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바다로 간 노인, 82회,
통일벼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 시켰다.
1967,8.9년도 까지는 공무원 월급봉투는 얄팍했다.
4,5천원이던 공무원 월급이 통일벼이후론<1972,4년9급>3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우리나라 최초 필터담배인 아리랑이 1갑에 150원이었고,
2홉들이 병소주의 출고가가 65원이던게 105원으로 뛰었다.
짜장면값은 110원에서 정부와 2개월간 협상 끝에 150원으로 올랐다.
그러나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엄청난 인풀레이션을 동반했다는 것이다.
인풀레가 높아짐에 따라 1972년 7월에는 5,000원권이,
1973년 6월에는 10,000원권이 발행됐다.
새마을운동으로 포장된 박정희의 농촌근대화는 국고지원이 거의 없었기에 농민들의 삶은
곧 팍팍해진 것이다.
그런데,
통일벼가 대박을 친것이상으로 만원권이 발행된것 이상으로 나라에 대 변란이 발생했다.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퍼스트 레이디라 불리는 진정한 국모 육영수 여사가 피살됐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대한민국 국모가 서거한거다.
육영수여사는 정말 영부인다운 품위있고 우아한 모습으로 국민들 가숨에 백합꽃 향기 그윽한
아름다움의 상징이였다.
국민들은 경악했다.
한동안, 꽤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슬품에 젖었다.
여기에 가장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찬란한 인생도 그 마지막의 사망이 있다.
초라한 꽃도 그 끝이 있고, 화려한 꽃도 그 끝이 있으며, 성공한 인생도 그 끝이 있고,
실패한 인생도 그 끝이 있다.
모든 것은 본질적인 한계가 있으며 끝 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그 끝을 보여주시기 위한 서막인것이다.
그런데 유신헌법 추종자들은 그 마지막이 언제 진짜 마지막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權不十年권불십년이란 "권력은 10년을을 지닐 수 없다" 는 뜻이다.
박정권의 유신정권은 권력의 맛에 취해서어떻게든 그 세력을 더 확장하고 연장데만 열중하고,
어리석게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부가가치세가 1977년 7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이는 1976년 12월 22일의 부가세법 공포에 따른 것이었다.
부가세 도입은 근거과세 원칙에 입각해 복잡한 간접세 체계를 간소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또 수출상품에 대한 간접세의 완전 면세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간접세의 부담을 덜어
투자 촉진에도 기여한다는 거였다.
일반 서민들, 개인 사업자들에게는 아닌방중에 홍두께도 유분수지 때안닌 세금 폭탄을
터트린거였다.
장흥 읍네에는 천직인양 농방<가구공장>가네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뿐이랴, 삼천리 자전거포, 철물점, 해태제과 도매상점 등등 그 수많은 점포상들은 하루아침에
세금 폭탄을 맞은 것이다.
인정과세다.
새로이 생긴 부과가치세가 뭔지도? 모른는 상황에서 세금을 어떤방식으로 산출해서 신고해야 하는지,
엄벙대는 사이에서 세금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부과세 이전때의 세금방식 물품을 살때 도매상에서<영업감찰증>을 제시하고 셈을 치르고
영수증만 받는 형식이었다.
즉, 신의성실의 원칙 및 소급과세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본 것이며
과세표준액의 근거가 되는 장부를 비치·기장하지 않아 거래사실을 구체적으로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5년여간 거래했던 소비물량을 산출해서 인정과세한 것이라서,
하루아침에 모든 자영업자 상인들이 세금 폭탄을 맞고, 인정과세 범법자가 된것이다.
세무 공무원들의 기세는 당당했다.
세금 폭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은 아우성이였고 세무 공무원들은 점포에 진열해둔 물품들에
붉은 압류 딱지를 붙히고 곧 세무트럭에 싣는다.
ㅡ"날 강도 도적놈들 앗! 차라리 날 죽이고 가져가 랏!!"ㅡ
나는 그들보다 더 무지한 세금 폭탄에 시달렸다.
목재며 골함석은 수입품이였다.
함석이나 각목은 수입품목이였기에 도매상에서 영업감찰증을 제시하고 세금을 덧붙여서 셈을 치루면,
도매상과 세무서는 연락망이 잘 갖춰져있어서 어김없이 세무서에 신고되었다.
문제는 새로나온 부가세법은 소매인에게도 파는많큼 세금을 더 물린다는 거였고,
지난 5년간, 소비했던 물량까지도 몽땅 몰아처서 인정과세를 때린거였다.
읍네에 십여곳이 넘던 농방<가구점>들은 깡그리 문을닫었고 삼천리 자전거포등 장사가 괞찮게 된다는
점포들도 너 나 할것없이 세금폭탄에 시달렸다.
ㅡ"등기 요!"ㅡ
노랑봉투 등기우편이다.
ㅡ"00일 까지 세무서 출두요망!"ㅡ
00일 몇시까지 강진 세무서에 출두하라는 명령서였다.
강진 장흥 보성 등등을 통괄하는 강진세무서의 위세는 당당했다.
