던 나는 문득 방에 걸려있는 거울에 비친 나의 상처투성인 얼굴을 보았어요. 잦은 학교 결석과 감금 탓에 새 하얗게 창백해진 얼굴 여기 저기에 새빨간 장미 꽃잎을 얹어놓은 듯 상처 틈으로 붉게 올라온 선혈이 언뜻 보기에 이리 저리 모냥 없이 조각난 마네킹 같은 착각을 일으 켰죠. 나는 나의 작은 주먹을 거울에 향해 몇 번이고 사정없이 내팽개쳤어요. 너무 울화통이 터져서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머릿속에 있던 뇌가 터져 죽을 것만 같았어요. 그리고 거울의 깨어진 금 따라 타 내려가는 뻘건 선지피를 보고 곱씹었죠....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고... 그 개년을 당장이라도 흔적도 없이 박살내리라고.... 그리고 그 바램은 몇 시간이 안되어 이루어졌어요.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그년이 나를 풀어주는 단 몇분.... 바로 아빠가 집에 오시기까지 남은 30분, 나에게 주어진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안에 단번에 그녀를 조그마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애버려야 했었어요. 방 안에 감금 되었을 때 그년의 행방을 얼버무릴 변명은 이미 대충 생각해 두고 있었죠. 갑자기 긴장 했는지 심장이 뛰었어요. 두근.... 두근... 두근... 그리고 마침내 아빠가 오기 30분 전이 되었는지 그년은 자물쇠로 굳게 잠군 방문을 열어 주었죠. 엉망 진창이 되어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그 개년은 희열에 찬 눈빛으로 만족 한다는 듯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띄었어요. 그리고는 발가 벗은 모습을 하고 방에서 나오는 나를 보고 미친 듯이 깔깔깔 웃어대기 시작했죠. 그래, 죽기전에 한번 실컷 웃어봐라... 그 지긋지긋한 악마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도 이제 오늘로 마지막이 될테니까... 가슴속에서 그년을 향해 몇 번이나 소리치면서 나는 별 반응 없이 얌전하게 그 년 옆을 지나갔어요. 그러자 전보다 빠르게 심장이 뛰었죠. 쿵쾅! 쿵쾅! 그때 마침 내 눈에 보이는건 먼 발치서 벌초용으로 쓰이는 녹슬대로 녹슨 낫이 었어요. 아주 오래 된 것처럼 보였지만 낫의 날은 방금전에라도 갈아 놓은 듯 그 모습을 소름 끼치게 번뜩였죠. 쿵쾅! 쿵쾅! 쿵쾅! 그리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살인자들이 흔히 진술할 때 정신이 들어보니 자신들은 이미 사람을 죽인 뒤 였고 정작 살인을 행했을 때 당시에는 기억이 안난 다는 말들은 결코 허구가 아니였음을 실감 했어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성을 잃고 쿵쾅 쿵쾅 몸 서리를 처 대던 심장이 잠잠해 질 무렵, 내 눈 앞에는 온 몸에서 시뻘건 선지피를 쏟아 흘리며 뒷 통수에는 낫이 그대로 찍어져 있는 채로 지옥으로 돌아간 한 마리의 악마가 거꾸로 눕혀져 있었고, 내 손이며 팔은 새빨간색이라는 단어 만으로는 의미가 부족 할 정도로 시뻘건 피가 구석 구석 묻어 있었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미치도록 웃지 않을 수 가 없었죠! 또 실로 개운 하지 아니 할 수가 없었죠! 어렸을때부터 행복이라는 감정이 무뎌진 터라 과연 어떠한 감동이라도 느껴 볼수나 있을까 생각 했는데, 결과는 기대치 이상이 었어요. 나는 아빠가 어렸을때 엄마에게 그랬듯이 그 악마를 이리저리 접고 뭉텅 뭉텅 조각 내어 큼직한 옷 가방 속에 기어이 다 집어 넣고 몸 구석 구석에 묻은 핏물을 닦아 낸 뒤 밖으로 나와 엄마가 있는 지하실로 빠르게 향했어요. 인적이 드문 길이 었지만 나는 누가 볼새라 조심 스럽게 녹슨 지하실 문을 열고 그 안으로 깊숙히 들어갔어요. 지옥으로 통하는 터널의 아가리를 뚫고 지나온 순간 나의 코를 덤비는 익숙한 냄새...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진동하는 적빛깔의 냄새가 내가 들고온 이 가방 속에 있는 그 것을 반기는 듯 했죠. 그리고 바로 몇 년전에 아빠가 그랬던 것 처럼!!.... 나도 똑같이 그 악마 같은 년을 어둠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려 꽃으려는 순간....!!...
