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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히야친토 신부, 선교사(8.17)◀
△ 성인 히야친토 (Hyacinth)
1. 가톨릭 굿 뉴-스 성인록 ▷
성인: 히야친토 (Hyacinth)
축일: 8월 17일
신분: 신부, 선교사
활동지역: 크라쿠프(Krakow)
활동연도: 1185-12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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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설명 :
△ 크라쿠프의 성 히야친토 (Hyacinthus)
• 서폴란드의 유명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1185년 폴란드 남서부 슐레지엔(Schlesien) 근처 란카 성에서 태어난 성 히야킨투스(Hyacinthus, 또는 히야친토)는 크라쿠프와 프라하(Prague)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볼로냐(Bologna)에서 법학과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폴란드로 돌아와서 크라쿠프 교구장의 비서가 되었다.
△ 페드로 데 라식스의 성 히야친토 (Hyacinthus)에게 발현한 동정 마리아
· 1220년 주교와 함께 로마(Roma)에 갔다가 그곳에 와 있던 성 도미니코(Dominicus, 8월 8일)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고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다.
폴란드로 돌아와서 1222년 크라쿠프에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설립하고 그 수도원을 중심으로 여러 곳을 순회하며 설교를 하였다.
△ 크라쿠프의 성 히야친토 (Hyacinthus)
· 그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비롯하여 프로이센(Preussen)과 리투아니아(Lithuania) 전역을 돌며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257년 8월 15일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지칠 줄 모르는 선교활동을 계속하였다.
폴란드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는 그는 1594년에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 크라쿠프의 성 히야친토 (Hyacinthus)의 착의식(着衣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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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성인록 ▷
< 8월17일 폴란드의 사도 성 히야친토>
......... (안젤라 | 2010.08.15 Ud.)
△ 성 히야친토에게 발현하신 성모 -
The Virgin Appearing to St Hyacinth-CARRACCI, Lodovico
1594.Oil on canvas, 375 x 223 cm.Musee du Louvr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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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일 : 8월 17일
< 성 히야친토 증거자 >
- San Giacinto (Jacko) Odrovaz
- St. Hyacinthus, C
- St. Hyacinth of Cracow
(- 성 히야친토(작코) 증거자
- 성 히야킨투스 증거자
- 크라쿠프의 성 히야친토 )
- Apostolo della Polonia, Apostle of the North
(- 폴란드의 사도, 북방의 사도)
- (Cracovia, Polonia,1183 c.-15 agosto 1257 )
(-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1183년 부터 ~ 1257.8.15 까지)
- Born:1185 at Silesia
- Died:1257 of natural causes
(- 출생:1185년에 슐레지엔에서
- 사망: 1257년에 자연사)
- Canonized:17 April 1594 by Pope Clement VIII
(-시성: 1594.4.17, by 교황 크레멘쓰 8세)
*注: 위(한역韓譯/ '18.8.17, -아타시 韓)
- 도미니꼬회, 선교사
• 폴란드 출신인 히야친토는 사제품을 받은 후인 1217년에 로마의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살레시아 지방으로 가는 선교단의 일원이 되어 스칸디나비아를 비롯하여
프러시아와 리투아니아 전역을 돌며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폴란드의 사도로 공경을 받는다.
• 90년대 민주화가 되기 전 철의 장막속에 들어있었던 유일한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는
10세기 말경에 비로소 복음의 씨를 받은 나라이다.
물론 처음부터 전국민이 복음을 잘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들을 계몽하고 신앙의 뿌리를 깊이 박아 준 이는 성 아달베르토와 히야친토같은 분들인데,
그들은 동분서주하며 대 활약을 했던 것이다.
· 히야친토는 1185(1183)년에 태어났으며 저 유명한 서 폴란드의 귀족 오도로본스가의 출신으로
초등 교육을 크라코우와 프라하에서 받고,
그 후 이탈리아에 유학해 신학과 교회법을 연구한 후 박사 학위를 획득하고
그 후 크라코우에 돌아와 카돌베크 주교의 비서로서 활약했다.
칼돌베크 주교가 서거하자 그 후임 주교로서 히야친토의 백부인 콘스키가 임명되었다.
그가 임명되자, 1218년 교황께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 로마로 향했는데,
히아친토와 체슬라오라는 두 조카도 동반했다.
그때 로마에는 스페인의 성 도미니코가 신설 수도회의 인가를 얻기 위해 와 있을 때였다.
콘스키 주교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매우 감동해 폴란드에도 그들의 수사를 파견해 줄 것을 청했다.
그때 동반한 히야친토와 체슬라오도 이에 깊이 감명되어 즉시 입회해
성 도미니코에게 잠시 동안 수련을 받은 후 성녀 사비나 성당에서 착복식을 올렸다.
이로서 성 도미니코회의 폴란드에서의 큰 활로는 열린 것이다.
*성 도미니코 사제 축일:8월8일.게시판590번,1308번.
☞ 곧 귀국한 히야친토는 수도 크라코우에 도미니코회의 수도원을 세워
이를 하느님이신 성삼위께 봉헌하고, 그곳을 근거지로 여러 곳을 순회하며 설교를 했던 바,
곳곳에서 큰 성과를 거두게되었다.
그는 각지에서 대환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열렬한 기도와 고행의 생활은 기적을 행하게까지 되었으므로
사람들의 그에게 대한 신뢰는 지극해서 제각기 앞을 다투어 모여와 그의 설교를 들었던 것이다.
히야친토가 프러시아 지방에서 전교를 하기 위해 친구와 더불어 단치히시에 가려고 반달룸 강변에 도착한 때였다.
때마침 장마로 인해 잔뜩 불은 강물은 무섭게 구비지며 흐르고 다리도 배도 없는 지라 더욱 막연한 일이었다.
그때 히야친토는 잠시 땅에 무릎을 꿇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며 기도를 하고 일어나 강물 위에 십자를 긋고 나서 동료들과 같이 수도복에 붙은 망토를 깔고 그 위에 서서 건너게 되었는데 마치 배를 탄 것처럼 조금도 빠지지 않고 잘 건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그의 시성 조사록에 기록되어 있는 유명한 기적이다.
그는 중요한 도시마다 수도원을 세우고 일대 사도적 활약을 개시했다.
그러던 중 달단족의 내습으로 인해 많은 수도원이 파괴되었으나
그는 이런 불의의 재화에 조금도 실망하지 않고 즉시 복구에 착수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열의로 인해 어떤 때는 철야 기도를 했으며,
침대는 땅바닥이요 베개는 돌로써 고신극기의 생활을 하면서 그의 사도직을 완수 하기 30년간,
그의 육신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어 1257년 8월에는 중병에 걸려 쓰러지게 되었고,
그가 항상 사랑하던 성모 마리아의 대축일인 성모 승천 대축일에 병자 성사를 받고 세상에서 닦은 그 공로의 보수를 받기 위해 천국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의 나이 70세였다.
그는 폴란드의 사도로 공경받는다.
♬Ave Maria-schubert-빈소년합창단
https://youtu.be/zdbJ-mFELIY
ㅡㅡ끝.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