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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6일 마가복음 4번째 강해(막1:35-45)|수요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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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7.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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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6일 마가복음 4번째 강해(막1:35-45)|수요 예배 설교
김상룡 | 조회 18 |추천 0 |2016.07.06. 23:14 http://cafe.daum.net/teo-community/gson/4
말씀: 마가복음1장 35-45절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우리 가운데 넘치기를 원합니다.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에는 의미 없는 행동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아기들이 움직이고 행동하는 일들에도 따져 보면 그 안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행했다고 하지만, 습관이라고 하지만, 불안해 지면 팔짱을 끼고 화가 나면 옆구리에 손을 얹는 행위도 다 의미가 있고 해석이 가능한 행동들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특별히 인생을 오래 사신 어른들의 경우 의미 없는 일들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젊은 사람들의 눈에는 왜 저 일을 하실까? 왜 쓸데없는 일을 하실까 라고 생각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 하신 일들이 미래에 대한 준비이거나 젊은이들에게 보여 주시는 모범이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일들을 기획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의미와 내용을 알고 우리는 탄식의 소리를 내고 그 하신 일들에 박수를 보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일들은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로는 제자 분들이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시기도 하셨으며 어느 때는 미래를 향하신 놀라운 가르치심과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전도하시고 나병환자를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셨을까? 왜 힘들게 다니시면서 전도를 하셨을까? 왜 나병환자를 고치시면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못하게 하셨을까? 특별한 설명이 없으 실 때가 많습니다.
말씀을 듣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뜻을 알아가시길 원합니다.
또한 말씀가운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무너뜨리시는 하나님 나라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시길 원합니다.
35절의 말씀 읽겠습니다.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께서 새벽에 밝아 오기 전에 한적한 곳에 나가셔서 기도를 하십니다. 사람들에게 혹은 장소 때문에 기도하는 것에 방해를 받지 않으시기 위함입니다.
많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새벽기도의 모범을 보이셨다고 이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기도는 시간과 장소와 방법에 따라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성경에도 없는데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도들이 있습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통성기도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기도들은 세상 교회 중에 자랑입니다. 그 중 큰 자랑거리는 통성기도입니다. 어떤 나라의 크리스챤들도 흉내 낼 수 없는 기도가 우리의 통성기도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통성기도라고 우리 말을 영문으로 표기를 하고 한국교회가 소리를 내어 각자 기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고 합니다.
한국교회의 놀라운 성장의 동력원을 하나님께 금식하고 새벽으로 밤으로 통성으로 기도한 것으로 풀이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금식하며 기도하는 기도의 기술에 따라 기도의 응답이 있었고 배 고파 하면서도 기도하고 잠 안자고 힘들게 기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소리를 질러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은 아닙니다.
금식하고 새벽기도하고 철야기도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고 매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말씀대로 살려고 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한국 교회도 한국 선교도 든든해 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기술과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 전심을 다하여 구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큰 은혜를 내리어 주십니다. 새벽으로 저녁으로 밤을 세면서도 하나님과의 사귐에 방해 받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 시몬 베드로 집에 찾아온 온 동네 사람들을 치유하여 주시느라 늦은 밤까지 힘드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새벽에 한적한 곳에 나가셔서 기도를 하시며 하나님께 구함과 고함과 사귐의 모범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심은 기도를 통하여 에너지를 공급 받는 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하여 신통한 능력이 생긴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며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 뜻을 따라가는 순종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바쁘시고 피곤하신 가운데도 예수님께서도 새벽에 기도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께서도 기도를 하십니다. 이른 새벽 한적한 곳에 나가셔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으시며 하나님께 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36-37절의 말씀입니다.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곳을 찾아 시몬 베드로와 제자분들이 찾아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찾는 다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들이 찾아 왔을 것입니다. 귀신 들린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픈 식구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시몬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흥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난밤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신 놀라운 사건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새벽부터 찾아 들기 시작합니다. 시몬과 그와 함께 하는 이들은 새벽 홀로 기도의 방해거리를 피해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을 찾아 와서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찾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된 사람들은 고기를 잡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자 놀라운 일들을 경험합니다. 이른 새벽부터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았으니 자신들도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 나가신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들 생각에는 이것이 사역인가? 아닌가를 생각하지 못할 시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난 밤 늦게 까지 사람들을 치유하신 일들을 생각할 때 당연히 같이 가주셔서 아픈 사람들을 고쳐 주실 줄 알았습니다.