........ 끝내 나는 그것을 보고야 말았어요. 오랫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리고 나도 기다리고 있었던 그것... 익숙한, 하지만 낯선 지하실 어둠 속 저 끝에서 어렴 풋이 흔들 거리는 희미한 모습...혈관이 터져 나온 채 그대로 썩어 문드러진 팔뚝에서 구더기와 곰팡이가 피어 오르고 피가 모조리 말라 버린 듯 시퍼런 팔뚝으로 서서히 기어 나오고 있는 이름 모를 정체를...!!! 순간 지하실은 공기 마저 얼어 버리고 나는 손에서 가방을 툭 하고 놓아 버리고 말았죠. 묵직한 무게의 가방이 땅에 떨궈지면서 그 울림이 순식간에 지하실온 곳에 울졌지만 또 삽시간만에 사그라 들었어요. 그러나 나의 동공의 떨림은 계속이었어요. 또한 나의 동공은 정확히 그것을 향해 응시하고 있었죠. 목이 반쯤 꺾여 돌아간 채 피에 쩔은 긴 생 머리를 나풀거리며 세상에 온 기분나쁜 색깔들은 거기다가 모아 놓은 듯 갈라진 흉부 사이로 질퍽한 액채를 흘러내리며 다가 오다가 마침내 시뻘건 뚫린 두 눈을 들어 올리는 순간!! 고양이가 흠칫하며 털을 세울때 그러 할까... 순식간에 그 물체의 머릿카락이 길어지면서 지하실 온 곳을 가득 메워 쌌어요....................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나의 터져나오는 외마디 비명과 동시에 어느세 내가 쥐고 있던 채 던져지는 가방..... 그것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가방이 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나는 지하실 문을 뛰쳐 나왔고 들어 갈 때 까지만 해도 초침이 흘러가는 소리 간격 만큼 침착했던 나의 맥박은 금새 반전이 되었어요..... 죽음을 눈 앞에 둔 것보다 더욱 간절하고 두려운 것이 바로 내 앞에 닥쳐져 있었죠!! 그리고 그 뒤로는 그야말로 눈을 뜬 순간 부터 악몽의 시작이었어요. 아빠는 미쳤다 싶을 정도로 집착적으로 새엄마는 어디갔냐며, 그리고 새엄마가 없어질때 너는 어딨었냐며 어두 컴컴한 반지하방에서 하루에 몇시간씩 넘게 잠도 재우지 않고 나에게 한 없이 물었지만 그러는 아빠의 태도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럴때마다 아빠의 뒤에서 손을 뻗으며 기어오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었어요. 학교는 물론이고 외출도 금한 나는 그렇게 원했던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을 하나도 남김 없이 커튼으로 막아버리고 방 한구석에 움츠린채로 내 자신을 점점 퇴폐시키기 시작 했어요.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슬어 올라오는 벽에 몸을 기댄 채로 탁한 공기를 마시는 것도 좋았고 유통기간이 지나 점점 상해가는 빵을 까마귀 마냥 파먹는것도 좋았죠. 그리고 그렇게 악몽의 폭풍에 서서히 내 몸이 찢어져갈 무렵, 끔찍한 두 번째 저주가 시작 되었어요. 그 날은, 유난히.. 유난히 달이 밝았죠. 방안에서 모처럼 굳게 닫았던 창문을 반쯤만 열고선 달을 향해 손을 뻗어 그 하얗게 빛나는... 보기만 해도 몽환스러운 그 동그란 것을 움켜 쥐었죠...그리고 다시...펴고...움켜지고..펴고...움켜지고...그리고 바로 그때 동시에 터져나오는 비명소리....‘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펴고.... 부르르 떨고 있는 손으로 창문을 다시 닫아버리고 우울한 쓴 미소로 천천히 비명이 질러 터진 곳을 바라보자 하늘에 뜬 하얀 달을 빼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잃었어요. 천천히 방 밖으로 나가자 마자 제 발을 축축하게 적시는, 이 좁은 반지하 방의 밤을 집어 삼킨 고통에 부르짖은 비명의 댓가들이 저의 갈길을 가르쳐주는 듯 바로 여기서 반지하 방 밖으로 까지 어지럽게 주르륵 미끄러져 있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 핏물을 따라 걸었죠... 