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6일 예수 성심 대축일, 사제 성화의 날
-반영억 신부
복음; 마태11,25-30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예수님의 마음을 간직하라」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드러내신 예수 성심을 특별히 기억하는 날입니다. 또한 ‘사제 성화의 날’로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는 가운데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고 그 삶을 충직하게 사는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길 기도합니다.
오늘 청주교구사제들은 년 피정을 마치게 됩니다. 피정 강사신부님께서 '그리스도의 투영체로서의 사제의 삶'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행복한 사제, 기도하는 사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사제, 관대한 사제, 비세속적인 사제, 친교의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특별히 받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고 오히려 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신자들의 섬김을 받으며 살아왔고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동료에게는 물론 신자들과의 친교를 이루는 봉사자가 되기를 다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우리 각자의 마음으로 간직하고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인간적인 마음이 지배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심지어는 기도 안에서도 내 욕심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니 언제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뀔지 장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은 소망은 있지만, 그에 따르는 노력과 정성은 여전히 소홀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예수님의 대표적인 마음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11,29-30).
온유한 마음은 부드러움입니다. 어떠한 상황, 처지 안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마음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세상의 모든 것이 다 변해도 좋습니다. 주 하느님 당신 안에 뿌리내리면!”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느님 안에 뿌리내리면 모두를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며 호들갑을 떨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은 한없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시면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눈높이를 맞춰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겸손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노자는 “알면서도 모르는 게 으뜸이요, 모르면서 아는 게 병통”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당시에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배척을 당하였습니다. 소위 잘나고 똑똑한 내로라하는 사람에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안다’ 고 생각하는 것이 최고였기 때문에 주님의 가르침이 들어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철부지들에게는 받아들여졌습니다. 그야말로 변두리 사람들, 별 볼 일 없는 못난이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겸손과 단순함이 있었고 그것이 사실 세상의 희망입니다.
잘난 사람은 남을 등쳐먹으려 애를 쓰고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 서로를 헐뜯고 깎아내리지만 때 묻지 않은 철부지들은 새로운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마음을 열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단순한 사람을 미덥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아는 것이 결코 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물을 꿰뚫는 통찰력을 가리키며 친숙해 지는 것, 그리고 감정을 이해하며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결국 알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을 포함합니다. 또한 남녀가 결혼을 통해 가장 깊이 만나는 것을 ‘안다’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안다고 하는 것은 당신의 사랑으로 충만히 채워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다는 것은 곧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고 하셨고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마태11,27). 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과 하느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알려주셨습니다.
이제 그 아버지에 관해서 아들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고 그분이 알려준 아버지를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그분을 알리기 위해서 그분을 알아야 하는데 그 첫 자세가 “어린이와 같이”(마르10,15). 단순한 마음으로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잔머리를 굴리지 않습니다. 온전히 부모에게 의존합니다. 계산하지 않고 부모를 따릅니다. 그것이 겸손이기도 합니다. 단순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뜻을 더욱 잘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삶으로 말할 수 있는 은혜를 간구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출처: 신을 벗어라 :청주교구 반영억 raphael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