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소리를 들으며
나의 소리를 다듬던 순간들
서울시향 팬들에게 첼리스트 주연선은 친근한 이름이다. 그는 2008년 당시 3년 넘게 공석이던 서울시향 첼로 수석으로 발탁돼 2017년 중앙대 교수로 임용될 때까지 재직했다. 지금도 객원 수석으로 서울시향 연주회에 모습을 보이는 그는 지난 9월 1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행복한 음악회, 함께! II’에서 시각 장애인 첼리스트 김민주(한국예술종합학교 4년)와 호흡을 맞춰 비발디 ‘두 대의 첼로를 위한 협주곡’ 등을 연주했다. 가을빛이 짙어지는 늦은 오후 예술의전당 ‘모차르트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글 유윤종 동아일보 문화전문기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심규태
첼로 수석으로만 서울시향과 1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 이전 서울시향과 특별한 기억이 있는지요.
초등학생 때 콩쿠르에 입상해 그 혜택으로 박은성 선생님이 지휘하시는 서울시향과 협연했습니다. 하이든 협주곡 1번 1악장이었죠. 그때 사진을 보면 지금도 재직 중인 단원들이 있습니다.
서울시향과의 첫 협연이었군요. 수석으로 입단한 뒤에도 세 번 정도 협연자로 무대에 서셨죠. ‘정명훈이 3년간 찾은 끝에 선발한 첼리스트’로 알려졌는데, 선발 당시 기억을 떠올린다면.
그때 미국 캔자스시티 교향악단에 부수석으로 있었어요. 당시 언니(주연주 제1바이올린)가 단원으로 있던 서울시향이 뉴욕 카네기홀에서 콘서트를 열고 오디션도 한다기에, 오디션보다 언니 만나는 게 신나서 갔죠.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 없이 해서 선발된 것 같아요. 양궁 선수들도 ‘대충 쏘자’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잖아요.
언니뿐 아니라 동생(주연경 제1바이올린 부수석)도 서울시향 단원으로 맹활약 중이다. 세 자매는 어떤 유년기를 보냈을까.
“엄마가 피아노를 치셨고, 음악 학원과 유치원을 운영하셨죠. 자매 셋 다 바이올린, 플루트, 피아노의 기본기를 배웠고, 크면서 악기를 정해야 했어요. 저는 피아노를 하고 싶었는데, 콩쿠르를 나갈 때마다 떨어졌어요. 첼로는 처음 나간 콩쿠르에서 2등을 했고요. 엄마가 딱 “얘는 이거.” 하고 정해주셨어요.(웃음) 커보니까 잘 정해진 것 같아요. 유학을 가서 대학생이 된 뒤에 비로소 첼로를 잘,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열정이 불붙은 것 같아요.”
서울시향 재직 시절, 특히 기억에 남는 공연들이 있을까요.
많죠. 2015년 바그너 ‘발퀴레’ 공연은 새벽 한 시에 끝났잖아요? 힘들었던 만큼 더 특별한 기억이었습니다. 말러 연주들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는 서울시향을 막 마무리하려던 즈음 제 스승이신 린 하렐 선생님이 협연자로 오셨어요. 앙코르 순서에서 선생님이 저와 함께 비발디 ‘두 대의 첼로를 위한 소나타’ 2악장을 연주하셨죠. 연주 뒤에 “이 친구가 내 제자입니다.”라며 제 손을 들어 올리셨는데…. 선생님께서는 지난해 돌아가셨어요. 첼리스트로서 저는 지안 왕의 내한 무대들도 좋았어요. 지안 왕은 여러 차례 서울시향과 협연했는데, 특히 하이든 협주곡 1번 C장조에 그렇게 깊은 맛이 있는지 그의 연주를 듣고 처음 느꼈어요. 우아한 연주였죠.