그리고 마침내, 핏물이 끊긴 곳은 공교롭게도 바로 그 지하실이 었어요.. 그리고 그 안에... 그 안에는.... 찢어진 아가리를 아빠의 가슴에 파묻은 채 야금 야금 씹어먹는 엄마가... 달빛이 환하게 빛나던 그 날... 마지막에 남겨진 건 결국... 저 혼자 였어요... 어떻게 하죠... 무서워요....이제 엄마가 저 죽이러 올겁니다... 이제 이 반지하방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저 밖에 없습니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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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이이익 툭- 철컥 ’
카세트 안에서 테이프 흘러가는 소리가 갑자기 툭 끊기더니 이내 재생을 멈췄다. 테이프에서
나오던 소리가 멈춘 음침한 공간은 잠시 건조한 침묵에 잠겼다. 손 하나 겨우 내밀 수 있을정도의
작은 창문 밖에서는 비가 주룩 주룩 내리고 햇빛 하나 들지 않은 취조실에서 조명 하나에 서로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이 차가 있어 보이는 두 형사는 고요함을 넘어 어색한 기운 마저 감돈다.
“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 녹음 된, 즉 우리가 방금 들은 이 내용이 사건의 용의자 정경미의 진술이란
말이지.... ”
“ 그렇습니다. 형사님. 몇 년 전에 있었던 살인 사건, 그리고 바로 몇 달 전에 있었던 두 건의
살인 사건... 이 세 살인 사건의 방식과 범행 장소가 똑같아 범인은 동일 인물로 추정. 마을 주민들의
증언과 피의자에 집에 있던 오래된 낫에 용의자 정경미의 지문이 검출 됬고 또 집 내부에서 다량의
신경 안정제가 발견 되었습니다. “
“ 그래... 근데 왜 그랬을까.. 정경미, 걔가 왜 자기 엄마와 아빠를 죽였을까? ”
“ 아, 그건...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어렸을 때부터 용의자 정경미는 유년 시절 때 어머니에게
심한 구타와 폭행을 당한 것으로 보여졌습니다. 용의자의 아버지는 그런 정경미가 점점 정신적으로
난폭해지자 다량의 안정제를 주기적으로 먹이고 그것이 결국 환각증세를 일으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또 아버지는 그런 사실을 숨겨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
“ 그렇군... 따지고 보면 정경미의 잘못만이 아니였어... 근데 세 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면서?... 살해된 나머지 피해자 한명은 누군가? ”
“ 용의자 정경미가 어머니를 살해하고 이를 숨기면서 지켜오던 용의자의 아버지가 부른 정신과
의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환각 증세를 심하게 보이던 정경미는 결국 의사 마저 살해하고
얼마 안되서 자신의 아버지까지... 그리고 세 번의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시신은 집 근처의
지하실에 버려놓은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
“ ...... 잔혹 하군,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과연 그녀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단순히 그
저 환각을 일으켰던 안정제 였을까? ....”
갑자기 취조실에 다시 묘한 침묵이 자리 잡았다. 밖에 내리는 폭우들이 무색해 질 정도로 취조실
안은 고요하고 적막 했다. 취조실 낮은 천장에 메달린 오래된 전구의 필라멘트가 끊어 질 듯
그 빛을 모습을 숨겼다 드러냈다 하고 있었고 마침내 나이들어보이는 형사 한명이 자리에서 일어
서더니 담배 하나를 물고는 침묵을 깨고 다시 입을 열었다.
