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는 유별나게 흐린 날과 비가 많은 봄날이 많았다. 게다가 저 온현상까지 이어져 과일과 채소 작황에도 심각한 영향이 있다고들 난리다. 그런 속에서 맞은 오랜만의 봄날같이 찾아온 맑은 아침이다.
아침햇살이 나를 이렇게 기분좋게 해 주다니 ―아마도 계속된 궂 은 날들이 오늘의 맑은 햇살을 한층 업그레이드해 준거 같아 지나간 궂은 날을 너무 평가 절하해서도 안되겠다란 생각을 하면서 ―참 오랜만에 맛보는 날씨감이다.
학교 운동장에는 3-4학년 봄 운동회를 축하하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교문앞 주변들은 벌써 추억의 잡상인들 상품 진열로 화려했다.
교무실 자리로 가 오늘 행사를 점검하고 출장 채비를 서둘렀다. 도연구원에서 있을 강의안 원고 내용을 살피며 좋은 강의를 위한 소재를 생각하다보니 조금 부담감이 오기도 했다. 미리 준비하면 좀 좋으련만, 알면서도 항시 닥쳐야 생각이 뜨는 오랜 버릇 때문에 오늘도 한시간 정도 생각정리를 하려고 했는데, 모처럼 좋은날 봄 운동회의 들뜬 주변 상황이 내 생각을 정리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따라서 한두 시간정도 일찍 연구원에 도착하기 위해 가방을 챙겨 출장길에 올랐다. 좋은 날씨만큼이나 봄기운이 가득한 주변들은 더욱 화려했다.
순천톨게이트를 빠져나와 20여분 달려 주암톨에서 요금을 계산하려고 진입하면서 지갑을 챙기는데 양복주머니가 가뿐했다. 언제나 있어야할 호주머니 속에 지갑이 없는 것이다. 현금은 물론 신분증, 카드 등 모든게 지갑에 있는데 말이다. 아침에 챙긴다고 했지만 그 지갑을 어디에 빠뜨렸는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기까지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에 전화했지만 마님도 밖에 나와 있으니, 지갑을 찾는 일은 포기해야 했다. 그야말로 비상사태인 것이다.
어쩔 수 없어 차를 곁에 주차해두고 톨게이트 사무실로 가서 통사정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여직원 한 분이 근무 중이었고 또 다른 유리문 안쪽에는 상급자인 듯한 남자 한 분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 여직원의 인상이 나의 행동 결정에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인상은 순하고 편한 느낌을 주었다. 용기를 내어 신분증 없이 내 신분을 얘기하고 나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나로서는 꽤나 힘들고 무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여직원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나를 위로해주며 자기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느냐고 되묻는 것이다. 그리하여 빈털터리인 내가 톨게이트비와 출장지에 가면 점심값 등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조언까지 해줘, 내가 삼만원을 빌려달라고 하자 그 돈이면 되겠느냐고 묻고는 계좌번호를 적은 쪽지와 함께 선뜻 내어주는 것이다. 그리고는 공무원 출장비 정산에 필요하니 톨비 영수증 잘 챙겨가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천사가 하늘에 있는게 아니라 바로 내 앞에 있는 게 아닌가?…
살면서 이런 돌발적 상황이나 어려움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진대 그때 함께한 사람들이 서로 돕고 배려해주는 마음이라면 우리의 삶이, 나아가 우리의 사회가 밝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한 것이다.
참 괜찮은 나의 오늘인 것이다.
그 이후, 나는 계획된 시간에 맞게 연구원에 잘 도착했고 구내식당에서의 점심도 맛있었음은 물론 강의도 다른 때보다 대화식으로 즐겁게 진행이 잘 되었다. 나른한 봄날 점심 후 강의시간은 식곤증과 겹쳐 졸음을 이기지 못한 선생님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날 단 한사람도 그런 분이 없었던 것도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 주었다.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 싱그럽고 여유가 넘쳤다.
첫댓글 석우씨가 처음 글을 올린걸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좋은 글을 올렸구만 . 한편의 꽁트 소잿감이네요 ㅎㅎㅎ
살면서 충분히 그런날이 있을터이고 그래서 비상금은 자동차안 어디구석에라도 조금 넣어놓고 지갑아닌 옷주머니에도 조금 넣어놓고 서울에서 지하철안에서 몇번 지갑을 도난당했을때의 난감함을 몇 번 겪은 경험에서 일러주는 말일세
그나 휴게소 여직원 고맙기도 하시지 그래 세상은 그렇게 오월햇살처럼 따스한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어 우리가 행복한거라네 석우씨 나의 개별 블로그 다음넷에서 블로그 클릭후 검색창에 leefall0820 만 치면 가실이라는 블로그가 뜰거야
그 여직원에게 사무실을 나서며 내가한 변명(?)...내가 작년까지는 그러지 않았는데.. 회갑이 지나니까 까빡까빡이 잦더구만..했더니만 자기 시아버님도 꼭 그러시더라나...ㅋㅋ
석우씨 모처럼의 좋은 글 올려주어 좋습니다. 인품과 외양 모습이 좋아서 그러신 것 같은데 부럽습니다.
석우 친구의 하루 삶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좋은 글 잘 보았네. 사람이 진솔하면 서로가 통하제. 이제 건망증이 더해 가는 그런 세월에 와 있나 보네. 나도 엊그제 어버이날에 아파트 현관에 다 나와서 보니까 버스표를 안 가지고 나왔드구만 그래서 올라가서 버스표를 가지고 지하 주차장에 가니까 이젠 자동차 키를 ... 다시 올라 가보니 현관 문에 키를 두고 그래저래 바쁠수록 건망증은 심술을 부리는가, 아직도 현직에 있는 친구가 부러우이. 항상 건강하고 보람있는 직장 생활이시기를 바라네.
막바로 직전의 행동부터 까먹는 게 의학적으로 '치매'라고 한가벼...내참 뉘라서 막을건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