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동에 사는 회사원 김재민 씨(45ㆍ가명)는 지난달 말
현대중공업 주식 2000주,
현대제철 주식 1만주를 매수했다. 금융감독위원회가 10월 1일부터 주식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보유 예금 5억원을 몽땅 털어 주식에 투자한 것이다.
그는 이들 종목이 평소 공매도 잔액이 많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공매도가 금지되면 외국 헤지펀드 등이 결국 주식을 시장에서 다시 사서 갚는 숏커버링(Short covering)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1~2일 이틀 새
현대중공업과
현대제철 주가가 각각 5.94%와 8.84%나 급락하자 김씨는 크게 당황했다. 사연을 알아보니 공매도 금지 시행 첫날인 1일에만
현대중공업에 공매도 물량이 262억원어치나 쏟아지며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한 것이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공매도 금지에 따른 예외규정과 부작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숏커버링만 믿고 단기 투자에 나선 투자자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 주식 공매도 여전히 많아
= 공매도 전면 금지 첫날인 1일 코스피 시장에서 이뤄진 공매도는 87만2000주, 금액으론 608억원어치에 달한다. 9월 하루 평균 공매도 수량이 593만주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전면 금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공매도가 왜 여전히 이렇게 많은 것일까. 금융위원회가 공매도 일부 예외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지난달 30일 공매도 규제안을 발표하면서 "주가연계워런트(ELW), 상장지수펀드(ETF), 기타 거래소가 인정하는 예외적 유동성 공급을 위한 공매도는 인정한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 1일 이뤄진 공매도는 주가연계증권(E
LS) 운용자인 외국계 증권사 헤지거래 물량이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됐다.
증권선물거래소 관계자는 "608억원 가운데 80%가 넘는 물량이 외국계 증권사 창구를 통해 나왔다"며 "ELW와 ETF 헤지거래라면 국내 증권사 물량이 많을 텐데 그렇지 않다면 외국계가 실질적 운용을 맡고 있는 E
LS 등 장외파생상품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외국계 증권사들은 E
LS를 운용하기 위해 개별주식 옵션을 매도하는 포지션을 갖는다. 옵션을 매도하면 당장 현금이 들어오지만 주가 움직임에 따라 손실 가능성도 생기기 때문에 동시에 현물을 매수 또는 매도해서 위험을 헤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매도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감독당국은 분석한다.
◆ 공매도 때문에 주가 하락?
= 문제는 공매도 금지조치 시행 후에도 외국인 등 공매도가 여전히 주가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소량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던 예외 허용 물량이 의외로 대거 쏟아지자 증권사는 물론 감독당국 관계자들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실제 지난 1일 공매도가 가장 많았던
현대산업개발 주가는 2일 6.08% 폭락했다. 포스코도 4.81%,
STX조선도 3.9% 하락했다.
왜 공매도가 나온 종목 주가가 유독 많이 떨어졌을까. 먼저 E
LS 운용 구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E
LS 운용사들은 기초자산 주가가 움직이면 옵션 보유 포지션에서 손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현물을 매수 또는 매도해서 위험을 헤지한다. 그런데 현물이 부족할 때 주식을 차입해서 공매도할 필요도 생긴다. 따라서 E
LS 운용사(주로 외국계)들은 보유하고 있던 현물 매도와 공매도를 동시에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공매도는 업틱룰(현재가 아래로 매도호가를 낼 수 없도록 한 규정) 적용을 받지만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업틱룰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공매도 집중 종목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거래소는 관계자는 "E
LS 운용을 위한 공매도까지 규제하게 되면 운용자인 증권사들이 손실을 뒤집어 쓰게 된다"며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예외규정으로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그널링 효과도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매도 물량이 늘어났기 때문에 '뭔가 불안하다'고 느낀 기존 주식 보유자들이 물량을 던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외규정과 그에 따른 부작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숏커버링 가능성을 믿고 투자했던 일반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 측은 "규제에 허점이 있는지 실태 점검을 한 뒤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