“ 비참했을꺼야.... 원망스러웠겠지. 다른 또래들과는 너무도 다른 자신의 삶에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마음 한쪽에는 깊은 상처가 나고... 그 상처틈으로 흘러나오는 것은 분노도, 증오도 아닌 바로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어, 적어도 부모라는 사람이라면 그 상황에서 진정제 몇알이라도
더 먹이는 것이 아닌 사랑으로 감싸야 했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어야 했어... ”
“ ............... 불.... 붙여 드릴까요?... ”
“ ..아니...됐네.... 그냥 이렇게 있고 싶어. ”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길쭉한 담배를 물더니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 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는 듯 두 눈을 지긋이 감다가 무언가 갑자기 생각 난 듯 눈을 번뜩 뜨고 창 밖을 멍하게 내려다 본다.
“ 근데 걔 정경미.... 어쨌어? ”
“ 네, 진술이 끝나는 데로 바로 집으로 보냈습니다. 지금쯤이면 아마 집에 도착 했을... ”
“ 이런 천하의 빙신같은!!... 진술하면서 도대체 뭘 들은거야 자네는!! 그런 정신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집을 제대로 찾아갈거라고 생각하나!!? ”
“ ......!! ”
“ 나는 정경미의 집을 수색하지. 자넨 정경미가 시체를 숨겼던 지하실을 찾아가봐. 갈 때 감식반들에게 연락하고 거기서 시체가 제대로 있나 그리고 정경미가 왔나 안왔나 살펴보고 오게!! ”
.........................................
밖에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금방이라도 집어 삼킬듯한 폭우가 휘몰아 치고 있지만 작은 녹슨
문짝만을 경계로 있는 지하실안은 공허하고 조용하고 심지어 평화로운 느낌 마저 준다. 아늑하고
익숙하고 피할수 없는 공간. 경미는 그런 느낌들을 거부할 수 없었다. 경미는 문득 주위를 바라 본다.
깜깜한 지하실 공간이 담아낸 어둠의 응어리, 병들어 있는 것들의 향기. 지울수 없는 기억...
잠시 현기증이 나는 듯 휘청 대는 경미. 그런 경미를 아까부터 노려보는 또 하나의 시선. 경미는
이마의 손을 짚으며 비틀대다가 곧 그 시선과 눈을 곧 바로 맞춘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경미의
얼굴은 왠일 인지 미소하고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현기증이 비로소 멈춘다.
“ 보러갈게 ”
‘보러갈게’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는 아찔하는 경미, 곧 중심을 잡는가 싶더니 그대로 지하실 계단을
구른다. 엄마가 그랬듯... 또 아빠가 그랬듯... 여전히 그대로 존재하건만 왠지 다시는 되돌아갈수 없을
것만 같은 묘한 계단의 모습이 구르는 경미의 시선에 일렁인다. 몇 번을 나뒹구른 채 지하실 바닥에
쳐박히는 경미의 이마에는 새빨간 피가 수도관이 터지듯 흐르고 경미는 그렇게 고통과 영원한 안식의
경계에서 혼절해 갔다. 그때 무언가 필름이 흘러가는 듯 그 모습들이 아른 거리는데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엄마는 웃는 얼굴로 아빠의 넥타이를 메어 주고 있고 아빠는 출근을 준비 중이다.
둘은 경미를 발견 했는지 경미 쪽을 바라 보고선 싱긋 웃는다. 그에 보답 한다는 듯 경미도 엷은 미소를
짓는다. 그러더니 엄마와 아빠는 경미에게 불쑥 손을 내민다. 경미는 머뭇 거리며 바라보다가
그 쪽으로 손을 뻗는다. 손이 닿을 듯 말 듯 하다가 닿았다. 순간 필름이 다 한 듯 경미 앞에
아른 거리던 모습들이 점차 사라진다.
