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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년이란 검문의 역사만큼 곳곳이 패어있는 만월검의 검신을
방금 대장간에서 나온 칼날처럼 예리하게 다듬은 구양홍은
마지막으로 꼼꼼하게 만월검의 손잡이의 벌어진 틈에다
액체로 변해있던 납을 들이부었던 것이 완전히 굳어지자
자신으로선 들기는커녕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힘이드는 만월검을
슬며시 기연화쪽으로 밀어놨다.
" 다됐습니다. "
자신의 만월검을 살펴보던 구양홍이 미간을 찡그릴때마다
얼굴이 붉어졌던 기연화는 드디어 구양홍이 자신에게 만월검을 돌려주자
마치 시집보냈던 딸을 맞이하는 친정어머니와 같은 심정으로
일다경 전과는 전혀 다른 검기를 뿜어내고 있는
만월검의 검신을 떨리는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 고 고마워요. "
너무나 좋아하는 기연화의 표정을 바라보며
구양홍은 언제부턴가 자신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라 있다는 것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기연화를 향해 말했다.
" 무척 좋은 검인데, 그동안 너무 관리를 소홀히 했어요.
연화언니는 무척 검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매일같이 그녀석을 깨끗이 닦고, 사랑해 주세요.
그러면 언젠가 연화언니를 위해 그녀석이 힘을 쓰는날이 올거에요. "
자신의 만월검을 신중한 모습으로 제련하는 순간부터
구양홍에게 따뜻한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던 기연화는
자신의 대면대면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구양홍이 계속해서 자신을 언니라고 부르자,
자신도 모르게 구양홍을 진짜 자신의 동생처럼 여기는 마음이 일어났다.
어릴때부터 함께자라온 수연을 제외하곤다른 여인을 알지 못하던 기연화가
다른 여인에게 이런 감정을 갖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구양홍은 지금 담화영에게 완전히 빠져있는 상태이니,
수연처럼 자신에게 세상의 상리에 어긋난 감정을 느낄리도 없겠다는 생각을
짧은 시간동안 하게된 기연화는
솔직한 성격답게 자신의 내심을 곧바로 구양홍에게 말했다.
날 언니라 부르니 내가 홍매라 불러도 괜찮겠지 ? "
기연화의 조심스런 물음에 구양홍이 얼른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처음부터 언니라 불러야 했는데
제가 속이 옹졸해서 여태까지 미뤘네요. "
그래. 그럼 앞으로 홍매라고 부르겠어.
그리고 앞으로 광동성의 팔기보와 강서성의 검문은
형제와도 같은 사이가 됐으니 언제라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이 언니를 불러줘.
천리나 혹은 만리가 떨어져 있어도 홍매가 부르는 거라면
내가 반드시 달려갈테니. "
기연화의 진심어린 말에 감격한 구양홍이
기연화의 손을 꼭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연화언니. 이 동생이 꼭 한가지만 부탁할게 있어요. "
" .... "
기연화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을 끄떡여 보였다.
그러자 마음속으로 심한 격동이 일어났는지
한참동안 말을 못잇고 있던 구양홍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 언제라도 ... 제부탁 한가지를 들어주실수 있겠어요 ? "
옆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담화영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잇다,
얼굴이 새빨게진 구양홍의 내심을 눈치챈 금화파파는 나직하게 탄식했다.
천금과도 같은 팔기보의 아가씨께서 저토록 남의 후처로 들어가기를 원하시다니 ...
이일을 보주께서 아신다면 어찌할꼬. '
기연화는 솔직한 반면에 자신이 지킬수 없는 약속은 하지않는 성격이었다.
구양홍이 어떤 부탁이든지 한가지를 들어달라고 하자
처음엔 어떻게 해서든 구양홍의 마음이 다치지 않는 방법으로
거절하려던 기연화는
자신을 바라보는 구양홍의 너무나 절실한 눈빛에 그만 마음이 약해져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약속할께. 언제든지 내가 있고, 검문이 강서성에 있는한
홍매가 할 한가지 부탁을 기다리고 있을께. "
" 연화언니 고마워요. "
기어이 기연화의 약속을 받아내자,
그제서야 담화영이 지금껏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구양홍은
끝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오늘은 이만'이란 말을 하며
얼굴을 두손으로 가린채 내실밖으로 뛰어나갔다.
