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이야기, 일 년 기다려, 꽃 피운 일주일
◀하얀 목련 ◼양희은
◀목련꽃 필 때면 ◼최성수
◀목련화 ◼엄정행
◀목련꽃 피고 지고 ◼김승직
◀목련 ◼송창식
◉4월을 눈앞에 두고 하얀 목련이 꽃봉오리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사는 곳 양평은 좀 더디지만 서울은 벌써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것을 이틀 전 지인이 보낸 사진으로 만났습니다.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한 송이씩 피기 시작해 주말 지나 4월이면 이름 그대로 나무에 핀
연꽃처럼 올망졸망 목련꽃이 탐스럽게 매달릴 것으로 보입니다.
◉목련꽃이 피면서 번져 나오는 향기는 멀리 갑니다.
자스민 성분을 지닌 이 향기에 과학자들은 헤디오네(Hedione)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쾌락과 감각적 즐거움의 화신인 그리스 신화 여신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 향기는 ‘사랑의 묘약’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물론 목련꽃이 뿜어내는 이 향기는 사람이 맡아서 기분 좋아지라고 내놓는 것은 아닙니다.
‘딱정벌레여 어서 오라!’ 바로 딱정벌레를 부르는 향기입니다.
꽃이 피어 있는 일주일 전후의 짧은 기간 동안 목련꽃은 씨앗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도와줄 딱정벌레가 와야 무사히 씨앗을 만드는 작업을 끝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벌 나비는 소용없습니다.
◉목련꽃은 9,500만 년 전 공룡이 살았던 백악기 시대 등장한 최초의 꽃으로 간주 됩니다.
녹색 천지였던 당시에 이전에 없던 흰색의 새로운 잎이 등장합니다.
암술과 수술을 감싸고 향기를 품으며 등장한 하얀 잎이 목련꽃이었습니다.
목련꽃이 최초로 꽃의 등장을 이끈 셈입니다.
◉그때는 벌 나비가 없었습니다. 벌과 나비는 백악기 후반에 등장합니다.
대신 딱정벌레가 단백질이 풍부한 꽃가루를 쫓아다녔습니다.
그래서 목련꽃은 꽃가루를 품고 있는 수술을 먼저 성숙시키는 등 딱정벌레와의 관계에 맞춰 꽃의 모양을 세팅했습니다.
지금도 목련꽃이 향기로 딱정벌레를 부르는 출발은 여기에서 비롯됐습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속씨식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목련은 치밀한 시간표에 따라 해마다 초봄이면
봄의 전령사답게 아름답고 우아한 꽃을 피워냅니다.
꽃을 보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다르것입니다,
하지만 꽃눈의 껍질을 세 번이나 벗으며 겨울을 견뎌내 온 당당함과 의연함으로 피워낸 아름답고 우아한 꽃이
사람들에게 주는 감동과 느낌은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그런 감성으로 그려낸 양희은의 ‘하얀 목련’은 그래서 오래 기억되는 노래로 남았습니다.
◉1981년 미국과 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온 양희은은 난소암 판정을 받아 절망적인 상황을 맞았습니다.
3개월 시한부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경희대 부속병원에 입원해 있던 양희은 두려움과 번민으로 기도에 매달려 있던 때였습니다.
양희은 그 때 창밖에 눈부시게 피어 있는 목련꽃을 만나게 됩니다.
대수술을 앞두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만난 목련이 너무 눈부시고 아름다워서 유서를 남기는 마음으로
노랫말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두 번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내고 항암제 투약까지 거부하며 양희은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1983년 양희은은 그 노랫말을 김희갑 작곡가에게 넘겼습니다.
그 ‘하얀 목련’의 기적과 은총 때문인지 양희은은 일흔두 살인 지금까지 의미 있는 건강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노래를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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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rH9OqxH5ao?si=VbdZOrMTbq9_1dxF
◉나무 시장에서 목련을 찾으면 거의 백목련을 줍니다.
자주 만나게 되는 백목련은 우리나라 자생 목련이 아니라 중국에서 개량한 품종입니다.
꽃잎의 안팎이 자주색인 자목련과 안쪽은 흰색 바깥쪽은 자주색인 자주목련도 우리나라 고유 품종이 아닙니다.
노란색의 황목련, 별빛처럼 펼쳐진 별목련 등 목련의 종류가 많습니다.
산행길에서 만나기도 하는 우리나라 자생 목련은 산목련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함박꽃나무입니다.
1960년대 김일성이 목란(木蘭)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북한의 국화로 삼은 꽃입니다.
하지만 전문적이 아닌 경우 통상 목련 하면 백목련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세계 최다 수종의 목련이 모여있는 곳이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입니다.
여기에는 700여 종의 목련이 지금 형형색색의 모양으로 피어 있습니다.
오늘부터 이 비밀의 정원의 문이 열립니다.
목련 축제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사르르 목련’이란 제목으로 진행될 목련 축제는 4월 21일까지 이어집니다.
◉목련꽃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불리는 이름도 꽤 많습니다.
우선 목련(木蓮)이란 이름은 불교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나무에 핀 연꽃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사찰의 문살 문양의 6장 꽃잎은 바로 목련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꽃봉오리가 붓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목필(木筆)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한약재에 쓰이는 꽃봉오리가 매운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신이(辛夷)입니다.
옥처럼 깨끗한 나무라고 해서 옥수(玉樹)로 불리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은 북한에서 부르는 이름과 같은 목란(木蘭)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은 여기서 나온 제목입니다.
