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덥다. 아침 산책을 위해서는, 작열하는 태양 빛과 열을 차단하기 위해 완전 군장해야 한다. 산책은, 오늘 내가 마쳐야 할 하루라는 여정을 온전하고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준비운동이다. 아침 묵상을 마치고 산책길에 나선다. 통풍이 수월한 얇은 점퍼와 바지, 마스크, 폭이 넓은 색안경 그리고 가벼운 모자가 필수다. 요즘은 반려견들과 시원한 개울물에 들어가기 때문에, 개울 자갈에 미끄러지지 않는 가벼운 등산화를 착용한다.
우리는 일찍 산책길에 들어섰다. 강가에 옹기종기 모여, 잡어를 기다리던 오리들도 더위 때문에 며칠 전부터 자취를 감췄다. 일 년 내내 높다란 전나무 위에서, 산책하는 우리를 관찰하던 수십 마리 고니들도 거의 사라졌다. 몇 마리 고니들만, 작열하는 태양 빛과 열을 이겨내고 시냇가 중간에 우두커니 서서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 길가에서 흔하게 보던 개미, 개구리, 뱀들도 흔적조차 없다. 가끔 짝짓기를 하는 말벌들이 산책하는 우리를 위협한다.
북한강 지류, 개울가를 따라 한참 내려가면 탁 트인 산책길이 등장한다. 동네 농부 한 분이 관리하는 광활한 논밭이 등장한다. 한쪽은 북한강 수변이며, 다른 쪽은 탁 트인 풀밭이다. 용감한 강태공들만 수변에 간간히 보일 뿐, 산책하는 사람들이 없다. 이 코스는 가로 길이가 거의 300m나 된다.
이 산책코스의 중간지점은 논밭 끝에 위치한 뽕나무다. 약 3주 전, 이곳을 관리하는 농부가 뽕나무 가지를 무참하게 잘라버렸다. 그는 그 며칠 전부터 뽕나무 열매가 쭈글쭈글한 것을 발견하여,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대대적인 전정이다. 그는 풍성한 열매를 위해, 과감하게 가지들을 정리하였다. 그는 뽕나무 뿌리와 가운데 줄기, 수간만 남기고 모두 잘라 버렸다. 나는 그때, 농부에게, 이렇게 바싹 가지를 치면, 이 더운 날씨에 나무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며칠만 지나면, 이 더운 날씨에도 나뭇가지에서 기적처럼 연두색 싹이 올라오고, 가을이면 제법 튼실한 가지를 낼 것이라고.
나는 산책길에서 그의 예언이, 진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매일 확인하고 싶었다. 기적은 지난 7월 10일, 농부가 전정한 후, 열흘이 지나면서 시작되었다, 무참히 잘린 나뭇가지 아래서 조그만 연두색 잎 하나가 등장하였다. 나는 그 잎을 보고, 내가 헛것을 본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갔다. 다 잘린 나뭇가지 끝에 연약한 연두색 이파리가 등장하였다. 그 잎은 어디에서 자양분을 받아 잎을 내는 것인가? 뽕나무는 자신의 뿌리에서부터 신비한 생명력이 작동하여, 그런 기적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장소에서 희망의 싹을 틔운 것이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고, 반려견들은 무더워 혀를 내놓고 헐떡거렸다. 우리는 그 뽕나무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오전 8시30분, 이미 온도는 31도를 훌쩍 넘어갔다. 태양은 저 높은 곳에서 뽕나무 앞에 선 우리 머리 위로 빛과 열을 내리쬐고 있었다. 뽕나무는 이 여름 한복판에서, 생명의 신비를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나무는 머리, 손, 발이 모두 잘린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죽은 나무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잘린 나뭇가지마다, 자신이 살아 있다고 외치는 연두색 잎들이 불굴의 의지로 나무껍질을 뚫고 나와, 생명의 약동을 노래하고 있었다.
우리는 불타는 가시덤불 앞에선 이스라엘의 영웅 모세처럼, 새싹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뽕나무 앞에 섰다. 이 나무는, 세상의 모든 나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알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손과 발을 잘라도, 뽕나무의 생명에 대한 그 숭고한 열망을 좌절시킬 수는 없었다. 뽕나무는 신비하다. 그렇게 싹을 틔우는 이유와 과정을 나에게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뽕나무는 나를 떨리게 한다. 매사에 남을 탓하는 나를 꾸짖기 때문이다. 뽕나무는 나를 매료시킨다. 나도 이 뽕나무처럼, 이 더운 여름에 가장 연약하지만 순수한 희망의 싹을 틔우도록 다독여 주기 때문이다.
이 나무의 생명에 대한 불굴의 의지는, 환경을 초월한다. 나무는 주위를 탓하는 법이 없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그 순간에 몰입할 뿐이다. 이 불굴을 소유한 자는, 스스로에게 숭고하고 누구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임무에 더욱 집중할 뿐이다. 지극하게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결코 행하지 않는다. 그(녀)는 타인의 빈정대기, 중상모략, 그리고 사칭과 같은 공격에도 자신의 격을 잃지 않고 항상 의연하게 말하고 행동한다. 수도권은 다시 사회적거리두기 4단계로 진입하였다. 우리 모두가 이 위기를 희망의 싹을 피운 뽕나무처럼, 불굴의 의지로 헤쳐나가면 좋겠다.
자료 : (서울=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2021.07.26. 오전 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