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안중근이 태어나 30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아간 당시 대한제국의 시대상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안중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극적인 장면만 따로 떼어서 인물을 바라보면 자칫 한 점의 흠결도 없는 신인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안중근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아니 구한말 대한제국의 국민으로 나라를 잃고 비분강개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초라한 한 사람에 불과하다. 다만 조부때부터 이어져내려오던 가풍이며 황해도 일대에서 제법 위세를 떨친 가문의 명성의 후광으로 타고난 기질을 펼칠 수 있었던 가정적 배경은 충분했다.
안중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영향력을 끼쳤던 아버지 안태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씨 가문의 실질적인 가장으로써 집안 대소사 뿐만 아니라 지역 일대의 호족으로 왕권을 흔드는 동비(동학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낮춰 부르는 말)에 대항하여 지역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 왔으며 민초들을 괴롭히는 지방관들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지역 어른으로 살았기에 안중근은 맏아들로써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정치적 위기에서 모면하기 위한 방법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이게 된 안태훈은 당시 치외법권으로 여러 가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천주교 신부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추락한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방편으로 천주교를 활용하기도 했다. 안태훈의 신앙적 열심이 안중근과 그 가족들에게 전파되면서 안중근이 살았던 청계동 일대는 천주교 신심이 두터운 장소로 바뀌게 된다.
안중근을 이해하기 위한 두번째 측면은 바로 위에서도 말했듯이 천주교 신앙이다. 아버지 안태훈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어떨결에 신앙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나중에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으로 교리를 전파하고 열심으로 임했던 이가 안중근이다. 그의 호는 다묵, 토마스다. 천주교 신부의 영향으로 교육 사업에도 뛰어들어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열심도 천주교 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삼흥학교, 돈의학교에 재정적 기부를 힘에 겹도록 도왔다.
이문열 작가의 장편소설 『불멸』1권에서는 구한말 대한제국의 흔들리는 국가 상황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청일전쟁, 을미사변, 러일전쟁, 아관파천, 굴욕적인 한일협약 등 근대사를 흔들었던 아픈 역사들이 안중근이 살았던 그 시대에 일어났다. 동학운동이 청일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안중근의 생각은 왜 안씨 가문이 사비를 털어 동비들과 전면전을 선포했는지 이해가 간다. 한성에서 멀직히 떨어진 황해도 지역에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지게 된 것과 그 일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은 일임을 알고 고민했던 모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일례로 민영익이라는 한때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은 상해로 망명을 가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고 서상익이라는 거상은 자신이 먹고 사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 나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투로 말한다. 나라를 걱정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양분되어 살아가는 시대가 바로 안중근이 살았던 시대였다.
누군들 편안하게 부를 누리며 살고 싶지 않을까. 안중근을 영웅이라 부름은 을사오적이라 부르는 명민하고 지식인이었던 그들이 초개처럼 나라를 버린 이들과 완전히 다른 편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그도 한 인간으로 사람 사귀기를 좋아했고 술과 춤추기를 좋아했던 20대 혈기 왕성한 젊은이였다. 그러나 안중근은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다.
이문열 작가를 통해 바라본 안중근의 모습이 다른 여타 다른 책과 다른 점이 있다. 안중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해 주기 위한 작가의 치밀한 배경 설명들이 1권에서 무려 400여쪽이나 할애하고 있다. 무장 독립운동에 뛰어들기 전 안중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지난 옛일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그가 나라를 구한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일을 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문열 작가가 쓴 기억해 둘 만한 문장을 초록해 둔다.
견수(함께 걸을 때 반걸음쯤 뒤처져 걸어 예를 표한다는 뜻으로 곡례에 따르면 다섯 살 위의 연상에게 표하는 예)_121쪽
중근은 어렴풋하게나마 그런 아버지의 내면에서 피 흘리고 있는 의식들을 느낄 수 있었다. 무력감으로 상처받은 자부심이 그랬고, 낡은 구조와 급변하는 시대에 끼어 있는 가문과 자신을 지켜 내야 하는 신흥 호족으로서의 번민이 그랬다. _151쪽
먼저 내 영혼을 구원하고 아울러 이 몸도 해방하고자 천주 야소(예수)의 가르침에 투탁하려 합니다._203쪽
효도를 넘어 거의 신앙과도 같은 존숭으로 아버지 안태훈을 따르는 중근은 누구보다 열심히 천주교의 교리를 익혔다. _206쪽
이제 천주학은 우리 가문이 함께 걸을 길이 되었다. _221쪽
스물 살 때부터 중근은 언제든 빌렘 신부의 부름만 있으면 복사 안 다묵으로 그를 따라 황해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천주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_282쪽
천주교의 세력에 기대 행패를 부리거나 사사로운 이득을 꾀하는교인들을 특히 자세 교인이라고 불렀다. _286쪽
천주교 또는 천구교인들과 기존의 전통 사회와의 충돌을 일컫는 교안은 원래 서양 신부나 선교사들이 새로운 전교지로 갈 때 지역민들이 전교를 방해 할 목적으로 일으킨 폭력 사태와 이 전교된 곳이라도 새로 교당을 지을 때 교당을 훼손하거나 파괴할 목적으로 일으키는 소동에서 비롯되었다. _325쪽
중근이 내디딘 사회 활동의 첫걸음은 아버지 안태훈의 호족 활동을 계승하여 동학군과 싸운 일이었다. 그 뒤 자신의 호족 활동을 비호해 줄 세력으로 천주교를 선택한 안태훈은 일가를 이끌고 천주교의 세례를 받았으나, 그의 호족 활동은 곧 호교 활동을 거쳐 호민 활동으로 발전해 갔고, 중근도 그 길을 따라 걸어왔다. _3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