◉북향화(北向花)란 이름도 있습니다.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한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알고 보면 단순한 자연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남쪽에 햇볕이 먼저 닿아 세포분열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꽃이 자연스럽게 북쪽으로 기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임금이 통상 북쪽에 살아서 임금을 생각하는 충성이 담긴 꽃이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목련꽃을 보면서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가
싱어송라이터 최성수의 ‘목련꽃 필 때면’입니다.
최성수가 버클리 음대로 공부하러 가기 전인 1987년 어머니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입니다.
님을 기다리는 마음속에서 목련꽃 같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잔잔하고 따뜻한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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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휘경동 경희대 교정에 가면 만발한 목련꽃이 반겨줄 것입니다.
양희은도 경희대 병원 병실에서 창밖의 목련화를 보고 ‘하얀 목련’을 작사했습니다.
목련꽃은 경희대의 상징화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목련화’란 국민 가곡이 만들어졌습니다.
1974년 경희대 25주년을 맞아 당시 조영식 총장이 가사를 쓰고 음대학장이었던 김동진이 작곡을 맡아 만든 가곡입니다.
노래는 당시 경희대 강사였던 엄정행이 특유의 힘찬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김동진의 지적으로 엄정행은 60번이나 이 노래를 고쳐 불러 ‘60번’이라는 별명이 붙은 노래가 됐습니다.
이 노래로 널리 알려진 엄정행은 그 후 25년 동안 경희대 교수로 재직하게 됩니다.
그가 ‘목련화’를 통해 새 시대의 희망과 기대를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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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이 말은 거의 모든 꽃이 열흘 이상 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목련은 통상의 꽃보다 머무는 시간이 더 짧습니다.
그러나 꽃이 피어 있는 동안 봄바람에 흩어지거나 찢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철심으로 고정된 것처럼 강하고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통상 일주일 안에 씨앗을 만드는 일을 마치고 나면 미련 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꽃잎으로서 소명을 다했으니 스스로 땅으로 뛰어 내립니다.
◉목련꽃이야 할 일을 다했으니 쿨하게 지지만 짧게 머물다 떠나가는 꽃잎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더 아픈지도 모릅니다.
목련꽃 피고 지는 모습을 담은 가곡을 한 곡 만나봅니다.
박수진의 시에 한성훈이 곡을 붙인 가곡 ‘목련꽃 피고 지고’를 테너 김승직의 노래로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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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Lhoh3VEESA?si=TZY7e1MVWL-e2HSQ
◉아름답게 지는 꽃은 거의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목련꽃이 질 때의 모습은 볼 폼 없고 누추합니다.
소설가 김훈은 세상의 꽃 중에서 목련의 지는 모습이 가장 남루하고 참혹하다고 했습니다.
냉큼 죽지도 않고 한꺼번에 떨어지지도 않으면서 죽음이 느리고 무섭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작가 복효근의 시선은 다릅니다.
목련꽃 지는 모습을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법인데 지는 모습까지 이름답기를 바라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다음 말을 덧붙입니다.
‘그대를 향해 내뿜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딲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지는 목련꽃의 이야기를 담은 송창식의 노래 ‘목련’은 복효근의 말과도 통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숨겨진 보물 같은 노래입니다.
송창식이 작곡하고 김현수란 작사가가 노랫말을 썼습니다.
김현수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그 특이한 시선이 놀랍습니다.
목련꽃의 낙하는 처연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꽃잎 스스로 제 몸을 떼어내어 떨어지는 것입니다.
1년을 기다려 꽃피는 일주일 벌어들인 목련입니다.
그래서 낙화는 자연스럽게 그 과정 안에 들어있습니다.
◉꽃잎이 지는 모습을 구경시켜 주려고 작사가가 노래 듣는 사람들을 봉은사 연못으로 초대합니다.
거기 연못가에 서 있던 목련 나뭇가지에서 꽃이 떨어집니다.
물속 나뭇가지는 떨어지는 꽃잎을 받아 여전히 가지에 매달린 거처럼 물속에서 미세한 떨림으로 꽃을 피워냅니다.
그동안에는 깨진 사랑도 이별도 잠시 멈추고 평화로운 상태가 유지됩니다.
물론 그 상태가 오래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봉은사 연못가 목련꽃은 사랑이 끝나갈 때 아주 미세한 떨림으로 연장전을 꿈꾸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낙화를 통해 일러주고 있습니다.
송창싱의 1980년대 초 노래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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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wRu478flfrs?si=6coh36on22go8K4R
◉꽃잎이 지고 나면 목련 나무는 떠나간 꽃을 생각할 여유가 별로 없습니다.
꽃이 지고 한 달 안에 내년에 꽃피울 꽃눈과 잎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만들어진 작은 눈은 겨울이 되면 붓끝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집니다.
그래서 목련 가지치기는 5월이 되기 전에 해야 겨울눈이 다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노년을 전원생활로 지낸 작가 박완서는 그녀의 수필집 ‘호미’에서 목련 나무 그루터기를 없애려고 씨름하다가
결국 나무에게 항복한 뒤 사과하고 화해한 이야기를 담아 놓았습니다.
그 덕분에 봄마다 찬란하게 피워주는 목련꽃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넵니다.
그러면서 나무나 식물 심지어 흙에게까지 말을 거는 버릇을 만들어 준 것이 더 고마운 일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무와 꽃과 쌍방향 소통을 하면서 그들의 속 이야기를 알게 되면 그들과 훨씬 더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친구를 만들었던 박완서 선생은 13년 전 목련 나무를 비롯한 친구들의 화려한 배웅 속에 편안하게 떠나갔습니다.
(배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