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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3: 1. 바닷가에서 2. 큰 무리가 모여 들거늘 3. 비유의 말씀으로 이르시되
제 13 장 : 천국 비유들
1. 네 씨앗의 비유 ( 13: 1-9. 막 4: 1-9. 눅 8: 4-8 )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말씀을 전하셨다.
그는 배에 올라가 앉으셔서 말씀하셨고, 사람들은 해변에 서서 그의 말씀을 들었다.
그것은 야외 집회이었다. 그는 무리에게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것은 본장의 일곱 가지 비유들 중 첫 번째 비유이다.
마 13: 1. 바닷가에서 -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
1] 그 날
'그것' 또는 '그 사실' 등 바로 앞 내용을 가리키는 말인 '에케이노스'(*)가 첨가되었다.
'그 날'이라는 말은 어느 특정한 사건 또는 일이 발생된 바로 그 날을 뜻하는 말이다. 과거의 어느 막연한 시기 혹은 시간을 가리키는 말인 '그 무렵 쯤'의 뜻을 가진 '그때에'(*, 토테)와는 구별되는 말이다.
본문은 천국 비유를 베푸신 그날은 자신의 육적(肉的) 모친과 그 동생들이 주님을 찾아온 바로 그 날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였다. 예수의 참 형제자매와 참 부모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임을 가르치셨던 날과 같은 날이다.
예수가 바로 이날 자신의 육적 가족을 만나 대접하는데 힘쓰지 않고 영원한 영적 가족이 될 자들에게 천국에 대한 비유를 가르치는데 먼저 힘쓰셨다. 이것은 예수가 죄인들을 당신의 가족으로 여기시며 그들에게 천국을 가르치시느라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강력히 암시해 주고 있다.
마태가 굳이 '에케이노스'를 사용한 것도 이 이유이다.
2]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예수께서 자신을 찾아온 가족들과 잠시 집으로 들어가셨다가 다시 집 밖 바닷가로 나오시는 장면일 것이다.
여기 '집'은 갈릴리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집으로 추측된다. 예수는 집안에서는 비교적 구원된 무리들, 즉 12 제자를 중심한 그 가족과 동료들을 위한 제자훈련에 힘을 쓰셨다.
반면에 옥외(屋外)에서는 많은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이적을 행하셨다.
그 장소는 산(5-7장의 산상수훈), 바닷가, 길가, 뽕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등 다양하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든지 그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말씀을 전파하셨다.
3] 바닷가에 앉으시매
갈릴리 바다 혹은 디베랴(뜻 : 좋은 관찰. 이름은 디베라 성에서 가까운고로 생겼다.) 바다, 게네사렛 호수라고 불렸다.
이 해변은 예로부터 레바논 산과 어우러진 푸른 물로 인해서 풍경이 아름답다. 어업(fishery)이 성해 소금에 절인 어류들이 멀리 스페인에까지 수출되었다.
전 국토가 메마르고 험한 팔레스타인에서는 기름진 곳으로서 디베랴, 벳새다, 가버나움, 고라신 등의 많은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다.
예수께서 비교적 한적한 시간과 때를 택하여 이곳에 앉아서 둘러싼 무리를 향하여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은 단순한 목가풍(牧歌風)의 수채화적 감상을 넘어 일상생활의 타성(楕性)을 깨는 진리에 귀 기울이는 구도자(求道者)들의 기쁨과 진실함을 느끼게 해준다.
마 13: 2. 큰 무리가 모여 들거늘 -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
1] 큰 무리가
원어 '오클로스'(*)는 단순히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을 가리키는 말인 '플레도스'(*)나 '데모스'(*)와는 달리 천민 집단, 속(俗)된 무리라는 뜻으로 일종의 가치 판단이 개입된 말이다.
'오클로스'는 유대 교권주의자들이 율법을 잘 준수치 않고, 그럴 능력조차 갖고 있지 않는 낮고 천한 지위나 형편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모욕적으로 부르는 히브리어 '암 하아레츠'(* '땅의 백성들'에 해당하는 헬라어)이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는 예수께 달려 나온다거나(13: 2), 예수를 찾아다닌다거나(눅 8: 40), 예수의 전도 여행에 줄곧 동행하던(막 5: 27. 눅 7: 9) 무리들을 지칭하여 당시의 상류층 사람들이 부르던 말이다.
따라서 '오클레스'는 예수의 친족보다도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 막 3: 31 –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대부분의 경우에 그들은 예수를 물질적이고 일시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구원자로 이해하였다. 인간의 영원함과 관련된 영혼의 질병을 치유해 주시는 메시아로서는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께서 천국 비유를 전파하시던 당시에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2]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소형 어선은 보통 하나의 돛대와 두 개의 노(櫓)가 달렸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러한 배를 타시게 되었다.