아가씨 ! "
대경한 금화파파마저 구양홍을 따라 내실을 뛰어나가자
그제야 기연화와 둘이 남게된 담화영은
슬슬 자신이 세워논 계획의 삼단계를 발동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연화를 여상스런 목소리로 불렀다.
음. 연화야 검의 손질도 끝났고, 슬슬 비무대로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
담화영의 부름에 그제야 자신이 그때까지 만월검의 검신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헤벌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기연화는
얼른 만월검을 검집에 꽂아넣고, 담화영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자잘한 것까지 신경써 줘서 고마워요. "
여전히 경계심의 뿌리가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지만,
기연화의 목소리에 어느덧 자신에대한 진심이
조금씩이나마 담기기 시작한 것을 눈치챈 담화영은
내심의 사악한 미소를 씻은 듯이 감추고 기연화에게 말했다.
그런건 네가 신경 쓸 필요없으니 이번 대회에서 승리하는 것에만 신경써라.
내 제자가 하잘것없는 놈들에게 지는꼴 은 죽어도 못보니 ...
내말 알아들었느냐 ! "
담화영의 목소리는 준엄했다.
담화영의 준엄한 질타에 정신이 번쩍 든 기연화의 눈동자가
강한 거부의 빛을 띠었다.
난 당신의 제자가 아니라 검문지주에요.
하지만 ... 절대로 지지는 않을테니 염려하지 말아요. "
처음부터 기연화가 할 대답을 알고 있었던 듯
담화영의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잠시동안 기연화의 눈동자를 특유의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담화영은
천천히 내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지금껏 보지못했던 담화영의 어색한 침묵에 움찔해져있던 기연화의 귓전을
담화영의 전음이 맹렬하게 흔들었다.
이년아 빨리 가지않으면 실격되니까 빨리 튀어나와 ! -
평상시와 같은 담화영의 육두문자가 섞여있는 전음성을 듣고,
그제야 마음에 안정을 찾은 기연화가
얼른 담화영의 뒤를 쫓아 내실을 빠져나갔다.
침실안에 처박혀서 나오지않는 구양홍을 대신해서 인사를 나온
금화파파의 전송을 받으며 청풍각을 빠져나온 담화영과 기연화는
비무대가 설치되어있는 연무장으로 걸어가다 매우 이상한 광경을 보게됐다.
" 저사람들 뭐하는 거죠 ? "
기연화가 묻자, 담화영이 대답했다.
"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것 같구나. "
고개를 잠시 갸웃거리던 기연화가 결국 담화영의 대답에 긍정을 표시했다.
그렇군요. 마치 어린애들이 술래잡기 하는 것 같네요. "
그랬다.
지금 담화영과 기연화가 걸어가는 연무장과는
반대방향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두사람의 모습은
정말 강남에서 대여섯살 먹은 어린애들이 가장 많이 하는 놀이중 하나인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기연화가 자신이 말해 놓고도 우습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레 흔들고 있는동안
술레 잡기에 여념이 없어 보이는 두사람의 모습을 정확히 식별해낸 담화영은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박장대소(拍掌大笑)를 주체할수 없었다.
분명히 앞으로 계속해서 자신의 뒤를 졸래졸래 쫓아다닐게 분명한 정심을
자기대신에 제거해줄 적임자로 골라났던 하유성이
청풍각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지자 담화영은 내심 크게 낙담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기연화로선 알턱이 없겠지만,
청풍각에서 사라졌던 하유성이 지금 열심히 검을 휘두르며
자신의 심복지환(心服之患)이랄수 있는 정심을 뒤쫓고 있는 광경을 목도한 담화영은
마치 십년동안 묵히고 묵혔던 체증이 확하고 뚤리는듯한 통쾌함을 맛봤던 것이다.
담화영은 생각했다.
