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노벨라에 최적화된 작가였다. 시와 소설, 희곡, 에세이, 평전과 전기 등 전방위 작품 활동을 했다. 스물세 살 때인 1904년 노벨라 모음집 '에리카 에발트의 사랑'을 출간한 것을 시작으로 1920년 '강요'와 '불안'을 간행했다. 그리고 1942년 2월 22일 나치를 피해 끊임없이 달아나던 길 끝에 브라질에서 두 번째 부인 샤를로테 앨트먼과 약물 과다 복용으로 극단을 택하고 말았다. 그 일년 전에 자신의 마지막 노벨라 '체스'를 탈고했다.
'체스'는 촌뜨기 출신 세계 챔피언 첸토비치와 아마추어 B박사가 뉴욕을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는 여객선 안에서 겨루는 대결을 소재로 삼고 있다. 기본적으로 갇힌 공간에서의 두뇌 대결을 긴박하게 다루며 오스트리아 황실의 재산을 관리하던 B박사가 나치 게슈타포에게 신문 당하는 상황과 체스의 64칸에 갇힌 두뇌 대결의 핍진함을 절묘하게 대비시킨다. 호텔 객실에 감금돼 검은말과 흰말을 모두 두는 모순적인 대결을 통해 정신분열에 이르는 과정도 실감나게 그려진다.
도서출판 다빈치의 노벨라 33의 23번째 박영구 옮김 본으로 읽었다. 박진감 넘친다. 90쪽 밖에 안돼 한 시간남짓 집중하면 일독할 수 있다. 두 번, 세 번 읽어도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무의 노예인 저 같은 사람처럼 지상에서 쓸데없이 시간만 넘쳐나는 자에게는 그 정도의 욕망과 인내심이 무슨 문제가 되었겠어요?
이것은 마치 능숙한 음악가가 총보를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성부와 화음을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후로 십사 일이 지난 뒤에 저는 책 속에 있는 모든 판을 힘들이지 않고 외워서 눈 감고도 둘 수 있게 됐습니다.
체스를 즐긴 음악가로는 프로코피예프가 첫손 꼽힌다. 우리 젊은 음악인으로는 2022년 롱 티보 콩쿠르에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주해 공동 우승한 피아니스트 이혁(25)과 동생 이효(16) 형제를 꼽을 수 있다. 이혁은 세 살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의 꿈을 키웠는데 형제는 체스 실력도 수준급이다.
이혁은 2022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3위까지 기록했다. 이혁은 “프로코피예프도 체스를 즐긴 것처럼 체스가 음악에 많은 도움이 된다”며 “한국에는 아직 없는 그랜드마스터(국제체스연맹에서 부여하는 최고수 체스 선수의 칭호)가 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다만 “음악은 체스와 같은 스포츠가 아니기에 그랜드마스터 같은 목표는 없다”며 “음악가로서 저의 꿈은 단 하나, 죽는 날까지 무궁무진한 피아노 레퍼토리를 공부하며 평생 음악을 배워나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Prokofiev Piano Concerto No.2 Op.16 (Joy) Hyuk Lee 이혁 Хёк Ли (youtube.com)
첫댓글 굿!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