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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유성은 미칠것만 같았다.
반시간 전부터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않는 정심을 쫓아
남창성의 성문을 뛰어넘은지도 한참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혹시라도 담화영과 헤어질것이 걱정되어
적당히 중간에서 끝이없을듯한 정심에대한 추격을 포기하려던 하유성은
자신이 발길을 돌리려고 할 때마다
도망치던 걸음을 되돌려 공격해오는 정심의 얄미운 방해공작(妨害工作)에 말려들어
자신도 모르는새에 사람들이 오고가는 관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까지 이르러 있었다.
점점 음침한 기운이 감도는 야산(野山)으로 접어들던 하유성이
'아차 !'한 것은
바로 자신의 눈앞에 아무렇게나 만들어져있는 무덤군을 봤을때였다.
처음.무덤의 주변으로 괴괴로이 감돌고있는 음기를 접한 하유성은
재빨리 앞으로 달려가던 몸을 반듯하게 멈춰세우곤
주변을 전광(電光)과도 같은 안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도교의 천의통
(=육대신통중 마음으로 세상을 떠도는 여러 가지 기운을 읽는 신통력)
을 이용해서 무창의 근방에서 가장 음산한 귀기가 성한 장소를 애써 찾아내곤,
일심으로 열과 성의를 다해 하유성을 이곳으로 유인해 오는데 성공한
정심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득의의 감정이 잔뜩 떠올라 있었다.
유인해온 정심이나 유인당한 하유성은 꿈에도 몰랐지만
이곳은 무창제일의 윤락가가 밀집해있는
자금백은좌의 최하류계층의 사람들이 인생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일종의 공동묘지(共同墓地)였다.
인생을 복되게 끝마친 시신에서
별다른 염(念)이나 한(恨)의 기운이 발견되지 않는것처럼
인생을 비참하게 지탱하다 별다른 도인의 제혼조차 받지 못하고
땅속에 묻힌 시신에선 쉽사리 원(怨)과 한의 기운이 발산(發散)되곤 했다.
그런 기운을 가진 시신들이 오랜세월동안 쌓이고 쌓인곳이
바로 자금백은좌의 공동묘지였으니
이곳에서 발산되는 한서린 귀기와 음기를
명문도문인 화산파의 호연지기를 수련한 하유성이 몰라볼리 없었다.
하유성은 오래전부터 세상을 떠돌며 무위자연과 호연지기를 수련하는
화산파와 같은 황류계열의 도문과는 달리
부적술(符籍術)과 강신법(降神法)으로 민간에 유명한
모산파와 같은 청류계열의 도문은
예로부터 제자들이 괴이신랄(怪異辛 辣)한 비술을
몸에 익히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유성의 이마에서 한방울의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은
자신을 향해 괴악스런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는 정심이
바로 청류계열의 도문중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청성파의 도인이란 점을 확연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늦으면 내가 당한다 ! '
지금까지와는 달리 정심에게 커다란 위협을 느끼게된 하유성의 공세는
처음에 정심을 공격해 들어갈 때 보다 십배나 무서워져 있었다.
살기 !
하유성은 정심을 공격해가는 자신의 매화삼십육식에
어느덧 강렬한 살기를 실어 검기를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단숨에 천참만륙이라도 하려는 듯
도도히 흘러내리는 황하의 물결처럼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현란한 매화모양의 검편들을
만상진인의 유진에서 찾아낸 사일검법의 숨겨진 정수인 후삼식을 이용해서
여유있게 막아내는 정심의 입술은
어느새 여태껏 법왕각의 장서실에서 몰래 훔쳐서 배우기만 했을뿐
한 번도 외워본일이 없었던 역천의 진언을 외우고 있었다.
우주구천으로 원영이 흩어지지않고
천계로도 지계로도 유부로도
인간계로도 윤회하지 못하고 떠도는 생령(生靈)들이여 !
여기 그대들의 원념을 풀어줄 ... "
정심이 열심히 외우고있는 역천의 진언에 커다란 위협을 느낀 하유성이
연속적으로 이십삼검을 몰아치며 전력을 다해 소리쳤다.
