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봄을 맞기 위해 더욱 굳건한 믿음의 뿌리를 부처님은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잘 보입니다.
불자 여러분, 요즈음의 국가적 경제 난국 속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드십니까. 살아간다기 보다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이 더 합당한 표현일 것입니다. 총체적 불경기 속에, 장사하는 분들은 손님이 안와서 걱정이고 국가적으로는 외국의 투자가들이 등 을 돌린다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이 어려운 때에도 철없는 철새들은 우리의 산하를 날고, 절기의 순 환도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오는 군요. 언제나 지난 해를 가리켜 우리는 감상적으로 ‘다사다난했던 해’라는 말을 붙여 이야기하고 다가올 새해는 모두 ‘희망찬’ 해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병신년 새해 정초를 맞으며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통과하듯, 이 한 해가 얼마 나 견디기 힘들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일제의 압제나 신탁 통치의 경험이 없는 해방후 세대들이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IMF 경제 신탁통 치’에 대한 느낌이 얼마나 쓰라릴까요. 가장들은 눈앞에 닥친 실질적 고통에 시달리고, 노인이나 어린 아이들은 심정적 고통이 더욱 클 것입 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믿음과 희망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믿음이 제일 가는 재물[信財]이니 지옥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말고 선업을 지으면 지 옥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하셨으며, 어려움을 당하여 보아야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별역잡아함경』 권 12, 4)
우리는 어려운 때일수록 부처님 믿는 마음을 더욱 굳게하여 새롭게 일어설 수 있는 의지를 키워야 합 니다. “공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여래는 크게 인자하시나니, 이는 바로 두려움이 없는 자리라. 중 생들을 평등하게 보아서 라후라와 같이 여기며 모든 어려움을 구원하고 의지할 데가 없는 이에게 의 지가 되게 하느니라. 여래는 편안하게 하여주나니 이는 바로 안식처이다. 모든 친한 이가 없는 이에게는 그들을 위하여 친한 이가 되어 주며 모든 빈궁한 이에게는 그들을 위 하여 보배광을 만들어 주며 부처의 도를 잃은 이에게는 위없는 도를 보여주며 모든 공포하는 이들을 위하여 그들을 보호하여 주나니, 물에 빠진 이에게 배와 다리가 되어주는 것과 같으니라. (『앙굴마라경』)
“부처님은 마치 부모와 같이 중생을 사랑하고 길러주시기 때문에 큰 자비로 모든 어려움을 건져주시 니라[世尊 慈育衆生 如母如父 興大慈悲 慾有所濟].” (『출요경』 권 4, 「욕품」)
어려울 때일수록 부처님은 더욱 잘 보입니다. 흥청거리던 쾌락의 밤을 지새고 여명이 동터올 때 옷깃 을 여미고 자신을 돌아보듯, 경제 한파로 어려워진 이때 오히려 믿음을 굳건히 할 좋은 계기이기도 합니다. 식물은 다가올 가뭄에 대비하여 뿌리를 멀리 뻗치고 있으며, 실제 가뭄에 당해서는 가지와 잎의 성장 을 최소화하고 뿌리의 활동을 극대화합니다. ‘믿음’, 그것은 도의 으뜸가는 공덕의 어머니이시며, 일 체 모든 선의 근본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信爲道元功德母 長養一切[諸善根:『화엄경』 권6, 「현수보살품」]
아무리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차가와도 지혜로운 나무는 찾아올 희망의 봄날을 위해 튼튼한 뿌리를 내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흔들림없는 자신을 새롭게 하고 부처님과 함께 힘차게 출발하는 입춘의 아침입니다.
2. ‘첫’ 절기로 맞는 입춘
입춘은 일년 24절기의 첫 번째로 맞는 절기입니다. 새봄의 문턱인 입춘을 한 해의 시작으로 한 것은, 겨우내 추워 움추러들었던 몸과 마음을 털고 이르기는 하지만 희망의 새봄을 맞으려는 설레이는 기 대감에서일 것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시작과 출발의 시점은 중요한 것입니다. 새해 첫날을 ‘설’이라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듯 인생에서 ‘처음’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초하 루, 첫사랑, 첫날밤, 첫국밥, 첫손님이라는 말이 풍기는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민족은 출발과 시작의 자리를 소중히 여겨, 이를 맞는 태도는 마치 기도하는 마음인양 경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첫 정월을 맞아 전국의 모든 절에서는 정초 산림 기도를 봉행하여 한 해의 시작과 출발을 의 미있게 하여 주는 것입니다. ‘산(山)’ 같은 죄업을 소멸하고 ‘숲[林]’ 같은 공덕을 쌓아간다는 의미에 서 ‘산림(山林)’ 기도라 합니다. 금년에는 입춘이 정월 초순에 들어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농경 사회 에서 봄은 실질적인 출발의 장이기에 희망과 만복의 성취를 기원하는 소위 춘방구(春榜句)를 문짝마 다 내다 붙이기에 부산하였습니다. 집집마다 대문 양쪽에 저 나름의 취향에 맞추어 “입춘대길(立春大吉)·건양다경(建陽多慶)” “소지황 금출(掃地黃金出)·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천하태평(天下泰平)·가급인족(家給人足)”이라는 구절 을 써붙이는가 하면, 조금 그 격을 높여 “당상학발천년수(堂上鶴髮千年壽)·슬하자손만세영(膝下子孫 萬世榮)” “문영춘하추동복(門迎春夏秋冬福)·호납동서남북재(戶納東西南北財)” 라고 멋을 부리기도 합니다. 향촌의 노인들은 춘방의 글씨를 서당에 다니는 어린 손자 녀석의 손에 붓을 쥐어주어 쓰게하 여 제법 글씨 모양이 되었다 싶으면 자랑삼아 보란 듯이 내다 붙이기도 한다. 대궐에서는 문인들의 상춘(賞春)에 대한 글 중에서 잘된 것을 가려서 대전의 기둥이나 궐문에 붙이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습니다. 농가에서는 입춘날 보리 뿌리를 캐어서 뿌리 가 세 가닥 이상이 자랐으면 그 해의 농사는 풍년이요, 또 뿌리가 몇 개 자라지 못했으면 흉년의 징조 라고들 하였습니다.