클클클 과연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하더니만,
그동안 치밀하게 꾸며놨던 나의 심모원려가 하나, 둘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구나 ! '
담화영이 그렇게 속으로 득의만만해 하고있는동안
금검보의 무수히 많은 담장들을 하나, 둘 뛰어넘기 시작한 두사람의 모습이
점차 자신의 초인적인 안력으로도 찾을수 없는곳으로 사라져가자,
그제서야 혼자서 준수한 모습에 어울리지않는 사악한 표정으로
키득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고있는 기연화에게
신경이 간 담화영이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원래 세상엔 남들과 다른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늘 네가 복이 많아 그런 기인들을 보게됐구나. "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열심히 왔다갔다하던 두사람이
무림 중에 숨어지내는 기인처럼 여겨지진 않았지만,
천하에 다시없는 독불장군(獨不將軍)인 담화영이 기인이라는데야
반박할 수가 없었던 기연화는 그저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기연화가 고분고분하게 자신의 말에 순종하자
더욱더 기분이 좋아진 담화영은
특유의 군자연한 걸음걸이로 연무장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어여가자. 금검보의 놈들은 치사한 녀석들이 많으니
빨리 가지 않으면 널 실격패 시킬지도 모른다. "
기연화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라
담화영을 쫓는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
으으 내 이노무 자식을 그냥 ... '
비무대밑에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 군웅들을 바라보며
구자굉은 이빨을 갈고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본선진출자는 세명이었고,
오후에 치뤄질 비무는 정확히 두차례 뿐이었다.
이렇게 본선진출자가 홀수로 남을 경우 강서군웅대회는
전통적인 강호의 비무규칙을 따랐다.
천하의 명망높은 군웅들이 보는앞에서 심지를 뽑아서
먼저 겨룰 두사람과 두사람중의 승자와 겨룰 한사람을 구하는 것이
바로 강호의 규칙이었다.
지금껏 그런식으로 부전승자(不戰勝者)를 가려온 구자굉은
드디어 강서군웅대회의 승리자가 가려질 마지막 심지뽑기를 하기위해
한 번의 심호흡을 하고 비무대위에 올랐다.
어느틈에 마련됐는지 비무대의 한쪽에 급하게 만들어진듯한 귀빈석(貴賓席)에
드디어 강서군웅대회가 치뤄지는 지난 나흘동안
얼굴한번 내비치지 않고있던 금검보주 황대구와
청성파의 속가 장문인인 유진청등이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두사람과 일검추풍 백일범 등의 강서무림 제일의 고수들이
일제히 비무대에서 주변에 모여있던 군웅들을 향해 연신 포권을 해보이자,
슬슬 비무대를 둘러싼 엄청난 규모의 연무장을 가득히 메우고 있던 군웅들의 열기는
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등장할 마지막 세명.
황대구와 기연화는 구자굉의 호명에 착실하게 대답하며
비무대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
" 험험. 청성파의 정심도인은 빨리 올라오시오 ! "
본래 어떤종류의 비무이든지간에 제시간에 비무장소에 도착하지 못한 사람에겐
비무에서의 패배보다도 더욱 수치스런 오명(汚名)이 따라붙기 마련이었다.
세차례에 걸쳐 정심을 불렀는데도 정심이 비무대위에 나타나지 않자
주변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한 군웅들의 눈치를 살피다,
자신도 모르게 뒤쪽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황대구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구자굉은
항상 사람좋은 미소가 걸려있던 황대구의 얼굴이 가볍게 굳어진채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모습을 보고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졌다.
언변(言辯)과 상황대처능력(狀況對處能力)이 탁월하다는 소문관달리
생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진땀을 뻘뻘 흘리다,
전신의 내력을 몽땅 집중해서 다시한번 정심을 불러보려던 구자굉을 구해준 것은
다름아닌 황대웅이었다.
여전히 묵직해 보이는 발걸음으로 구자굉에게 다가선 황대웅은
특유의 호쾌한 목소리로 구자굉에게 말했다.
" 청성파의 정심도인이 오지 못하셨다면
우선 검문의 기소저와 본인이 먼저 승부를 가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우리 두사람의 승부가 끝났을때까지 정심도인이 비무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때에는 실격패(失格敗)의 규칙을 적용시켜도 할말이 없지 않겠습니까 ! "
결코 황대웅은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유진청을 바라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모여있던 모든 사람들이
황대웅의 한마디에 일제히 유진청을 향해 눈길을 던졌다.
그때까지도 정심이 청성파의 제자이고,
그자신은 청성파의 대외적인 일을 모두 전담하는 장문인이었음에도
비무대에 나타나지않은 정심의 처리에 대해
일언반구(一言半句)조차 하지않고 있던 유진청이
낭랑한 목소리로 구자굉을 향해 소리쳤다.
" 구총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설사 그 못난녀석이 실격패를 당한다해도
청성파에선 결코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겁니다. "
실로 대단한 위세였다.