강진세무서는 경찰서와 나란히 읍네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오르막을
오르다가 처다보는 것 만으로도 위압감이 든다.
출두모임장소<간세과>에는 장흥읍네에서 서로 안면이 있는 분이 여럿이다.
ㅡ"당신들! 세금 안낼거 욧!"ㅡ
ㅡ"??? 돈이 있어야지 여?"ㅡ
ㅡ"자, 봐 욧! 저기 쌓아둔 것, 당신들 거야 욧!"ㅡ
국민학교 운동장만큼 넓은 세무서 뒤뜰에는 압류해서 쌓아둔 물품들이 빨간딱지를 붙인체
산같이 쌓여있다.
ㅡ"워메! 우째야 쓰꼬, 저 어기... 우리농짝 좀, 보소!
비맞고 깨끼고 해서! 몬 쓰게 되브렸네 여,
그래! 워쩔 것이 엿! 새 농짝으로 물어줄 것이 여?"ㅡ
ㅡ"그러니까! 진즉 찾아가면 될것 아닌가뵈 여,
자, 자...우리 타협을 합시다.
몬쓰게 된 물품은 놔두고 요, 쓸만한 물품은 반값만 내고 찾아 가시시 옷!"ㅡ
빨간딱지 붙이고 압류할때의 그 고자세한 기세가 한풀 꺽인건가?
반값만 지불하고 찾아 가랜다.
그람은...세금을 절반으로 깍아주겠다는 것이다.
사실!
부가세법이란 거이?
어느날 갑자기 반갑지 않는 손님으로 찾아와선 안방차지하고서는 콩내라 팥내라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것이다.
세무서 직원도 아는게 확실하지 않는 눈치였다.
게다가 세금 안낸다고 바로 붉은 딱지를 붙이고!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을즈음에...
불한당 같은 놈들을 앞세우고 와서 홀라당 싣고 가버렸다.
읍네에...한두집인가?
늬 집! 내 집! 할것없이 거의가 다ㅡ아 싹쓸이를 당한거였다.
나역시 일손을 놓아야 했다.
제품들을 압류당한 것, 보담도...세금이 무서워서 일 할 엄두를 내지 못한거다.
세금벼락을 맞은 이웃의 자영업자들끼리는 자연스례 독특한 동지의식이 발동하야 늬집 내집으로
초청하여 술좌석을 자주 벌렸다.
시골 인심이 그렇듯!
술이 얼큰히 취하게 되면은 꼼춰뒀던 약술을 내놓는다.
ㅡ"자ㅡ아, 귀하디 귀한! 도라지 약술잉께, 한잔씩 쭈욱 드시시오, 잉!"ㅡ
ㅡ"워따 메, 좋응 거! 그라믄 우리집에도 약술 담어농 거 있능 디, 얼릉가서 갖고 올텡 께!"ㅡ
주거니 받거니 술이 몇 순배 돌면서 자연스럽게 세금, 어쩌구 하면서 박정권에 불만을 터트린다.
ㅡ"쉿! 스끄럽소 잉! 말소리가 점포 밖에까지 쨍쨍하게 들링당께 여!"ㅡ
일<소변>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던 김씨가 눈을 훌기면서 나무랜다.
그런데! 김씨뒤를 쫒아온 사람이 있다.
그것도, 세사람씩이나?
ㅡ"실례 하겠소!"ㅡ
ㅡ"뭐야! 당신들은 누구 여?"ㅡ
ㅡ"여기 술! 어디서 난거 요?"ㅡ
ㅡ"어디라니 여?"ㅡ
ㅡ"약술! 여기 쥔양반 거 여!?"ㅡ
ㅡ"그런디 여?"ㅡ
다행히도 계엄령 프락치들이 아니고 세무서 조사관이 들이닥친거다.
그런데? 세무서 직원이라는 자들의 행포는 가관이다.
ㅡ"당신들은 주류법 위반으로 고발 하겠소!"ㅡ
ㅡ"뭐! 뭐시라고 야? 워메! 소주에다가 약술 담가먹는 것도 죄가 된다고 야?
이런 날강도 같은 놈들 보게나, 느그들은 빨갱이 보담 더 나쁜놈들이랑 께!"ㅡ
나라가 망조가 드는가 싶다.
진짜로 세무서 놈들은 빨갱이놈들 보다도 더 무섭게 설처대니 공포감 그자체다.
엊그제 술좌석에서 김씨가 계엄군이 어쩌구 군사 정권이 저쩌구 푸념을 했는데...집에가서 자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갔다고 하드니만,
그말이 사실인가 싶다.
ㅡ"여기다가 이름성명 쓰시 옷!"ㅡ
ㅡ"세상에나...이런법도 있당가!
이보시오, 당신들! 이런짖거리가 어딧 당가?
우리나라가 아주 망조가 들어도 더럽게 들었네 여!"ㅡ
ㅡ"당신! 말이 많은것 보니께, 공산당이 엿?
한마디만 더 하면, 잡아갈 텡께!"ㅡ
ㅡ"!?????............"ㅡ
감사합니다. 곧, 글, 우두봉/ 오명원, 1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