9월 ‘행복한 음악회, 함께! II’ 참여 제안을 받고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듣자마자 취지에 공감했지만, 한편으로 시각장애인 음악가는커녕 시각장애인을 만나본 경험도 없어서 약간 걱정도 들었죠. 김민주 양과 처음 리허설을 하는 순간 걱정이 다 사라졌어요. 암기력이 대단했고, 리허설에서 나온 얘기들도 잘 인지하고 암기했어요. 서로 좋은 연주를 펼쳤죠. 저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역시 어떤 선입견이 있었구나’라는 걸 알게 됐고, 그만큼 저로서도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이었어요. 관객들도 매우 만족하는 반응을 남기셨다고 들었습니다.
솔리스트로, 실내악 연주자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열심히 활동하셨는데, 각각의 활동마다 나름의 매력과 애로가 모두 있을 듯합니다.
솔로는 잘하면 자신이 부각되지만 스트레스는 크죠. 실내악은 한마디로 재미있어요. 음악으로 실시간 대화하죠. 눈빛을 던지면 바로 반응이 오고, 리허설을 잘 준비해도 무대에서 순간적으로 달라지는 묘미가 있어요. 한편, 오케스트라는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죠. 다른 악기를 듣는 귀가 열렸어요. 지금도 객원 수석으로 서울시향 연주에 참여할 때마다 에너지를 많이 얻습니다. 훌륭한 지휘자들에게서 배우는 점도 많고요.
교육자가 된다는 건 또 다른 일이겠죠?
좋은 점은 학생들에게 정이 가는 거죠. 얘기를 들어주고 걱정도 같이 해주는 게 좋아요. 저를 믿고 공부하는 친구들이니까. 안 좋을 때는… 가르치는 학생들마다 하나도 연습이 안 되어 있는 날이 있어요. 그런 날은 ‘왜 이러니, 너희들’ 싶죠. 알고 보면 자기들 대화방에도 난리가 나 있어요.
코로나19로 일상이 많이 변화했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는 많이 아쉬웠죠. 음악이란 혼자 가꾸기 힘들고 나눴을 때 생명이 생기는데, 그 본질이 되는 활동에 제한이 가해지니까. 그래도 올해는 콘서트가 더 많이 열려 다행입니다. 어떤 학교는 오케스트라 수업을 안 하는데, 중앙대는 다섯 명, 열 명씩이라도 하고 있어요. 물론 개인 실기 수업도 다 대면으로 해 왔죠.
현대차 정몽구장학재단에서 지도 교수로 활동 중이신데.
음악, 미술 등 예술 전반에 걸쳐 음악 영재에 지원을 해주는 재단입니다. 저는 음악 분야를 맡고 있죠. 매년 오디션을 거쳐 중학생이 선발되면 3년 학비를 지원하고, 고등학교 들어갈 때 또 심사를 거쳐 졸업까지, 대학생이 되면 또 대학 전액 학비를 지원하죠. 해외 콩쿠르에 나갈 경우도 지원을 해줍니다. 지원이 큰 만큼 수혜 학생들의 수준도 높아요. 저는 여기서 실내악 지도도 합니다. 학생들이 앙상블 경험을 쌓게 해주죠. 올 9월에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연주회를 열었어요. 학생들을 가르치고 함께 연주도 하죠.
4월에 새 음반 <로망티크>를 내셨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위로가 되는 음반이라는 평이 많았는데요.
5년 전 바흐 솔로 앨범이 나온 뒤 언젠가는 소품집 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지난해 밖에 나가기도 꺼려지고 하니까 저 나부터 음악으로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좋아하는 음악들을 찾아 듣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걸 나누자’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제 생각에도 좋은 곡들을 잘 선정한 것 같아요.(웃음)
올해 남은 계획과 그 밖의 ‘큰 그림’은….
11월에는 여자경 지휘 강남 심포니와 브람스 이중 협주곡을 협연합니다. 제 교수실 이웃인 김덕우 교수(전 서울시향 제2바이올린 수석)와 함께 연주하죠. 12월에는 대구시향과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를,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에서 드보르자크 협주곡을 협연합니다. 올해 큰 일정은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마무리되겠네요. 큰 그림? ‘좋은 연주를 하는 연주가’죠. 큰 그림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