이곳에 모여있던 강서무림의 군웅들중
어느 누구도 유진청의 일성에 반대의 의사를 나타내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유진청의 의견에 반대를 할만한 사람이 한명 있기는 있었다.
비무대위에 올랐을때부터 유진청만을 바라보고 있던 기연화가
혹시라도 반대를 하고 나설 것을 저어한 황대웅이
몸집답지않은 순발력을 발휘해서 기연화를 도발했다.
지난번엔 기소저에게 참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
무림중에서 말하는 신세란 주로 문파나 개인간의 은원관계를 말하는 것이었다.
황대웅의 정중한 말속에서 한가닥 도전의 기색을 떠올린 기연화가
차분한 표정으로 황대웅을 돌아보며 호기롭게 대답했다.
그렇군요. 황소협의 구룡검과 본녀의 만월검이 드디어 우열을 가릴때가 됐군요. "
기연화를 바라보는 황대웅의 순박하던 두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 나흘전부터 줄곧 이날만을 기다렸습니다. "
스르릉.
흡사 용이 울부짖는듯한 검명과 함께 뽑혀져 나오는 구룡검의 모습은
전설의 용장(勇壯)인 관운장의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가
다시 세상에 나타난 듯 웅장했다.
기연화는 황대웅을 보게된후 줄곧 그에게 신경이 쓰였다.
무벽이 있는 기연화에게 자신의 만월검을 능가할 정도로
거대한 구룡검을 종이장처럼 자유자재(自由自在)로 휘두르는 황대웅의 모습은
지금껏 잊어버리고 있었던 어린시절의 남모를 고통을
잔인할 정도로 기연화에게 일깨워주고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있는 근육이
마치 거대한 산맥처럼 끊임없이 물결치고 있는 황대웅의 모습은
어린시절 기연화가 꿈속에서라도 되고 싶었던 이상적인 무인의 모습.
바로 그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모순(矛盾)되게도 눈앞의 황대웅의 모친인 운봉대부인을 만난후
자신의 움츠러 들었던 여성성에 어느덧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기연화는
금새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킬수 있었다.
그리고 기연화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여느 문파의 검객답지 않게
황대웅은 겉치레에 불과한 화려한 기수식을 해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빼어든 구룡검을 맹렬한 공격과 치밀한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중단의 위치에 고정시켜논 황대웅의 빈틈이 보이지않는 자세에
크게 전의(戰意)가 치솟은 기연화는
그때까지 자신의 검의를 가로막고 있던
수많은 검법의 검로와 초식의 경지를 단숨에 벗어던졌다.
쇄애액.
날카로운 소성과 함께 기연화의 등어림으로부터 치솟아 오른 한줄기의 검광이
강호의 유명한 검법이라면 으레이 있기 마련인 검로의 변화를 완전히 배제하고
황대웅을 향해 찔러갔다.
기연화가 발출한 야성(野性)의 검식(劍式)에
광포(狂暴)한 자신의 본성이 격동당한 황대웅의 대응또한
그동안 보여왔던 강호상에서의 가식적인 위용과는 그격이 다른 패도(覇道)를 띠었다.
캉 캉 캉 ...
강서무림의 후기지수를 대표하는 절정의 검객들답지 않게
검기를 배제하고, 오직 힘대 힘으로 맞붙은 기연화와 황대웅의 격돌은
그래서 처음부터 살기가 만장했다.
홀연히 떠오른 검의에 따라 연속해서 십검을 내리 찔러대 던 기연화는
자신의 유성이 떨어지고, 질풍이 휘몰아치는듯한 검세를
오히려 자신의 야성을 압도하는듯한 광포한 동작으로 구룡검을 휘둘러
일일이 받아넘기는 황대웅의 놀랄만한 신력에 밀려
일검이 부딪칠 때마다 한걸음씩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어느새 만월검을 쥐고있던 오른손의 호구가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하자,
그제야 지나친 흥분으로인해 잃고 있었던 검객으로서의 이성을 되찾은 기연화는
황대웅의 놀랄만한 신력에 내부가 격탕되자
자연스럽게 일어난 북해음한공에서 일어난 강력한 음한기를
자신의 만월검에 집중시켰다.
기연화는 음한기를 운용하자
붉게 달아오른 자신의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절대로 저자에게 힘에서 밀리고 싶지않아 ! '
휘오오오오.