제자분들의 마음은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는 예수님으로 예수님께서 유명해 지시는 일에 관심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예수님께서 위대하신 능력을 보여주시는 것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중요한 일이셨으며 세상 사람들로 하나님과의 원수 된 자리에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말하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그곳을 향하여 나가시지 않으십니다.
38-39절의 말씀입니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예수님께서는 다른 마을도 가시자고 말씀하십니다. 거기서도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행하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분명 가버나움에 가시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리를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귀신들을 내어 쫓는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셨던 곳이 가버나움이었습니다. 당시 갈릴리에 큰 도시였습니다. 제자 분이신 시몬 베드로의 집도 있었고 이미 어제 기적을 베푸시고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왔었기 때문에 그곳에 가시면 많은 사람들이 계속 주님 앞에 나오고 주님께서는 열심히 말씀을 전하실 상황을 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다른 마을로 가시자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다른 곳에도 주님께서 찾으실 양들이 있으신 것입니다.
작은 마을이든, 어떤 마을이든 복음에 소외 되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온 동네 갈릴리를 다니시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십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시는 것에 효율을 생각하지 않으시며, 전략을 따지지 않으시며, 아버지 하나님의 안타까우신 마음으로 온 갈릴리에 복음의 말씀을 전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원합니다.
40절의 말씀입니다.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님을 찾아온 병자의 이야기입니다. 나병환자라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나병이라는 말의 '나'가 한자로 '문둥병 나'이므로 나병은 문둥병을 한자로 표기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문둥병, 최근에는 한센병이라고 부릅니다. 나병은 오랜 잠복기간 후에 발병하면 신체가 변형되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편견이 많았던 질병이고 우리나라 한센병 환우들은 많은 차별을 받으며 소록도에 집단생활을 하게 한 질병입니다.
구약성경에는 한센병을 -차-라아스- 라고 말하며 이는 매, 징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왕 웃시아, 모세의 누나 미리암, 엘리사의 종 게하시 등이 이병에 걸린 것을 말하여 이들은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질병에 걸린 것으로 성경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레위기에는 한센병이 걸리면 제사장에 몸을 보이고, 제사장이 나병이라 판정하게 되면 진 밖에 나가 생활을 해야 하며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를 외쳐야 합니다.(레13)
치료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병이지만 만약 치료가 되면 제사장 앞에 가서 판정을 받고 산새 두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가져다 정결의식을 지내고 사회 복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레14:2-9)
이런 질병가운데 있는 환자가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이 나병환자는 세상의 온갖 차별과 멸시와 불편과 어려움 가운데 고칠 방법도 희망도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환자들이 치유 받고 귀신들이 떠났다는 소문도 들었을 것입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치유의 소망을 가지고 찾아와 꿇어 엎드렸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회복시키실 분은 예수님이심을 인정하고 꿇어 엎으려 '주님께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이 하실 수 있습니다.라’며 주님의 능력을 사람의 치료 능력으로 기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치실 것이라 믿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환자의 의지하는 능력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육신의 더러운 질병으로 부터 깨끗하게 하시며 질병으로 인해 더러워진 몸과 마음과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나병환자는 주님께서 원하시면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주실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치료에 대한 전권이 주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무엇인지 가능하며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사화복의 권능이 있으시다는 고백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께 나온 나병환자의 믿음의 고백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41-42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고쳐 주십니다. 41절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씀은 과거에는 민망히 여기셨다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헬라어-스플랑크니스데이스- 원어의 뜻은 찢어질듯한 안타까움이 있다. 측은하고 불쌍한 마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본 성경에는 불쌍히 여기셨다는 이 말을 -오르기스데이스- '노하셨다'는 의미의 단어를 쓰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질병이 있는 이들을 정죄하고, 치료받고 보호 받을 이들을 죄가 있다고 하여 내 쫓아 버리는 행동들에 대하여 분노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죄는 미워하시되 사람은 용서하시고 받아 주셨습니다.