입춘날은 율력법의 근거대로 땅에서 양기가 솟는 때이므로, 땅 속의 따스한 기운이 왕성하면 식물이 잘 자랄 것이라는 생각에 근거한 것입니다.
3. 입춘 기도의 진정한 의미
새해 새봄 새출발을 부처님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불자로서 당연한 자세라 하겠습니다. 더구나 묵은 먼지를 훌훌 털어내고 새로운 봄기운으로 단장하는 의식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입춘의 기도이며 불공입니다. 여기에 종교인이 아닌 일반인도 소망의 성취를 위해 춘첩을 써붙이는데 종교의 세계에서 그런 풍성 한 ‘꺼리’가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입춘의 ‘부작’입니다. 민중의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소망을 종교적으로 담아내어 그들의 욕구에 부응하여 나타난 것이지요. 불경의 말씀과 중생의 소망을 적은 부작, 부리부리한 눈과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매[鷹]의 머리가 3 개나 되는 매 부작도 있습니다. 중생의 소망을 담은 부작을 정성껏 준비하여 기도와 불공을 올리고 집에 붙이면 어찌 호법 성중의 가호가 없겠습니까. 그러나 입춘이 진정한 불자의 재일(齋日)로 자리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개인적인 기복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들 과 함께 따뜻한 새봄을 맞을 수 있도록 보살다운 큰 마음[大心]을 내어야 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 들이 언제 올지 모르는 봄소식을 기다리며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소년 소녀 가장이며, 사회 복지 시설에서 외롭게 생활하는 사람들이며, 교정 시설에서 참회의 삶을 사는 재소자들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불자답게 입춘을 맞이하려면 불공 기도와 함께 어려운 이웃들과 ‘모두 함께 나누는’ ‘회향’의 실천을 하여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부작과 함께 보이지 않는 마음의 부작은 이러한 회향의 적극적 실천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4. 풍성한 감성, 느낌으로 맞는 봄
입춘은 느낌으로 맞는 절기입니다. 아직 봄은 멀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파릇한 봄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봄이 문턱을 넘는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느낌을 상실한 시대라고 합니다. 이는 그 동안 영혼의 충만에 관심없이, 옆도 뒤도 아니 보고 육신의 배부름으로만 치달려온 것이 그 한 가지 이유이겠지요. ‘느낌’이 바로 인간의 본연 일진대, 이의 퇴화는 결국 이웃과의 단절을 부르고 …, 나아 가 끝없는 이기주의로 무장한 살벌한 ‘적’들만을 양산합니다. ‘느낌’이 종내는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것을 순리라고 한다면, 우리에겐 느끼려는 노력조차 없다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봄 을 느끼는 사람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합니다. 생활 주변에서 맞닥뜨리는 그 숱한 질서의 파괴들도 ‘남’을 ‘나’로 여기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된 잘못된 출발이라고 할 때, 이제는 우리도 ‘내포(內包:自 利)’에서 ‘외연(外延:利他)’으로 삶의 패턴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무릇 감성을 지성과 떨어뜨려 생 각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대로, ‘느낌’이 존재할 때 ‘깨달음’이 있고, 깨달음이 있을 때에 비로소 오 탁(五濁)의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마음을 열고 느낌을 갖읍시다. 그래서 사랑해야 할 것은 사랑하고 미워해야 할 것[三毒]은 미워하는 뜨거운 열정 속에 진정한 봄은 있을 것입니다.
5. 입춘 불공이 보여주는 민속 문화와 불교
이땅에 불교가 들어온지 1600년이 지나고 보니 세시풍속의 근간이 된 민간 의례와 불교 의례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가운데 이제는 하나의 전통적 세시 풍속으로 정립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집 단의 생활 양식에 기초한 민간전승문화(folk traditional culture)로서의 민속문화는 겨레의 토속 사상 에 바탕을 두고 형성된 것이므로 결국 그들의 토착 사상과 생활양식이 동시에 투영되어 있는 문화인 것입니다.
연중행사인 세시 풍속은 순환적이며 규칙적이고 계절적인 농경문화의 소산물입니다. 그것은 백성(과 거에는 대부분 농민)들의 소망이요 축제이며 노동력 재창출의 방식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들 중에는 불교와 직접 관련된 사월 초파일도 있고, 연등이나 백중과 그리고 동지와 같이 불교와 결합된 세시 풍속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세시풍속은 봉건제 하에서의 농경 문화의 산물이기에 지금과 같은 산 업 사회에서 그대로 전승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불교가 이러한 민중의 축제요, 놀이며, 노동 의례인 습속을 파괴시키거나 적대시하여 부정하지 않고 모두 포용하였다는데 있습니다. 이는 바로 미래 불교의 방향을 제시하여 주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민중의 삶에 적응하여 그들과 하나되려 는 노력이야말로 불교가 나아갈 바른 길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자비는 참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 며, 바르게 이해하려면 상대의 처지에 나를 낮출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불교는 민속 가운데 파 고들어 더욱 생활 속의 불교다운 불교로 인정되고, 민속은 불교라는 높고 넓고 깊은 교리 밑에서 그 근거를 더욱 넓혀갈 수 있으며 세련된 문화로서 제 구실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입춘의 불공 기도 는 이러한 의미에서 그 의의가 자못 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