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딴지일보 월드컵 게시판에서 가져온 글임을 밝힌다. 좋은 게시물은 계속해서 기사화할 것이니 가급적 이멜주소를 남겨주시라. - 딴지 편집부
사실 이것만큼 재미있는 축구경기는 본 적이 없다. 마지막까지 관중을 바짝바짝 타게 만드는 그런 흥미진진한 경기. 이 명승부 경기를 다시한번 회고해 본다.
처음 한국팀은, 지나친 긴장으로 인한 굳은 몸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특히 초반에 얻은 패널티 킥을 안정환이 실패했을 때, 굳어진 분위기는 더욱 심해졌다. 한국팀은 역시나 발동이 늦게 걸리는가 보다.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 그리고, 전의 한국경기에서 흥분하고 무기력했던 포르투갈의 경기 모습.... 또 포르투갈 선수가 2명이나 퇴장당했던 것. 이런 것 때문에, 이태리 감독은... 이번 경기에서는 [관대한 판정]을 심판이 행사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따라서, 초반부터 이태리 선수들은 풍부한 경험에 바탕한 교묘한 몸싸움을 환상적으로 펼쳐내었다. 사실 이것은 스포츠맨쉽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원정경기에서 필승을 기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전술의 일환인지도 모른다. 사실 몸싸움을 교묘히 이용하는 것은, 경험없고 실력없으면 시도 자체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니까.
그런 점에서, 이태리의 비에리나 토디가 한국 선수들을 무지막지하게 눌러 버리고 발을 걸고 하는 것에 불만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전술에 저항하여 한국 선수들은 나름대로 분투했지만... 역시 부족한 개인기에 억눌려 3~4명의 수비수가 달라붙어도 이태리 선수 한 명의 공을 뺏어낼 수가 없었다.
공격시에는 짧은 패스는 모조리 차단당했다. 이태리 선수들은 빨랐고, 항상 한 발 먼저 뻗어 공을 낚아채었다. 이태리 선수들의 패스는 정확했고 치명적이었다.
결국 비에리가 한 골을 넣은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면, 어떻게 한국팀은 대항할 수 있었는가????
한국팀의 성공요인의 가장 중요한 것은, 수비의 성공이라고 꼽고 싶다.
모든 공격 루트가 차단 당해 당황하고 있는 팀 분위기에서조차... 한국의 최종 수비진은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훈련받은 대로 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선취골을 내주었으면서도, 거친 몸싸움에 일방적으로 밀리면서도, 압도적인 개인기의 차이에 눌리면서도.... 한국의 수비진은 최종적인 붕괴로 이어지지 않았다. 사실 엄청난 정신력에 의한 결과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운재 골키퍼의 선방도 빛을 발했다. 이태리의 기습적인 초고속 공격에서 1대1 상황까지 몰리는 경우에도, 그는 당황하지 않고 수 차례의 결정적인 골 상황을 선방하여 이겨내었다.
결국 한국팀은 1골 이외에 더 이상의 추가실점을 하지 않는데 성공했고, 결국 이는 역전의 발판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전반전의 지리멸렬한 공격...
그러나 수비는 성공적이었다. 절대적인 개인기와 몸싸움 능력의 차이를 극복하고, 대량실점의 위기로부터 팀을 구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암울했다.
교묘한 이태리의 몸싸움과 가격행위에 대해 한국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패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볼은 한국에게 있었지만, 게임의 지배권은 이태리가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한국 선수로부터 볼을 빼앗을 수 있었던 것이다.
후반전이 마침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히딩크 감독의 전략이 빛나기 시작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히딩크가 아니라면 이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고 한국은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다. 히딩크는, 선수들간 패스의 속도를 빠르게 하도록 주문한 것 같다. 한 선수가 오랫동안 볼을 점유하고 있지 않도록 선수들을 이해시켰다.
미드필드에서의 이태리 빗장수비... 이것을 한국 선수들의 부족한 개인기로는 돌파할 수 없다... 그래서 공을 나즈막하게 날려서 최전방으로 바로 연결하도록 주문한 것도 같다.
게다가 측면 송종국의 돌파도 주문한 것 같다. 히딩크는 송종국을 따로 불러 무언가 지시를 상당하 오랫동안 하였다.... 그후 송종국의 움직임은 측면 개인돌파로 바뀌었던 것이다.
즉, 히딩크는 공세적 전략을 구사하되 최대한 많은 루트를 이용하도록 팀을 통제했다.
곧 수비수를 빼고 공격수로 선수교체를 시켰다.
발이 접질려 안타깝게 부상당한 김남일을 빼고 황선홍을 넣었다.
홍명보를 빼고 차두리를 넣었다.
김태영을 빼고 이천수를 넣었다.
수비도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이런 공격 일변도로 나간다는 것은 어쩌면 자살행위인지도 몰랐다. 차범근 해설자는, 히딩크의 이런 선택을 [다른 감독이라면 감히 하지 못했을 결정]이라고 극찬했다.
약발은 곧 나타난다.
왜?
이태리 선수들은 바야흐로 지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노장 선수가 많았고 전반의 격력한 몸싸움에 너무 힘을 뺐던 것이다. 또 절대적으로 한국 선수들이 지구력에서 우수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이태리 선수들이 전반에 화려하게 펼쳐 보였던 초고속의 기습 역공과 빠른 드리블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한국의 수비진은 부담이 없어졌다.
