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 제1화 배덕의 순례자(2)
글쓴이 Blaze
아침 살라트를 알리는 아잔이 멎은 지도 제법 지나 이제는 아침 살라트 자체가 거진 끝나가고 있었다.
모두가 하루 다섯 번의 살라트를 드린다지만, 또한 그것이 권장사항이라지만 사실 제아무리 그녀라 해도 온전히 다섯 번의 살라트를 드린다는 것은 애석하지만 어불성설이었다. 어스름을 뚫고 흘러온 아잔에 잠을 깬 그녀가 하루 동안 하는 일이 결코 살라트 하나만은 아니었기 때문에.
차라리 속 편히 살라트만을 드릴 수 있다면 참으로 좋으리라. 때문에 하즈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요, 하주(순례자)로서의 삶을 꿈꿔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홀몸이 아니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고 하루라도 연명할 끼니가 있어야 부양이란 행위가 가능했고 그러기 위해선 끼니를 구할 '벌이'가 필요했다.
댕-댕-
살랑거리는 바람에 조용히 그 맑은 소리를 울리는 풍경을 배경으로 오늘도 잔나(Janna :낙원)사원은 어김없이 따스한 기운을 뿜어 올리고 있었다. 그 진원지는 사원의 조리장이었고 장본인은 그녀, 지브릴이었다.
새벽과 한 밤중의 희사와 살라트를 제외하고, 그리고 점심 때 잠깐 모친을 돌보러 집에 다녀오는 것을 제외하고 그녀가 하는 일이라곤 새벽을 제외한 하루 네 번의 살라트 직후 시간에 이렇듯 사원에서 밥을 지어 이곳에 상주하는 무슬림들과 찾아와 예배 드리는 신자들로 하여금 각각 희사하고 그것으로 끼니를 때워 연명할 수 있게 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 희사를 받아 끼니를 연명하는 신자들엔 그녀 또한 속해 있었다. 언제나 이곳에서 하루 네 번의 밥을 짓고 소량의 음식을 자카트로서 사원 측에서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쪼개서 모친의 식사를 만들고 새벽마다 희사하는 자카트를 만들고 그러고 남은 소량으로 자신의 끼니를 때웠다. 고작 하루에 한 번, 몸이 성히 남아날 리가 없었지만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버텨오고 있었다. 11살 이후로 햇수로 6년 동안.
그는 언제나 그것이 안타까웠다.
그의 나이 20세. 이곳 잔다 사원에 온 것은 11살의 나이로 공교롭게도 그녀 스스로 자카트와 사원에서의 일을 시작한 나이와 같았다.
물론 그의 하루 생활이야 그녀에 비하면 이보다 더한 호사가 없다고 해도 그다지 과장이 아닐 만큼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때 되면 일어나 예배를 알리는 아잔을 외치고 예배 드린다. 이어지는 식사와 얼마간의 명상. 시간은 금세 흘러 아침 점심 오후의 살라트로 연이어지고 그때마다 조리장에선 지브릴의 밥짓는 연기가 피어 오른다. 그는 그것을 첨탑에서 바라본다.
모든 것이 탁 트인 꼭대기. 모든 것이 다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위치. 거기서 내려다보고 있을라치면 자신이 꼭 가르드마타(지고천)를 내려다보는 마즈다라도 된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물론 불경한 망상이지만 그런 기분은 언제나 그를 지배해왔다. 그토록 편안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눈에 잡힌 지브릴은 저 아래 지극히 멀게만 느껴지는 사원 구석 조리장에서 오로지 자카트로 희사될 밥만을 준비한다. 언제나 뜨거운 연기에 휩싸인 채 그 열기로 인해 생겨난 땀을 닦아내기도 급급하다. 언제나 흠뻑 젖은 몰골로 예배 후 명상에 잠긴 무슬림들에게 식사를 알리고, 다음 식사를 위한 준비를 하다가 점심 때쯤 그날 치의 자카트를 받아 집에 있는 모친에게 전해준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식사준비 후 점심 살라트가 끝나면 식사를 알리고 또다시 준비하고...
'대체 숨쉴 겨를이나 있는 것일까...'
그 불꽃을 태울 숨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항상 그의 맘 한구석을 떠나가지 않는 안타까움이었다.
새하얀 쌀밥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연기가 그렇게 포근할 수 없었다. 조리장 전체가 뿜어내는 열기가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기쁘고 즐거웠고 소중했고 행복했다.
"식사시간이에요!"
그 한마디로 바쁘디 바쁜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물론 그녀 역시 굶주림은 피해갈 수 없다. 가장 일선에서 매일같이 그것을 접하는 그녀이거늘 오죽하렴인가. 그러나 그녀는 무슬림의 식사를 이루어야 했고 신자에 대한 자카트를 이뤄야 했고 모친의 끼니를 준비해야 했고 잠들기 전까지 3번이나 더 남아있는 살라트의 식사를 준비해야만 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배부름이란 과분한 감각이었다. 그저 잠들기 전에 단순히 위의 경련을 최소화 하기 위해 먹는 소량의 식사 아닌 식사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르고 행복했다. 그렇게 여겨왔다. 그 마저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아버지건 마즈다건 지옥의 악마건 누구하고든 대면했으리라. 물론 전자이기를 바래왔다.
"읏차."
식사를 알리기 무섭게 조리장으로 달려와 신자들에게 희사할 식사를 사원공터로 날러야 했다. 그것은 가뜩이나 힘겨운 그녀에게 있어 굉장한 중노동이었지만 6년 째 해오고 있는 일이었기에 그다지 버겁지 않았다. 무엇보다...
"힘들지? 언제나 그랬듯이 하나는 내게 맡겨."
"...응. 고마워요."
그런다고 날러야 하는 막대한 양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순수한 도움의 손길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을 느낄만한 희사였다. 그랬다. 그녀에게 있어 이 모든 일련의 일들은 마즈다에 대한 일종의 희사(자카트)였다.
남이야 알아주건 무시하건.
"...요즘엔 어때? 녀석들이 괴롭히지 않아?"
오붓하게 하나씩 집어 들고 공터로 가는 길에 그가 물었다. 척 보기에도 안쓰럽기 그지없다는 표정과 말투다. 그것을 잘아는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밝게만 대답했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그녀의 그 미소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었다. 감히 마즈다의 은혜와 사랑보다도 아름답다고 생각할 정도이니.
"응. 아무 일도 없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
언제나 그렇듯이 희사를 바라고 찾아온 이는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잔나 사원이 위치한 이 지역은 그다지 부유하지 못한 지역에 항상 가진 자들, 가진 지역의 부정한 만행에 수탈 당해온 힘없는 지역이었다. 언제나 부당한 고통만 당해온 그런 곳이었다. 그 중에서도 지브릴이 거주하는 곳은 빈민가라는 말조차 무색한 외곽의 허름한 거주구역이었다. 바로 코앞에 황야가 바라다보이는 거칠고 메마른 땅이었다. 그곳에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어둡기만 한 이 지역으로.
애초에 한 회로 쓴 것을 적당히 끊을라니 나누기가 쉽지 않네요. 그렇다고 한 번에 올리자니 너무 많고...안그래도 없는 재미가 더욱 반감되는 것 같아 슬픕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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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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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 시작인걸요. 힘내시고 건필하시길'-)/
배고파 지네요. 편집도 참 어렵죠. 힘내세요.:)
오오 재밌네요 건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