이 배는 갑자기 많은 사람이 모여들므로 순식간에 형성된 군중 집회에서 하늘나라의 새 소식이 조용하게 때로는 엄숙하게 선포되는 설교강단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대개의 학자들이 인정하듯이 육성(肉聲) 이외의 특별한 기계설비가 없던 때였으므로 군중 집회였다 하더라도 예수의 호반(湖畔) 설교의 분위기는 매우 고요하고 진지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 사역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자주 이루어졌다. 야외 집회, 노천 집회를 하신 것이다. 그는 배에 올라가 앉으셨다. 그것이 그의 설교 자세이었다.
설교 단상은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청중들은 해변에 서서 그의 말씀을 들었다. 그것이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자세이었다.
마 13: 3. 비유의 말씀으로 이르시되 -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
1]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예수의 비유 교수법(method of teaching)은 다양한 계층의 청중에게 비유를 활용하여 영적 진리를 유효적절하게 가르친 사실은 어느 누구보다 탁월하셨다.
'비유'(*, Parable)란 '곁에'라는 뜻의 '파라'(*)와 '던지다'는 뜻의 '발로(*)의 합성어이다. 이는 '옆에 던지다'라는 뜻으로 한 사물을 또 다른 사물 곁에 놓아두고 대조, 비교함으로써 그 사물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게 하는 진리 교육의 한 방법이다.
어떤 것을 이해하기 위하여다른 것과 비교하여 표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헬라어로는 ‘파라볼레’(parabole)이며 ‘사물을 나란히 놓는다, 옆에 놓는다’는 뜻이다.
구약 성경에서는 ‘마샬’(mashal)이란 단어가 비유로 번역되었다. ‘마샬’은 비교를 통해 어떤 사물의 속성을 나타내는 표현법을 말한다.
(1) 속담
* 삼상 10: 12 - 그 곳의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
* 삼상 24: 13-14 – 13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14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 겔 16: 44 - 속담을 말하는 자마다 네게 대하여 속담을 말하기를 어머니가 그러하면 딸도 그러하다 하리라.
(2) 잠언
* 잠 1: 1 -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3) 어려운 문제를 다루는 심오한 가르침
* 욥 27: 1-3 – 1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2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 욥 29: 1-3 – 1 욥이 풍자하여 이르되, 2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3 그 때에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치었고 내가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에서도 걸어다녔느니라.
(4) 우화적인 특성을 지닌 것
* 겔 17: 3-6 –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색깔이 화려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꺾되 4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인의 성읍에 두고 5 또 그 땅의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 가에 심더니 6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 아래에 있었더라.
* 겔 24: 3-5 – 3 너는 이 반역하는 족속에게 비유를 베풀어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가마 하나를 걸라 4-5 건 후에 물을 붓고 양 떼에서 한 마리를 골라 각을 뜨고 그 넓적다리와 어깨 고기의 모든 좋은 덩이를 그 가운데에 모아 넣으며 고른 뼈를 가득히 담고 그 뼈를 위하여 가마 밑에 나무를 쌓아 넣고 잘 삶되 가마 속의 뼈가 무르도록 삶을지어다.
(5) 비밀한 말씀이나 불가사의한 말씀
* 시 49: 4 -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 시 78: 2-3 – 2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3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 잠 1: 6 -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 겔 17: 7-8 – 7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하나가 있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어진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뻗고 가지가 퍼졌도다. 8 그 포도나무를 큰 물 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라.
(6) 조롱 섞인 노래
* 미 2: 4 - 그 때에 너희를 조롱하는 시를 지으며 슬픈 노래를 불러 이르기를, 우리가 온전히 망하게 되었도다. 그가 내 백성의 산업을 옮겨 내게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 밭을 나누어 패역자에게 주시는 도다. 하리니
* 합 2: 6 - 그 무리가 다 속담으로 그를 평론하며 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곧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볼모 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여.
이처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약에 나오는 비유들은 예수님에 의해 사용되었는데 그 목적은 비난자들에게 알아듣지 못 하게 하면서 직접적인 핍박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과 하나님의 말씀, 나라를 사람들이 알기 쉽게 이해시키기 위함이었다.
비유로 묘사된 예수님의 말씀과 이야기들은 짤막한 역설적인 교훈(막 7: 17), 잠언(눅 4: 23), 의미가 숨겨진 비유(마 13: 3-9), 짧은 이야기(마 13: 33), 긴 이야기(눅 12: 6-21) 등이 있다.
