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나무와 벚나무
옻을 한자어로 ‘칠(漆)’이라고 한다. 칠(漆)은 검다는 뜻이기도 하다. 칠흑(漆黑)은 옻칠을 한 것처럼 검고 광택이 있음을 이른다. 여기서 옻은 생 옻나무에 칼집을 내어 수액을 채집한 것이다. 옻은 전통가구 목재의 윤을 내는 재료로 쓰여 왔다. 요즘 한방에서는 이 옻으로 암을 다스리는 약재로까지 개발하고 있다. 옻 건재는 백숙이나 보양 음식에 넣어 속을 따뜻하게 해주기도 한다.
나는 옻 알레르기가 있어 봄부터 여름까지 산행에서 무척 신경이 쓰인다. 나는 산행 중 산나물을 뜯거나 버섯을 따기 위해 등산로를 벗어나 숲속을 헤집고 다니기 예사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옻나무다. 나한테 옻나무는 뱀보다 더 무섭다. 나는 옻 알레르기가 민감해 개옻나무에 살짝 스쳐도 팔뚝이나 목덜미가 가렵고 연방 얼룩덜룩 솟아오르기 일쑤다.
옻 수액을 채집하는 옻나무는 참옻으로 심산유곡에 자란다. 지리산의 함양 산골정도 되어야 그런 옻나무 자생지가 있다. 웬만한 야산에선 참옻은 구경하기 어렵다. 우리 지역에서는 해발고도가 꽤 높은 산자락에 올라야 참옻을 발견할 수 있다. 나에게는 개옻나무도 참옻만큼이나 공포의 대상이다. 나는 지난 초여름 개옻나무에 닿아 옻이 올라 병원을 찾아 처방전 따라 약을 발랐다.
나는 그런 옻을 유심히 관찰한다. 가을부터 겨울에도 옻이 오르겠지만 이전 계절만 못하였다. 그 까닭은 옻을 타게 하는 요인은 옻나무 가지 잎사귀에 살갗이 닿으면 알레르기를 일으켰다. 이 옻나무 잎은 서리가 오기 훨씬 전부터 선홍색으로 물들어갔다. 근래 거창 금원산에서, 고향 벽화산에서, 창원 용제봉에서 옻나무 잎사귀가 빨갛게 물들어 감을 여름 끝자락 내 눈으로 확인했다.
벚나무는 도심 거리 가로수로 여기저기 심겨져 있다. 진해도 그렇지만 창원대로에서 공단 배후도로와 교육단지 일대는 수령이 꽤 되는 벚나무들이 줄지어 자란다. 우리 지역에선 삼월 말에서 사월 초 사이 벚꽃은 꽃구름으로 피어나 꽃 대궐을 연상시킨다. 벚나무는 창원 진해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있다. 지역마다 개화시기가 다르기에 시차를 두고 봄을 완상하기 좋은 벚꽃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벚꽃이다. 열흘 가량 화사하게 피어난 벚꽃은 한꺼번에 져버린다. 바람에 하롱하롱 지는 벚꽃도 운치 있지만 봄비에 꽃잎이 젖어 떨어지는 낙화도 볼 만하다. 꽃이 진 자리는 눈이 쌓이듯 켜켜이 쌓인다. 꽃이 진 가지마다 연초록 잎이 돋아 금방 녹음을 드리우는 벚나무다. 그 벚나무에서 오월 말이면 또 한 번 자유낙하가 일어난다. 그것이 검정 알 버찌다.
약간 씁쓰레하고 신 맛이 느껴지는 버찌다. 산벚나무에 달린 버찌는 약용으로 쓰이거나 효소를 담아도 된다. 가로수 벚나무 아래서는 버찌가 떨어지면 일시 얼룩이 진다. 차량이나 행인들에게 버찌는 짓뭉개져 그 즙이 나와 보도나 차도를 물들게 한다. 자동차를 운전해 가는 이들을 버찌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난다. 다수의 행인들도 길바닥을 물들인 버찌를 모를 것이다.
벚나무에서 세 번째 자유낙하가 낙엽이다. 그런데 벚나무 단풍은 다른 낙엽활엽수와 좀 다른 구석이 있다. 벚나무 단풍은 서리가 오기 전이라도 빨갛게 물이 든다. 여름날 가뭄이라도 심하면 고목 벚나무는 잎이 말라 낙엽이 일찍 진다. 여름 끝자락 이맘때 아침이면 아파트 뜰 벚나무 아래는 낙엽이 더러 쌓인다. 아파트 경비는 이른 새벽 빗자루로 벚나무 낙엽을 쓰느라고 분주하다.
앞서 숲속에 자라는 옻나무와 도심 벚나무를 소개했다. 둘의 공통점은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는 지표가 되는 수목이다. 옛글에 오동잎 떨어지는 소리에 가을이 왔다고 했다. 나는 주말 산행에서 빨갛게 물들어가는 옻나무 잎에서 가을이 온 낌새를 눈치 챘다. 출근길 아파트 뜰에서 경비원이 빗자루로 벚나무 낙엽을 쓰는 데서 가을이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 계절의 순환을 거스를 수 없다. 16.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