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24]아름다운 사람-한방(韓防)인술 60년
최근 아버지와 인연이 깊은 남원의 한의사 어른을 찾아 뵙고, 아버지 상수(上壽) 기념으로 펴낸 <100년의 봄, 100장의 기억>이라는 사진첩을 한 권 드렸다. 이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아버지와 친하게 교류한 지가 60년이 됐다는 거다. 아버지와 15살 차이, 그러니까 85세인데, 지금도 현역으로 한약방을 운영하고 계신다. 자그마한 체구에 아버지와의 일화 등을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그분의 진심이 와닿았다. “그 어른의 넷째 자제라구요? 말씀은 들어 알지요. 바둑을 잘 두고 기자라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어릴 때부터 해마다 바뀌는 세창당한약방 달력을 보고 선생님이 우리 친척인가 생각했슴다. 최근 선생님 말씀을 하니 희로애락이 거의 없는 분이 ‘보고 싶다’고 하던데요” “그래요? 그 어른이 저를 많이 총애해줬어요. 마음결이 참 고우신 분이에요. 돌아가신지 알았는데, 백세 기념 앨범도 내드리고, 효자이군요. 저도 이런 아들이 있으면 좋겠어요” "하하"
임실 오수와 운봉에서도 3년정도씩 한약방을 했고, 현재의 자리에 정착한 것을 합하면 딱 60년, 한 갑자(甲子)의 세월이 흘렀다고 했다. 운봉 사는 친구의 아버지하도고 아주 친했다한다. 친구는 3년 전 졸지에 가버렸다. 당신 생각에 최소 3년, 길면 5년은 더 할 것같다고도 했다. 이 시대 진정한 참어른, 진주의 김장하 선생님이 떠오르며 ‘개결하다’는 단어에 딱 어울린 분이라고 생각했다. 개결하다는 ‘사람의 성품이나 태도가 지조가 있고 깨끗하며 청렴하다’는 뜻이다. 개결은 지조가 굳은 개(介), 깨끗할 결(潔)의 한자어인데, 10년전쯤 캐나다 토론토의 어느 어른(1937년생)을 인터뷰할 때 “개결한 원로선배‘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기억이 있다. 10대 때에 네 분의 훈장에게서 한문(漢文)을 정통으로 깊이 배우다, 자연히 한의(韓醫)에 관심을 갖게 돼 20대초에 한의사 시험에 합격했다며, 당시 배우던 교재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로부터 ‘한방 인술(仁術) 60년’. 큰 어른을 보는 듯했다. 아버지는 이런 분하고 사회에서 우연히 만나 탯자리(장수군 산서면 백운리)가 같다는 이유로 60년을 친하게 지내셨구나, 생각하니 내가 다 감개가 무량했다. 바둑도 3-5급 되는데 둬본 지가 10년도 넘었다지만 언제 한번 수담(手談)을 나누자고 말씀을 드리니 반가워하신다. 허약해진 아내와 고질적인 비염에 시달리는 큰아들 얘기를 하니 전화로나마 문진(問診)을 해야 한단다. 아내에게는 아버지를 생각하여 한 제(劑)를 그냥 더 지었고, 아들에게는 효험이 있어 약을 더 먹고 싶다면 그때 약값을 받겠다는데 '감격'이었다. 그날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근본적인 차이(무엇이 다르고 같은지)를 처음으로 아주 쉽게 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한방을 더 신뢰하는 ‘버릇’이 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의 병을 침이나 부황 등으로 치료하는 한의사를 많이 봐 그런지 지금도 주사보다는 침이 덜 무섭고 친숙하다.
