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초에서 만났던 시원이가 후배가 되어 교대를 졸업하고 고민끝에 전남임용고시를 보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고 연락을 해 왔다.
서울의 대학에서 한국무용을 하는 예지 소식도 궁금해 아이들에게 연락해 같이 산에 가자고 하고
예전 학교 때처럼 금호타이어 앞에서 9시에 만나기로 했다.
9시가 못되어 시원이가 오고 예지도 온다.
연식이는 장교라고 비상근무라 하고 육지수는 어제 서울로 갔댄다.
마트에서 일하던 승현이도 옥과로 간다했는데 궁금하다.
남자애들은 군대 다녀오느라 졸업이 아직이다.
날이 차갑지만 둘을 데리고 만연사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제각을 지나 건너편 키큰 전나무 아래 부도를 보여주려고 길없는 개울을 건너는데
개가 요란하게 짖고 사람 못 다니게 철망을 쳐 두었다.
아마 화순 사람들도 저 나무 아래 승탑이 있는 줄 모르는 이도 많을 거다.
비가 온다해 오감길을 걸을까 하다가 하늘이 밝아진 듯하여 왼쪽으로 개울을 건너 만연산줄기를 오른다.
가파른 경사를 쉬엄쉬엄 이야기하며 천천히 오른다.
교사가 되려는 시원이와 이제 졸업하고 계속 무용을 해야하는 예지 사이에
난 이야기 소재를 균형잡으려 맘속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시원이는 서울에서 사는 문제를 고민많은 듯하다.
육지수가 서울에서 살아보라고 권했단다. 서울이나 경기도 세종 등을 놓고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들 교육 이야기는 안하고 결혼에 유리하다는 이야기만 하여 내가 결혼 잘 하려고
선생이 되었나라는 생각이 들어 전남을 택했다 한다.
나도 뭐라 해 줄 말이 없다.
여전히 검도 도장을 하시는 아버지는 청궁마을 쪽으로 집을 지어 나가시어 산에서 훈련을 하시기도 한댄다.
시원이가 진정 전남의 좋은 교사로 살면서 행복하기를
자존심 강한 예지도 한국무용을 하면서 몸과 마음에 상처없이 즐기기를 마음 속으로 빌어준다.
능선길이 길다. 천천히 이야기하며 걸으니 숨이 편하다.
한시간쯤 걸어 주능 바위 아래에서 간식을 먹는다. 여전히 사진 찍기는 어색해 한다.
만연산 정상 300m 전 사거리에서 만연사 쪽으로 길을 잡는다.
아마 가마니도 길을 깔아 편하게 정비했다. 여기도 국립공원 지역인가보다.
길가에 복수초가 피었나 두리번 거려도 보이지 않는다.
노루귀 등도 안 보인다.
화순에서 일할 때 자주 다닌 길인데도 생각보다 길이 길다.
여러군데 가로로 돌아가는 길이 있고 데크도 만들어 두었다.
좋은 숲에 드나들게 아주 친절하다면서 나무 중 층층나무만 기억하라고 알려준다.
만연사가 보이는 쪽에서 길에서 벗어나 계곡을 건너 썩은 나무를 넘어 만연사로 들어간다.
주어진 길에서 벗어나보길 이 아이들에게 시범보여주는가? 어리석다.
모르겠다. 인생은 도전인지 도발인지, 가지 않은 길을 가 본다고?
자기가 그어 놓은 편협한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웅전에서 법회를 마쳤는지 많은 사람들이 음식이 수북히 쌓인 그릇을 들고 줄지어 나오고 있다.
8할 이상이 여성이다. 배롱나무에 달리 분홍 초록의 연등에 눈이 쌓이면 사진찍는 이들이 온다고 말해준다.
끝이 잘린 큰 전나무를 보여준다.
518 사적 표지도 본다.
차로 돌아오니 1시가 다 되어간다. 주유소 옆 두부집에 가 점심을 먹고 동구 저수지 아래
새로 생긴 화순군립석봉미술관에 들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