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에 외톨이가 된 감나무
시골에 가면 주인이 없는 빈집이 많다. 젊은 사람은 보기 어렵고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마을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어 흉물스러운 모습들이 여기저기 띄면서 전원의 풍경에 흠집이 나고 있다. 잡초에 쓰레기가 쌓이고 거미줄로 뒤엉켜 주거환경으로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손댈 수도 없어 마을은 마을대로 골머리 앓는다.
빈집은 사용하지 않으므로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추고 본래대로 고스란히 간직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아이들이 쿵쿵 뛰는 소리에 농가로서 다소 어수선하고 오가는 사람들로 소란하고 사람 냄새가 풍겨야 집도 생동감이 감돈다. 아무도 드나들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면 오히려 더 빨리 낡아 허름해진다. 그래서 집은 비워두는 것보다 사람이 살아야 한다.
인가만 그런 것이 아니다. 길가 숲이나 산속에서 새들의 보금자리였다가 빈집으로 남은 모습을 보게 된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도 비바람에 시달려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곳에 지금도 새가 살고 있으면 저 정도는 아닐 것이다. 집은 비워두지 않고 누군가 살면서 털고 쓸고 닦고 본래의 용도대로 사용하여야 외관을 유지함은 물론 수명도 길어질 수 있다.
시골은 한 번 비우면 도시와 달라 새로운 주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집은 기다렸다는 듯 허물어지고 맥없이 일그러진다. 외진 곳에서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모습으로 변해간다. 어딘가 썰렁하면서 음기가 흐른다. 사람의 집에 사람이 드나들고 시끌벅적해야 사람의 체온이 감돌면서 사는 맛이 난다. 집에는 사람 고유의 향기가 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모든 것이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궁극적으로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이 함께 뭉크러져 새로운 모습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정겨우며 좋다거나 지겹고 나쁘다고 하면서 빼고 더하고 다듬고 색칠하면서 마음속에 이상향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다소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어도 그럴듯하게 마음에 그려보고 담아볼 수 있다.
나름대로 행복감에 젖어보기도 한다. 이것은 이래서 안 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 된다고 까다로움에 자꾸 트집을 잡으며 부정적인 시각보다는 이것은 이래서 좋고 저것은 저래서 좋다고 하는 긍정적인 사고가 아무래도 낫다. 현실은 달라지는 것 없어도 마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쁜척해야 그래도 살맛 난다. 마음이라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당당해져야 한다.
시골에 주인이 이사 가고 빈집으로 버려져 쓸쓸하다. 울안에 감나무만 덩그러니 남았다. 홀로 빈집을 지키는 모양새다. 그러다 보니 바람마저 주인이 없음을 육감으로 느꼈는지 들락날락하며 얕잡아보고 냉랭해진 것 같다. 주인은 수시로 보살피면서 관심을 많이 가져주었다. 그런데 감나무는 빈집에 멀뚱멀뚱 홀로 남아 이러지도 저라지도 못하고 무관심이다.
감나무는 기가 팍 죽었다. 올해는 눈에 띌 만큼 감이 적게 달렸다. 주인과 함께 살 때는 가지가 찢어져 떠받혔다. 감나무는 주인이 있을 때는 미더움에 신바람 나서 보란 듯이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그런데 외톨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어 좌절감에 시무룩해져 주인이 그리운가 보다. 그만큼 주인의 손길을 따스하게 여기면서 두런두런 이야기가 정겨운 것이다.
요즈음은 새벽녘에 깍깍거리며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까치도 보이지 않는다. 티브이, 신문, 핸드폰, 인터넷 등의 발달로 특별히 전달할 소식이 없어 마을을 떠나고 좀처럼 찾지 않는다. 반겨 줄 사람이 없는 탓이기도 하다. 까치나 감나무나 사람의 체온을 느낄 수 없으므로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시골에서는 함께 어울려서 지낼 때가 그래도 정겨움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되었다. 시골의 풍경을 다시 바라보면서 지난날을 더듬더듬 되찾아 보려니 안타깝다. 마음은 날개가 있어 마음대로 휘젓고 다닌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며 오지랖 넓게 혼자 말씨름에 참견해보기도 한다. 감나무도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아야 능력 이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좀은 엉뚱한 세계로 잠시 빠져들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