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130)/ 이란
세이크 사피 알딘 카네가와 사원 및 아르다빌의 성지 유적군
(Sheikh Safi al-din Khānegāh and Shrine Ensemble in Ardabil; 2010)
셰이크 사피 알딘 카네가와 사원은 시장과 공중목욕탕, 광장, 종교 건축물, 주택, 사무실 등이 있는 하나의 소우주로 건설되었다. 이것은 또한 사파비(Safavid) 왕조 창시자의 무덤으로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가장 크고 가장 완전한 카네가(수피들의 모임을 위해 특별히 설계하여 만든 종교 건축물로 영적 수련소이자 교화를 위한 장소)이자 가장 유명한 수피 성지이다. 이러한 이유로 셰이크 유적은 14~18세기의 성스러운 예술 작품과 건축물의 전시장이자 수피 성지 순례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 사원은 예술적, 건축학적 걸작이자 수피즘의 기본 원리를 대표하는 뛰어난 예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 수피즘 철학의 영향을 받은 일한국과 티무르 제국의 건축 언어는 새로운 공간 형식과 장식 패턴을 창조했다. 유적의 배치는 혁신적인 건축학적 표현의 원형으로 다른 카네가의 본보기가 되었다. 이 유산은 사파비 가문의 수장이자 유명한 수피 지도자의 성지로서 오늘날까지 이란의 성소로 남아 있다.
셰이크 사피 알딘 카네가와 사원 유산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나타내는 온갖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다. 대부분의 요소들은 보존 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몇 가지 변형을 가했는 데도 여전히 조화로운 이미지를 보여 주고 있다. 건축학적 설계를 통해 영적인 도정을 물질로 실현함으로써 오늘날에도 그것을 명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협약 당사국은 유적의 본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단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유적은 건축물과 수피의 영적 메시지 사이의 연관성을 더욱 긴밀하게 만들 것이다.
전체 유적과 개별 건축물의 설계 형태는 줄곧 유지되어 왔으며, 종교적 기능 역시 대부분 그대로 지속되어 왔다. 변화된 곳들도 대체로 건축학적 구조가 새 용도에 알맞게 보전되었으며, 재질과 기술의 진정성과 장소의 영적 성격도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보존 작업의 과잉 추진은 자제되어야 한다.
수피(아랍 어로 ‘양털’ 또는 ‘순수’)는 일반적으로 별개의 종파라기보다는 이슬람교에서 내면적 신비주의의 차원으로 간주된다. 수피즘은 9~10세기에 영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수피즘은 이슬람교의 전파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통합된 이슬람 문화를 창조하는 데 절대적인 요소여야 한다고 요구받아 왔다. 13~16세기에 수피 교사들은 자신들이 확립한 다양한 타리카트(tariqat; 길 또는 방식) 또는 질서에 입각한 특정한 방향으로 열정적인 종교적, 지적 문화를 이슬람 세계 전반에 꽃피웠다. 특히 중앙아시아에 많은 예술품을 남긴 것이 특징이다.
이란이 이슬람에 정복당했을 때 아르다빌은 이란 북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였으며, 몽골 제국이 침입할 때까지 그 상태로 있었다. 몽골 제국은 셰이크 사피 알딘(1252~1334)의 이름을 따서 지은 사파비 왕조가 출현할 때까지 3세기 동안 아르다빌을 파괴된 채로 방치했다.
셰이크 사피 알딘은 셰이크 자헤드 길라니(Sheikh Zāhed e-Gilāni)의 가르침을 따랐다. 스승이 사망하자 사피 알딘은 그의 뒤를 이어 자신의 타리카트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름을 얻게 되자 그 곳에서 사파비 수피 교단을 일으켰다. 사피 알딘은 나중에 자신의 사원이 되는 아르다빌의 카네가를 설립했다. 유적은 처음에 시장과 공중목욕탕, 광장, 종교 시설, 주택, 사무실 등이 있는 소규모 자급자족 도시였다. 사파비 통치자들이 재임하는 동안 이 유적은 사파비 왕조의 창시자를 모신 중요한 사원으로서 정치적, 국가적 중요성을 갖는 장소의 하나로 그 역할과 기능이 바뀌었다. 셰이크 사피 알딘의 뒤를 이은 카네가의 수피 지도자 이스마일(Ismail)은 사파비 왕조 최초의 왕이 되었으며, 이슬람교 시아파를 국교로 선포했다.
사파비 왕조의 군주들은 많은 예술 작품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조상을 모신 사원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데 아낌없이 돈을 썼다. 사원은 전 세계의 순례자들이 몰려드는 성소이자 14~18세기의 탁월한 예술적, 장식적, 고고학적 작품을 보유한 종교 유적이 되었다. 4개의 주요 건물은 연구자들에 의해 가장 중요한 구조로 건설되거나 크게 개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1300~1349년 : 이 시대에 사원의 배치가 정해졌다. 아르다빌의 셰이크 사피 알딘 카네가, 하람카나(Haram-khānā), 알라알라 돔(Allāh Allāh Dome), 사아트(Sāhat), 다르 알후파즈 홀(Dār al-Huffāz Hall), 샤니신(Shāhnishin), 중앙 마당, 새로운 칠라 카나(Chilla Khānā)가 건설되었다.
1349~1544년 : 이 시대에 샤 이스마일과 그의 모친의 돌무덤, 다르 알하디트(Dār al-Hadith), 야나트사라(Jannatsarā), 샤이드가(Shahidgāh), 셰이크 사피 알딘 영묘 남쪽의 돌무덤 마당이 세워졌다. 건축이 활기를 띤 것은 대부분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544~1752년 : 치니카나가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고, 샤 압바시 게이트(Shāh Abbāsi Gate)・정원 마당이 만들어졌다.
1752~20세기 : 학교, 화장실, 기계실, 온실 등은 대부분 20세기에 건설되었다.
이 등재유산은 오늘날까지 경배의 대상이자 순례 성지의 역할을 계속 해왔다.
이 유산은 1932년 이후, 이란 법률의 보호를 받아 왔다. 현재 발효되고 있는 법률을 보면 유적지와 완충 지역・경관 지대라 불리는 더 넓은 지역을 위한 특별한 보호 조항들이 마련되어 있다. 이미 마련된 이들 조항은 2010년 9월에 최종 승인된 ‘아르다빌 종합 계획’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다. 이란의 보호 기념물에 관한 어떠한 계획안도 이 법률 조항과 합치해야 하며, 이란의 기념물 보호를 맡고 있는 당국인 이란 문화유산 수공예 관광기구(ICHHTO)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등록된 유산을 위해 설립한 관리 조직은 셰이크 사피 알딘 카네가와 사원을 위한 법규와 ‘아르다빌 종합 계획’의 조항을 통합하고 있다. 보호 기념물들의 관리는 예산과 모든 주요 보전 작업을 승인하는 ICHHTO의 ‘고급기술자문위원회(High Technical Council)’에서 책임지고 있다. 소규모 작업과 일상적인 관리는 도시 계획 전문가가 주도하고, 기술자와 건축가・보존 전문 건축가・고고학자들로 이루어진 전문가 팀(ICHHTO 산하 셰이크 사피 알딘 유적 본부)을 거느린 지도 위원회가 보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