죄 가운데 질병가운데 있는 이들을 죄인이라고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민망히 여기시며, 가슴이 찢어질 듯 한 안타까움으로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반면에, 질병가운데 있는 이들을 미워하고 차별하며 정죄하는 이들을 향하여 분노하시며 그들의 편견을 책망하시는 예수님 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도 깨끗하게 하십니다. 죄에 대하여 질병에 대하여 우리를 치유하시며 깨끗하게 하시며 죄 없다고 주홍같이 붉은 죄가 흰눈 같이 희게 되었다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여 주십니다. 그 좋으신 예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길 원합니다.
43-44절의 말씀입니다.
43.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예수님께서 치유된 사람을 보내시면 엄히 경고를 하십니다. 아무에게도 치유된 전후 사정을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가서 고침을 받았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만 '네가 율법이 명한대로 나병이 치유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리는 정결의식을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의 사역이 시작 되었지만 아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기다리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신다는 소문이 무한이 확장 되어 동네마다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확대되고 커지고 많아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뜻이 있으시기에 그 때를 기다리시기 위하여 나병환자에게 엄히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나병환자가 치료 되었을 때는 몸을 제사장에게 보여 확인하고 정결 의식에는 산새 두마리, 백향목, 홍색실, 우슬초를 드립니다. 또 8일이 지나서 흠 없는 어린 숫양 둘과 암양 한 마리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왜 고치기는 예수님께서 고치고 바치기는 왜 제사장에게 바쳐야 하는가? 그것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께서 성경의 말씀대로 그 사역을 이루어 가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전이 모형이라면 예수님은 실제 오신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직접 질병을 치유하시고 회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온전하게 이루시며 성취하시기 위하심을 이루시기 위하여 나병환자에게 제사장에 몸을 보이고 율법이 정한대로 정결의 의식을 다 이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뜻과 행하시는 일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모든 것을 회복하시기 위하심입니다.
잘못한 사람들을 처벌하고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죄악 된 것들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기 위함입니다. 죄 중에 빠진 이들을 하나님께 되돌아오게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부활 하게 하시며 누구든지 그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하는 놀라운 섭리를 실현 시키신 것입니다.
그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기를 원합니다.
45절의 말씀입니다.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질병에서 깨끗하게 치유 받은 사람은 나가서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였습니다. 고침 받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보다는 자신이 이제 완전하게 치유 받았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내가 이제 죄인이 아니라 완벽하게 나음을 입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광고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고침을 받은 사람이 광고하는 의도는 자신이 깨끗하게 되었다는 광고였지 결코 예수님의 사역을 돕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것을 이웃에게 알리는 것을 간증이라고 말합니다. 간증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자랑하는 좋은 찬양의 방법입니다. 또한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좋은 전도 방법일 수 있으며 믿는 이들에게는 신앙을 회복시키며 거룩한 시기심을 일으키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의 의도가 아무리 순수할 지라도 우선은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뜻과 생각이 아무리 스스로 거룩하다고 생각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겸손한 태도가 우선입니다.
질병에서 깨끗해진 사람은 절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는 자유롭게 동네 출입이 어려워 졌습니다. 회당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잃게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로 한적한 곳에 계셨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뜻과 의지를 가지시고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때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지만 때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의 상을 뒤집어 엎으시면서 때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언쟁을 하실 때도 있으셨습니다. 성전을 사흘 만에 다시 세우신다는 충격적인 말씀도 하셨지만 성전세를 바치게도 하셨으며 나병환자의 깨끗하게 된 것을 제사장에게 보이시게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행하신 의도와 의미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심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기 위함 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친히 십자가도 지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깊이 고민하는 한 주간 되길 원합니다.
#교육·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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