자신의 특기인 중검위주의 공세로 기연화가 도전해오자
호기와 전의가 폭발할 정도로 치솟아 올랐던 황대웅은
연신 뒤로 물러서던 기연화의 만월검에서
느닷없이 한줄기의 강력한 음한지기가 쏟아져 나오자
강호에 출도한후 처음으로 자신의 공세를 끝마치지 못하고
뒤로 크게 한걸음 물러섰다.
음한공 ! '
비록 광포하게 기연화를 몰아붙이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뛰어난 무재를 지니고 있는 황대웅이었다.
기연화가 음한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재빨리 간파한 황대웅은
어려서부터 수많은 영약을 장복한 끝에
자신의 체내에 터질 듯이 고여있던 순양지기를 한껏 끌어올려
기연화가 발출한 음한기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단숨에 황대웅을 쓰러뜨릴 요량으로 음한기를 발출했던 기연화는
굳건하게 자신의 음한기를 버텨내고 있는 황 대웅의 모습에
더욱더 전의가 들끓어 올랐다.
음한기로도 안된다면 진검승부밖엔 없다 ! '
마음을 굳히자마자 기연화는 황대웅과 맞선이래
직선적으로만 움직이던 자신의 검끝을
누구라도 피할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자신이 발출한 음한기에 저항하느라 꼼짝도 못하고 있던
황대웅을 향해 뻗어갔다.
그리고 처음.
평범한 검기를 형성하며 움직이던 기연화의 검끝이
한순간 강렬한 빛의 무리속에 빠져들었다.
우웅웅웅.
' 거 검강(劍 ) ! '
순간적으로 자신을 옴죽달싹도 못하게 만들어놨던
끔찍한 음한기가 사라짐과 동시에 밀려든 전설의 검을
본능적으로 자신의 구룡검으로 막아내던 황대웅의 거대한 몸이
엄청난 폭음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쾅 !
그리고 거대한 폭음.
" 우와아아아 ... "
비명에 가까운 군웅들의 부르짖음속에
하늘로 치솟아 올랐던 황대웅의 거대한 몸이 비무대위로 나뒹굴자,
자신의 독자를 보호하기위해 몸을 날리려던 황대구는
자신의 완맥을 재빨리 거머쥔 유진청의 손길을 느끼고
간신히 입술을 뚫고 터져나오려는 신음성을 삼켰다.
대웅이의 체력은 천하에 다시없으니 ... "
격동한 황대구를 안심시키기위해 말을 잇던 유진청의 말이
중간에서 거짓말처럼 멈춰졌다.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믿을수 없다는 듯크게 입이 벌어진 유진청을 비웃듯
비무대위에 머리서부터 거꾸로 처박혔던 황대웅이
그때까지도 놓치지 않고있던 반토막난 구룡검을 지팡이삼아
놀랍게도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 .... "
기연화는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지금껏 자신 역시 검문십이장로나 담화영으로부터
괴물이란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
자신이 무심결에 발출한 검강을 온몸으로 받아낸채
하늘로 치솟아 올랐던 황대웅이 입속에서 검붉은 핏덩이를 연신 토해내면서도
끝내 자신의 웅장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있던 기연화는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진정 멋진 사내대장부다 ! '
기연화는 자신의 눈앞에서 흉신악살(凶神惡殺)과도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노려보고있는 황대웅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은 인정하는것이고 승부는 승부였다.
반토막난 구룡검을 손에들고 몸을 일으켜세운 황대웅의 모습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무인의 모습으로 직감한 기연화는
가차없이 만월검에 맺혀있던 검강을 다시 운용했다.
우웅웅웅웅.
기연화의 만월검에서 또다시 천지를 양단하는듯한 검강이 일어나자
몸을 일으켜세운채로 혼절해있던 황대웅은
끈질긴 생명력의 외침에 재빨리 반응했다.
급기야 다시 자신을 검강으로 내려치려는 기연화를 향해
황대웅이 평소에없던 다급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쿨럭 쿨럭 자 잠깐만 ... "
황대웅의 다급한 심정은 곧바로 저만치 물러서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황대웅을 바라보고있던 구자굉에게 전달되었다.
황대웅의 강인한 성격을 어려서부터 봐온 까닭에
벌써부터 비무를 중단시키고 싶었지만, 앞으로 나서질 못하고 있던 구자굉이
전력을 다해 몸을 날리며 기연화를 향해 소리쳤다.