도인주제에 뭐하는 짓이냐 ! "
하유성의 얼굴에는 간신히 터져나오려는 욕설을 삼킨듯
울분과 다급함의 감정이 난마처럼 잔뜩 엉켜있었다.
그러나 하유성의 부르짖음을 그저 지나가는 변견이 짖는다는 듯이
가볍게 외면해버린 정심은 절정의 초상비를 이용해서
하유성의 악에바친 공세를 단숨에 따돌려 버리곤 끝끝내 역천의 법술을 완성했다.
법술이 완성되자마자
정심이 주변에 아무렇게나 만들어져있는 무덤들을 향해 큰소리로 소리쳤다.
히히 이놈들아 빨랑 일어나서 저 생기가 풀풀 풍기는 아저씨를 공격해라 ! "
네놈 도대체 뭘 한거냐 ? "
자신의 검세를 귀신같은 신법으로 빠져나간 정심의 얄미운 앙천광소에
잔뜩 경계심이 솟구친 하유성이 재빨리 황류계열 에 전해져내려오는
유일한 술법서인 덕천경(德天經)에 쓰여있는
귀기와 사마지력에 항거하는 복마진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역천의 술법을 완성한 정심의 희희덕거림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던
공동묘지를 감돌고있던 귀기와 음기가 한순간에 사방팔방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늘로 뻗어올라간 귀기의 덩어리들이
단숨에 눈부시게 빛나고있던 태양의 양광을 가로막았다.
급격하게 어두워진 공동묘지의 주변에서 흡사 콩을 볶는듯한
둔탁하고, 음산한 소성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끼이익. 퍼벅 퍽. 끼이익. 퍼벅 퍽 ...
하유성은 황류계열의 도문에서 수련하는 제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도교고유의 법술이나 이술에대한 지식이 무척이나 부족했다.
그래서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믿을수 없는 광경에 경악을 금치못하던 하유성은
무덤을 뚫고 일제히 튀어나온
썩어서 진물이 흘러내리고있는 일단의 시신들을 바라보며
화산파의 장문제자로 발탁된후 검법일로에 정진하느라 완전히 잊고있었던
원초적인 공포에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떨었다.
원초적인 공포만큼 구천을 떠도는 귀령들에게 힘을주는 것은 없었다.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느닷없이 정심이 펼친 역천의 술법에의해 소환된 귀령들이
자리잡은 시신들은 썩어서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자신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태연자약한 정심과는 달리
순간적으로 공포와 혐오의 기색을 떠올린 하유성에게 일제히 흉성을 폭발시켰다.
우우우우우 ...
이럴수가 ! 대화산파의 장문제자인 나 하유성이
저 청성파의 악동한테 이렇게 당하다니 ... '
자신을 향해 일제히 흉성을 토해내며 달려드는 시신들의 물결에
곧바로 정신을 차린 하유성은 대번에 자신이 외웠던 복마진언이
정심이 역천의 술법으로 만들어논 일종의 결계를 완성시켰다는걸 깨달을수 있었다.
날 가지고 놀다니 ! '
내심 이빨을 부서지도록 갈아부치던 하유성은
전심전력을 다해 일으킨 휘황찬란한 검기로
가장먼저 자신에게 뛰어든 십여구의 강시
(=얼어죽은 귀신, 혹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귀신)들을 베어넘기고,
신검합일의 자세로 전신을 보호한채
두손을 이상한 모양으로 파지하고있는 정심을향해 화살처럼 쏘아갔다.
번쩍 !
같은 신검합일의 수법이지만,
백자연이 펼쳤던 불완전한 신검합일과
완벽하게 검과 몸이 일체가되어 공간을 순식간에 가로지르는
하유성의 신검합일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오는 한줄기의 강렬한 검기를 피하기위해
정심은 재빨리 뒤로 일장이나 물러서야했다.