전반전에서는, 이태리 공격수의 등만 보고 뛰어 다녔으나... 후반전이 진행되면서 점차 이태리 선수들의 속도에 육박하고 결국은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들로부터 볼을 빼앗아 내는 것은 더 쉬운 일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대폭 강화된 한국의 공격 선수들은 새로 교체된 젊은 선수 2명과 노련한 노장 1명이 보강된 꼴이다. 특히 차두리의 투입은 이번 경기의 무게추를 완전히 빼앗아 오는 백미였다.
차두리를 우리는 무엇이라 불렀던가? 우리는 그를 인간기관차라고 불렀다. 우리는 그를 피아구분없이(?) 무조건 밟아버리는 탱크라고 불렀다. 우리는 그를 종니 무식한 강백호라고 불렀다.
결국 그는 제기능을 톡톡히 했다. 차두리와 부딪쳐 몸싸움하는 이태리 선수들은, 저~만치 나가떨어 졌다. 전반전에 한없이 밀리던 몸싸움의 한계를, 차두리는 완전히 깔아부셔 버렸던 것이다. 혹자는 차두리의 오버헤드킥을 보고 그의 투입의 의의를 찾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차두리의 쌩쌩한 돌진과 좌우전후 어디서나 번쩍번쩍 나타나서 전진하는 저돌성에 그 목적을 보았다!!! 사실 히딩크는 차두리가 직접 점수를 따는 것을 원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는 주로 우측에서 센터링을 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조치에도 불구하고 패색은 짙어져만 갔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이태리선수들은 지쳐가고 있긴 했지만 동시에 한국 선수들도 지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황선홍이 0.2초 이내의 아주 짧은 여유를 이용하여, 센터로 공을 살짝 차 주었다.
설기현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경기 중에 수없이 놓쳤던 이런 형태의 짧고 빠른 패스... 얼마나 많이 알까고 놓쳤던 것인가???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신통방통하게, 트래핑에 성공했다.
게다가 지쳐서 숨이 가빠진 이태리 수비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설기현은 골대가 아니라 그 수비수를 향해 세게 공을 굴렸다.
수비수에 스쳐맞은 공은, 출발단계에서 살짝 굴절되어 이태리 골키퍼의 판단을 순간적으로 지연시켰고... 공은 골피퍼의 손끝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그물을 흔들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이태리의 우세에서 [한국의 승리]로 굳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체력적으로 이태리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태리의 기습적인 초고속 역습 전법은 더 이상 그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연장전....
이제 그런 역전적인 분위기는 확연했다. 다만 언제 누가 추가 골을 넣느냐 하는 문제만 남았다. 개인적으로는, 승부차기까지 가면 한국이 불리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골든골로 승부를 가름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왜냐면, 한국 선수의 남은 체력은 이태리 선수들보다 분명히 우월했다. 그러나 그들은 젊었기에, 승부차기에서 실수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 것이다. 두 번이나 패널티 킥을 실축한 사례를 보아도 그점은 확실하다고 보았다.
전반부터 야비한(?) 손질을 전문적으로 자행하던 이태리 공격의 핵심이었던 토티가 오버액션이란 꽁수로 패널티 킥을 얻을려다가 오히려 퇴장당하고 만다. 이런 경우를 혹 떼려다 붙인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판정의 공정성에 의심을 품는 사람이 있을줄로 안다. 그러나 나의 견해는 다르다.
이태리 선수들은 전반부터 파울과 비파울의 경계선상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변칙 몸싸움 플레를 즐겨 해 왔던 것이다. 심판은 불공정 시비를 두려워해서인지, 옐로우 카드를 아꼈지만... 이런 순간에 와서 이태리 선수의 잔머리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은 것이다.
포르투갈의 자멸도 그랬지만, 이 경우도 이태리의 자멸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깔끔한(나쁘게 말하면 불쌍한) 플레이를 한 한국팀에 대한 보상 차원의 어드벤티지였다고 생각한다.
그후 다행히, 경기종료 4분을 남기고 기습적으로 골대 중앙으로 솟아올라 날아온 볼은...
지쳐서 더 이상 고공 점프할 다리 힘이 남지 않은 이태리 수비수를 지나쳐, 안정환의 머리를 스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가 안정환의 체력이 부족하다고 했는가?
90분 풀타임에 연장전 20분 이상을 더 뛰었던 안정환에게는, 그래도 고공 점프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태리는 화려한 실력과 훨씬 정비된 조직력을 가지고 있어 더 우수한 실력을 가진 팀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것을 체력과 투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압도해낸 것이다.
영국의 압제를 받은 아일랜드인들이 끈질기다고? 그렇긴 하다. 그러나 한국인의 끈질김에 비하면 발톱의 때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경기를 뒤집은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정말 한국팀은 강하다. 의심의 여지없이 강하다. 이것은 이제 완벽하게 증명된 사실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히딩크가 없었다면 이번 승리는 절대 불가능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어느 감독이, 공세적인 경기운영을 계속하고 있는 세계 초일류 팀 앞에서... 수비수를 놔두고 공격수를 3명이나 더 투입할 생각을 했겠는가? 다른 감독이라면 아마 전혀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국 선수들 군대 면제? 아 씨바 이제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문제를 가지고 깝작대지 마라.
그럼 이제부터 편하게 월드컵을 즐기자. 그리고 22일에 스페인 무적함대를 어떤 식으로 침몰시킬지 즐겁게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