" 이 일곱 번째 비무의 승리자는 검문의 검후 기연화 소저입니다. "
구자굉의 다급함을 넘어서 절박함마저 엿보이는 승리선언(勝利宣言)에
잔뜩 끌어올렸던 검강의 광휘(光輝)를 슬며시 거둬들인 기연화가
한걸음 뒤로 물러서자 순간적인 호기로인해
하나뿐인 목숨이 백척간두에 처해있던 황대웅이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터져나온 거대한 함성 !
" 검후의 승리다 ! "
검문이 삼십년만에 강서군웅대회를 다시 제패했다 ! "
군웅들의 판단은 정확했고,
과연 무림은 약육강식의 강자존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기연화와 황대웅간의 비무가 벌어지기전까지만 해도
귀빈석에 자리잡고 자신들을 굽어보던 유진청의 눈치를 보던 군웅들이었다.
하지만 기연화가 검을 배워 익힌 검객들이라면
꿈에서라도 익히고 싶어하는 전설의 검강을 이용해
후기지수중 무적으로 군림하던 황대웅을 쓰러뜨리자
비무대의 주변은 순식간에 이십년간 강서성에서 잊혀졌던 문파인
검문과 검후에 대한 폭발적인 열광으로 터져나갈 것 같았다.
비무대의 요소요소에서
비무중 다른 사람이 뛰어드는 것을 막기위해 서있던 금포무사중 조패가
구자굉의 눈짓을 받고 얼른 달려들어 황대웅을 부축해 일으켰다.
황대웅의 엄청난 거구를 일으키는 조패의 얼굴엔 일종의 회한이 떠올라 있었다.
조패는 생각했다.
황공자 황공자. 그렇게 천관에서 힘자랑을 하더니만
호기등등하던 당신도 오늘날엔 이렇게 비참한 꼴이 되었구료.
당신 때문에 비록 허리를 다쳐 마누라에게 구박을 받고는 있지만
대장부는 남의 어려움을 틈타 복수하지 않는법.
내마음 속의 울분은 후일 풀도록 하겠소이다. '
조패에 의해서 황대웅이 비무대를 빠져나가자
그때까지도 정심이 비무대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두사람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구자굉은 생각했다.
벌써 황공자가 말했고, 유장문인이 대답을 했는데
이제와서 말을 번복한다는건 ... 참으로 어렵겠구나. '
그리고 유진청 또한 생각에 잠겼다.
검강인가 ? 저 검문의 여아가 사용한 것이 전설의 검강이 확실하다면
정심뿐만이 아니라 나조차도 저아이의 검을 감당할수 없겠지.
그렇다면 ... '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마침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황대구의 미미하게 찌푸려진 얼굴과 마주대한
유진청이 천천히 고개를 끄떡여 보였다.
차라리 정심이 이번 비무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청성파의 명성을 유지하는데엔 도움이 될 것이다. '
유진청과 오랫동안 교분을 유지해왔던 황대구는
누구보다도 유진청의 속내를 읽는데 자신이 있었다.
결국 난처해진 자신의 뜻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하는
유진청의 내심을 정확히 꿰뚤어본 황대구가
머슥하게 자신을 바라보고있던 구자굉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떡여 보였다.
그러자 그때까지 남의 의견에 좌지우지되는 자신의 모습에
군웅들의 힐난이 쏟아졌다는걸 잘알고 있던 구자굉이
비무가 시작된후 처음으로 태도를 평소와같이 정연히하고
어느덧 열광의 기색이 주춤해져있던 비무대밑의 군웅들을 향해 소리쳤다.
방금 일곱 번째의 비무가 끝났습니다만,
청성파의 정심도인이 끝내 비무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
지금껏 구자굉의 우물쭈물한 태도를 바라보며 야유를 터뜨 리던 군웅들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군웅들의 소란이 자신의 한마디에 진정되자,
그제야 완벽하게 자신의 모습을 되찾은 구자굉이
잠시동안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다시 외쳤다.
그래서 이미 일곱 번째의 비무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정심도인이 비무대로 돌아오지 않았기에 처음에 약정한대로
검문의 검후 기연화소저께서 이번 강서군웅대회의 우승자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
구자굉의 선포와함께 늠름한 자세로 군웅들을 향해 포권지례를 해보이는 기연화의 모습에
비무대의 주변은 가히 십년만에 폭발적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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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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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읽었읍니다
잘 보고갑니다
잘봅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