그리고 또다시 이어질 하유성의 이격에 대비해서
다시 삼장정도를 더 뒤로 물러선 정심은
회심의 일격을 실패하자 곧바로 강시들에게 둘러싸여버린 하유성이
연신 강시들을 베어넘기는동안 자신에게서 발생되는 인간의 생기를 없애기위해
무중생유(無中生有)의 수법으로 맺고있던 수결을 풀고는
하유성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히히힛 어이 화산파의 검객 아저씨~
그쪽의 아가씨는 제법 얼굴이 반반한데 한 번 놀아주지 그래 ?
난 비무를 치루러 가봐야 하니까 여기서 즐겁게 놀아요오~ "
하유성의 복장을 터뜨리려는 듯 연신 손을 흔들어 보이는 정심이 수결을 풀자,
어느새 근처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던 강시가 펄쩍거리며 뛰어들었다.
크어어.
제법 귀기가 높은 원령이 씌웠는지,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강시를 향해
수결을 풀때부터 미리 운기를하며 준비하고 있었던 번천수를 먹여준 정심은
주변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강시들의 숫자가 슬슬 늘어나기 시작하자
재빨리 하유성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하유성의 미친듯한 부르짖음을 뒤로하고
전력을 다해 자신과 하유성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역천의 결계를 벗어나며
정심은 생각했다.
키킥킥 앞으로 일각만 버틸수 있으면 결계가 자연적으로 깨질테니까 죽지는 않겠지
뭐 일각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건 모두 못된 강시들의 잘못이지
이 정심님의 잘못은 아닐테니 악령이 되어 나에게 해꼬지를 할수도 없을테고 ...
아무튼 이렇게 오늘도 참 보람된 하루를 보냈으니
마지막으로 유장문인한테 아부나 하러 가볼까 ? '
동그란 두눈을 떼굴떼굴 굴리며 생각을 굴리는동안
어느새 인간계에 일시적으로 생겨난 조그만 유계처럼 변모된 야산을 완전히 빠져나온 정심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남창으로 향하는 관도를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군웅들에 둘러싸인채 기연화는 정신이 없었다.
어제까지만해도 자신에게 변변찮은 인사조차 보내지 않았던 강서무림의 군웅들은
마치 기연화를 단 한순간이라도 혼자 놔두면 큰일이라도 난다는 듯
기연화에게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
본래 무림인들의 생리(生理)는 워낙에 떠들썩한 것을 좋아했지만
기연화에게 쏟아지는 뜨거운 관심은 그종류가 달랐다.
게중에 무공이 고강한 강서성의 명숙들이
기연화가 전개한 검강에 낯빛을 파랗게 물들이고 있는동안,
오랜동안 삼류문파 취급을 받았던 검문출신의 기연화가
강서성을 대표하던 금검보의 후기지수인 대검 황대웅을 물리치고
금년의 강서군웅대회를 제패한것에 크게 고무된
강서성의 모든 삼류문파 출신의 무림인들은
흡사 기연화가 자신의 문파라도 되는냥 열광하고 있었다.
수없이 건네지는 상찬의 말과 환호성에
기연화는 비무대를 내려온후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한동안 이리저리 떠밀려 다녀야만했다.
남들같으면 단한번만이라도 경험해 보고 싶을만큼
위풍이 당당한 기연화의 모습이었지만,
평생도록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주변의 아부어린 찬사에
오히려 내심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있던 기연화를 구원한 것은
강서군웅대회가 열리는동안 줄곧 행방이 묘연했던 곽잔양이었다.
위대천과 풍운각에 들어선 곽잔양은
사흘밤낮동안 진정한 강서제일의 두주불사(斗酒不辭)가 누구인지를 놓고
일대주전 (一代酒戰)을 벌여야만 했다.
술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곽잔양이었지만,
위대천 또한 곽잔양에 버금가는 애주가이자 폭주가였다.
처음.그저 통쾌하게 술을 마실만한 지우를 만났다는 듯
몇순배의 술잔을 돌려마시던 두사람은
점차 얼큰하게 취흥(醉興)이 일게되자
점점 술꾼들 특유의 광태를 부리기 시작했다.