김종호 원장이 너무나 쉽게 들려주는 한방(韓方)과 양방(洋方)의 차이는 이렇다. "병을 바라보는 관점"과 "치료하는 접근 방식"의 다르다는 것. 우리 몸을 종합적인 관점에서 하나의 ‘숲’으로 보고, 몸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동양의학의 핵심이라는 것. “예를 들면 우리는 숲에 가뭄이 들어 나무가 시들면 나무만 고치는 게 아니라 땅에 물을 대고 흙을 비옥하게 만들어 숲 스스로 회복하도록 하듯, 병의 원인을 면역력이나 음양오행 등 몸의 기운에서 찾아 침, 뜸, 한약 등으로 몸의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것이므로, 같은 감기 환자라도 소음인인지 소양인인지 체질에 따라 처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명쾌한 설명에 이해가 금세 됐다” “그와 반대로 양방은 자동차를 예로 들면 ‘고장난 곳'만 찾아 고치듯, 몸이 고장나면 세균, 바이러스, 종양, 호르몬 이상 등 객관적인 수치와 검사 결과로 원인을 정확히 찾아내 항생제, 소염제 등 약물로 원인균을 직접 죽이거나 수술을 통해 문제가 되는 부위를 제거하지요. 그러니까 원인이 같으면 누구든 동일한 성분의 약과 치료법으로 처방하는게 다릅니다.” 얼마나 많은 환자들에게 이 말씀을 한 게 무릇 기하였을까. 말씀을 낮추라해도 계속 존칭을 쓰시는게 어색했지만, 그 차이점이 ‘병을 바라보는 시작점부터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보약 짓는 것을 반대하는 아내와 ‘비염에는 약이 없다’는 아들을 설득해 약을 짓었는데, 별 것도 아닌데 뿌듯했다. 선생님 말씀처럼 장복(長服. 오래 계속해 먹음)을 하면 나는 틀림없이 효험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이것도 ‘100세 아버지 찬스’라고 생각하니, 새삼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이 더했다. 사시는 동안에는 잘 모셔야 할텐데 은근히 걱정도 됐다. 당신이 태어난 고향마을은 산속이어서 한국전쟁때 피해가 극심, 대대로 내려오던 경주김씨 교지(敎旨) 등은 불타고 없어졌는데, 겨우 남아있는 1700년대 중반의 고색창연한 ‘호적단자’ 몇 장까지 보여주시는데, 원장님이 85년 동안 사시며 겪은 현대사의 아픔까지 느껴졌다.
덧붙임1: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3000자 정도 써왔던 시리즈의 넘버링으로 치면 이 졸문이 68번째이지만, 이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싶어 번호를 생략했다. 토론토의 개결하신 20년 선배님 건강이 크게 호전됐다는 뉴스가 반갑긴 해도, 돌아가시기 전에 뵐 수조차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간호하며 애를 타시는 나보다 열 살 위의 형수님 노고도 보통이 아닐 것이니, 예전처럼 강건하시기를 이 글을 빌어 빈다. 또한 남원의 노포(老鋪) 한약방 김종호 원장님이 적어도 5년 이상 ‘사랑의 한방의술’을 더 펼칠 수 있으시면 좋겠다. 수일 내 바둑 한번 두시자고 떼를 써야겠다. 혹시 건강이 안좋은데 남원에 가실 일이 있거들랑, 세창당한약방을 찾아 내 이름을 대고 문진과 함께 한약을 지어 드셔보시라. '친구 찬스'가 아닐는지. 하하.
덧붙임2: 조선 팔도가 넓다고 하지만, 누구든 처음 만나 몇 마디 나누다 '민증'이나 족보를 따지면 정말로 '두 다리'도 아니고 '한 다리' 건너 인연이 있게 마련임을 아실 터. 원장님과 무슨 얘기 끝에 처가집이 임실 삼계 두월리라고 했는데, 그곳이 당신의 외갓집이라는 것. 그러니까 원장님의 모친이 연안 김씨. 장인 성함을 됐더니 대번에 잘 아시는 것이 아닌가. 장인의 형제분 이름과 경력까지 다 아시니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어디 '죄'짓고 살면 안될 일이다. 자왈 위선자는 천이보기위복하고, 위불선자는 천이보기위화니라. 명심보감첫 구절이다. 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