예수께서는 천국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세상 나라들에 대해서 많은 관심이 있지만, 사람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관한 것이다.
세상 나라들은 죄악 되어 결국 멸망할 것이지만, 천국은 영광스럽고 영원할 것이다.
2]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여기 사용된 정관사(*)는 대표 단수로서 어떤 계층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결국 '씨 뿌리는 자'란 농사를 짓는 모든 사람, 즉 농부를 가리킨다. 이 말 속에는 '농부라면 일반적으로 다 경험하듯이'라는 뉘앙스가 은근히 내포되어 있다.
여기서 '씨 뿌리는 자'란 말은 결국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스라엘을 위시한 중근동 지방에서는 밭에 씨를 뿌릴 때 농부가 직접 손으로 갈아놓은 이랑에 뿌리기도 하고 가축을 이용하여 가축의 등에 씨앗 담은 주머니를 달아 이동할 때마다 주머니에 뚫린 구멍으로 조금씩 씨앗이 떨어지게 하여 씨앗을 뿌리기도 한다.
본문의 비유는 씨 뿌리는 방법에 대한 관심보다 뿌려지는 밭으로 비유된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1) '씨 뿌리는 자'란 세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①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는 선지자들의 예언에서 유추(類推)해 볼 수 있다.
특히 예레미야는 하나님 자신의 의지를 예언하면서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라"(렘 31: 27)라고 선포했다.
실로 남은 자들의 거룩한 씨는 하나님에 의해 보존되고 심기어져서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완성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② 예수 그리스도 자신.
예수 이전에도 선지자와 많은 교사들이 율법의 씨를 부지런히 뿌렸으나 많은 결실을 보지 못했다.
예수 자신은 밭의 종류에 따라 엄청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사랑과 복음의 씨를 뿌리신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라고 직접적으로 표현된 37절에 따라 예수를 씨 뿌리는 자로 이해하는 경우이다.
이 비유는 자서전(自敍傳)적 요소를 가진 셈이다(Buttrick).
③ 모든 기독교인들.
귀중한 복음의 씨를 뿌린다고 하는 것은 먼저 믿은 자들의 특권이자 의무이다.
구원받은 자녀들에게 주님께서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 5)라고 약속하셨다.
사도 바울도 성도들로 하여금 신령한 씨를 뿌리도록 권고하였다.
* 고전 9: 11 -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2) 씨앗의 의미
씨앗은 크게 세 가지의 조건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해하기 쉽게 콩을 예로 들어본다.
콩은 쉽게 두 쪽으로 갈라진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떡잎이다. 이것은 콩이 싹이 터 성장하기까지 영양소의 역할을 한다. 두 떡잎 사이에 순이 있다. 여기에서 뿌리와 새싹이 자라나 콩 줄기가 된다. 떡잎과 순을 감싸고 있는 껍질,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씨앗의 모양이나 크기는 다양하다. 퍼지는 것도 씨앗이 다 형성되면 모체로부터 떨어질 때 스스로 멀리 흩어지는 봉숭아 같은 것이 있다면 민들레나 할미꽃처럼 바람에 날려가 퍼지거나 짐승이나 사람의 몸에 붙어 흗어지는 것도 있다.
씨앗의 주위에 과육이 있어 이 과육을 새나 짐승이 먹고 씨앗은 소화되지 않고 배설되어 생존하기도 한다.
농부는 씨앗의 크기나 싹튼 뒤에 자라면서 차지하는 면적에 따라서 심는 간격을 조정한다. 이처럼 복음도 한마디로 단정을 지을 수 없다. 여기에 복음의 비밀이 있다.
(3) 식물의 일생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식물의 일대기를 이해하면 복음에 대한 이해가 쉽다.
① 파종(播種)
식물이 자라며 결실하기 좋도록 충분한 기간의 여유를 주어 파종한다.
② 성장(成長)
발아 후 추수하기 전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③ 추수(秋收)
식물의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 베기
예리한 낫이나 칼을 사용하여 뿌리와 줄기를 분리하는 과정이다.
ⓑ 훝기
줄기를 건조한 후에 잎과 줄기에서 열매을 분리하는 과정이다.
ⓒ 불기
열매를 바람을 이용하여 알곡과 죽정이를 분리하는 과정이다.
④ 보관
알곡을 모아 곡간에 넣어 두었다기 파종기까지 저장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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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알곡이 됩시다.
💖보좌의 능력과 축복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멋진 날 되시길 바랍니다.💖
알곡이 됩시다.
설교 감사합니다.
알곡이 됩시다.