사실 위대천의 못된 술버릇은 이미 금검보 뿐만이 아니라
금검보와 웬만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잘알고 있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잔양이 위대천의 광태에
짐짓 못이기는척 동조한 것은 두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곽잔양은 무림중의 제법 큰 명성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검문에 틀어박혀 있느라 위대천의 술버릇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둘째로 그자신이 담화영에게 받은 모욕과 억울함에 가슴이 터질 듯 했기에
술로써 자신의 억울한 심사를 풀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두사람의 술꾼이 나름대로 술을 마셔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만났으니
쉽사리 자리를 파할수 없었던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광태의 와중에서도 처음엔 그저 술이 좋아 술이 술을 마시던 두사람의 주당은
점차 한 번도 져본일이 없었던 자신의 술에대한 아성(牙城)이
상대방에게 위협을 받는다는 사실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본래 술이란 즐기면서 마셔야만 장복할수 있는 것이다.
두사람의 주당이 술을 마시면서
상대방에 대해 경계심과 호승심을 동시에 품기 시작하자
두사람은 마치 하나의 사슬에 칭칭 감겨버린냥 술의 포로가 되기 시작했다.
술꾼의 마음은 술꾼이 아는법.
술잔을 나누며 곽잔양과 위대천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비록 오늘 저자와 손을 겨뤄보진 않았지만
이번에 내가 저자보다 술에 먼저 골아떨어진다면
무공의 대결에서 진것보다 더욱 처참한 기분이 들 것이다. '
서로를 향해 호탕한듯한 주당의 미소를 지어보이며 술잔을 돌리는 그들의 얼굴이
반드시 상대방을 골아떨어지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삐딱한 호승심으로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자자 빨리 마십시다 !
어째 곽형의 술잔을 드는 손이 미미하게 떨리시는 것 같습니다 ? "
허헛 그럴리가요 ! 오히려 위형의 안색이 선홍빛으로 물든 것을 보니
이 곽모가 심히 걱정이 되는데
혹시 술자리를 그만 파해야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
무슨 그런 말씀을 ..자 빨리 마십시다 ! "
두명의 주당들은 삐뚜러진 자신들의 호승심을 만족시키기위해
삼일동안이나 그런 말들을 주거니 받거니하며
강서군웅대회에 대비하여
금검보의 창고에 하나가득히 쌓여있던 술통들중 상당수를 축내고 있었다.
나흘째의 점심무렵이 지나자 곽잔양보다 내공에서 밀리는 위대천은
나흘간 쌓인 주독을 이기지 못하고
술잔을 들어올리다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결국 검문의 자존심을 지키기위한 금검보와의 일전(?)에서
위풍당당하게 승리를 거둔 곽잔양은
그제서야 홀로 분투하고있을 기연화에게 마음이 쏠렸다.
삼매진화
(=체내의 순수한 내공으로 불을 일으켜 체내의 이물질을 태우는
지고한 내공의 수법)
를 일으켜 나흘동안 쌓였던 주정을 모조리 태워버린 곽잔양은
물어물어 최후의 비무가 벌어지고 있다는 연무장으로 달려왔다.
" .... ? "
비무대의 한편에 잔뜩 몰려있는 군웅들의 모습에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잠시 주춤거리던 곽잔양은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오는 군웅들의 찬사만으로도
기연화가 강서군웅대회를 제패했다는 것을 알아챌수 있었다.
노회한 강호인답게 적당한 위압과 겸양의 모습으로
군웅들에 둘러싸인채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던 기연화를
재빨리 자신의 뒷편으로 빼낸 곽잔양이
자신을 불만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군웅들을 향해
연신 손을 들어올리며 포권을 해보였다.