그 지하실 안엔 귀신도, 엄마도 아무것도 없어... 그저 우리 가족의 추억이 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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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돼!! ”
녹슨 지하실 문을 벅 차고 들어오는 젊은 형사. 지하실 계단 하나하나에 찍힌 핏물들이 방금 전의
비극을 이야기 해주는 듯 했다. 유난히 깊은 지하실 밑 바닥에 무언가 보이는 듯 어떤 형체가
아른거리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수가 없었다. 그는 소매 춤에서 라이터를 꺼내고선
붉은 빛이 감도는 시멘트 계단을 하나 하나 내려갔다. 마침내 지하실 바닥에 다다른 순간 또 다시
벌컥 열어지는 문, 그와 취조실에 있었던 또 다른 형사이다. 순간 툭 꺼져버린 형사의 라이터....
숨을 헐떡이며 지하실에 도착한 나이 들어보이는 형사에 비해 너무 나도 조용 해진 젊은 형사의
숨소리!...
“ 정경미... 정경미는?...그리고 거기... 거기에 뭐가 있는가?... ”
“ 아아아아....아... ”
“ ........왜 그래?..... ”
“ ......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형사님.... 여기엔... 여기엔 아무 것도...”
“ .... 그....그게 무슨소리야!!.... ”
“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
“ 무슨 소리냐니까!!.. 왜 아무것도 없어...!! ”
젊은 형사를 향해 소리쳐 보지만 돌아 오는 것은 시멘트 벽을 맞고 돌아온 메아리 뿐인
적막함이 감도는 지하실. 그 곳은 항상 그랬다. 사람이 있든 없든, 항상 정적과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나이든 형사는 갑자기 할말을 잃은 듯, 아니면 무엇을 말하려는데 목이 메이는 듯 침을
꿀꺽 삼킨다. 그의 시선이 젊은 형사에게서 지하실 반대편 정면으로 옮겨 진다. 그의 눈빛은
마음 속으로 끝임없이 탄식하는 그의 심정이 어려있는 듯 애처롭고 안타깝다. 심지어 그 눈빛엔
분노마저 느껴진다. 섬뜩하기까지한 침묵이 자리잡은 지하실, 무언가 강렬하게 반짝이기라도
하는 듯 지하실 바닥을 똑 바로 쳐다 볼 수 없다.
-끝
첫댓글 왠지 섬득하네요.. 근데 스크롤이 없어서 읽는데 너무 힘들엇다는.. 좀 빽빽한 감이 있네요.
네, 역시 그렇죠? ... 'ㅅ' 읽느라 수고하셨어요~ ㅜ
아......섬뜩해요...등골오싹.......<
섬뜩, 오싹... 거기에서 그치지마시고 소설 내용을 좀더 음미해주세요 ㅋㅋ 건필!
음 눈아프긴햇지만 잘봣긴 했는데에....... 무슨내용인지 잘 몰르겟어요 ㅜㅜ
흠.. 뭐 결국에는 그 지하실에 '귀신'은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는 존재라는 결말입니다 'ㅅ' 약간의 반전을 넣은게 이해하는데 장애라면 장애겠네요=ㅁ=; 반성합니다.
와 재미있어요..많은 분들이 보면 좋을텐데ㅎㅎ스크롤이없어서 너무빽빽하지만.그래도 좋네요
이렇게 읽어주신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리플까지.. 더블감사합니다 핫..
재밌어요 섬뜩하네요=ㅁ= 내용이 참신^^;;
헛! 재밌고 섬뜩하다는건... 역시 잘 읽었다는거겠죠!!![-_] 참신하지 않은(?) 소설을 읽어주신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렇게 붙어있는글 보는데에 익숙해서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흔한 사랑이야기도 아니고, 아침에 읽었는데도 무섭네요. 오랫만에 제대로된 글 읽었습니다^^건필하세요~
사실, 사랑이야기를 안쓰는게 아닌 못쓴다는 =ㅁ=;;... dod●님도 건필!~'ㅅ'/
오옹? ;;;좀 이해가 안가고 말았어용..ㅎㅎ 마지막에서 그럼 아무도 없는거면 정경미는 어디로??ㅇ ㅅㅇ;;
그건 독자들의 개인의 상상에 해석하시기 나름인 결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눈이 심하게 따끔거리네요.;ㅁ;하지만 읽을만해었어요.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