" 허허헛 죄송하지만 우리 검문지주께서는
격전을 벌이셨으니 이젠 좀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만약 자신들을 가로막아선 인물이
검문의 유일한 장로인 곽잔양이 아니었다면
군웅들은 절대로 기연화를 놓아주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을 온몸으로 틀어막은 상대가
꽤나 성질이 강팍하고,
수가 틀리면 먼저 검을 휘두르고 본다는 곽잔양인 것을 알아본 군웅들은
일제히 쓴입맛을 다시며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끼리 삼삼오오 짝을지어 떠들어대기 시작한 군웅들을 뒤로하고
그제서야 뒤로 빼돌린 기연화를 찾기위해 두리번거리던 곽잔양은
금방 기연화가 있는곳을 찾을수 있었다.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
군웅들의 모든 관심이 기연화에게 집중되는사이
독자인 황대웅의 안부가 걱정되서 먼저 자리를 뜬 황대구를 대신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귀빈석을 유유히 벗어나던 유진청은
자신을 부르는 기연화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향해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기연화의 상기된 얼굴을 바라보던 유진청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저렇게 어린나이에 벌써 저런 기도를 보이다니 ...
정심이 이곳에 없는 것이 다행이구나 ! '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고있는 유진청의 모습에서
한줄기의 범접하기 힘든 위엄이 솟구치자
기연화는 어려서부터 전혀 흔들림이 없었던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 청성파의 유진청 장문인이 맞습니까 ? "
기연화의 물음은 사실 굉장히 무례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기연화를 자신에 버금가는 검객이자,
당대의 검문지주로 인정하고 있던 유진청은
기연화의 물음을 그리 무례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맞았네. 내가 바로 청성속가의 장문인을 맡고있는 유모라네. "
이십년간 강서제일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일대의 검객다운 당당한 기도였다.
이날까지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질문을 하고싶은 것은 기연화인데
오히려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듯한 유진청의 모습에
기연화는 잠시동안 압도당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기연화가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어하는 의문이 무엇인지 잘안다는 듯
근엄하던 평소의 표정을 부드럽게 푼 유진청이 말했다.
" 그래. 자네라면 나에게 하고싶은 말이 많을테지.
일대검협이었던 기대협께서 자네같은 후계자를 남겨놓을 줄이야 !
분하지만 삼백년동안 강서성을 지배했던 검문의 저력이
대단하다는걸 이 유모도 인정해야겠군. "
그것으로 끝이었다.
기연화는 끝끝내 유진청에게 이십년전의 강서군웅대회에서
부친인 유진청과 벌어졌던 승부에대해 물어보지 못했고,
유진청 역시 그점에 대해 굳이 설명하려하지 않았다.
처음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발걸음으로
자신의 눈앞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있는 유진청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연화는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청성파 ... '
기연화가 유진청과 대치하는 것을 보고 얼른 다가오던 곽잔양은
기연화의 두눈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눈동자속에서 유진청의 점점 멀어지고있는 뒷모습은
갈수록 크게 부각되고 있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기연화의 젖동냥을 다녔던 것은 곽잔양이었다.
비록 요근래에 일년정도 떨어져 지내기는 했지만
이십년간 절치부심(切齒腐心)해온 자신 역시
본색을 한 번 보고는 전의를 잃어버렸던 유진청의 진면목에
흔들리는 기연화의 내심을 모를리 없었다.
오랜만에 흡사 아버지가 딸을 대하는듯한 눈빛으로
기연화를 바라볼수 있게된 곽잔양이
살며시 기연화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연화야 보았느냐 ? "
곽잔양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격동되어있던 기연화가 무심결에 대답했다.
" 보이기는 하는데 아직 ... 볼수가 없군요. "
" 그래. 그럴 것이다. "
기연화의 대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곽잔양은
기연화의 무위가 어느덧 자신과 동격에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그때 기연화가 한마디를 더했다.
하지만 ... 곧 뛰어넘을수 있을 것 같아요. "
처음의 머뭇거림을 일소해 버리는 기연화의 확신에찬 뒷말에
곽잔양은 방금전에 떠올렸던 자신의 생각이
아주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헛 아니구나 아니야 ! 연화는 벌써 이 늙은이를 훨씬 뛰어넘었다.
이렇게 금방 유가녀석의 그림자를 벗어던지다니 ...
이 늙어 쓸모없게된 노필부는
젊은시절같이 유가녀석에게 감히 달려들지조차 못했거늘 ... '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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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읽었읍니다
잘 보고갑니다
잘봅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